첫 번째 : 1000만~200만 년 전, 이 때에 지금의 백두산 바닥이 생겼다고 볼 수 있는데 땅 속에서 주로 분출된 것은 알칼리현무암이었고, 이 흔적은 백두산 형제폭포 바닥에서 발견된다.
두 번째: 신생대 제3기, 한반도에서도 공룡이 멸종하고 매머드가 살았던 시기인데 한반도에서 화산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
세 번째:이 폭발로 지금의 백두산 봉우리가 생겼는데 이 봉우리들은 끈적끈적한 조면암 용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네번째:신생대 제4기에는 백두산 봉우리에서 다시 현무암이 용암의 형태로 녹아 분출되었는데 이 때의 분출로 용암 대지가 생겼고 현재의 천지가 만들어졌고 이 무렵부터 현재의 백두산 모습이 갖추어지게 되었으며 이후부터 백두산은 휴식기에 들어갔으나 이 사이에도 대연지봉과 소연지봉 같은 작은 기생 화산에서는 계속해서 현무암 분출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화산 폭발이 있었던 것은 1000년 전인데 이 때에는 주로 부석이 분출되었는데 백두산에는 아직도 그 때 타다 남은 숯들이 남아 있다.
역사 기록:<조선왕조실록>(제 37책 현종대왕실록 권지14)을 보면 1668년 6월 2일에 대포 소리처럼 요란한 소리와 함께 큰 돌들이 비처럼 쏟아졌고 붉은색의 흙탕물이 넘쳐흘렀다고 기록(현종9년 음력 4. 23)되어 있고 1668년과 1702년(숙종2년 음5.14: 1702년 6월 3일 실록 제 280책 숙종대왕실록 권지36)그리고 1903년(유건봉의 장백산강강지략: 청나라 광서 29년 )에도 백두산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백두산을 앞으로도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휴화산이다. 이처럼 백두산 일대의 지질은 생성 연대가 짧고 구멍이 많이 뚫린 현무암으로 되어 있어 하천의 발달이 미약하다.
발해의 갑작스런 멸망을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추정하기도 한다.
1985년 설치된 화산지진 관측소(연변조선족자치주 지진변공실관리)에 따르면 1992년까지 78회, 1991년 6월부터는 30회이상 호산성 지진과 미동이 관찰되었다.
중국의 화산학자들의 추정: 2000년~2050년 사이에 제 2의 대폭발(?)이 있을 가능성 제기
2. 백두산의 화산폭발 규모
천문봉에서 부식층 두께는 약73m 이며, 천지에서 멀어질수록 두께는 점차 작아져 삼포 일원에서는 30cm~1m에 이른다. 이때 분출된 화산회가 멀리 동해와 일분 혼슈 북부 및 훗카이도 일원까지 날아가서 쌓인 응회암이 산재한다. 일본학자들은 이를 'B-Tm ash'(The Baedusan-Tomakomai ash)라 부른다. 응회암의 두께는 일본에서는 약1~5cm 이고, 동해에서는 해양시추 자료에 의하면 1~16cm에 달한다.
일본 북부에서는 이 B-T-화산회를 1천년 전에 분출된 화산 분출물의 기준, 즉 열쇠층으로 사용한다. 이보다 아래에 있는 화산회층은 그 이전에 쌓인 지층으로, 이보다 위 화산회층은 그 이후에 쌓인 지층으로 간주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로부터 멀지 않은 함경북도 삼포 일원에는 나무들이 완전히 숯으로 되어 있다. 또 천지 가까이에서 매몰된 나무 일부분이 숯으로 탄화돼 있고 화산쇄설암후가 협재되어 있다. 이는 고온의 화산회가 흘러 삼림을 덮음으로써 화산회가 접촉하는 부분이 매몰되고 탄화된 것으로 해석된다.
천지 주변의 부석과 화산회 퇴적층에서 자주 발견되는 탄화목은 당시 생장하던 버드나무, 가문비나무 등인데 탄화목의 탄소 동위원소연대는 1410년전, 1230년전, 1153년전, 1050년전으로 보고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일본과 한국 일부에서 발해멸망이 백두산 분화 탓이라는 주장이 제기되 관심을 끌고 있다. 백두산 주변과 개마고원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발해왕조(서기 698~926년)는, 신라에게 망한 고구려의 유민들이 송화강 이남 지역과 고구려의 옛 영토를 거의 확보하여 세운 국가였다. 이들은 고구려 문화를 물려 받고 당나라의 관제와 문화의 영향에 힘입어 '해동성국'을 이룩하여 국세를 떨쳤으나, 14대 229년만에 일시에 멸망했다.
서기 926년을 전후하여 천지 칼데라를 형성한 백운봉기 화산활동 절정기에 화산분출로 인한 고온의 화산회가 편서풍을 타고 동쪽의 발해 일대를 뒤덮고(베수비우스 화산분출로 고온의 화산회와 화쇄류가 폼베이시를 멸망시키듯), 화재 및 지진 등으로 인한 막대한 인명손실 및 재산상의 피해가 발해왕조 내부사정과 연계돼 멸망을 촉진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 진위 여부는 확인이 되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추리임은 분명하다.
3. 백두산의 지형 특징
지질·지형: 백두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지형이 복잡한 데다 대륙쪽으로 열려 있고, 한반도쪽은 고원과 2000m 이상의 고산지가 둘러있으며 급격히 동해로 이어지고 있어, 독특한 산지기후와 자연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1597·1668·1702년에 백두산이 폭발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최근까지 활동한 휴화산이다.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제3기에 이루어진 산꼭대기는 알칼리성 조면암으로 구성된 종상화산(鐘狀火山)이다. 대략 2200m를 경계로 그 이하는 제4기에 현무암이 열하분출하여 용암평원을 이루어 순상화산(楯狀火山)의 형태를 보인다.
중앙화구는 그 뒤 함몰에 의하여 칼데라가 되었고 여기에 강수와 융설수가 괴어 천지(天池)를 이루었다. 천지는 흔히 용왕담이라고도 하며, 남북의 길이 4.85㎞, 동서의 나비 3.35㎞, 둘레 13.11㎞, 평균수심 204m, 총적수량 20억 400만㎥이다.
이곳은 병사봉을 비롯한 망천후·비류봉(沸流峰)·차일봉 등 16개의 산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주위의 화구벽은 400∼500m의 높이로 절벽이어서 접근할 수 있는 곳은 병사봉 동쪽과 달문 부근뿐으로, 천지로 내려가는 완경사 지형인 권곡(Kar)에 해당한다.
천지의 물은 북쪽의 화구벽, 곧 승사하(乘磋河)로 뚫린 달문을 통하여 넘쳐 흘러 높이 68m의 비룡폭포를 이룬다. 제4기에 이루어진 현무암은 개마고원 일부와 만주에 걸쳐 동서 240㎞, 남북 400㎞에 이른다.
수직단면의 지질을 보면, 상층은 기공이 있는 현무암, 그 다음층은 회색의 석질이 단단한 덩어리의 현무암, 원마도가 높은 자갈, 현무암층의 순으로, 중간의 자갈층은 현무암대지의 형성 이전에 상당기간 흐르는 물에 의한 침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두산 동쪽 삼지연에서 신무성을 지나 원지에 이르는 일대는 높이 1500m, 반지름 30㎞인 대표적인 용암대지 지역이다. 비룡폭포에서 약 2㎞ 부근에 있는 온천군(群)은 백두산이 아직도 잠재적으로 화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이처럼 백두산 일대의 지질은 생성연대가 짧고 다공질인 현무암이어서 지표수의 흐름이 순조롭지 않아 하곡(河谷)의 발달이 미약하다.
4. 기타
백두산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국경지대에 자리잡은 휴화산으로 산 전체의 총 면적은 8,000 평방km 이다. 남북한을 통틀어 가장 높은 산으로 남한에서는 2,744m, 북한에서는 2,749.2m로 표기하여 약 5m의 차이가 난다.
백두산은 여러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해발 2,500m이상인 봉우리 만도 16개이며, 시대에 따라 이들 봉우리의 명칭이 달랐다.
우리 나라에서는 요즈음 장군봉(2,749.2m), 망천후(2,712m), 비류봉(2,580m), 백암산(2,670m), 차일봉(2,596m), 층암산(2,691m), 마천우(2,691m) 등의 7개 봉우리에만 명칭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측에서는 우리의 장군봉을 백두봉이라고 부르는 것을 비롯하여 삼기봉, 고준봉, 자하봉(2,618m), 화개봉, 철벽봉(2,560m), 천활봉, 용문봉, 관일봉, 금병봉, 지반봉(2,603m), 와호봉(2,566m), 관면봉등 16개 봉우리에 모두 명칭이 있다. 이러한 명칭은 1900년대 초에 붙여진 이름이다.
백두산 천지는 여러 차레의 화산 폭발과 함락에 의하여 이루어진 칼데라호이다. 수면의 해발 고도는 2,189m로 전세계 화산호 중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천지의 동서 길이는 3.51km, 남북 길이는 4.5km이다. 평균 물 깊이는 200m이며 가장 깊은 곳은 384m이고, 총저수량은 19.55억㎥이다. 천지의 물은 북쪽 승차하를 따라 일년 내내 장백폭포로 흘러 내리는데, 그 총 유량은 약 3,866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