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번째 편지 - '장마'에 대한 공부
장마철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장마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매년 겪는 장마이지만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우선 <장마>의 한자는 어떻게 쓸까요? 저는 장은 길 長이고 마는 비를 뜻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장마의 '마' 자는 매실을 뜻하는 '梅' 자가 변형된 것이었습니다.
고대 한국어에서는 "매"로 발음되던 한자가 중세 한국어와 현대 한국어로 넘어오면서 발음 변화가 생겨 "매"가 "마"로 변형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예전에는 장매(長梅)로 발음하던 것이 이제는 장마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좀 의아하시다면 일본과 중국에서 장마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보면 이 변화를 금방 이해하게 됩니다.
일본은 장마를 쯔유(梅雨)라고 합니다. 거기도 '梅' 자가 들어갔네요. 중국은 어떨까요? 중국도 메이유(梅雨)라고 해서 '梅' 자가 들어갑니다.
이렇게 한중일의 장마라는 표현에 '梅' 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장마가 매실이 익는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긴 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장마는 왜 생길까요? 쉽게 설명하면 세력이 비슷한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힘겨루기를 하며 <정체>해 있기 때문입니다.
북쪽 러시아 해안 지역에 위치한 차갑고 습한 <오호츠크해 기단>과 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1,000km 정도 떨어진 오가사와라 제도 부근의 덥고 습한 <북태평양 기단> 사이에 뚜렷한 정체전선이 생기면서 장마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단(氣團)이란 성질이 비슷한 큰 공기 덩어리를 말하는데 주로 평평하고 넓은 대륙이나 해안에서 발생합니다.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은 모두 습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서 비가 오래도록 내리는 것입니다.
장마 기간은 보통 30일에서 35일 정도인데, 이 기간 중 실제 비가 내리는 날은 15일에서 20일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도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태평양 기단>이 부딪혀 생기는 정체전선 때문에 내리는 비는 12일에서 16일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우리나라 산악지대에서 생기는 기단 때문에 지역적으로 내리는 비입니다.
장마도 세월에 따라 변하는 모양입니다. 최근 20년은 하루 종일 내리는 <장대비>보다는 갑자기 쏟아지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집중호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또 낮에는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밤만 되면 국지성으로 세차게 쏟아지는 <야행성 장마>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상청은 2009년부터 장마 예보를 중단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 내리는 비의 양상이 호우에는 해당해도 과거와 같은 장마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원래 장마는 대체로 남쪽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서울로 올라올 때쯤은 세력이 많이 약화되는데 2003년부터는 북쪽부터 장마전선이 형성되어 <하행선 장마>라는 용어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경험하는 것이지만 국지적으로 내리는 비는 장마라기보다는 아열대성 국지성 호우 같은 느낌을 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도 동남아가 되었나 봐'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2022년부터 기상청은 장마를 다른 용어로 대체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0월 20일 기상청 주최로 <기후의 위기, 장마 표현이 적절한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참석자 일부는 <장마> 대신에 아열대성 기후에서 강수가 집중되는 구간을 의미하는 <우기>로 바꾸자고 주장했지만 다수는 시기상조라며 주저하였다고 합니다.
2010년 중반부터 시작된 <마른 장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장맛비가 내려야 함에도 해만 쨍쨍하거나 강수가 거의 없는 채로 한여름으로 들어가는 패턴을 말합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 동안, 2020년과 2023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른 장마>로 제대로 된 장마를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마른 장마가 한반도에 오면 중국이나 일본은 물 폭탄이 터져 물난리를 겪는다고 합니다.
장마 하면 떠오르는 표현이 <꿉꿉하다>입니다. 조금 축축하다는 뜻입니다. 빨래도 안 마르고, 곰팡이 냄새도 나고, 기분도 나쁘고, 몸도 찌뿌둥합니다. 습도가 낮은 날이 그리워집니다.
1994년 여름은 저희 부부 생애에 가장 '꿉꿉한' 해였습니다. 그해 여름은 지독히도 더웠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 김일성이 죽던 해, 참 징글맞게도 더웠지'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죽었습니다. 바로 그 해입니다. 우리 가족이 그 해를 징글맞도록 꿉꿉하게 느끼는 것은 아내가 아들 정민을 임신한 해였기 때문입니다.
해산 달을 몇 달 남겨둔 아내는 무척 더워했습니다. 그러나 임산부에게 좋지 않아 에어컨을 켤 수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더위와 습기에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찾은 것이 제습기입니다.
저는 그때 제습기를 처음 보았습니다. 기술이 떨어진 시절이라 제습기는 작동만 시키면 딸 딸 딸 하는 소리를 크게 내었습니다. 제습기를 틀고 자자니 소리가 시끄럽고, 끄고 자자니 꿉꿉해 미치겠고 그해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 후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어느 해도 그해만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제 생애 마지막까지도 그해만큼 꿉꿉한 해는 없을 것입니다.
그 1994년 여름을 생각하며 2024년 장마도 버텨 내려고 합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6.24. 조근호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