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프로바둑 기사는 누구일까? 혹자는 이창호라고 말할지 모른다. 내제자로 들어간지 6년 만에 스승 조훈현을 꺽은 무서운 소년 이창호는 한국 바둑을 제패하며 아무도 꺽을수 없는 무적의 승부사 처럼 보였다. 제자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 무관의 제왕으로 추락해야 했던 조훈현. 사람들은 이제 조훈현의 시대가 갔다고 했다. 조훈현은 이제 다시 일어나지 못 할 것이라 했다. 그러나 97년. 사람들의 예상은 깨어졌다. 네 번의 시합에서 조훈현이 이창호를 격파한 것이다. 한 번 무너지면 다시 재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프로 기사의 세계. 조훈현은 불사조였다. 한국 바둑의 역사를 이끈 사람. 세계 바둑의 물줄기를 바꾼 사람. 한국 바둑 역사에는 몇 개의 세계 최고 기록들이 있다. ·세계 최연소 입단 ·세계 최다승(97년 3월 까지 1109승) ·세계 3대 대회 그랜드 슬램 그리고 한국 바둑 전관왕 3회라는 신화적 기록. 이 모든 기록을 세운 사람은 조훈현이었다. 그리고 아직도 기록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조훈현이 우리 바둑에 끼친 영향은 기록 뿐만이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바둑이 일본 바둑을 따라 잡는 것은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89년 응창기배에서 일본 바둑을 꺽고 한국 바둑을 세계 최강의 바둑으로 우뚝 세운 주역 또한 조훈현이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바둑의 최정상을 지켰던 조훈현. 그는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한국 바둑의 가장 큰 봉우리다.
⊙ 성공 비결 1 : 천재 - 될 떡잎은 일찍부터 키워라! 바둑의 천재라 불리웠던 조훈현. 그의 천재성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조규상 씨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 조규상 씨는 일본에서 유학까지 마쳤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목포에서 작은 지물포를 운영하던 인텔리였다. 그런 그가 아들 조훈현의 재주를 발견한 것은 조훈현의 나이 4살 되던 해의 일. 아들의 천재성을 꽃피우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선생님이 필요했다. 스승을 찾아 고향의 생활 기반을 버린 채, 아들의 손을 잡고 서울로 올라 온 조규상 씨. 그는 자식을 위해 위해 보문동 시장에서 야채행상을 하며 리어카를 끌어야 했다. 아버지 조규상씨. 그는 어떻게 아들 조훈현의 천재성을 발견 했으며 어떻게 천재성을 길러 준 것일까?
⊙ 성공 비결 2 : 스승 - 좋은 재목은 좋은 스승에게 조훈현이 일본을 떠난 것은 10살 되던 해. 한국에서 프로 2단이었던 조훈현은 일본에서 4급 판정을 받게 된다. 그 일로 너무나 커다랗게 자존심이 상했던 10살 꼬마 조훈현. 그 때 그가 이를 악물며 했던 결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조훈현의 일본 시절을 이야기를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두 사람은 조훈현에게 정신을 가르쳤다는 세고에와 바둑의 기술을 가르쳤다는 후지사와다. 내제자라곤 단 두 사람만 길러 냈던 세고에. 그가 기른 제자는 바둑의 신이라 불리운 오청천과 하시모토였다. 스스로 두 제자만으로 족하다고 했던 세고에. 그는 왜 조훈현을 내제자로 받아 들였던 것일까? 또, 술과 노름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면서도 바둑의 기술로는 따라 갈 사람이 없다는 후지사와. 그는 왜 조훈현을 그토록 아꼈던 것일까? 내제자를 길러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를 배출하는 일본 바둑계의 명문들. 스승은 제자에게 평생 3판의 바둑만 두어주는 것이 관례라는 그 곳에선 어떤 교육이 이뤄지며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어떤 의미일까?
⊙ 성공 비결 3 : 투혼 -투혼을 기르려면 배고픔을 배워라! 조훈현은 승부사다. 그것도 마지막까지 절대로 승부에 대한 집념을 놓치지 않는 질긴 근성의 승부사다. 그의 이러한 승부 근성은 20대 처절한 배고픔의 시절을 거치면서 터득한 것이었다. 바둑 수업을 채 끝내지 못한 채, 병역 의무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조훈현에게 닥친 현실은 병석에 누운 아버지와 버는 사람 하나 없이 당장 내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집안 살림이었다. 거기다 한국말 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겪어야 했던 군생활. 조훈현은 밥을 위해, 여동생의 등록금을 위해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타이틀을 따야만 했다.시합에 질 때마다 넓은 연병장을 기어 들어 오며 자신을 채찍질 했다는 조훈현. 그의 배고팠던 젊은 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 성공 비결 4 : 맞수 1, 2 - 10년 동안 불태운 집념 오랜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다 보면 교만과 타성에 스스로 지쳐 버리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조훈현은 76년 최고위 타이틀을 시작으로 89년 응창기배에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정상에 설 때 까지 단 한 번도 정상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조훈현이 그토록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이었을까? 사람들은 영원한 맞수 서봉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훈현은 말한다. 내가 독기를 가지고 정상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서봉수' 때문이 아니었다. 나의 맞수는 또 다른 곳에 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맞수를 향해 끊임없이 칼을 갈았기 때문이었다.
⊙성공 비결 5 : 맞수 3-마음을 비워야 다시 일어난다 89년. 조훈현이 이창호에게 패배하자 사람들은 조훈현의 시대가 갔다고 했다. 내제자 이창호에게 꺽인 조훈현은 다시는 재기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97년 4월 KBS 바둑왕전, 5월 SK 텔레콤 배달왕기전, 9월엔 유공배 명인전에서 이창호를 꺾으며 조훈현은 다시 일어 났다. 나이 40을 바둑계에선 환갑이라 부른다. 신경을 곤두세운 10시간이 넘는 대국에서 체력이 딸리면 머릿속이 공백상태에 빠지며 더 이상 계산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 나이 마흔다섯의 조훈현이 다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