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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일전 또는 일농전으로 불리는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의 축구정기전이 기반이 된 강릉의 축구 열기는 뜨겁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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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단오제는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된 전통축제다. 200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등록됐다.
전통문화 전승의 통로이자 체험적 교육현장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까지 지정문화재행사, 전통연희한마당행사, 민속놀이행사, 경축행사, 체험학습행사 등 47개 세부 종목으로 구성돼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한 종목이 늘었다. 농일전 또는 일농전으로 불리는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의 축구정기전이 강릉단오제의 48번째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두 학교의 축구정기전이 기반이 된 강릉의 축구 열기는 뜨겁다.
부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열정적인 더비 매치는 유럽에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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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의 축구 정기전 최종 연습에서 강릉농공고 총동문회 이청학 사무총장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기수단이 재빠르게 그라운드로 뛰어나가고 있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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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사로웠던 6월 7일 오전 강릉종합운동장.
다음날 열리는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의 23번째 축구 정기전을 앞두고 식전행사 최종 연습이 한창이었다.
“뛰어와야 돼. 걸어오면 안 돼.” 본부석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이청학 강릉농공고 총동문회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통해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경기장 바깥쪽에서 녹색 잔디 위로 들어오는 기수단의 움직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 뛰어오면 어쩌나. 30초 안에 뛰어와야 해.”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이총장의 목소리가 급기야 갈라졌다.
양교의 정기전은 1976년 시작됐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정기전의 역사는 훨씬 오래됐다.
강릉농공고 축구부는 1935년 창단했고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 축구부는 이보다 6년 늦게 출발했다.
1940년대부터 단오제 경축축구대회에서 여러 차례 자연스럽게 경기가 열렸다.
그때마다 양교 재학생과 강릉 시민의 열기는 뜨거웠다. 지역 축구 발전과 애향심을 북돋우기 위해 드문드문 열었던 경기를 정기적으로 치르기로 의견을 모았고 1976년 6월 2일 강릉공설운동장에서 첫걸음을 뗐다.
정기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1978년부터 2년 동안 한 해에 두 번씩 경기를 했다.
2002년 강릉상고가 인문계인 강릉제일고로 바뀌면서 강릉상고 시절 불리던 농상전 또는 상농전이 농일전 혹은 일농전으로 이름을 바꿨다.
강릉농공고가 주최하면 정기전 정식 명칭은 농일전이 되고 강릉제일고가 주최하면 일농전이 된다.
해마다 주최측이 바뀌는데 올해는 강릉농공고 차례다.
이총장은 “작년에 농일전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올해 경기에 기대감이 크다. 이번 행사는 강릉농공고 개교 80주년과 강릉제일고 개교 70주년에 열리는 거라 뜻이 깊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강릉단오제 정식종목이 됐다. 평소와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며 유난히 목소리를 높인 까닭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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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공고 재학생들이 교복을 이용해 호랑이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강릉농공고의 마스코트는 호랑이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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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실력경기를 하루 앞두고 강릉농공고 축구부가 강릉종합운동장을 찾았다.
식전행사 최종 리허설이 열리는 가운데 이들은 그라운드 한편에서 가벼운 훈련을 했다.
그런데 선수들을 바라보는 강릉농공고 이화열 감독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갑작스럽게 팀을 맡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어렵게 팀을 꾸려 왔지만 솔직히 내일(6월 8일) 경기에서 강릉제일고를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수들의 경기력 차이가 크다.”
이감독의 걱정은 라이벌 강릉제일고의 막강한 전력에서 비롯됐다.
강릉제일고는 5월 13일부터 24일까지 강릉에서 열린 2008 금강대기전국고등학교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까지 7경기를 치르는 동안 15골을 넣었고 실점은 없었다. 개인상도 싹쓸이했다.
3학년 박준석이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2학년 구청모가 득점왕에 올랐고 같은 학년의 박종철은 골키퍼상의 영예를 안았다. 강릉제일고 홍주영 감독은 지도자상을 수상했다.
강릉제일고에 비하면 강릉농공고의 전력은 초라하다.
강릉농공고 축구부는 현재 3학년이 없다. 축구부원 21명 가운데 강릉 출신은 6명뿐이다.
대부분 다른 학교에서 벤치를 지키던 선수들이고 강릉농공고로 전학온 지 6개월이 채 안됐다.
강릉제일고에서 온 선수도 있다. 맞수라고 하기에는 양교 축구부의 수준 차이가 크다.
강릉농공고 김동식 교장은 “(강릉농공고의 전력이 약해진 것은)전 감독 때문이다. 전 감독이 올해 초 선수들과 학부모를 꼬드겨 다른 학교로 가 버렸다. 강릉농공고 축구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다른 지역의 선수들을 급히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앞서 작년 봄에는 학교 측과 마찰을 일으켜 농일전을 아예 무산시키기도 했다. 지난해 농일전이 열리지 않은 이유”라고 말했다.
내홍이 컸던 강릉농공고는 후임 감독으로 모교 출신인 이감독을 골랐다. 그리고 이감독은 짧은 시간에 선수들의 조직력을 끌어올리는데 힘을 쏟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하루 4차례 공을 차는 강도 높은 훈련이었다. 목표 시점은 양교의 축구정기전이 열리는 6월 8일에 맞췄다.
강릉제일고는 강릉농공고를 배려해 정기전에 3학년을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
강릉제일고에서 강릉농공고로 전학한 오른쪽 윙백 이동규는 “한솥밥을 먹던 친구들과 경기를 앞두고 있어 기분이 이상하다. 그러나 제일고를 잘 알고 있어 우리에게 유리한 점도 있다. 4-4-2 포메이션을 쓰는 제일고의 미드필더 김정주가 가장 위협적이다. 그 친구를 잘 막으면 우리에게 승운이 따를 수도 있다”고 필승의 의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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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위치와 동작을 나타낸 밑그림은 지난 4월 완성됐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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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전 준비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식전행사 최종 리허설을 지휘하던 강릉농공고 총동문회 이총장이 이번에는 반대쪽 스탠드에 자리 잡은 2,100여 명의 양교 재학생 응원단에게 지시를 내렸다.
교복을 이용해 다양한 문구와 그림을 연출하는 양교 합동 응원이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강릉농공고 김교장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다.
김교장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재학생 응원단을 가리키며 “왼쪽 첫 번째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이 도망간 것 아닌가”라며 “응원전은 꼭 이겨야 할 텐데”라며 노심초사했다.
강릉농공고는 재학생 응원에 많은 공을 들였다. 1,100여 명의 강릉농공고 학생들이 손발을 맞춘 기간은 일주일이다.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응원 연습에 힘을 쏟았다. 박원균 강릉농공고 학생회장은 “애초 2주의 응원 준비기간을 계획했으나 비가 내려서 일주일밖에 연습을 못했다. 그래서 완성도가 떨어질까 걱정”이라며 “두 줄 간격으로 한 명씩 사람이 들어가 구호를 외친다. 그 구호에 맞춰 학생들이 각각의 동작을 취한다. 예를 들어 ‘너 (교복)열어, 넌 (교복)닫고’라고 하는 식이다. 그러면 풀어헤친 교복 사이의 티셔츠 색깔이 달라 문구나 그림을 만들 수 있다”고 응원 방법을 설명했다.
강릉농공고의 최중용 교사는 “학생들이 손발을 맞춘 기간은 일주일이지만 지난 3월부터 응원전 준비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4월 말께 학생들이 응원전을 펼칠 문구와 이미지 등의 밑그림을 완성했고 각자 위치와 동작을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경기도 경기지만 응원전을 통해 양교의 경쟁의식이 잘 나타난다. 그래서 응원전만은 꼭 이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강릉농공고에 비해 강릉제일고의 응원 준비기간은 짧았다. 이번 정기전을 앞두고 토요일 특별 활동 시간(5월 17일,5월 31일)을 활용해 두 차례 손발을 맞췄을 뿐이다.
이날 최종 리허설 자리가 세 번째 연습이다. 학생 수도 강릉농공고에 비해 100여 명이 적다 보니 조직적인 응원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강릉제일고 학생부장 김명래 교사는 “경기는 큰 어려움 없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응원전이 문제다. 강릉제일고가 인문계로 바뀌면서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아졌다. 수업 때문에 응원 준비에 따로 시간을 뺄 수 없었다. 그랬다간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 재학생들은 모교 응원뿐만 아니라 연합 응원도 준비했다.
본부석에서 바라볼 때 왼편에 자리한 강릉제일고가 ‘강릉’이라는 문구를 보이면 오른편에 있는 강릉농공고는 ‘단오’라는 글자를 펼쳐 보인다. 합하면 ‘강릉 단오’가 된다.
이렇게 준비한 문구는 ‘일고 개교’‘70 축하’‘농공 개교’‘80 축하’‘강릉 단오’‘유네 스코’‘등록 축하’‘Run to 2018’‘아자 Go’ 등 모두 9가지였다.
강릉농공고 총동문회 이총장은 “강릉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대단하다. 여기에는 양교의 축구 정기전이 큰 구실을 했다. 농일전은 단순한 축구 정기전 이상의 성격을 갖고 있다. 지역 문화와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됐다. 강릉 출신으로 타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단오제 때는 고향을 찾는다. 양교의 축구 정기전에 상당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정기전이 열리지 않아 적지 않은 사람이 실망해 오지 않았다. 이번에 축구 정기전이 강릉단오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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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공고 총동문회 이청학 사무총장(왼쪽)과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의원 사무총장.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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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역사강릉농공고 김교장은 “농일전은 강릉 단오제의 꽃이다. 지난해 농일전이 중단되자 강릉 시민들의 아쉬움이 컸다. 단오제의 인기도 시들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경기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축제를 되살려야겠다는 생각이 컸다”며 열악한 전력에 상관없이 올해 양교의 축구 정기전이 부활한 까닭을 설명했다.
강릉농공고 총동문회 이총장도 같은 생각이다. 이총장은 “강릉농공고가 질 것을 걱정해 이번 농일전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동문들이 있다. 그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만큼 농일전의 열기가 뜨겁고 우리에게는 자존심이 달린 일”이라고 설명했다.
1976년 시작한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의 축구 정기전은 지난해를 포함해 모두 5번 중단됐다.
대부분 과잉 열기에 의한 폭력사태가 이유였다.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은 축구 정기전이 학생 시위로 번질 것을 우려해 대회를 강제로 취소했다.
1981년 부활한 농일전은 이듬해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재학생 집단 난동 사건이 일어나 사회문제로 번졌다.
양교는 강원도축구협회의 주선으로 1989년 6월 9일 축구 정기전을 부활하기까지 6년 동안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역대 농일전에서 가장 오래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던 기간이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의원 사무총장은 “흥분한 학생들이 상대 학교의 교문을 뜯어 논밭에 버리는 일이 있었다. 학생들은 또 농기구를 들고 와 상대 학교 유리창을 깨는 등 분위기가 험악했다”며 16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강릉농공고 총동문회 이총장은 “그때 검사실에 불려간 적도 있다. ‘농일전을 안 하면 안 되겠냐’고 묻기에 ‘그럴 수는 없다. 앞으로는 폭력 없이 경기를 치르겠다’는 약속을 하고 겨우 풀려났다”고 말했다.
열기도 열기지만 시설이 낙후된 강릉공설운동장도 문제였다.
선수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어 동선이 겹쳤다.
경기가 끝나면 이긴 팀과 진 팀을 나눠 출입문을 빠져나가도록 했지만 두 팀의 충돌을 아예 막을 수는 없었다.
잔디가 아닌 맨땅에서 경기가 열린 탓에 주위에 널린 작은 돌을 줍기가 쉬웠다.
경기가 과열되면 양 팀 응원단석으로 적지 않은 돌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총장은 “1994년부터 강릉종합운동장으로 경기 장소가 바뀌면서 양교의 폭력 사건은 사라졌다. 3만 명 수용 규모의 강릉종합운동장은 출입문이 여럿 있고 잔디가 깔려 있다. 양교 재학생 응원단 사이에 200여 명의 경찰과 선수 학부모들이 자리를 잡고 앉도록 했다. 앞으로도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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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강릉제일고 총동창회에서는 강릉농공고와의 축구 정기전이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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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의 수난양교의 축구 정기전을 하루 앞두고 강릉제일고에서는 총동창회가 열렸다.
인조 잔디가 보기 좋게 깔린 축구장 주위로 기수별 졸업생들이 가족과 함께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다음날 열리는 축구 정기전이 단연 화제가 됐다.
이들은 축구 정기전이 강릉 단오제 정식종목이 돼 앞으로는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럴 만했다. 양교는 1991년부터 3년 동안 경비 부담이 커 협의 하에 축구 정기전을 중단한 적이 있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총장은 “무대 설치 및 음향 장비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응원 경비와 재학생들 간식비 그리고 심판 및 경비 비용을 모두 따지면 양교 합쳐 해마다 약 1억 원의 돈을 쓴다. 올해 강릉 단오제 정식종목이 되면서 비용의 절반 정도는 협찬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큰 부담을 덜었다”고 설명했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에 참석한 동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내용은 다음날 열릴 경기 얘기였다.
강릉농공고의 전력이 약해 쉽게 이길 것이라는 기대가 숨어 있었다. 강릉제일고는 지난 대회까지 강릉농공고에 4승13무5패로 뒤지고 있었다.
이번에 이기면 타이를 이룰 수 있다. 정기전에 맞춰 강훈련을 한 강릉농공고와 달리 강릉제일고는 여유가 있었다.
강릉제일고 홍주영 감독은 “전통적으로 양교의 경기는 실력보다 정신력에서 판가름이 났다. 그러나 이번 경기만큼은 기본 전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건 아니지만 자신감이 있다. 선수들에게도 ‘그냥 평소대로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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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공고-강릉제일고 정기전 역대 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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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교의 역대 전적을 보면 이상하게 무승부가 많다. 스코어를 기록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1996년부터 7번 연속 승부를 내지 못했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는 5번 연속 0-0으로 비겼다. 계속되는 무승부에 불만이 터져 나오자 양교는 2004년 승부차기를 도입했다.
그러나 승부차기는 한 해만 시험적으로 시행했고 2005년 사라졌다. 승부차기에 실패한 어린 학생에게 지나친 심적 부담이 따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총장은 “(무승부가 유난히 많은 까닭은)심판 문제로 봐야 할 것이다. 양교의 축구 열기가 지나치게 뜨겁다 보니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려는 심판이 많았다. 안 그랬다간 경기가 끝난 뒤 동문들에게 멱살을 잡힌다. 그래서인지 심판을 불러오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6월 8일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의 경기에 대기심을 맡기로 한 최태원 심판은 10년째 양교의 정기전을 지켜본 산 증인이다.
“타지에서 온 심판들은 강릉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심판을 맡아 달라고 하면 손사래를 쳤다. 최근에는 사라졌지만 예전에 심판들은 경기가 끝난 뒤 곤욕을 치렀다. 집안의 장독대부터 시작해 심지어 자동차까지 부서졌다. 경기에 진 학교에서 단체로 찾아와 부순 것이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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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윗줄 왼쪽에서 첫 번째)은 일농전에서 큰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사진 제공=강릉제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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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축구 스타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낳았다.
강릉이 고향인 한국프로축구연맹 김원동 사무총장은 “K리그에서 뛰는 강릉 출신 선수들은 전체의 10% 정도”라고 말했다.
30만 명이 채 넘지 않는 강릉의 인구를 고려하면 매우 높은 비율이다. 강릉제일고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설기현(풀럼)과 이을용(FC 서울)이다.
설기현과 이을용은 양교 축구정기전에 초청되는 등 강릉을 대표하는 축구선수가 됐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총장은 “설기현은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일농전에서도 그리 큰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큰 선수가 된 것을 보면 신기하다”고 옛 기억을 떠올렸다.
둘 말고도 강릉제일고 출신 유명 선수는 많다.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선수들만 따져 봐도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는 정경호(전북 현대), 염동균(전남 드래곤즈)을 비롯해 전재운(제주 유나이티드), 전광환(전북), 이준영(인천 유나이티드) 등이 강릉제일고를 나왔다.
지난해 K리그 신인왕에 올랐고 올림픽대표팀에서 활약한 하태균(수원 삼성)도 강릉제일고 출신이다. 광주 상무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강조 감독은 이들의 대선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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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일전 OB 경기에 나선 김학범 성남 일화 감독(아랫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사진 제공=강릉제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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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공고도 강릉제일고에 못지않다. 선수 시절 K리그 개인 통산 득점 신기록을 써 나갔던 울산 현대의 김현석 2군 코치가 강릉농공고 출신이다.
김코치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우성용(울산 현대)은 선배의 전통을 이어받아 올 시즌 K리그 역대 최다골에 도전하고 있다.
이밖에 박우현(성남 일화), 최재수(서울), 전우근(부산 아이파크) 등이 강릉농공고를 졸업했다.
지도자로는 성남의 김학범 감독이 이 학교를 나왔다. 김감독의 후배인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의 박문영 감독은 “양교의 축구 정기전을 둘러싼 선수들의 경쟁의식은 예전이 더했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강훈련을 했으니 선수들의 정신력이 대단했다. 발목이 삐어도 뛰어야 했는데 김학범 선배가 그랬다. 정기전 도중 발목에 금이 갔는데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그라운드에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들이 ‘이 상태로 어떻게 경기를 뛰었느냐’며 깜짝 놀랐다”는 일화를 전했다.
강릉제일고의 총동창회가 끝날 무렵 한 무리의 동문이 다음날 열리는 축구 정기전에서 선보일 응원을 준비했다.
이들은 “강릉상고가 인문계인 강릉제일고로 바뀌면서 재학생 응원에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선배들이 적극적인 응원을 펼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총장은 “내일(6월 8일) 강릉종합운동장 관중석은 붉은 물결과 파란 물결로 넘칠 것이다. 농공고 동문들이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강릉제일고는 파란 색 옷을 입는다. 재학생 응원 못지않게 선배들의 응원전도 볼거리다. 2006년 정기전에서는 식전행사의 하나로 열린 OB 경기에서 싸움이 난 적도 있다. 그만큼 선배들의 열기도 뜨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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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공고 동문들(왼쪽)은 전통적으로 붉은 색 티셔츠를 입는다. 강릉제일고는 푸른 색 티셔츠를 입고 맞불을 놨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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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식전행사결전의 날이 밝았다.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도로는 강릉종합운동장으로 향하는 차량으로 붐볐다.
경기장 주변은 주차 전쟁이 벌어졌고 경찰은 질서를 잡느라 애를 먹었다. 특석 1만5천 원, 일반석 5천 원인 입장권은 모두 팔렸다.
오후 1시 시작되는 식전행사를 앞두고 강릉농공고와 강릉제일고 학생들이 강릉종합운동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학교의 집합 시간은 달랐다. 강릉제일고가 낮 12시까지인 반면 강릉농공고는 오전 9시까지 경기장에 모였다.
한 번이라도 더 손발을 맞춰 보자는 강릉농공고의 계산이었다. 강릉제일고는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응원 연습을 한 뒤 경기장으로 이동했다.
붉은 색과 푸른 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양교 동문들이 관중석에 들어찼다. 본부석 왼편에 강릉제일고가 자리를 잡았고 반대쪽이 강릉농공고 자리였다.
이날 경기에 투입된 안전 요원은 경찰 100명과 전경 100명이었다. 이들은 본부석 맞은편의 양교 재학생들 사이에 진을 쳤다.
얼굴이 검게 그을린 한 경찰은 “최근 사고 예방이 잘 되고 있다고 하지만 (농일전에서는)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지난해에 대회가 열리지 않아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2년 전보다 안전 요원 수가 늘었다. 본부석은 사고 우발 지역이어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고 경계했다.
조금은 지루했던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김진선 강원도지사, 최명희 강릉시장 등의 축사가 끝나자 경기 시작을 앞두고 양교 동문들의 본격적인 응원전이 펼쳐졌다.
강릉제일고 동문 응원이 눈길을 끌었다. “강릉제일고 출정식”이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과 함께 본부석 왼편에 자리 잡은 강릉제일고 응원석에 두 장의 대형 통천이 등장했다.
이 통천에는 강릉제일고의 학교 로고와 ‘일고’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어 통천이 좌우로 움직이자 함성이 그라운드에 메아리쳤다. 강릉제일고 총동창회 정총장은 “(대형 통천은)강릉농공고에게 재학생 응원이 밀릴 것으로 내다보고 선배들이 준비한 것이다. 제일고 동문의 히든카드였다. 역대 일농전에서 이 정도로 큰 통천을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주심의 휘슬 소리가 울리자 이번에는 재학생 응원단의 화려한 쇼가 펼쳐졌다.
폭죽 소리와 함께 시작된 재학생 응원에 양교 동문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이와 함께 치어리더들이 양쪽 응원석 앞에 마련된 단상에 올랐다.
모교를 응원하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강릉종합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사방에서 펼쳐지는 응원으로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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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사진부터)강릉농공고를 3-0으로 꺾은 강릉제일고 선수들이 선배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강릉제일고 학생들은 교복을 이용해 다양한 문구와 그림을 만들었다. 응원전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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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밤예상대로 강릉제일고가 먼저 경기의 주도권을 잡았다. 강릉제일고는 전, 후반 각각 40분 경기에서 전반 8분 2학년 용우중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기다렸다는 듯 강릉제일고 응원석에서 폭죽이 터졌고 함성이 울렸다. 강릉농공고의 이화열 감독은 강릉제일고 출신인 이동규를 전반 27분 교체로 내보내며 분위기를 바꾸려 했다.
오른 발목을 다쳐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닌 이동규를 앞세운 강릉농공고의 작전은 그러나 오히려 수비에서 역효과가 났다.
강릉농공고는 전반 31분 강릉제일고의 왼쪽 코너킥에 이은 안성우의 헤딩 슈팅으로 두 번째 골을 내줬다. 강릉농공고가 0-2로 뒤진 채 전반전이 끝났다.
하프타임에 강릉농공고 응원석 여기저기서 아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러다 0-3이나 0-4로 크게 질 것 같다. 제대로 전력도 갖추지 않고 왜 정기전을 부활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이들은 강릉농공고 축구부의 현황을 훤히 꿰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강릉농공고 출신 김정두 씨는 “오늘 경기를 보기 위해 고향을 찾았다. 지난해에 좋지 않은 사건이 있어 힘든 경기가 될 것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후배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복도까지 붉은 물결로 메워져 발 디딜 틈 없는 강릉농공고 응원석에서는 경기에서 뒤지는 아쉬움을 달래는 술판이 적지 않게 벌어졌다.
강릉제일고 응원석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들은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 기쁨의 술판을 벌였다.
여기저기서 “강릉제일고가 강릉농공고보다 한 수 위라는 사실을 입증했다”며 흥겨워했다.
경기에 집중하는 팬들도 많았다. 5살 된 아들과 함께 온 강릉제일고 출신 강연호 씨는 “강릉은 국내 축구 4대 발상지 가운데 한 곳이다. 그만큼 축구 열기가 높다. 강릉의 아버지들은 자식이 운동신경이 뛰어나면 모두 축구를 가르치려고 한다. 나도 그럴 생각인데 오늘 경기가 아들에게 좋은 공부가 될까 싶어 데려온 것”이라고 말했다.
후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울렸다. 강릉농공고의 반격이 펼쳐졌다.
강릉농공고 이화열 감독은 전반전에 수비를 보던 김형관을 최전방으로 끌어올렸다.
키가 큰 김형관의 머리를 이용해 득점을 노려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홍주영 감독이 이끄는 강릉제일고는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었다.
강릉농공고가 공격에 무게중심을 두자 강릉제일고에게 역습 기회가 왔다. 후반 37분 강릉제일고 강성훈이 상대 문전에서 수비수 3명을 제친 뒤 오른발 땅볼 슈팅을 날렸다.
강성훈의 발을 떠난 공이 다시 한번 강릉농공고의 골망을 갈랐다. 쐐기골이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나자 강릉제일고 응원석에서 승리의 축포가 터졌다. 강릉제일고 선수들은 단상에 올라 동문 선배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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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명의 관중이 꽉 찬 경기장 분위기는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사진 김동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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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농공고 이동규가 경계대상이라고 했던 강릉제일고의 미드필더 김정주는 “(이)동규와는 친한 사이다. 안 좋은 일이 있어 전학을 가게 됐지만 강릉농공고에서 열심히 하면 앞으로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농전에서 승리를 내줄 생각은 없다. 내년 정기전 때도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농공고 선수들은 경기 결과가 아쉬운 듯 고개를 들지 못했다. 강릉농공고 김동식 교장이 선수들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강릉농공고 선수들이 단상에 올라 선배들에게 예의를 갖추자 격려의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강릉농공고 김동식 교장은 “오늘 경기에서 질 것은 예상했다. 응원전은 우리가 조금 앞섰던 것 같다. 강릉의 축제를 되살렸다는 데 만족한다. 강릉 시민들은 오늘 저녁 이 경기를 화제로 삼아 축제의 밤을 즐길 것”이라고 말했다.
SPORTS2.0 제 108호(발행일 6월 16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