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바의 역사
Complete Book of Ballroom Dancing에 나오는 글입니다.
현재의 룸바 음악은 약간 차이가 있지만 지난 100년이 넘게 쿠바에 존재해 왔다. 룸바라는 말은 서인도음악이나 춤의 한 종류이다. 정확한 뜻은 가는 곳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자메이카나 하이티에서는 "Rumba Box"는 토속음악인들이 시용하는 원시적인 악기를 말한다. 쿠바에서는 룸바를 영세 농민들이 추는 Non Religious "Good Time" 댄스로 얘기한다.
진정한 룸바는 아프리카가 원조이고 음란한 댄스의 특성상 하층민에게 한정된 춤이었다. 원래 룸바 포크댄스는 본질적으로 대단히 빠르고 남자는 감각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로 여자는 방어적인 태도로 힙을 과장되게 움직이며 추는 섹스 팬터마임댄스이었다. 휘겨중에서 여러 가지가 가축에게 쇠굴레를 씌우거나 로프를 돌리거나 뒤뜰에서 구애하는 등 간단한 농촌 일들을 묘사하는 것들이 많다. 음악은 댄서가 왕성하게 표현하는 무브먼트로서 스타카토 비트로 연주한다. 원시적인 룸바 음악에 필요한 악기로는 maracas, 씨앗이나 자갈을 넣은 조롱박, Claves라는 타악기, 스틱, marimbola, 룸바 박스와 드럼이 필요했다.
2차대전 때문에 최근에 "Son" 이라는 춤이 쿠바 중산층에 유행했는데 2/4 박자로 원시 룸바를 발전시켜 느리게 보완했다. 이 댄스의 중심은 Claves라는 룸바 타악기인데 음악의 템포를 정한다. 아직도 느린 음악이 쿠바 부유층의 춤이다. Danzon이라는 음악은 두 파트로 연주되는데 하나는 운문(시)이고 하나는 코러스이다. 사람들은 코러스에 맞춰 춤을 추고 운문이 연주될 때 멈춘다. 스텝은 아주 작게 하며 여성은 무릎을 폈다 구부렸다하며 힙운동을 신비롭게 만든다.
아메리칸 룸바는 Son의 수정된 버전이다. 미국에 처음 룸바가 소개 된 것은 1913년 Lew Quinn과 Joan Sawyer에 의해서 였다. 10년 후 밴드리더였던 Emil Coleman이라는 사람이 몇 명의 룸바 연주가와 댄서들을 미국에 불러들였으나 그 당시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1925년 Benito Collada라는 사람이 그리니치빌리지에 Club El Chico를 개업했으나 뉴요커들은 룸바에 대해서 잘 몰랐다. 손님들은 차라리 아이리시 테너 가수를 부르라고 할 정도였다. 1927년 옷 보관소의 근무자가 Charleston을 밤에 추던 것이 도산에서 구해주었을 정도였다.
미국인들이 라틴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29년 미국인들이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로 관광을 가면서 시작되었다. 1930년 여름, Edward Marks Music Company가 " The Peanut Vender"를 출판했고 미국인들은 갑자기 라틴 음악이 댄스의 원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20년대 말에 Xavier Cugat라는 사람이 라틴 음악 전문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Cocoanut Grove를 열었는데 1930년 Romon Novarro주연의 초기 유성영화인 In gay Madrid에 출연하기도 했다. 1930년대 말까지 Cugat는 뉴욕에 있는 Waldof Astoria Hotel에서 연주생활을 했는데 훌륭한 라틴 오케스트라였다. 1935년 George Raft가 Rumba 라는 영화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댄스로 표현해서 결국 부자 상속인이 된다는 뮤지컬에서 부드러운 댄서로 연기했다.
아메리칸 룸바는 보폭은 아주 짧게 한 왈츠처럼 박스패턴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Cuban Motion이다. 신중하면서도 표현력 있게 힙 무브먼트를 조심스럽게 박자에 맞춰 체중이동을 하는 것이다. 영국식 룸바는 쿠바 룸바처럼 전진 그리고 후진하는 스텝이다. 비록 어떤 라틴 아메리칸 음악은 미국으로 건너가 망가지기도 하지만 룸바는 미국에서 볼룸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춤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글, 번역:캉캉-
첫댓글 좋은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