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임장·인감증명서로 위임 단정못해|
부동산을 거래할 때 계약 당사자가 아닌 대리인이 계약체결 현장에 나오는 경우 위임관계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계약 당사자의 인감도장이 찍힌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확인하는 관행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서류 확인만으로 거래안전을 담보할 수는 없다. 대리권 없이 계약 당사자의 도장만 가지고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을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리로 발급받은 인감증명서는 안전하지 않지만 본인이 직접 발급받은 인감증명서는 믿어도 좋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도 100% 맞는 말은 아니다. 해당 부동산 거래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본인이 직접 발급받은 인감증명서를 대리인이라고 사칭하는 사람이 마음대로 다른 부동산 거래에 도용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청주지방법원 2003. 4. 9. 선고 2002가단7596 손해배상(기) 사건을 소개한다(이해를 위해 실제보다 간략하게 사건을 요약한다).
중개업자 갑은 부동산 소유명의자인 을에게서 매도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을의 형제인 병으로부터 을이 소유한 부동산에 대한 매도 의뢰를 받았다. 을의 부동산 매수를 희망하는 정에게 중개하는 과정에서 병이 가지고 있던 을 명의의 위임장과 인감증명서, 도장, 주민등록등본을 확인하고 계약 체결을 도왔다.
그 후 병이 매매대금 전액을 지급받은 후 행방을 감추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확인된 사실관계에 따르면 병은 매도권한을 위임받은 것이 아니라 을로부터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 관련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다. 결국 대출을 위한 서류로 매도권한이 위임된 위임장을 위조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에 따라 매수인 정은 우선 부동산 소유 명의자 을을 상대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구하는 소송을 걸었지만 재판 결과 ‘병에게 부동산을 매도할 적법한 대리권이 없었을 뿐 아니라 표현대리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결국 손해를 입게 된 정은 이 거래에 관여한 중개업자 갑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등기원리증은 소유권 이전 등기 단계 뿐 아니라 그 이전의 거래에 있어서도 당사자 본인의 증명이나 그 처분권한의 유무 확인 등을 위해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등기권리증 꼭 확인해야
중개업자로서 매도 의뢰인이 알지 못하는 사람인 경우 필요할 때 등기권리증의 소지 여부나 그 내용을 확인.조사해서 알아봐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 그런데 중개업자 갑은 병이 등기권리증을 소지하지 않고, 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었으므로 대리인으로 나온 병이 소유 명의자의 등기권리증을 소유하고 있는지 여부나 그 내용을 확인해서 처분권한의 유무 등을 조사해야할 주의의무가 있는데 이를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로 중개업자의 잘못을 인정했다.
한편 이 사건에서 중개업자인 갑은 ‘이 매매계약의 경우 병에게 표현대리가 인정되어 이 사건 부동산의 계약이 유효하게 될 사안인데 정이 1심 패소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에게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매수인 정은 이 사건 부동산에 대한 등기권리증도 소지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의 부동산에 대한 적법한 매도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주장하는 병에 대해 부동산의 소유자인 을에게 적법한 대리권의 존부에 대하여 확인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다’는 이유로 중개업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정은 중개업자를 통해 일부 손해를 배상받게 됐다.
대리권 확인은 다른 권리관계보다 훨씬 중요하고 가장 기초적인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소홀히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로티스 법률사무소 최광석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