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나) 12제자 부르심과 파견 2009,7,12.
사랑합니다. 제1독서를 묵상하면서 불현듯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인색하기로 소문난 부부가 살고 있었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왔다.
부엌에서 식사 준비를 끝낸 각시가 보니, 그 친구가 갈 기색이 없다.
각시가 친구와 이야기 하는 남편에게 가서 암호로 이야기를 걸었다.
人良上하오리까?(食上 - 밥 올릴까요?).
남편이 대답한다. 月月山山커든(朋出 - 친구가 가거든).
친구가 보니 그 부부가 하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래서 한 마디 했다. 丁口竹天이로다(可笑롭도다.).
있는 자들의 인색한 모습을 보고서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우스갯소리다.
있는 자들이 인색하면서도 거들먹거리는 모습을 보고 성서도 말합니다.
“하늘에 좌정하신 분께서 웃으신다.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시2,4)
오늘 복음(마르3,13-15)은
12제자를 뽑는 이야기와 12제자들의 직무(職務)에 대한 이야깁니다.
“12 제자”, 파견하다(7절), 선포하다(12절), 마귀를 쫓아내다(13절)란
말마디가 우리를 재촉합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뽑으시고 파견하시는
목적을 알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12제자와 함께 지내고 싶으셨습니다(3,14).
† 예수님은 12제자를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주고 싶으셨습니다(3,14).
†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병을 고쳐주었습니다(6,12-13).
사도 바오로는(제2독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을 이렇게 알아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에페1,4-5)
“만물을 당신의 결정과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의향에 따라
미리 정해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한몫을 얻게 되었다.”(에페1,7)
예언자 아모스(아모7,12-15)에 따르면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고 우리가 받을 몫은
“이 세상 것이 아니고, 천상적인 것이고,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아마츠야와
하느님 때문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포기하고 낮선 타향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아모스는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팔아서 밥벌이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유능하고
그럴듯한 말도 잘합니다. 예전의 아마츠야도 오늘의 아마츠야도 말합니다.
“다시는 베텔에서 예언하지 마라.
이곳은 임금님의 성소이며 왕국의 성전이다.”
그런데 “하늘에 좌정하신 분께서 웃으십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십니다.”(시2,4)
예수님의 제자란 누구인가?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사람입니다.”
★ 공관 복음서는 제자(弟子)라는 말을
‘주님과 함께 지내는 자’, ‘주님과 함께 다니는 자’라 했습니다.
- 예수님께서 대사제 가야파의 집에 끌려가 두들겨 맞고
재판을 받는 동안 베드로는 세 차례나 배반합니다.
걸어 넘어트리는 하녀가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너도 저 사람의 제자이지?" 라고 물어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도 저 사람과 함께 다니던 사람이지?"라고 물었습니다(마르 14,67).
- 군대라는 마귀에 들렸던 사람이 청원을 드릴 때도(마르 5,18).
"예수님과 함께 지내게 해주십시오."하고 청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는 자'는 제자 직분의 첫 번째 표시였습니다.
신창동 성당에 계신 “여러분도 늘 주님과 함께 지내시길 빕니다.”
★ 요한복음은 제자를 '주님과 함께 머무는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머물다'는 제자직의 본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된 요한의 두 제자도
"선생님. 어디 머물고 계십니까?"(요한1,38)하고 물었습니다.
- 사마리아인들도 예수님이 자기 동네에 머물기를 청했습니다(요한 4,40).
-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요한8,31).
-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요한 15,4-8)
★ “제자가 된다.” “함께 지낸다.” “머문다.”는 말은
단순히 마음으로만 함께 지낸다거나, 내적으로만 일치한다거나,
혼자서 도를 닦는데 있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 영혼과 정신 시간과 공간을,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지내기 위해서 레지오와 빈첸시오회 반모임등을 통해서
서로 우정을 나누고, 미사에 보여서 일주일의 삶을 함께 봉헌합니다.
교우들과의 작은 무리의 만남이 없이 주님을 만나기란 어렵습니다.
그래서 천주교에 오면 그 긴 교리시간을 마련해 놓고 기다립니다.
★ 부르시는 분은 예수님이시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예수님과 함께 지낼 수도 있고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우리의 자유까지도 주셨고
인간은 그 자유로 자기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지내기로 결심했다가도
다른 더 좋은 것이 생기거나 힘들면 주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욕정의 포로가 되거나 재물과 명예의 노예가 되면
예수님을 버릴 수도 있습니다. 바로 냉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 예수님님과 함께 지냄은 예수님의 초대이며 나의 결정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만 부르심과 파견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고 뽑혀서 파견된 제자들이 자기들의 사명을 수행한 후에
예수님께 돌아와 기뻐하며 말하였습니다.
“주님, 주님의 이름 때문에 마귀들까지 저희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더 큰 기쁨을 전합니다.
“영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누카10,17,20) 아멘!
예수께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고 파견하신다. 우리가 오고 가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파견하시는 분에 의해서이다.
이 파견은 사제들, 수도자들, 선교사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파견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 불림 받았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주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자이다. 주님으로부터 파견 받았기에 사도이다. 사도는 그리스어로 apostolo서 '파 견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직접 하느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든 복음 전파의 봉사활동) 간접적으로 참여하든(자 녀 양육과 생업) 제자 직분의 본질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주님으로부터 파견 받으면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자들이다.
1. 사도: 그리스어로 ‘파견된 사람’, ‘소식의 전달자(Apostolos)’라는 뜻이다. 이 칭호는 예수님의 12제자에게 붙여졌다. 그러나 성서에서 사도로 불린 자는 사도 바오로를 비롯해서 모두 14명이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아버지께로 받은 사명과 권한을 이들에게 주시어 온 세상에 파견하셨다.
2. 12사도: 열두 사도의 이름은 시몬 베드로, 안드레아(베드로의 동생), 야고보(제베대오의 아들, 요한의 형, 長야고보), 요한(요한 복음·3개 서간·묵시록의 저자), 필립보(베드로와 안드레아와 같이 벳사이다 출신), 발토로메오(나타나엘), 토마(디디모), 마태오(레위라고도 함, 세리, 마태오 복음 저자), 야고보(알패오의 아들, 次야고보), 유다(타데오, 차야고보 형), 시몬(가나안 혁명 당원), 마티아(유다 대신 선택받음) 등이다.
3. 베드로: 베드로는 사도의 으뜸으로 그에게는 그리스도에 의해 특별하고도 유일한 직무가 주어졌다(마태 16, 18). 그래서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단이 교회를 통치하는 집단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랍비들처럼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부름을 받았고, 그분에 의해 권한을 받았다.
베드로는 마티아를 선택할 때 자격을 검토하였다(사도1,21-22).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단은 성령 강림절에 후보 마티아와 요셉 바르삽바(유스도) 중에서 마티아를 사도로 선택한다.
4. 바오로: 사도 바오로는 예외였다. 그의 소명은 회개의 은총과 더불어(로마1,1) 직접 그리스도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갈라1,1). 그러나 사도 바오로는 항상 그의 인격적인 무가치함을 의식했으며(1고린15,9),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사도9장) 그가 체험한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에 근거를 두었다.
5. 임무: 사도들의 기본 임무는 그리스도 부활의 실재를 증거하는 것이다(사도1,8; 2, 22; 10,39-41). 이 증거의 행위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목격 증언(사도10,32)과 느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실재에 대한 그리스교적 신앙의 증거가 그것이다. 그런데 사도들의 이 기본 임무는 후계자들에게 이어진다.
따라서 이들의 후계자인 주교는 그리스도께서 부여하신 권위로 조직하고(신품권), 가르치고(교도권), 관리할(사목권) 권한을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베드로가 전 교회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았던 것처럼 그 후계자인 교황도 모든 주교들과 함께 한 단체,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의 교회 전체에 대한 신품권과 교도권과 사목권을 갖는다. → 교계 제도
6. 열둘의 의미: ‘열둘’이라는 숫자의 중대성은 베드로가 유다 대신 마티아를 채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는(마태19,28; 루가22,30) 열두 옥좌에 앉게 되리라는 예수님의 약속을 잘못 이해하였다. 사도들은 최후의 심판과 연결하여 생각했으나, 실은 새로운 이스라엘 교회 위에 있는 사도들에게 미래의 권한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무관하지 않다. 이 지파들은 생명의 열두 근원이므로 이스라엘의 기초가 된다. 사도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의 초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부족을 계승한 것이라고 요한 묵시록은 말하고 있다(21,12-14). 따라서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로서 그리스도 권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에페1,20; 1고린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