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오봉산 산행기
춘천시에서 북쪽으로 14km지점에 있는 오봉산(五峰山: 779m). 옛날에는 경운산, 청평산(신증동국여지승람기록)으로 불렸다가 다섯 봉우리(나한,관음,문수,보현,비로)를 칭하는 오봉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 높지는 않으나 산 전체가 아기자기한 암릉지대로 기암 괴봉과 노송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고, 푸른 소양호에 산 한 자락을 담그고 있는 빼어난 경치로 100대 인기 명산 중 52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게다가 유서 깊은 대찰 청평사를 품고 있어 문화적 순례도 함께 할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산행지이다.
청평사는 여러 차례 답사를 왔었고 오봉산 등산은 5년 전에 청평사 뒤의 북쪽능선으로 오른 적이 한 번 있다. 이번 코스는 반대로 정상과의 표고 차가 크지 않은 화천군 간동면 배후령을 산행기점으로 잡았다. 춘천에서 양구방면 4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오음리로 넘어가는 배후재에서 하차(11;28)하여, 해발 600m의 마루턱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선두에서 좁고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니 공터가 있는 주 능선에 도달했다. 1봉이다. 오른쪽은 마적산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야 정상이다.(청평사 7km지점) 거기서 단체사진을 찍고 곧바로 2봉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내리막길이나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 걷는 묘미가 제법 쏠쏠하다. 며칠동안 계속된 비가 오늘은 말끔히 개어 촉촉이 젖은 흙길에 숲내음이 향기롭다. 여기저기 화려한 색깔의 버섯이 시선을 끈다. 독버섯이다.
25분 후 제2봉으로 보이는 곳에 이르니 빠른 걸음으로 앞서가던 김석환건축사가 소양호를 바라보며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이 때만해도 좋았는데...) 그리고 다시 16분을 가서 3봉으로 짐작되는 곳에 있는 ‘청솔바위’를 만나게 되었다. 두개의 커다란 바위가 맞붙은 머리 위로 멋진 소나무 한 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서 있는데, 뿌리가 그 사이를 뚫고 밑에까지 내려와 다시 너럭바위에 박혀 있는 모습이 가히 걸작이다.
어느 산이나 위험하고 힘든 부분은 있는데, 3봉에서 4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가파른 암릉과 벼랑으로 이어져 주의를 요했다. 그러나 쇠줄이 설치되어 이것을 잡고 조심해서 오르면 된다. 4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고사목에 눈길을 주면서.
그리고 10 여분 후에 곧바로 정상에 당도.(12:50)하고보니 너무 싱겁다. 천천히 올랐는데도 1시간 20분밖에 안 걸린 셈. 까만 정상표지석이 서 있어 확인이 가능한데, 다른 봉우리들도 안내 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고흥 팔영산에는 봉우리마다 사진과 함께 설명이 들어간 안내표지물을 설치해 산행 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오늘도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뭉게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며 살랑대는 바람에 산행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다. 발아래 전면으로는 소양호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오음리 고갯길이 굽이굽이 뱀처럼 이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정상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선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김건구건축사가 즉석에서 손으로 버무린 양푼비빔밥을 여럿이 나눠먹었다. 별미다.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보내고 오후 1시30분 하산 길에 올랐다.
12분 뒤에 홈통바위(개구멍바위로도 불림)를 통과하게 되었는데, 배낭을 멘 채로 지나기가 어려울 정도로 좁은 바위틈을 빠져나가는 게 재미있다. 홍천 팔봉산의 해산굴 빠져나갈 때도 이런 기분이 든다. 조금 더 내려가나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 내리막길은 청평사적멸보궁터 쪽 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전면 오르막길은 680봉 암릉코스다. 우리는 암릉코스를 택했다. 사실 오봉산에서 그래도 스릴만점의 짜릿한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은 바로 여기다.
그런데 도중에 불상사가 발생했다. 김석환건축사가 뱀(독사)에게 물린 것이다. 작은 새끼뱀이 나타난 것을 우습게보고 만지려다 그렇게 되었다. 머리를 살짝 밟고 꼬리를 잡았는데 순식간에 머리를 돌려 손을 깨물었다고. 박회장이 응급처치(팔위를 묵고 피를 짜내는 등)를 하고나서 회원들끼리 ‘새끼 뱀이고 여름철이라 독이 없어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고 일단 안심을 시킨 다음 함께 내려왔다. 680봉 칼바위 앞에서 사진도 찍고 조망을 감상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사람들이 119에 신고를 해서 결국 소양호를 가로질러 나타난 구급대원들에 의해 춘천 성심병원으로 후송돼가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는 쇠줄이 설치된 가파른 암릉길을 조심조심 내려와 청평사 뒤편 계곡에 닿았다. 오후 3시다. 점심시간 30분을 포함, 총 3시간 30분이 소요 되었다. 잠시 계곡물에 발을 담가 피로를 씻고 절을 둘러보았다.
5년 전에 복원공사 중이던 강선루 및 좌우행각 회전문이 새 단장을 하고 나를 맞아 주었다. 천년고찰 청평사에서 당시의 건축물 중 유일하게 남은 회전문(보물 164호)은 윤회사상에 의한,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의 문으로 유교 건축양식의 홍살문이 특징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 누군가 또 지나갈 것(순환의 원리)이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나섰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어디로 갈까 하다 선동계곡 상류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갑자기 컴컴한 숲길 사이로 서늘한 냉기가 엄습한다. 그리고 폭포수처럼 시원한 계곡물 속에서 회원들 몇 명이 알탕(?)을 하고 있었다. 거기는 바로 당나라 태종의 공주와 상사뱀에 얽힌 전설이 있는 공주탕이 아닌가. 한 여름에도 추울 정도로 끝내주는 곳이다.
이 계곡물이 흘러가 소양호를 이루는데, 며칠동안 내린 빗물로 풍부해진 청정한 물살이 귀를 즐겁게 해주고 간이 다 시원할 정도로 힘차게 흐른다. 계류 옆 울울한 숲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왼쪽 옆으로 스쳐 지나기 쉬운 곳에 영지(影地)가 있다. 이 연못은 고려 때 이자현이 오봉산 봉우리들이 연못에 비치도록 조성한 우리나라 연못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오른쪽 언덕위에는 이자현의 부도가 있어 이들을 둘러보고 내려오다 구성폭포에서 다시 발길을 멈추었다.
하얀 급물살이 떨어져 파란 못을 이루고 있는데, 그 앞에서 박회장이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와 보았지만 오늘처럼 폭포수가 힘차 보이기는 처음이다. 이 폭포에 떨어져 죽은 상사뱀을 위로하기위해 세워진 삼층석탑(일명 공주탑)이 인근에 있다. 이러한 전설로 미루어볼 때 오봉산에는 뱀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뱀이 많으면 생태계가 양호하여 건강한 산인데, 하필 오늘 우리 일행이 뱀에 물려 뱀과의 인연, 아니 악연을 갖게 될 줄이야.
산행 및 탐방일정을 모두 마치고 청평사 국민관광지주차장 옆에 있는 식당 ‘송학가든’에서 뒷풀이를 가졌다. 매운탕에 동동주로. 그렇지만 오래 시간을 보낼 상황이 아니라 서둘러 대기 중인 관광버스에 올라 춘천으로 출발.(17:22)
춘천시 교동에 위치한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으로 달려가니 김건축사가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었다. 해독주사를 맞고 응급조치를 했는데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해서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그렇지만 형편상 서울로 올라가 병원에 가기로 하고 퇴원수속을 밟았다.
상사뱀에 얽힌 전설이 있는데 와서 웬 불상사, 아직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게다가 황재무가 든 여행자보험이 효과를 발휘, 보험금 720원 내고 병원치료비 총 80여만원 중 의료보험 적용한 44만원을 해결할 수 있었다. 500만원까지 보험금이 지급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 오후 6시 50분에 환자를 버스에 태운 채 우리는 병원 문을 나서게 되었다. 산행 중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빠른 쾌유를 빌며, 회원님들 모두 안전산행에 각별 유의토록 합시다.
차가 밀려 서울에 늦게 도착했는데, 아침에 출발할 때늦어 택시를 타고 양수리까지 따라온 박노철건축사와 같은 방향으로 귀가하니, 딸아이 어학연수 차 호주로 떠나는 날 조차 산에 갔다고 아내가 뚱한 표정으로 맞는다. 산이 무엇이길래...
첫댓글 열심히 메모하시는 모습에 산행기를 예측했습니다..공주탕에서 알(?)탕도 하고 뱀 사건도 있었기에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습니다..따님 어학연수차에 오봉산 타령을 하셨으니 간이 상당히 크신 것으로 사료됩니다...ㅎㅎㅎㅎ
이희철 건축사님 비공개로 할려고 했는데...자신 신고 하셨군요. 너무 시원해보여 저도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아마 앞으로 삼년 여름은 시원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