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행복했었습니다.
오십대 후반의 다섯 부부 (더하기 초·삼학년 아들 한 명)
열한 명의 배낭여행이었습니다. 내내 웃음이 넘쳤던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다들 제게 소중한 추억도 주었지만
사실은 이 보다 더한 가장 큰 것 - ‘행복’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가득 가득 고마움을 돌려 드립니다.
정말 너무나 행복합니다. 2015.01.26.월. 김도수.
※단! 읽는 건 선택입니다.
미얀마 여행 (2015.01.16.금 – 01.25.일) - 후
이천십오년일월십육일.금.흐림.살짝비옴.
아점을 든든히 먹고 인천공항으로 간다. 요금이 슬그머니 올랐다. 안 탈 수 없을 것이라는 배짱(?)을 본다. 눈 감고 여행의 설렘을 앞세운다. 공항에 세 시간 전에 도착한다. 너무 많다.
어! ‘케세이 퍼시픽‘ 항공사(CX) 접수대에선 그런 시간대는 없단다. 발권 담당자가 입력 실수한 거다. 담당자와 통화도 안 된다. 다행히 다른 비행기에 자리가 있어 태워준다. 어째 처음부터 어긋나니 좀 불안하다. 에이! 한두 번 겪었어나……
흰 구름 위를 난다. 하얀 눈 위를 미끄럼 타는 것 같다. 더 즐겁다. 금방 대만 상공이다. 깡통 맥주를 하나 더 달래서 먹는다. ‘산 미구엘’이다. 맛있다. 나를 보고 설문지를 해 달랜다. 네에∼
홍콩 공항에서 대기다. 전번엔 밖에 나갔다 왔는데∼∼(난 언젠가 날 잡고 와 봐야지 한다.) 음식점가 앞 의자에 앉은 덕에 냄새가 솔솔 온다. 서대장이 환전해서 간단한 먹거릴 사온다. 다른 사람을 늘 챙긴다. 그래서 기내식도 먹었지만,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는 기본에 따르기로(?) 한다.
환승은 기다림이다. 그러니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또 잠시 멍하니 앉아있다 한다. 자연히 여러 인간군상을 본다. 그러다 가슴에 무언가가 들어온다.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지구에서 몇 프로 될까? 너무나 행복한 사람이다. 난. 더구나 아내와 같이……정말 늘 감사할 일이다. (특히 부모님께)
셔틀 버스로 이동 비행기에 오른다. 드래곤 항공(KE) 이십일시오십분발 미얀마 랭군행이다. 또 기내식이 나온다. 무조건 다 비운다. 잠시 졸다 깨다 한다. 현지 시각 열두시쯤 도착한다. (우리와는 세시간반 시차). (직항은 여섯 시간 정도 걸림)
내리니 후덥지근하다. 추운 겨울에서 여름으로 하루 만에 바뀐다. 간단한 입국 수속. 어! 짐 찾는 안내 전광판도 없다. 컨베이어 벨트가 나란히 셋 돌아가는 게 전부다. 국제공항 맞아? 대충 감으로 짐을 찾는다. 불평은 소용없다. 여기 왔으니 여기 식에 따라야 할뿐이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여기 남자들의 하의, 전통의상 론지 - Longyi – 여자 치마처럼 생겼다. 허리 부근에서 맵시 있게 자체 매듭을 지어 흘러내리지 않게 한다. 신기하다 - 를 입은 것. 양복바지는 거의 못 보았다.
늦은 시간이니 택시로 이동할밖에. 한국 발 비행기는 거의 이 시간대에 몰려오나보다. 택시가 줄지어 호객한다. 아니 택시 안내 데스크도 있다. 재빨리 무료 양곤 시내 지도를 손에 잡는다. 일본어판이다. (시내에 굴러다니는 중고 택시는 거의 도요타다. 일본은 무섭다. 이건 내 생각.)
여긴 미리 흥정하고 타야한다. 서대장이 세 대를 교섭. 미화 십 불. 잠시 잠만 잘 거니 좀 싼 Agga Gest Houst(아침 간단한 빵 잼 달걀 차 포함됨. add; 88,13th street, Middle block) (Email : aggaguesthouse@gmaik.com)를 미리 예약했다.
여기 택시기사들은 부자(?)들이라 여유가 있는 것 같다. (군부 실세가 비싼 허가권을 독점해 택시 영업 허가 내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여행안내 책에 적혀있다) 나처럼 토막 영어도 아주 조금씩 한다. 핸드폰도 갖고 있다. 신기한 건 여긴 차 자체는 영국식인데 도로 주행은 미국식이다. 타고 내리는 걸 차도에서 하는 수도 있다. 어리둥절할밖에.
야자수가 가로수인 양곤의 텅 빈 거리를 과속한다. 신호등 무시. 더불어 매연이 코를 찌른다. 후진국에 왔다고? 세 대가 거의 동시에 도착. 짐 푼다. 입성 기념주는 내일하기로 한다.
공동 목욕탕에서 이 닦고 발만 씻는다. 피곤이 몰려오고 네 시간 후엔 일어나야 하니 빨리 자야 한다. 천장 벽에 있는 모기 잡는 도마뱀 한 놈과 같이 잔다. 다행히 냉방은 가동되어 골아 떨어졌다.
이천십오년일월십칠일.토.흐림.야간버스에서잠.
여섯시 반에 일어난다. 어! 빗방울이 떨어진다. 건기는 절대 비가 안 온다고 여행 책에서 봤는데……한 두 방울 정도니 일단 양곤강가로 가기로 한다. 공기의 매케함, 가난이 주는 집들의 허름함, 차 주행의 무질서 들이 눈에 먼저 보인다.
그러나 거리는 의외로 깨끗한 편. 외국인을 신기롭게 안 보는 이들의 눈에서 어떤 여유를 본다. 사람들을 태우는 크고 작은 배, 코코넛 열매 등의 물건을 가득 싣고 와 짐 내리는 배 등이 보인다. 강이지만 컨테이너 옮기는 탑도 있다.
이렇게 미얀마와의 첫 대면을 뒤로하고 일단 숙소로 와서 간단한 아침 식사 그리고 짐 꾸려 맡긴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들의 여행, 걸어 다니며 보기가 기본인 –완전 서대장 스타일! 의 시작이다. 거리는 우리의 초여름처럼 덥다.
오층 정도의 집 – 층층이 사람이 사나보다- 옥상에선 긴 줄이 내려와 있다. 끝엔 간단하고 가벼운 물건 전달 주머니가 달려 있다. 하하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임을 여기서 본다. 동자승이 가게 앞에서 탁발한다. 어렸을 적에 목탁 두드리면 쌀 한 줌씩 바랑에 퍼주시곤 하던 어머님 모습을 본다.
오전에는 ‘론리‘에 나온 도보여행 (일명 양곤에서 만나는 식민지 시대 보물)을 하기로 한다. 시작점(32th St 와 Mahabandoola Rd 만나는 곳임)으로 가다보니 경복궁(중국인들의 최대 사원 祠院)을 지난다. 관우도 모셔있다. (자세한 경로는 생략함)
거리를 맘껏 걷는다. 우리와 다름 모습을 열심히 본다. 어! 길음역 평창동 서초 새마을 버스도 보인다. 우리 중고차다. 글씨 지우지도 않고 굴러다닌다. 좌판의 싼 열대 과일도 사 먹는다. 대추사과(대추보다 크고 사과보다 작다)를 베어 문다. 작은 바나나가 달다. 배낭여행만이 주는 작은 행복이다.
지천의 야자열매는 여기가 더운 나라라는 걸 말한다. 즉석에서 사탕수수를 기계로 짜서 얼음도 띄워 한 그릇 담아(삼백 짯 Kyat 여기 화폐단위 – 우리 돈 삼백 원이라 생각하면 됨) 판다. 달착지근하다. 남자는 다 론지 입고 다닌다.
외국인이라고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다. 뚱뚱한 사람도 드물다. 담배 피는 이도 잘 못 본다. 구걸하는 이도 거의 없다. 가난하지만 여유 있는 모습이랄까? 넌 하루 만에 다 아냐? 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가장 환율이 좋은 미화 백 불짜리로 환전한다. 조금만 구겨져도 안 받는다. 위조지폐로 보기 때문이다. 일 불 환율이 가장 낮다. 이유는 모른다. 우리 돈 십만 원쯤이다. 천 짯 만으로 백장을 주니 두둑하다. 하하 부자 된 느낌이다.
아직 낡은 건물들이 많다. 개발이 덜 된 탓이리라…술레 파고다(Sule Pagoda)는 들어가지는 않고 바로 옆 보도육교에서 바라만 본다. 입장료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마지막 날 양곤 시내 깐도지 호수에서 인야 호수 가는 걸 물어 본 젊은 여대학생 같이 보이는 세 명 왈 ‘하도 사원을 봐서 이젠 그게 그거네요‘를 참고 할 것! ㅎㅎ)
간혹 보는 보도의 보리수나무엔 작은 불상도 있고 경배의 그림이 걸려있다. 향불도 피운다. 신성시하는 모습. 불교의 나라답다. 그렇게 걷다 보니 벌써 네 시간 반이 지났다. 열한 시 반. 남자는 목말라 맥주 한잔, 여자 분들은 길거리 음식점에 따로 들어간다.
(나중에 손샘은 낮술 그리고 이어 그날 밤술을 여행 내내 먹기는 처음이라고 웃었다. 처음 미얀마 음식을 맛본 여성분들은 음식 양은 많으나 짜서 많이 남겼다고 약간 투덜대었다.) 이렇게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양곤 강 건너 편 ‘달라‘로 페리를 탄다. 외국인은 왕복 사 달러 받는다. 십오 분 정도면 건넌다. 누런 강물이지만 깊어 보인다. 수량이 풍부하다는 소리.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각양각색의 미얀마 민초들을 본다. 내 눈엔 주눅들은 표정은 읽을 수 없다.
갑판 위 아주 작은 간이 플라스틱 의자에 무심코 앉았는데 자꾸 돈을 달라고 한다. 아마 개인이 빌려주는 걸게다. 돈 내는 게 싫어 속으로 짜샤 서서 갈겨! 치사하긴! 하며 일어선다. 이어 금방 배에서 내린다.
내리니 자기 인력거(싸이카-한 사람이 자전거 옆에 의자 앞뒤로 등대고 둘을 끌고 간다)에 타라고 성화다. 무시하고 주변 마을 한 바퀴 걷기로 한다. 누가 돌보지 않는 불탑도 보이고 가까이에 이슬람 사원도 있다. 공존의 미학?
선착장 앞에서 남자들은 늦은 점심을 한다. 아까 맥주(처음 먹어 본 미얀마 맥주는 맛있었다. 사실 소문난 맥주인데 내가 몰랐었다.)만 먹어 배가 고팠다는 핑계로……사실 지저분해 보여 안 들어갈까 했지만 의외로 볶음밥이 짜지 않고 푸짐하다. 잘 들어왔다.
다시 건너와 물어물어 양곤 제일 알려진 시장인 술레 파고다와 가까운 보족 아웅산 시장(Bogyoke Aung San Market)으로 간다. 다섯 시 까지라 그냥 한 바퀴 둘러보고 떠나는 날 오기로 한다.
한국인 관광객 남자 세 놈(집사람이 반갑다는 인사말을 건넸더니 왜 여행 온지 모르는 이놈들의 스쳐지나가는 대꾸가 가관이다. 있다 저녁에 어쩌구 저쩌구 한다. 머니(Money) 머니 하는 처음 본 미얀마 어른 거지와 똑 같다. (여행이 곧 일탈이라는 짐승들은 출국 금지 시켜야 한다. 내 생각) 에이!
길 가엔 큰 교회도 있다. (이 퍼센트가 기독교도라 함) 차이나타운 앞을 지나 사람 많은 시장을 뚫고 여섯시에 숙소로 온다. 오늘은 합해 무려 열 두 시간 걸었다. 제이의 도시 만달레이(Mandalay) 행 야간 버스를 타러 일곱 시에 출발하기로 한다.
숙소에서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한다. 세 대에 나누워 타고 막히는 길을 매연을 맡으며(차의 냉방을 가동 안 한다. 그러니 창문을 열 수밖에) 한 시간여 만에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이제부터 가슴 졸이는 일이 일어날 줄은 모르고……
퇴근 시간이라 도시의 버스는 만원이다. 또 작은 트럭을 개조하여 짐칸에 세로로 길게 서로 마주보는 의자 둘을 놓고, 안쪽으론 엉덩이만 걸치는 작은 의자 하나씩 놓고 앉는 픽업트럭(라인카) [여기의 대중교통 수단]도 꽉 차 간다.
짐칸이 꽉 차니 트럭 꽁무니의 발 디딤판엔 사람들이 많이 올라 탈 수밖에 없다. (돈 받는 차장은 늘 여기에 서서 내렸다 타다 한다.) 손은 무언가를 잡고 있는 승객들 엉덩이 부근에 줄을 쳐서 떨어지지 않게 하고 차는 잘도 달려간다. 우리네로는 상상 못할 일이다. 가난 때문이리라.
두 대는 거의 같이 도착한다. 서대장이 한국에서 미얀마 국내 비행기와 같이 미리 예약 결재한 버스 회사를 찾으니 없단다. 아무도 그런 회사는 모른단다. 경찰도 손든다. 어어! 말도 제대로 안 통하니 답답함이란……다행히 두 택시 기사가 열심히 도와주었지만도 없다. 없어……
뒤차를 기다릴 겸 우린 차에서 내리지 않는다. 도착한지 한 시간이 훨씬 넘자 초초해지기 시작한다. 뒤차가 안 왔다! 로밍 폰으로 연락하려 해도 통화가 안 된다. 숙소에 물어도 (안 온) 기사 핸드폰 번호를 모른다. 우린 차를 불러 주었으니 당연히 알 줄 알았다.
내가 탄 택시 기사가 이곳 터미널이 넓으니 한 바퀴 돌아보잔다. 없다. 이젠 걱정이 앞선다. 오다 교통사고라도? 그런데 핸드폰 하나가 터졌다. 목소리가 온 거다. 어!어! 문자는 간다고 뜨지만 답신은 없었는데……
알고 보니 먼저와 우리 옆 터미널 건물 안에서 우릴 애타게 기다린 거다. 서로 찾았으나 상봉 못한 거다. 예약은 예약일 뿐이고 일단 계획된 시간과 같은 아홉 시 반 발 마지막 만달레이행 브이아이피 버스에 표를 사서 가까스로 탄다.
참, 거의 한 시간 반 여 우릴 위해 자기 일처럼 애써준 두 기사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이름도 모르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렇게 순박했다.
같은 행선지면 회사가 달라도 같은 곳에서 출발한다는 우리나라 생각만 한 거다. 여긴 버스 회사마다 제각각 다른 곳에서 출발한다, 이걸 알 턱이 있나……
사실 만났으니 웃는 추억거리지만 연락 안 되는 이국에서의 헤어짐이란 애간장 타는 일이다. 그래서 앞으론 택시 기사 핸드폰 번호를 우리가 서로 꼭 적어 갖기로 하고, 같이 움직이며, 다 올 때까지 내리지 않기로 했다. 만약 헤어져 좀 시간이 지나면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있거나 바로 직전 위치로 돌아가기로 정한다. 그래서 내가 만든다. 배낭여행 안전 수칙 하나 - 절대 일행이 헤어지면 안 된다.
버스는 잠자기 편하게 의자가 거의 뒤로 넘어지고 냉방을 너무 해 담요를 덮어야할 지경이고 뜨거운 커피에 물 티슈, 작은 빵 하나, 생수 한 통을 서비스 한다. 하하 말 그대로 브이아이피 대접이다. 사람도 없어 두 좌석을 한 사람이 썼다. 아 소주 한 잔하고 푹 잤으면……
중간에 휴게소에서는 버스 문을 잠그니 다 내리란다. 음식점이 죽 늘어섰다. 방 열 두시 경이지만 많은 버스의 승객들은 먹는데 열중이다. 우린 볼 일 보고 잠시 후 차에 탄다. 어느새 비몽사몽 잠잔다. 차는 기사를 교대하고 왕복 이차 선을 밤새 달린다.
이천십오년일월십팔일.일.흐림.만들레이
새벽 여섯 시쯤에 도착한다. 어! 건기인데 비가 내리고 밤에 많이 왔는지 땅도 질퍽하다. 예약한 숙소가 좀 머니 걸어가기에 그렇고, 택시 흥정하니 거리를 뻥튀기며 바가지 씌우려 한다. 서서히 돈에 물드는 중이다 여긴.
나이 드신 스님이 탁발하는데 내가 보기엔 구걸 수준인 것 같다. 그 분에 대한 모독일까? 두 대를 잡아타고 숙소에 오니 일곱 시다. 깨끗하고 친절하다. 추천하고 싶다
※ 79 Living Hotel 79 th st, bet 29 th st, Chan Aye Thar Zan Tsp, Mandalay, Myanmar [ Email : 79livinghotel@gmail.com ]
다음 행선지인 바간(Bagan)행 버스표를 예약하려 했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 줄 몰라 일단 보류한다. 결관 잘 한 거다. 다음 날 숙소에서 예약한다. 알아 둘만한 정보다. (버스 터미널로 가야하는 줄 알았는데 숙소로 데리러 온다. 여러 호텔을 돌며 손님을 태우는 시스템이다. O.K 운송회사 버스, 단 이십 인승 차 치곤 너무 작아 덩치 큰 사람에겐 불편하다. 가는 도로 사정도 안 좋아 울퉁불퉁 시간도 많이 걸린다. 먼 이동은 비행기가 좋을지 모르겠다.)
지도를 들고 숙소 출발이다. 인도의 구워 만드는 빵인 ‘난’ 같은 걸 파는 길거리 식당을 본다. 들어가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한다. 의외로 카레 같은 소스를 찍어 먹으니 찹쌀을 넣은 건지 쫀득쫀득 맛있다. 손바닥만 한 것 두 개를 금세 먹어 치웠다. 값도 거저 수준이다. (하하단체여행가봐라이런게있나)
왕궁 해자 옆 보도를 한참 걷다 라인카를 탄다. 모두 이천 짯이니 이백 원 꼴이다. 서민이 탈 수밖에 없다. 의자가 다 찼으니 가운데에 작은 의자를 하나씩 꺼내 계속 타는 승객을 앉힌다. 남자 차장의 호객 목소리가 구성지다. ‘어디 어디로 갑니다 ∼’인가?
만달레이 언덕 남동쪽 입구에 내려준다. 계단 길이다. 꼭대기까지 걸어서 맨발로 천천히 간다. 발바닥은 금세 시커멓다. 여긴 사원 안에선 다 맨발이다. 영국이 무단통치할 때 이런 문화를 몰이해해 당연히 반발을 샀다한다. 이런 무식한 영국은 아직도 해가지지 않는단다.
가다 보니 어느 가게 주인이 갓난애를 요람에 놓고 상하로 흔든다. 용수철을 이용한 거다. 좌우로 흔드는 게 기본인데 혹 아이디어 상품이 아닐까? ㅎㅎ 엉뚱한 상상도 누구 발바닥이 까만지 발 들어 사진을 찍으며 깔깔거리는 것도 여행이 주는 맛이다.
어느 부처님 후광은 요란한 싸이키 조명이다. 빛은 빛이니까 뭐∼. 오르면서 연결된 여러 사원에 들르곤 한다. 유리로 기둥과 벽을 치장한 사원도 있다. 우리네론 생각 못할……정상에선 시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느 왕조의 도읍지다운 곳이다. 날씨가 흐려 유감일 뿐이다. 하산은 좁은 찻길(Hill Street) 따라 걷기로 한다.
아까 내린 입구에 거의 다 오니 비가 내린다. 제법 굵어진다. 할 수 없이 길거리 간이식당 같은 곳으로 들어간다. 일단 비는 피하자 이다. 비싼 맥주 여덟 병, 야채 안주 둘, 맨 밥 몇을 시켜 점심을 해결한다. 주인장은 싱글벙글 닭 삶은 국물을 여러 그릇 준다. (ㅎㅎ단체여행엔이런국물도없다)
비가 다행히 그쳐 가까운 왕궁 동문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왕궁과 여럿 사원 입장-통합표-를 산다. 비 때문에 지체되어 오후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내일로 미루고 숙소까지 걸어간다. 밤차 타고와 피곤하지만 그래도 ‘걸으며 보기’가 서대장 스타일!
숙소에서 씻고 휴식. 해 넘기 직전 야시장으로 가본다. 북적이는 길거리 식당 밖 탁자에 둘러앉는다. 맥주 밥. 숙소로 오다 드디어 여행안내 책에서 본 만들레이 럼(Rum)주를 산다. 영어가 잘 들리는 장샘 덕분이다. 칠백미리 정도 삼천 짯 – 와 싸다. 이틀 동안 세 병 먹었나?
맥주를 사서 숙소에 온다. 모여서 어제의 ‘이산가족 상봉’ 얘기에 웃음이 넘친다. 다들 즐거워한다. ‘무공해’(지극히 남편을 공경하시는) 손샘 사모님의 재치 있는 입담에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여행은 이렇게 낮선 사람들과 금방 친하게 해준다. 그 게 뭘까?
이천십오년일월십구일.월.흐림.만들레이.
다섯 시 반에 일어난다. 여섯 시 반 숙소의 아침 식사 시작에 맞춰 간다. 볶음밥, 야채, 수박 주스 커피로 배를 든든히 채운다. 나와 집사람은 자전거를 안타니 먼저 출발한다. 걸어가다 오토바이 택시(여기 서민들의 주된 교통수단 - 뒤에 타면 된다.)를 잡는다. 둘 얼마 이천짯, 비싸 천짯! 그래. (얼마 한다고 깎았는지 난 그날 오후부터 후회했다. 이 청년은 날 뭐라 생각 했을까?)
그러나 한편으론 후하면 나중에 외국인인 우리가 바가지를 당한다는 말도 맞다. 여러 나라 가 봐도 외국인은 봉인 양 무조건 무어든 값을 높게 부른다. 어느 게 맞을까?
밍군 (Mingun Paya)로 가는 선착장 앞 삼거리 나무 밑에서 줄 지어 자전거 타고 오는 일행을 약 사십 분 기다린다. 하루 한 번 아홉시에 뜨는 배를 탈까 하다 약간 더 주고 자유로운 개인 배를 빌린다. 아홉 대의 자전거도 날라다 실어준다.
에야워디강(Ayeyarwady River – 바간, 양곤까지 이 강으로 큰 배도 간다. 그만큼 수량도 크고 강폭도 넓다.)에서 이층 큰 배를 전세 내고 우린 선상 사진도 찍으며 강가도 보며 약 십일 킬로 상류에 있는 밍군 대탑으로 한 시간 쯤 간다. 배 안에서 주인이 접는 부채를 팔아 고샘이 하나씩 사서 선물로 준다. 집사람은 옥 목걸이를 산다.
이 거대한 탑은 천칠백구십 년 짓기 시작 했으나 일 년 후 영국 식민지가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어 대탑이 미완성으로 남는다. 구운 벽돌을 쌓아 짓는 전탑이다. 어마어마한 벽돌을 만들어야 한다. 남아 있는 높이 만해도 삼십 미터 가깝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진으로 무너져 탑 일부가 떨어져 뒹굴고 있고 금도 가 있다. 잔해가 주변에 그냥 널려있다.
책엔 위험해서 못 올라간다고 쓰여 있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맨 발로 오르고 있다. 달랑 난간 하나만 있는 계단을……입장 수입 때문이리라. 우리말로 오빠 언니 하며 물건 팔려한다. 벌써 순수함을 잃은 곳(?)같아 안타까웠다. 우리도 전망을 보려고 올랐다. 역시 주변 경치는 일품이다.
내려와 아래쪽 입구의 친테(사원 입구에서 사원을 지키는 반은 사자 반은 용의 모습) 유적지에 간다. 대탑을 지키는 친테의 거대한 엉덩이 일부만 남아 있다. 역사의 무상함이 여기에도 있다. 벽돌을 쌓고 외벽은 발라 마감하며 무늬를 만든 흔적이 보인다. 빨리 대탑과 같이 복원되길 바랐다.
본격적으로 강가 주변 마을을 자전거로 돌아보기 한다. 차가 거의 안 다니니 서대장 자전거를 집사람이 탄다. 난 걸어서 뒤 따른다. 집은 땅에 주춧돌을 놓고 내 무릎만큼 올라와서 바닥이 생긴다. 더운 곳이니 각종 땅위 벌레 등을 피하기 위함이다. 어쩜 폭우도 피할 요령일지도 모른다.
우리네 옛 초가의 볏짚처럼 여긴 어느 풀을 이용 지붕을 이었을까? 야자 잎? 벽도 대나무로 엮어 세웠다. 우리네와 같이 풀 나무 등이 집짓기 재료다. 울타리도 대나무를 이용했다. 초가집과 싸리문을 여기다 놓으면 우리네 옛 시골 아닐까?
이 마을의 초등학교가 보인다. 우린 허락 없이 들어간다. 건물 한 채에 다섯 학년이 옹기종기 모여 배운다. 교사는 셋. 우릴 반긴다. 공부하다만 천진한 애들이 더 오히려 우릴 반긴다. 그저 보고 그저 웃기만 한다. 아! 이럴 때 말이 통하면 서로 웃고 서로 안고 할 텐데……비가 와서 파여 있는 손바닥 만 한 운동장을 뒤로 하고나온다.
(서대장이 챙겨온 초코렛을 한 보따리 선물한다. 서대장은 집에서 안 입는 그러나 버리기 아까운 옷을 싸 가지고 와서 양곤 길거리에 앉아 있는 누구 옆에 슬그머니 놓고 오는 걸 봤다고 고샘이 전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대에 덕을 쌓으면 그 자식이 복을 받는다는 깨우침도 같이 알려준다. 이렇게 여행은 나를 돌아보게도 만든다.)
옆의 구멍가게 겸 간이식당 집에서 점심을 해결 한다. 맥주를 먹으니 비빔밥을 만들어 준다. 땅콩을 넣어 만든 반찬도 즉석에서 만들어 두 세 번인가 더 갖다 준다. 인정미가 넘치는 곳이다. 한국에 오면 많이 잃고 사는 순박함을 채워 넣었다.
아 참! 티브이의 한류 드라마를 소리 크게 틀고 뚫어지게 나이 든 아줌마가 식탁 바로 옆 침상에서 보고 있다. 우릴 한 번도 쳐다보자 않았다. 어깨가 으쓱거려진다. 이번 여행은 너무 좋다고, 치유의 여행이라고 다들 말한다. 좋으신 분들과의 여행에 감사할 뿐이다.(단체여행엔진정있을수없다.)
두 시 배로 돌아가 만달레이로 출발한다. 큰 삼각주, 큰 뗏목이 위에 시옷 자형 집을 태우고 지나간다. 상류에서 오는가? 의자에 앉아 주변을 본다. 그냥 조오타! 다.
오후인데도 여행사들의 서양인들이 우르르 배를 탄다. 이런 관광자원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지도자를 잘 만나야 나라가 잘된다는 진리를 미얀마도 언제 알까?
다시 집사람과 난 오토바이를 안타고 싸이카(인력거)를 타보기로 한다. 둘이 타고 이천 짯! 갑시다. 집사람은 쎌카 막대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우리 일행도 찍어 준다. 한 자전거에 둘이 탔으니 힘들어 하는 건 당연. 오르막엔 너무 미안해 내가 내려 같이 민다. 그리고 속으론 절대 안 타리라 결심한다.
(페루 잉카 트레일 걸을 때 추위에 떠는 포터들에게 미안함, 네팔 코끼리 탈 때 쇠막대로 맞는 코끼리에게 미안함, 네팔 트레킹 때 삼사십 킬로의 짐을 지는 포터들에게의 미안함, 오늘 이 자전거 모는 분에게의 미안함 – 여행을 빙자한 내 갚아야 할 죄업이다.)
숙소에 와서 백 불을 환전한다. 다시 부자가 된다. 네 시에 출발한다. 라인카 잡기가 힘들다. 마침 길가 가게 앞에 빈 작은 트럭이 있어 흥정한다. 당연히 왕복. 짐처럼 가야지만 매연이 고문이지만 여긴 그게 당연한 교통수단이다.
양반다리들하고 둘러 앉아 웃음 꽂을 피운다. 기사 옆 좌석에서 편히 가는 나는 동참을 못해 올 땐 무조건 뒤로 올라탔다. 덕분에 웃음이 입에서 절로 나왔다.
만달레이 전의 도읍지, 남쪽 십일 킬로에 있는 아마라푸라(Amarapura-불멸의 도시)로 간다. 불행히도 남아있는 화려한 유적은 거의 없다. 다만 따웅타만 호수위의 길이 일점 이 킬로의 우뻬인 다리(단단한 티크 나무로 만든 다리)가 관광객을 끈다.
백오십육년 된 이 다리는 사원에서 호수 건너로 탁발 공양 가는 스님이 편하도록 우 뻬인이라는 분이 보시한 거란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로의 기부는 이렇게 아름답다. 우린? 지금은? 아니 난?
오전 열시 십오 분에 시작하는 다리 바로 옆 마하 간다용 수도원(미얀마 최대란다)의 기다란 탁발 행렬도 유명하지만 일몰을 보려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입구엔 가게들도 즐비하다. 관광객들이 다리를 점령했다. 다리 위를 사람들 따라 걷는 샘이다.
우리도 다리 위를 걸어 건너기 시작한다. 사진도 서로 찍어주며 걷는다. 점점 해가 진다. 다리위에도 중간의 쉼터마다 가게가 있다. 어느 아저씨가 작은 풍로를 놓고 옥수수 같은 것을 볶아 작은 봉투(어쩜 꼭 같다. 우리네 어린 시절 번데기 담던 봉투 크기와 모양이)에 담아 판다. Good! Good! 외치며 호객 한다. 저분은 하루에 얼마를 벌까? 사는 건 이렇게 고단한지도 모른다.
다시 건너며 날씨가 잔뜩 흐려 제대로 일몰을 못 보았지만 분위기만 담고 돌아온다. 그리고 괜한 걱정을 한다. 다시 온다면 그때도 한가함은 없을까? 자본주의가 더 밀려와 지금은 (일몰을 앉아서 한잔 하며 보는) 큰 초가 식당이 다리 밑에 있지만 나중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지 않을까?
숙소에서 추천 받은 허름한 길거리 식당을 간다. 럼주를 사다 먹어도 아무 말 안한다. 우린 실컷 시켜 먹었다. 밥 ,닭볶음, 야채, 맥주 다섯 병 모두 합해야 우리 돈 삼만 원이 채 못 된다. 싸고 맛 난다. 그러니 손님이 넘친다. 어디나 똑 같다. 아쉬움을 못 이겨 숙소에 와서도 거의 열 한 시까지 두런두런 하며 사온 럼주를 마셨다. ※Shan Ma Ma Restaurant 02-71858 Room No.(4,5,6,7), 81 St
Between 29-30 Sts, Mandalay
이천십오년일월이십일.화.구름약간맑음.바간옆낭우(Nyaung U)
짐 꾸려 맡겨 놓고 여덟 시 출발이다. 나와 집사람은 먼저 왕궁 동문으로 출발. 큰길가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잡는다. 천짯에 안 간단다. 그럼 관둬라! 내 오기로(?) 오늘은 고생한다.
자전거 탄 일행이 지나가고도 한참 기다려서 픽업트럭(라인카)가 왕궁으로 간단다. 탄다. 그런데 좌회전해야 할 곳에서 우회전을 하는 게 아닌가? 지도를 보여주며 이리로 가야한다니까 간단다. 결국 돌고 돌아 동문으로 죽 가면 되는 곳에 내려 준다. 맞긴 맞네. 내려서도 약 십분 걸어 가야해서지만.
약 십분 늦게 도착하니 왕궁 입장 통표가 엊그제 발행한 거라고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입장. 전망대에 올라가서 보니 꼭 만달레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알현실, 문화 박물관(유리 기둥 침대)을 보고 나온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궁전은 궁전답다. 단 지나간 세월의 흔적은 못 속인다. 다음 볼 곳으로∼
말이 안 통하니 자기 생각이 맞다 여기면 그만이다. 왕궁에서 나와 쉐난도 수도원(Shwenandaw Kyaung - 티크 나무로 지은 건물의 각 조각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으로는 오토바이 타고 잘 갔다. 가까운 거리니까.
다 보고 일단 다른 일행은 자전거로 가야하니 전에 ‘난‘ 먹던 집으로 오란다. 난 무심코 내 기억으로 알았다 했다. 결론은 내가 틀린 거다. 확인을 했어야 했다. 만약 못 만났다면 어떻게 연락 할 것이냐? 배낭여행 안전 수칙 둘-알 것 같아도 다시 한 번 꼭 확인 할 것. 출발 시간을 알았으니 그 시간되어 숙소로 바로 가서 만난 거다. 의사소통이 안 되어 또 한 번 당한(?) 얘기.
오토바이를 타야하니 쉐난도 수도원에서 숙소 쪽으로 지도를 보여주며 내릴 위치를 알려준다. 알겠단다. 영어를 좀 아는 주변 사람에게도 같이 보여주며 여기로 가자고 했다. 지들끼리 뭐라 뭐라 한다. 그리고 머리를 끄덕인다. 시내라 한 차에 둘이 못 탄단다. 가까운 거리고 두 놈들이 자신 있어 하니 믿어야지 뭐!
어라! 잘 가다 다른 방향으로 간다. 그 순간 신호등에 걸려 집사람 태운 차가 먼저 휭 가버려 안보이게 되었다. 와! 연락 할 수도 없고∼다행히 동문 입장하는 곳으로 가서 만난다. 휴! 다시 지도를 보여 주고 내 뒤를 따라 오라해서 겨우 내린다. 화가 났지만 참고 두 배를 돌았으니 돈을 더 주고 싶었지만 주머니에 없었다. 골탕 먹었다는 생각에 집사람 지갑에서 꺼내 주긴 싫었다. 에이 밴댕이 속∼ 순박한 얘들인데∼얘 네들도 애썼는데∼ 난 아직 멀었다?
말 안 통하는 게 이렇게 불편하다. 다음부턴 같이 움직이고, 확인 또 확인만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안다. 꼭 자기가 어디 있는지 지도로 확인 할 줄도 알아야겠다. 그냥 따라만 다니면 안 된다는 사실 꼭 기억하기! 그 벌로 점심 굶고 바간(Bagan)행 버스를 타야 했다.
의자가 좁은 이십 인승 차에 가방을 무릎에 놓고 간다. 냉방은 되니 다행이다. 도로가 안 좋으니 차는 왜 그리 덜렁거리는지 멀미 잘 나는 사람은 고생 좀 하겠다. 도로 주변은 온통 미개발 땅. 나무나 몇 그루 자라는 땅. 아 넓다. 지평선이 있다. 미얀마의 잠재력을 본다.
저 멀리 외딴 곳에 황금색 탑이 있는 파야(paya)가 간혹 눈에 들어온다. 가까운 마을도 없는 것 같은데 탑은 보인다. 불교 국가임을 증명한다? 쉬∼ 하고파 차를 세운다. 차가 뜸하고 민가도 없으니 세워준다. 환갑 나이에 노상 방뇨도 서슴지 않는다. 배낭여행 중이니까! 헤헤
야자나무가 하늘로 쭉 뻗은 몸통 맨 위 머리에만 잎이 있다. [티브 보니까 여기서 야자 수액을 채취해서 재거리(jiggery 야자설탕) 토디(toddy야자술-탕예?)]를 만든다. 길가 공동 우물에선 빨래와 목욕도 하는 모습을 본다. 우리네 육십년 대와 비슷한 모습 같아 정겨워 보인다.
휴게소에 정차한다. 그냥 큰 식당 하나 덜렁 있는 게 휴게소다. 이 인분 같은 누들 한 그릇 시킨다. 좀 짜지만 집사람과 맛있게 먹는다. 천오백 짯이란다. 거저 같다는 느낌! 여긴 이렇게 물가가 싸다. 다른 일행은 커피 한잔으로 담소하며 쉰다.
Beer Station 이라 쓴 데가 보인다. 들어가고 싶다. 간혹 보이는 흰 소(여기 소의 대부분이 누렁소가 아닌 흰 소 같다.)는 목뒤에 작은 혹이 있다. 여기는 꼭 두 마리로 달구지를 끌든 밭을 갈든 한다. 한 마리가 아니다. 나라마다 작은 것도 차이가 있으니 다양한 문화가 만들어 졌으리라…
미얀마어로만 표지판에 쓰여 있어 어디인지를 도통 모르겠다. 간이 지도를 보고 있으니 뒤에 앉아 온 젊은이가 여기란다. 몽땅 백팔십 킬로의 약 삼분의 이 지점이다. 얼추 세 시간이 지났다. 도로가 안 좋기 때문이다. 우리도 전에 그랬으니까.
골프장도 보인다. 잠시 버스가 쉬니 우리도 잠시 휴식. 모내기할 모판이 일월인데 만들어 진다. 삼모작이 가능한 여긴 먹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섯 시간 정도 걸려 낭우(Nyaung U – 바간 Bagan 바로 옆 동네, 여행자들의 숙소가 많다.)의 예약한 호텔 마당에 내려준다.
※The Hotel Umbra Bagan
Email : baganumbra@gmail.com
www.thehotelumbrabagan.com
바간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온 한국인 젊은 부부도 같이 묶었는데 아는 척도 안한다. 이상하다(?). 호텔 안 수영장 바로 옆 바(Bar)에서도 젊은 한국인 여자 둘을 본다. 바야흐로 한국인들이 미얀마로 몰려오기 시작한다?? 서로 인사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수영장이 있고 가격 대비 시설은 낡았지만 괜찮다. 좋다. 단 모기가 방에 있다. 그런대로 추천하고 싶다. 사원이 몰려 있는 올드 바간과 이 킬로 정도 거리라 자전거 여행으론 안성맞춤이다.
오다 보니 유럽인 두 명이 자전거로 여행한다. 자전거는 미리 배편으로 부치고 비행기로 왔겠지 하고 상상한다. 전에 인천에서 인도 델리까지 자전거 타고 온 우리 젊은이를 봤었는데……다양하게 여행 다니는 모습이 참 좋다. 그들도 여기에 같이 묶었다.
집사람이 자전거를 잘 못타지만 차가 뜸해 타기로 한다. 내가 바로 뒤에 따라가며 봐주니 곧잘 간다. 그래도 속으론 불안하다. 방에 짐 풀고 낭우 중심가까지 호텔에서 빌린 자전거로 가 보기로 한다. 도로가를 한 줄로 늘어서서 가니 정말 장관(?)이다. 와! 이게 진짜 여행 아니갔어?
숙소 근처 추천 받은 식당에서 미얀마 정식으로 우아한(?) 식사를 하고 칠 도짜리 맥주도 일곱 병 먹었는데도 일인당 칠천 원 정도다. 역시 싸다. 숙소에 와서 어제 산 럼주를 더 마신다. 난 이게 과음으로 이어졌다.
주변이 어두웠다면 은하수도 봤을 텐데……
이천십오년일월이십일일.수.아주맑음.낭우(Nyaung U)
숙취와 같이 여섯시에 아침을 먹다. 정원 식당이라 공기는 시원하다. 해돋이의 빨간 구름과 여기서 유명한 열기구가 여럿 지나가는 것도 본다. 바간을 알리는 사진에 많이 나온 거다. 근처 여행사 통해 미니버스를 빌린다.
(서대장의 노하우-두리뭉실하게 계약서 작성. 예로 ‘PM 네 시‘ 요렇게만 적어 놓으면 목적지 출발 시간인지, 숙소 도착 시간인지 갔다 붙일 수 있음. 하하)
미얀마 사람들은 구십팔 프로가 독실한 불교 신자인데도 우리네 무당과 거의 똑같은 ‘낫(미안마 정령 신앙 Nat)‘신도 모신다. 그 본고장이 뽀빠산 (Mt. Popa 낭우에서 남쪽으로 약 오십 킬로 가야함) 이다. 정상(포파 타웅 칼랏 사원)까지 계단으로 올라가며 여러 낫신을 모신 사당을 만난다.
물 빠짐이 좋은 땅이라 땅콩 밭이 지천이다. 여기 특산물이란다. 거의 다와 일단 사진 찍기 좋은 곳에서 내린다. 뽀파산 정상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금방 주변엔 물건 사라고 몰려온다. ‘돌 속의 돌’도 사라고 한다. 관광지이니까.
좀 더 가서 차를 댄다. 힌두의 신 포함 서른일곱 분의 ‘낫신’을 모신 ‘포파 낫’ 사당에 먼저 들어간다. 제일 먼저 ‘술고래 낫’(쪼쓰와 신-럼주와 위스키 통으로 치장한 말을 타고 있다.)신에게 마음으로 빈다. 절주하게 해 달라고. (하하) 다른 신들을 일별하고 나온다.
여기 사람들은 ‘낫’신도 지극히 믿는다. 예전 우리네 무당 믿듯이. 하긴 무엇이든 정성으로 믿는 다는 게 신앙의 본질 아닐까? 사당 앞에 서성이는데 비닐봉지에 든 바나나를 잽싸게 채가는 원숭이를 본다. 그야말로 번개다. 소지품도 주의하라더니 여긴 원숭이 무법천지다.
무법 하나 더. 정상에서 내려오다 본다. 보통 배낭 바깥 옆 주머니에 물통을 넣고 다닌다. 혼자 올라오는 외국인의 그 물통을 노려보자마자 그야말로 전광석화로 물통을 챈다. 당한 분은 어안이 벙벙한데 이놈은 계단 바닥에 탁 앉아 손으로 마개를 열어 통을 들고 입으로 가져가 먹는다. 와! 사람하고 똑 같다. 그러다 생수통이 넘어져 바닥에 물이 흐르자 입으로 다 핥아 먹는다. 곡예단의 묘기를 공짜로 운 좋게 본다. 그러나 내려오면서 내게 덤벼들까봐 신경이 날 선다.
정상에서 보니 저 멀리 마을이 하나 보이고 사원의 탑이 몇 보인다. 넓은 땅과 믿음의 나라다. 가슴까지 탁 트였다.
타웅 마지(Tang Ma-gyi) 산으로 트레킹 하기 로 한다. 가이드를 십오 불에 구한다. ‘론리‘엔 분화구도 보인다는데 결국은 그런 건 없고 왕복 네 시간의 산행이 됨 셈이었다.
그래도 잘 모르는 나무, 꽃이지만 그 사이의 오솔길이 좋았다. 땅바닥의 흙은 꼭 진흙처럼 신바닥에 달라붙어 그래서 약간 미끄러웠지만 걷기엔 지장 없었고, 정상에 가니 수도원이 있고 나이 드신 스님의 빨래하는 모습이 구도자의 본보기처럼 보였다. 위에서 보니 거의 산봉우리마다 황금색 탑이 솟아 있다.
돌아오면서 야자 설탕과 야자술 빚는 집에 내려서 본다. 야자나무에서 얻은 수액으로 무지 단 야자 설탕을 만들고 안동 소주 같은 증류주인 야자 술을 만든다는 걸 처음 안다.
다섯 시 경 숙소 도착 잠시 일몰을 본다. 늘 보는 일몰이지만 또 새롭다. 한편으론 나이가 좀 드니 황혼이라는 감상에 잠시 젖는다. 무심히 흘러가는 세월 속에 내가 있다.
꼬치구이와 맥주 밥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어제보다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느낀다. 일인당 오천 원 정도 인데… 인간은 이렇게 자기중심적이다. 숙소 수영장 부속 바에서 간단히 맥주를 한다. 최고로 비싼 한 병 삼 달라 맥주다. 서울에선 삼천 원 생맥주 몇 잔씩 그냥 먹으면서도, 여기선 비싸다고 생각하니 에그 이놈아!
선명한 오리온자리와 여러 별들 그 아래 수영장의 물에 비친 건물의 아름다운 모습과 탁자의 촛불이 운치를 더 해 준다. 집사람들도 다 나와 여행의 맛과 멋을 만끽한다. 아무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좋다. 행복하다. 그리고 ‘서대장 스타일‘ 배낭여행을 크게(?) 벗어났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ㅎㅎ
이천십오년일월이십이일.목.아주맑음.양곤.부띠크호스텔.
일곱 시에 정원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사원이 즐비한 올드 바간으로 자전거 여행을 여덟 시에 떠난다. 숙소 바로 옆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벽돌 탑에 간다. 안의 계단을 올라 탑 중간에 난 테라스로 간다. 공짜로 수많은 탑이 솟아 있는 올드 바간을 한 눈에 조망한다.
미얀마인 한 사람이 벌써 자리 잡고 무료 가이드 한다. (아마 팁을 바래서 일거다) 테라스 사각 구석을 돌 땐 몸이 겨우 빠져나오게 만들었다. 어깨 넓으면 못 돈다. 오래된 빚이 바랜 벽화도 탑 안에 있다. 결국 돈이 있어야 복원과 보존일 뿐이다.
제일 먼저 띨로민로(Htilominlo) 사원을 간다. 제일 큰 사원이다. 탑 내부엔 네 방향으로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얼굴 모습이 조금씩 다 다르다. (탑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는 파토(patho) 라 부른다.) 여기서 모든 사원의 입장료를 한꺼번에 받는다. 빠빴한 미국 돈만 받는다. 일인 이십 불. 나중에 한 번도 검사 받지 않았다.여기만 안 들어가면 몽땅 공짜?
이어 아난다 파야((Ananda Paya-바간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아름답단다)로 간다. 이번엔 입상이다. 역시 네 부처님 모두 약간씩 모습이 다르다. 금가루 붙이라고 작은 가게에서 판다.
북쪽 부처님 앞 예배 보는 공간 어둑어둑한 한 구석에 어느 수도승이 서서 손엔 염주 알을 돌리며 경을 보며 속으로 외우고 있다. 조용한 모습에서 진지한 구도자의 모습을 본다. 진심이란 저런 모습이리라……
탑 밖의 친테는 특이하게 머리 하나에 몸통은 둘이다. 우리의 좌청룡 우백호처럼 여기 사원도 무슨 질서가 있을 텐데 잘 모르겠다. 공부 부족이다. 집에 가서 할 것!
탓빈유 파야(Thatbyannuy Paya). 제일 높은 사원이다. 인자한 미소가 네 부처님 모두 다 다르다. River View Hotel 옆 고도빨린 파야(Gawdawpain Papa)r가 거의 여길 닮았다 한다.
호텔 정원에서 강을 건너본다. 경건 엄숙 겸손의 분위기가 엄습한다. 여긴 그런 사원의 동네다.
숙소에 돌아와 체크아웃하고 반찬값도 따로 받는 미오미오(간판이 미얀마 글씨인지 희한해 한참을 찾았다.) 식당에서. 오후 뉴바간 일정은 생략하고 낭우의 쉐지곤 파야(Shwezigon Paya)-최초 통일 기념탑이 있다. 십일세기 건립. 한 바퀴 돈 후 긴 회랑 입구에서 잠시 쉰다. 한국이 연신 최고라는 물건 파는 뚱보 아줌마의 수다를 들으며 나른한 졸음도 느끼며……
나중에 약도를 보니 바로 옆에 동굴사원(짠시따우민 Kyansitttha Umin)이 있었는데 못 들렸다. 표시 해왔는데도 기억이 없다. ‘연식이 오래되어서∼’
세시 반 낭우 공항으로 간다. 국내선으로 양곤 가기 위해서다. 넓은 땅이고 도로 사정이 안 좋으니 약 백 불 하는 비행기도 탄다. 한 시간 이십 분 걸린다. 출발 시간 이십 분 전에 타라고 하더니 정해진 시간보다 먼저 출발한다. 우린 빨라서 좋지만∼
대합실에서 혼자 넥타이를 매고 앉아있는 젊은이를 만난다. 어디 출장 왔어요? 아뇨 여행 요. 왜 넥타이? 회사 끝나자마자 직장을 탈출했단다. 양곤까지 일주일 전에 예약한 비행기(우리 보다 약 삼십 만원 차이 난다) 타고 왔단다. 그냥 쉬고 싶어서 왔단다. 신혼여행으로 다신 오고 싶단다. 나와 다른 세대라는 것만 절실히 느낀다. 내 아들도 이런 세대라는 걸 꼭 알고 있어야 한다.
삼십사 인 승 프로펠라 비행기다. 오른쪽으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이 나라는 그냥 넓다! 다. 건기라서 인지 구불구불 강엔 물이 전혀 없어 보인다. 땅 위 곳곳에 사원의 황금 탑만이 누렇게 햇빛을 반사시키고 있다. 주변엔 마을도 없는데……
도착해서 대합실에 들어온다. 짐 찾는 전광판이 안 보인다. 먼저 온 사람들은 한 짐씩 수레에 싣고 나가는데,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도 없고, 하하, 짐차에 물건 싣고 와서 부려놓고 알아서 짐 찾아가는 수동 시스템 공항이다.
시내 호스텔로 간다. 중심지라 예약 했는데 차 소리가 밤새 들리고 어느 방은 바퀴벌레까지 등장해서 추천 못한다. (공동 샤워실, 이인 일실이 사십사 불-여기선 비싼 가격임) 첫인상은 싸고 깨끗해 보였는데……
십구 번가 중국거리 먹자골목으로 간다. 술꾼(?)들이 모든 탁자를 전령했다. 겨우 자리를 얻어 맥주하고 여러 안주를 시켜 먹어도 일인당 칠천 원 남짓이다. 이러니 또 오고 싶은 유혹을 자꾸 느낀다. 아예 미얀마를 삼주로 일주해봐!
이천십오년일월이십삼일.금.맑음.양곤.보따따웅빈테지력서리호텔
냉방 돌아가는 소리와 차 소리에 한 시간 꼴로 깨다 자다한다. 새벽 같이 움직여 가장 미얀마를 대표하는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Shwedagon Pagoda)(Shwe-황금, dagon-언덕의 의미)를 간다. 참배객들이 몰려오기 전에 둘러보려함이다.
걸어서 가다 버스 정류장에서 차장의 쉐다곤 소리를 듣고 탄다. 미얀마어로만 번호가 적혀있어 우린 알 수가 없다. 남문 앞의 거리에서 내린다. 차가 안 와 길 한가운데서 사원이 다 나오게 멋진 사진도 찍는다.
거대한 친테가 먼저 반겨준다. 기둥이 늘어선 회랑엔 기념품 가게가 양쪽으로 이어져 있다. 맨발로 계단을 올라간다. 외국인은 입장료 팔천 짯을 내면 날짜별로 색깔이 다른 스티커를 붙여준다. 입장표와 같이 제시하면 그날 무제한 들락 달락 할 수 있다. (우린 매표소에 직원이 없어 일찍 오니 공짜인가보다 라고 좋아했다. 스티커 없으니 나중에 들켰다. 부처님 손 위에서 공짜를 바라다니. 헤헤.
짐 검사대를 제일 먼저 통과한다. 계단을 좀 더 오르면 맨 위 중앙탑을 둘러싼 광장이 나온다. 사대문이 이렇게 있고 안에 부처님을 모신 작은 건물들이, 여기저기의 와불 좌불들이 중생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저 탑, 부처님을 향해 무언가를 비는 이 나라 사람들을 본다. 십이지신도 있어 자기 생일과 같은 요일 앞에 모신 부처님에게 물 붓는 의식을 하면서도 빈다.
최상부 첨탑엔 칠십육 캐럿의 보석과 함께 천 개 단위의 루비 사파이어 황금 종(사진으로 보니 종 하나하나에도 부처님을 부조로 새겼다.) 등 세상의 보석은 모두 모여 탑에 달려 있다. 해가 뜨니 보석들이 반사되어 번쩍번쩍 여기저기서 빛난다.
북문 근처의 나옹도지 파야(부처님 살아생전에 꿀을 공양하고 머리카락 여덟 발을 얻어 가져와 모신 사원)는 이 큰 사원을 짓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사실을 사암 석판에 세 언어로 새겨 놓았단다.
혼자 좌선하는 스님도 보인다. 바글거림에서 유독 경건하다. 여덟시가 넘으니 사람이 너무 많다. 동자승 십여 명이 모여 앉아 경을 소리 내어 외우고 있다. 어느 아줌마 둘이 천 짯 씩 나누어 준다. 시주하는 것이리라. 여긴 모두가 불자이다.
거리로 한참 내려가 스낵바에서 빵으로 아침 후 다시와 사원의 사진 전시실을 들렀다 그리고 숙소로 일단 가서 짐을 맡긴다. 이어 양곤 철도역으로 간다. 내가 지도를 서두르다 보니 제대로 못 봐 좀 지나쳤다가 다시 찾는다. 확실하지 않으면 나서지 말아야 하는데 오늘은 엉뚱한 사원으로 가기도 했다. 양곤 순환열차 시간도 ‘론리‘와 다르니 무조건 물어보는 게 상책이다. 서대장이 뛰어 갔다 와 맥주와 과일을 사온다. 출발 직전의 기차에 탄다.
거대 와불 사원인 차욱타지 사원은 (Chaukhtatgyi Paya) 쉐다곤 파야에서 멀지 않는데 순환열차 인세인 역(Insein station) 에서도 거의 한 시간을 걸어가는 사원 짜욱 도찌(Kyauk Daw Kyi) 사원과 완전 헷갈린 거다.
집에서 이 와불 사원은 공부해 갔는데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따지’와 ‘-도찌’의 구별도 전혀 하지 못하고 아는 척 해서 일행만 피곤하게 했다. 역시 공부를 완벽하게 해서 여행을 가야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뼈아프게 안다.
그러나 난 한편으론 여행은 고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냉방차만 타고 다닐 수도 있지만 찜통 버스도 타 봐야 진짜 여행의 맛을 안다고 말하면 건방질까? 고생을 즐길 줄 아는 게 진짜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술안주 삼아 얘기하고 싶다.
우리네 육십년 대의 찜통 버스를 약 한 시간 여 타고 –더위를 참고, 우린 한 겨울인데 여긴 삼십 도 가깝다- 숙소로 온다. 짐 찾아 우아한 배가 곧 호텔인 보따따웅 빈테이지 럭셔리 호텔(Botahtaung Getty 근처 Vintage Luxury Yacht Hotel)로 간다. 마지막 밤은 우아하게……
길거리 음식점에서 드디어 모힝가(메기 우린 육수에 말아 주는 쌀국수-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 미얀마 대표 음식)를 먹다. 한 그릇 사백 짯. 난 매운 소스를 넣어 두 그릇을 해치운다. 요구르트와 맥주와 닭고기 조금 사들고 호텔로 온다. 방마다 무료로 주는 과일도 안주 삼아 담소한다.
다들 즐거웠다는 생각이 진하게 배어있다. 난 행복한 여행임을 안다.
이천십오년일월이십사.토.맑음.기내.
방 창문으로 양곤강 위로 뜨는 해도 잠시 본다. 강인데도 컨테이너 선박이 지나간다. 아침 뷔페도 여유 있게 즐긴다. 배불리 먹는다. 열 시에 출발. 다른 일행은 안 타봤으니 인력거에 한 사람씩 탄다. 힘든 일인데도 이 사람들은 웃으며 일한다. 가난하지만 행복의 이유다? 술레 파고다로 간다.
양곤 역 쪽으로 걷다 어느 식당(Super Wonder Bold Restaurant) 앞의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본다. 우리 돈 사 오 육 백 원하는 아이스바 콘 크림 작은 통을 하나씩 먹는다. 맛있다. 더 가니 Ruby Mart 다 – 우리의 대형 마트 격. 각자 선물 사기로 한다. 난 운반 때문에 럼주 작은 것 두 병만 산다.
이번엔 보족 시장(Bogyoke Market)을 간다. 집사람이 목각 코끼리 두 마리, 목각 창살 문양을 산다. 우리나라에 사년 간 일해서 우리말을 곧잘 하는 주인장이라 친근감에서 조금만 깎고 산다. ‘좋은 물건 싸게 팔아요!’라는 한글 간판을 달아보라고 권한다. 한국 관광객은 꼭 들리는 곳이니까.
다시 루비 마트 오층 음식점으로 온다. 푸짐한 쌀국수(Mongdi - 우리의 잔치국수와 비슷하다)를 국물도 안남기고 먹는다. 다른 분들도 맛보게 많이 덜어놨어야 하는데 –난 지나야 알아채니-
야경 사진을 찍으려고 쉐다곤 파고다로 다시 간다. 깐도지 호수에 가니 밴드에 맞춘 춤과 노래를 녹화하고 있다. 공짜 구경이다. 사원 동문으로 가다 얼음 넣은 사탕수수 즙을 한 그릇씩 길가 좌판에서 사먹는다. 배탈 나거나 말거나 다. 한국인이 주인인 동문에서 가까운 레인보우 호텔 (E-mail : yangonrainbowhotel@gmail.com)에 짐을 맡긴다. 우린 사원을 도는 중간 길을 따라 서문으로 가서 야경 사진을 찍었다.
공항에 가는 택시를 불러준다. 한 대당 육 불. 원두커피도 두 잔씩이나 얻어먹는다. 이국에서 말 통하는 동포가 좋긴 좋다. 공항 대합실에 너무 일찍 도착한다. 한국 가는 비행기가 몰리는 시각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어! 상계동에서도 만나기 힘든 아는 분 둘을 만난다. 세상에∼∼
의자에 앉았는데 중년 여자 두 분이 앉는다. 배낭여행 고수처럼 보인다. 미얀마를 이십 팔 일 다녔단다. 특히 트레킹도 많이 했단다. 얼굴엔 자랑스러움이 가득이다. 이번 여행을 책으로 내려한다고 한다. 미얀마에 진작 땅 사놓아 수십 배 올라 돈 많이 번 어느 분과 어제 술 많이 먹었다고 주절거린다. 한 이십년 배낭여행 다녔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이 분들의 태도엔 겸손은 잘 안 보인다. 많을수록 겸손해야 한다. 자랑스러움은 곧 남들보다 내가 낫다는 자만심으로 이어지니까. 어쭈그리! 내가 못하니 괜한 질투? 아님 시비?
(나의 질투: 교육방송에서 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 프로그램엔 교사 출연자는 한 명도 못 보았다. 그래서 난 그 프로에 대해 무지무지 질투를 느낀다. 아예 안 본다. 어제 미얀마 프로만 처음 보았다.)
그런 질투일까? 고수들에게 시비를 건걸까? 공항 대합실에서 모기랑 있으니 제정신이 아닐까?
그리고 급격하게 자본주의화 하는 이 나라를 걱정도 해본다. 몇 년 안으로 순박함은 사라지고 돈이 우선인 나라로 틀림없이 변할 것 같아 안타깝다. 내가 나서서 염려할 건 아니지만 말이다.
홍콩에서 대기하며 서대장이 먹을 걸 사온다. 고샘이 아주 작은 병 고량주도 사온다. 난 앉아서 덕만 본다. 그러니 이번 여행이 행복 안 할 수가 없다. 인천 공항에서 집에 오는 동안 차창 밖의 비를 보며 다음의 즐거운 여행을 꿈꾼다.
같이 간 장교감님 부부, 손샘 부부, 고샘 부부와 아들, 서대장 부부, 나와 집사람 정말 다들 고맙습니다.
이천십오년일월삼십일금새벽 未山.
※참고하십시오. 퍼왔습니다.
불교의 요소는 불(佛)법(法)승(僧)입니다. 그 중 승려들을 지칭하는 승은 샹가라 불리기도 하는데 미얀마에서 샹가는 수행하는 수도원인 반면 우리나라에선 수도원과 대중에게 설법하는 장소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원[절]개념인 미얀마의 파야(paya)에는 승려들이 없고 모두 짜웅(kyaung)이라 불리는 수도원에 거주합니다.
미얀마의 사원은 파야라고 합니다. 파야는 일반인들이 예불을 드리거나 종교행사가 있을 때 이용되는 사원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원의 중심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입니다. 하지만 미얀마의 사원의 핵심은 중앙탑 입니다. 부처님의 사리, 머리카락이나 불교적으로 성스러운 물건 등을 안치한 중앙의 탑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명상소나 전시실 등의 부가건물이 배치됩니다.
그런데 중앙탑은 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는 파토(patho)라 하고, 없는 구조는 제디(gedi)라 부룹니다.
파토의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중앙에 불상이 안치되고 그 앞에 예불을 드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규모가 큰 파토의 경우 네 방향으로 출입문이 나 있으며 중앙에는 각 방향을 향해 불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중앙 불상을 중심으로 탑 내부를 돌 수 있는 좁은 통로가 나 있는데 통로의 좌우측 벽에 벽감을 내서 불상을 보시하거나 불교적 내용의 벽화를 그렸습니다.
탑 안으로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만 볼 수 있는 구조의 탑을 제디라 부릅니다. 제디의 안쪽에는 금함 은함 동함으로 겹겹이 싸인 종교적 물품이 들어있습니다. 그 물품은 보통 붓다나 고승의 유골 사리 불경 등입니다. 성스러운 물건으로 채워진 제디 자체가 성스럽게 숭배되고 제디에 대한 예불은 그 안에 보관된 성물(聖物)에 대한 예불로 연결됩니다.
승려들이 거주하는 수도원은 일반인과 분리되어 있기에 승려들은 매일 아침, 거리로 나가 탁발을 해야 합니다. 특별한 종교 행사가 있을 때는 수도원에 있는 승려를 사원에 초정해 설법을 듣기도 합니다. 사원에는 일반인들이 방문해 탑을 건설하거나 보시를 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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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닐 수 있을 때 다녀라!!
부부가 같이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진은 산퍼앨범에 올렸다...
행복한 마음이 글 전체에 가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