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밤 SBS 금토드라마 ‘7인의 탈출’이 끝났다. 9월 15일 시청률 6.0%(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로 시작해 4회까지 꾸준히 올라 7.7%를 찍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두 자릿 수 상승은커녕 15~16회에선 5.2%로 최저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종회 시청률은 6.6%다. ‘7인의 탈출’은, 이를테면 최고 시청률 7.7%에 그친 드라마인 셈이다.
460억 원을 퍼부은 것으로 알려진 제작비나 작가의 대박난 전작들에 견줘 만족스럽지 못한 시청률이라 할만하다. 가령 시즌 3편까지 방송한 ‘펜트하우스’ 시청률을 떠올려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펜트하우스’ 1편 28.8%, 2편 29.2%, 3편은 19.5%의 최고 시청률을 각각 기록했다. 특이하게도 17부작으로 사전제작된 ‘7인의 탈출’이 맥을 추지 못한 모양새다.
MBC 금토드라마 ‘연인’의 막강한 인기에 치였다곤하나 그동안 ‘아내의 유혹’ㆍ‘왔다! 장보리’ㆍ‘내 딸, 금사월’ㆍ‘언니는 살아있다!’ㆍ‘황후의 품격’ 등 ‘펜트하우스’ 이전에도 많은 히트작을 냈던 김순옥 작가로선 체면을 확 구긴 저조한 시청률이라 할만하다. 이미 촬영중인 시즌 2가 내년에 제대로 돌아올지 의구심이 생길 정도다.
여름 및 추석 대목을 겨냥한 대작(한국형 블록버스터)들 여러 편이 그냥 나가떨어진 것처럼 김순옥표 막장드라마도 예전처럼 잘 먹히지 않는 게 확인된 ‘7인의 탈출’ 시청률이라 할까. 이른바 ‘순옥적 허용’(드라마가 황당하더라도 김순옥 작가니까 그러려니 해준다는 의미)도 유통기한 내지 유효기간이 다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1회 본방송후 바로 이어 재방송하는 이례적 편성 등 방송사의 시청률 올리기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온 결과라 더욱 그렇다. 추석(9월 29일) 연휴기간 항저우아시안게임 중계에도 ‘7인의 탈출’은 결방하지 않고 조금 늦게 방송됐다. 10월 7일 밤 9시 일본과의 축구 결승전 중계로 결방을 피해가지 못했지만, 시청률 제고(提高)의 안간힘이 느껴진 편성임을 알 수 있다.
‘7인의 탈출’은 한 마디로 가짜의 반란 이야기다. 제 아비에 의해 운명이 바뀐 가짜 심준석(엄기준)의 일탈과 악행을 그리고 있어서다. 피카레스크(악인이 주인공인 작품) 복수극임을 내세우고 있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 또 다른 나쁜짓을 일삼는 7인이 K 또는 매튜리로 등장한 준석에 의해 조종되며 그들끼리 이전투구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7인은 금라희(황정음)ㆍ민도혁(이준)ㆍ한모네(이유비)ㆍ차주란(신은경)ㆍ양진모(윤종훈)ㆍ고명지(조윤희)ㆍ남철우(조재윤)다. 다만, 도혁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다미 편에 선다. 굳이 말하면 ‘우리편’이 된 것인데, 그 빈 자린 준석이 메꿔 ‘나쁜놈’ 7인엔 변함이 없다. 최종회 결말에서도 그들은 도혁을 죽게 내버려둔 채 헬기로 현장을 떠난다.
그 외 이야기의 키 메이커라 할 방다미(정라엘), 다미의 할아버지 방칠성(이덕화)이 있다. 칠성을 돕는 강기탁(윤태영)과 진모로부터 모네가 낳은 준석의 딸을 넘겨받아 키우며 끝내 죽고마는 노팽희(한보름)도 있다. 기탁만 빼고 이들은 모두 죽는 공통점이 있다. 깡패 출신 기탁이 왜 칠성을 돕는지 개연성 없이 얽히긴 했지만, 그의 활약이 궁금해지는 시즌 2다.
매튜리가 처음 등장한 건 5회다. 다미 양부 이휘소로 나오는데, ‘어’ 하며의외란 생각을 했다. ‘펜트하우스’에서 희대의 빌런으로 나온 엄기준이 착한 캐릭터로 나오는 게 좀 이상해 보여서다. 아니나다를까 나중에 밝혀진 걸 보면 K이기도 한 매튜리, 그러니까 준석이가 휘소로 성형수술한 것임이 드러난다. 그야말로 반전의 연속이다.
‘7인의 탈출’은 1회부터 예사롭지 않은 출발을 알린다. 김순옥표 드라마다운 일종의 세 과시라 할까. 가령 여고생 모네가 학교 미술실에서 아기를 낳는가 하면 그 모든 걸 뒤집어쓴 다미는 생모 라희로부터 “물리기 전에 물어뜯어야 살아남아” 따위 악다구니를 듣는다. 악다구니뿐만이 아니다. 라희는 다미더러 야멸차게 차에서 내리라고 하는가하면 주먹으로 딸을 치기도 한다.
이런 전개는 17회 종영까지 내내 이어진다. 선의적으로 말하면 반전을 거듭하며 도대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과 함께 흥미를 끌지만, 너무 혼란스러운 게 흠이다. 최종회에서 자막으로 시즌 2로 돌아올 것을 예고했듯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나의 비평 스타일이 아니지만, 시즌 1만으로도 ‘순옥적 허용’은 차고 넘친다.
그만큼 ‘7인의 탈출’은 폭력성ㆍ선정성이 끓며 넘치는 황당 일색의 드라마다. 한 회에 무려 4명이 죽는가 하면 ‘펜트하우스’에서처럼 죽었던 사람이 돌아오기도 한다. 가령 칠성이 그런 경우다. 칠성은,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이내 다시 죽임을 당한다. 이런 식이면 시즌 2를 통해 시즌 1에서 이미 죽은 팽희 등 누가 또 살아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글쎄, 죄짓고는 편하게 살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7인의 탈출’이 드러낸 가장 큰 문제는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는 것과 무엇 하나 남는 게 없다는 점이다. 뚜렷한 한 가지는 부정적인 학교 모습이다. 여고생의 원조교제에 이은 학교 미술실 출산도 모자라 적나라한 학폭묘사, 기간제 교사가 정교사 되기 위한 수단으로 이사장의 유부남 아들과 사통하는 등 ‘악의적’ 설정으로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중앙 현관 앞에서 학교폭력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것도 나로선 여러 콘텐츠 통틀어 처음 보는 장면이다. 대개 학교 후미진 곳에서 이루어지는 학폭묘사와 차별성을 노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악의적 설정으로 보이긴 마찬가지다. 그만큼 학폭이 만연한 학교현실을 고발하려는 의도였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건 살부(殺父) 전개다. 악의 근원은 구비서(최진호)다. 심회장(김일우)의 갓난아들 도혁과 준석을 바꿔치기해 그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가짜로 밝혀져 심회장으로부터 구박과 괄시를 받아 그에 대한 복수가 드라마의 기둥 줄거리다. 준석은 이미 구비서가 생부인 걸 알면서도 ‘도련님’으로 불리며 온갖 조력을 받기까지 한다.
준석은 그런 생부한테 대놓고 “당신 존재 자체가 내 치명적 약점”이라 쏘아부친다. 직접 살해한 건 아니지만, 생부로 하여금 자폭해 죽게한 아들인 것이다. 구비서는 폭탄 버튼을 누르기 전 “도련님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사랑한다 아들아!”라고 외친다. 일그러진 부성애라 그런지 콧등이 시큰하긴커녕 ‘뭐 저런 아비와 자식이 다 있나’ 싶을 뿐이다.
“죽여서라도 막으라” 사주하는 등 다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생모 라희도 천륜을 어긴 죄란 점에서 준석과 막상막하다. 다미한테 대놓고 “처음부터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아니 낳지 말아야했어” 따위 악담은 새 발의 피일 만큼 지독한 악행이다. 오히려 양부모인 이휘소(민영기)ㆍ박난영(서영희)이 진짜 핏줄같이 다미를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짜증나는 건 시청률이 아예 두 자릿 수 근처에 가보지 못했는데도 순옥적 허용은 계속되고 있는 점이다. 사전제작 드라마로 선보여 빼도박도 못할 처지이긴 하지만, 그중 하나가 총기 사용이다. 어찌어찌 권총까지는 봐준다 해도 무슨 갱스터 영화처럼 기관총으로 총질을 해대고 있는 건 그냥 그러려니 하며 봐주기 힘들다.
대통령 비서실장ㆍ여당대표ㆍ신문ㆍ방송사 사장 등이 성찬그룹 회장 호출로 회장실에 다같이 모인 것도 너무 황당하다. 한국 최고의 재벌기업 삼성그룹 이재용 회장이 국정농단사건으로 수년간 옥살이한 실제상황이 떠올라서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고들 하지만, 그 위에 권력이 있는 걸 작가나 연출자만 모르는 것 같다.
서울경찰청장으로 내정된 철우가 검찰총장 엄지만(지승현)에게 설설 기고, 그랬던 그가 청사안에서 총 맞아 살해되는 전개도 ‘도대체 뭐야’ 하는 탄식을 자아낸다. 지하창고에 칠성이 남긴 전 재산을 현금으로 쌓아놓고 보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라희와 준석의 키스신이 여러 번 나오는 것 역시 징그럽기까지 할 정도로 되게 어색해 보인다.
황당 일색과 달리 허술하거나 억지 전개가 이맛살을 찌뿌리게 하기도 한다. 가령 라희가 어린 다미를 버린 장면이 그렇다. 다리 위를 같이 가다가 손 놓고 혼자 가는 엄마를 부르거나 쫓아가지 않고 있는 어린 다미로 그려져서다. 라희가 다미에게 할아버지를 일러 “영리한 사람”이라 해놓고 “영악한 사람이라고 했다”고 다그치는 것도 그렇다.
아이 낳은 직후 모네처럼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지도 의문이다. 이런 억지스러움은 공포감 조장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천장에 매달린 송지아(정다은)시신을 보고 라희ㆍ모네ㆍ주란ㆍ명지 들이 ‘악’ 하며 놀라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또 여자 여러 명이 비명을 내지른다. 너무 억지스러운 공포감 조장이다.
한편 2018년 318만 관객으로 흥행한 영화 ‘마녀’에서 건물 안 좁은 통로의 벽을 타오르며 총 든 사내들을 쌍단검 액션으로 제압하는 등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정다은이 반갑다. 나쁜놈일망정 팽희를 향한 진모의 사랑이라든가 그녀가 죽어가면서 “한 번도 남자로 본 적 없다는 말은 거짓이었다”는 고백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7인의 탈출’은 ‘소방서 옆 경찰서’처럼 1편에서부터 시즌 2를 예고했다. 그만그만한 시청률로 봐선 자신감은 아닐 것 같지만, 최소한 배우들의 발음상 오류 없이 돌아오기 바란다. 제3회의 “남편 비시(빚이→비지) 10억”, “나나시(낱낱이→나나치) 밝혀드리겠습니다”를 두고 하는 당부다. “이 자리를 빌어”(11회)도 잘못된 표현이다. ‘빌어’가 아니라 ‘빌려’로 해야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