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은 또 손을 내밀어 내 등을 아주 조용히 어루만지며 야! 오늘 한번 잘해보자! 그래 너만 믿는다. 하고는 내 머리를 가볍게 툭툭 치면서 한없는 애정과 신뢰를 표시합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주인님의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럽고, 나에게 무한한 힘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고, 나 또한 온 몸에서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정이 듬뿍 담기고 조용한 눈길로 지긋이 한참이나 내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주인님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고,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를 짓고 난 뒤, 그리고는 집안을 향하여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현관을 열고 모습을 감춥니다.
이제 새벽은 완전히 물려가고 아침이 밝아온 것 같습니다. 햇살이 온 마당을 가득 채우고 늦봄의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면서 새벽에 일어난 악몽과 나의 또 다른 모든 시름과 근심 걱정들을 몽땅 가지고 저 산 너머로 가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오늘 새벽 나의 모든 우울함과 걱정을 바람에 실어 보냈다고 생각한 후, 나는 오늘 일어날 일들을 조용히 머릿속으로 생각하다 주위를 휙 하니 한번 둘러봅니다.
이 집 안에는 커다란 마당과 정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떡하니 그 위용을 자랑하고, 그 뒤를 이어 대추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등등이 위풍당당하게 앞마당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놈 능구렁이 같은 누렁이집은 이 집의 나무들 중 제일 큰 감나무 밑 그늘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담장 바로 앞에 자리한 정원의 해바라기는 키가 훤칠하니 커서 그 중 가장 큰놈은 담장위로 얼굴을 내밀고, 나머지도 키가 큰 해바라기의 목과 가슴 높이까지 자라 있었습니다. 담장위로는 오월을 화려하게 지낸 장미 넝쿨들이 꽃들을 모두 떨어뜨리고 잎사귀만 무성하게 자라나 있었고, 며칠 전 까지도 붉은 꽃을 자랑하던 석류나무 꽃들은 까만색으로 말라 대다수는 떨어지고 몇몇 개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그 옆으로 화분 속에서 무리를 이루어 쭉쭉 뻗은 키와 싱싱함을 자랑하는 산새베리아, 이름을 잘 알 수 없는 몇몇 개의 화분에 담긴 화초들, 거의 똑같은 키로 자라나서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고추, 줄기와 잎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지지대에 몸을 지탱하고 있는 토마토, 호박, 가지와 이름 모를 잡초들이 마당과 정원의 한구석에 서로의 영역을 차지한 채 자라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