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철야…“깨어나라” 천둥같은 죽비소리 |
백담사 기본선원 ‘사미승 필수 교육과정’ 총림 가풍을 1000년이 넘도록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키고 있는 한국 선원은 독특한 동안거 풍습을 지니고 있다. 바로 부처님 성도일 일주일 전부터 이날 까지 감행하는 용맹정진이다. 일주일간 잠을 자지 않고 일념으로 화두 참구만 하는 용맹정진은 무서운 인내력과 수마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이 없으면 절대 이룰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다. 구참들도 쉽게 결행하지 못하는 용맹정진을 이제 갓 출가한 사미승들이 필수 교육과정으로 삼고 있다. 기본선원 2년차 교육을 담당하는 백담사 기본선원이 그곳이다.
<백담사 기본선원에서 용맹정진 중인 스님들. 선감 스님이 장군죽비를 들고 엄하게 지도하고 있다. 용맹정진 중에는 서로 마주보고 참선에 들어 자세를 흐트릴 수가 없다.> 지난 25일은 성도재일 전날이다. 6년 설산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정각에 든 날을 기려 전국 사찰에서 신도들은 철야정진을 한다. 동안거에 든 선원 수좌들에게 이날은 7일간 용맹정진 마지막 날이다. 백담사 기본선원 2년차 과정에 있는 34명의 스님들도 이날 마지막 밤을 맞고 있었다. 저녁 예불을 마친 사미들은 큰 방에 마주 보고 앉았다. 이 밤을 넘기면 길고 긴 일주일이 끝난다. 좌복 위에 앉은 스님들은 금세 깊은 침묵 속으로 침잠했다. 이들을 지도하는 선감 스님이 장군 죽비를 들고 조용히 오갈 뿐 마른 침 넘기는 소리가 우뢰 보다 더 크게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일주일간 잠 한 숨 자지 않았지만 얼굴빛은 맑고 평화롭다. 낮과 더불어 초저녁은 화두가 성성하고 머릿속도 가장 맑을 시간이다. 그만큼 집중도가 높다. 죽비 소리가 날 이유도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밤 10시를 넘겨 자정이 가까워오면 사정은 달라진다. 조금씩 자세가 흐트러지고 깜빡 고개를 끄덕이는 스님도 나온다. 이럴때 장군 죽비가 사정없이 어깨를 때린다. 자정이 되면 미음이 나온다. 대부분 오후 불식을 하는 까닭에 몸을 보신하기 위해서는 가장 힘겨운 이 시간에 가벼운 미음이라도 보충해야한다. 이 시간 이후부터 새벽 2시까지가 최대 고비다. 어제 밤 이 시간에도 세명이 ‘넘어졌다’. 깜빡 정신을 놓은 것이다. 자정부터 새벽까지 ‘수마’에 정신놓기 일쑤 3일째 고비 넘기고 부처님 말씀 온몸 ‘체득’ 처음 시작할 때는 많이들 긴장했다.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심이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하루 이틀은 자지 않고 정진 한 적이 있지만 일주일은 처음이다. 한 스님은 용맹정진이 끝난 뒤 “처음 시작할 때 걱정이 많이됐다. 과연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너무 컸다”고 말했다. 첫날은 무사히 넘어갔다. 둘째날부터 깜빡 졸다 넘어지는 스님이 한 둘 나타났다. 3~4일이 고비였다. 경책 소임을 맡은 인례(引禮)스님이 바빠진다. 10분 휴식 시간이 끝났는데도 좌복이 간혹 비어있다. 아니나 다를 까 다각실(茶閣室)에서 깜빡 잠이 들어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 어려운 시간 대중들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았으니 더 긴장된다. 선감스님은 장군죽비를 들고 계속 왔다갔다 하시고. 누가 졸았는지 죽비소리가 경쾌하게 울려퍼진다. 주변 스님들이 그 소리에 더 정신을 가다듬는다.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서 별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이불장을 열어 이불을 꺼내는 스님, 수영하는 모습으로 방바닥을 허우적 거리는 스님도 나온다. 백담사 기본선원에서는 허공에 붓을 그리는 스님이 나왔다. 무의식 중에 벌어지는 이같은 행위를 두고 선원 스님들은 본지풍광(本地風光)이라고 한다. 본래 진여자성을 뜻하는 말인데 출가전의 옛 습관이 드러나는 것을 꼬집는 선방의 은어(隱語)다. 선원장 신룡스님은 하루중 힘든 시간이 있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거의 대부분 스님들이 새벽시간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자정 미음을 먹고 난 뒤부터 새벽 예불 까지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침 해가 밝아오면서 잠도 달아나고 몸도 회복된다고 한다. 신룡스님은 “일주일을 잠자지 않고 정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루동안의 시간 변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본선원에서 만난 한 스님도 “처음 2~3일은 잡념이 많이 떠올라 화두가 사라지고 번뇌 망상에 사로잡혔는데 점차 적응이 되면서 화두가 성성해지고 몸도 편해졌다”고 말했다. 결국 한명의 낙오자 없이 무사히 마쳤다. 구참들만 모인 선원에서도 보통 3~4명의 탈락자가 나오는 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정진력이다. 결코 해낼 수없을 것 같던 두려움과 불확실이 극복되면서 스님들은 자신감을 갖게 된다. 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시작할 때는 인간이 과연 일주일간 자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의심을 했다. 3일째가 고비였는데, 고비를 지나니까 보통 때보다 더 힘이 났다. 그 뒤부터 부처님 말씀이 진리임을 몸으로 체험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옳다는 것을 경험으로 체득한 것이다. 이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됐다”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맹정진을 고수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철인적인 인내를 요구하는 고통을 견뎌낸 그 힘이 수좌 생활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결국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그랬던 것처럼. 다음날 아침 공양을 마친 스님들은 오세암 까지 산행에 나섰다. 오후에는 찌든 옷과 몸을 세척하는 목욕시간. 하지만 자유시간은 거기까지 였다. 저녁부터는 다시 하루 12시간의 정진이 이어졌다. 인제=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선원장 신룡스님 “초발심 때부터 철저히 정진해야 평생갑니다”
백담사는 기본선원 2년 과정에 있는 스님들을 1년간 맡아 교육한다. 종단으로부터 위탁받아 대신 교육하고 있는 셈이다. 입산 후 6개월을 사찰에서 행자생활을 마친 행자들은 행자교육원에 입소한다. 이 과정을 마친 사미(니)들 중 일부는 4년간 기본선원에서 교육받는다. 사미들의 중심도량이 동화사이다. 첫해는 봉암사에서 1년을 보낸다. 이 과정을 마친 뒤 백담사에서 동안거 하안거를 난다. 올 동안거는 34명이 들어왔다. 사미 교육비 백담사-신흥사서 부담 “이제는 종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그런데 사미 교육비를 모두 백담사와 신흥사 즉 3교구에서 부담한다. 해제비를 합치면 수억원에 이르는 거액이다. 백담사 회주 오현스님의 원력으로 낙산사 봉정암 백담사 등에서 경비를 모아 지금껏 유지해오고 있다. 종립선원인 봉암사에는 년간 1억5000만원의 지원비가 나가지만 백담사는 모두 자체 부담이다. 기본선원을 종단 의무교육과정으로 두고서는 정작 위탁비용까지 모두 맡긴 형국이다. 2003년부터 백담사가 기본선원을 운영했으니 그간 들어간 비용은 10억 가까이 이른다. 그런데 백담사가 입장료 폐지에 따라 관람료를 징수하지 않기로 결의하면서 자금사정이 더 악화됐다. 신룡스님은 “백담사 회주 오현스님의 의지와 지원 덕분에 사미들이 공부할 수 있는데 이제 종단이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선원 수좌회 임원 스님들이 여러 차례 총무원과 종회를 찾아 지원을 부탁했지만 번번히 무산됐다. 스님은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감안할 때 “종단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스님은 “선(禪)은 불법의 정수(精髓)다. 특히 간화선은 종단 자체의 존속은 물론이고 조사선의 정체성을 지켜오는 실질적 수행법으로 기능해왔다. 실제적인 선수행을 바탕으로 종단과 선문(禪門)의 정체성을 보존해온 전통이야말로 간화선이 현재에서도 종단의 종지 종통을 잇고 정체성을 표방할 수 있는 이유다. 기본선원을 종단이 지원하고 육성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다. 스님은 백담사는 간화선 중심의 선문화 공동체의 구심이 될 수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자연합일적이며 엄격하고 청빈한 두타수행의 구참납자를 위한 무문관 특별선원과 선불교의 선농일치의 백장청규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기본선원을 하나의 선원으로 통합한 무금선원을 활성화 하면 명안납승이 나올 수 있는 든든한 토대가 될 수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인제=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용맹정진이란 용맹정진이란 잠을 한숨도 자지 않고 등을 땅에 대지 않는, 즉 장좌불와(長坐不臥)를 말한다. 원래 결제 시작 7일, 해제 직전 7일, 결제와 해제 중간인 반 살림 때 7일 동안 용맹정진을 했지만 현재 대부분의 선방은 반 살림 기간동안 일주일 밤 낮 동안 정진한다. 등을 땅에 대지 않는 ‘장좌불와’ “성철스님 해인사 수행이 시초” 용맹정진 전통은 중국에서 총림이 제정되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옛 선원청규등에는 용맹정진 전통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는 용맹정진이 없었다. 일반적으로 성철스님이 해인사에서 행한 것을 시초로 본다. 9년 장좌불와한 것으로 알려진 성철스님은 용맹정진을 정해놓은 뒤에도 몇 달씩 잠을 자지 않고 눕지도 않고 정진했다고 한다. 성철스님 생전 당시 해인사는 선원 대중 뿐만 아니라 강원 등 전 대중이 의무적으로 용맹정진에 참여했었다. 용맹정진 기간동안 청규는 매우 엄격하다. 50분 좌선하고 10분간 포행하는데 좌선 시간에 늦으면 경책을 받거나 심하면 퇴방조치 당한다.
#용맹정진 으뜸 무금선원
<무문관 스님들에게 공양을 들여보내고 있다.> 무문관 수행을 택하는 이유에 대해 신룡스님은 “ ‘부처를 배우려면 자기를 배워야하고 자기를 배우려면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는데 그처럼 공부에 틈을 주지 않도록 나 자신과 주위의 모든 반연을 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포교원장 도영스님 등 중진 스님들 하루 한 끼-묵언 등 청규 엄격히 지켜 현재 백담사 무금선원에는 12명의 스님이 용맹정진중이다. 그 중에는 얼마전 포교원장 소임을 마치고 들어온 도영스님이 있다. 스님은 금산사 주지 소임을 마치고도 수도암에서 안거를 나는 등 늘 소임을 끝내고 나면 선원에서 화두를 참구했다. 이번에는 용맹정진을 택한 것이다. 평생 선원만 다닌 성월스님은 현재 1년간 무문관에서 보내고 있으며 기본선원 운영위원 영일스님은 2년간 머물고 있다. 스님은 한철만 살려고 했는데 설악산 기백이 좋아 더 머물게 됐다고 한다. 이외 마곡사 주지를 역임한 진허스님, 선원으로만 다니며 흔적도 없이 공부하는 지수 스님 등 50대 중반 이상의 나이 많은 스님들이 많다.
#백담사 선원 역사 백담사가 선도량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971년 당시 종정 고암스님이 신흥사에 향성선원을 만들면서부터. 고암스님을 이어 전법제자인 문성준 스님이 선원 원력을 세우고 그 정신이 오현스님에게 이어졌다. 성준스님으로부터 전법을 받은지 1개월만에 스승을 보내야했던 스님은 그것이 한이 되어 선원복원 원력을 세웠다. 71년 향성선원 설립 禪도량 명성 떨쳐 그렇게 해서 1998년 백담사 무금선원을 건립하고 향성선원도 복원했다. 뒤이어 이 땅에 선불교의 씨앗이 뿌려진 진전사지를 복원하는 등 설악산 전체를 선도량으로 일으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