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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충북학습연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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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대 스크랩 [북유럽 교육연수] 8부_ 9월 1일~2일_ 노르웨이여 안녕~ 반갑다 덴마크 코펜하겐!
박진환(충남) 추천 0 조회 341 13.10.05 18: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9월 1일과 2일의 일기를 한국시간으로 9월 4일 새벽 2시 한국행 핀에어 비행기 안에서 쓴다. 옆에서는 김미연선생님이 뒤늦게 선물과 자기 물건을 사겠다고 난리다. 한창 물건 사기 바쁘던 사람이 계산 치르던 중 이 글을 보더니 또 난리다. 하하하. 아, 이제 6시간 뒤면 한국에 도착한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나머지 일기를 써야할 것 같아 준비해 온 노트북을 꺼내 다시 이틀 전으로 돌아 가볼까 한다.

 

최악의 저녁을 먹은 뒷날 아침식사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식사를 한 뒤 리조트 앞을 나와 보니 스키장이 보인다. 리프트도 있는 것이 겨울이 다가와 눈이 가득한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기고 9시 조금 넘어 버스를 타고 오슬로로 출발했다. 가는 방향이라 그리 멀지 않다던 오슬로는 자그마치 세 시간 넘는 거리였다. 점심식사전 가이드는 선물인양 홀맨콜렌으로 안내한다. 스키점프장이 있는 곳이자 오슬로 시내의 전경을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었다. 거대한 스키점프장에서 스릴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멀리 오슬로의 전경이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것이 노르웨이를 떠나는 마지막 일정으로 제격이다 싶었다. 이후, 오슬로 시내의 한 레스토랑에서 닭튀김을 먹고는 배를 타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칼요한거리를 중심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김미연, 안문자, 이갑순, 이미영과 함께 움직였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빙하를 모티브로 삼아 건축한 특이한 건물인 오페라 하우스와 우리가 탈 크루즈가 보이는 곳까지 열심히 조금은 한가롭게(?) 코펜하겐 중심가를 살펴보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버스로. 버스에서 다시 항구로. 항구에서 DFDS라 적혀 있는 크루즈에 승선하여 코펜하겐으로 출발을 하였다.

 

 

 

 

 

 

 

 

 

 

 

 

 

 

 

 

 

 

 

 

 

 

 

 

 

 

 

 

코펜하겐으로 가기 전 선상에서 바라본 해질녘은 정말 아름다웠다. 북유럽의 해질녘은 다양한 붉은색이 섞여 있는데 분홍, 주황, 빨강이 황금비율로 섞여 사람의 눈을 단단히 묶어 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모든 일행이 간단히 모여 맥주 하나씩 들고 마지막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마침 한인경선생님의 생일이라고 해 모든 선생님들이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생일노래도 불러주었다. 세차게 부는 갑판 위에서 벌어진 북유럽 국외연수의 마지막 잔치였다. 간단한 자축의 자리를 마치고 조금 뒤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실내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파도가 치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실야라인보다 작은 크기의 배 탓인지, 배가 조금은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울렁거리는 배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금씩 방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그날은 별다른 일정이 없어 일기쓰기도 미룬 채 일찍 잠에 빠져 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눈을 떠보니 6시가 넘었다. 모처럼 7시간을 넘게 잔 셈. 배도 조금은 안정된 것 같은데, 나중에 들어보니 한 밤 중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는 와중에 번개와 천둥이 내리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깊은 잠을 잤던 셈인데, 어쨌거나 머리가 맑으니 오늘 마지막 날을 힘차게 움직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잠들 기 전 안승문선생님이 건네 준 송준재교수의 덴마크 기록을 미리 읽고 예습을 해 두었던 터라 모처럼 방문하는 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아침식사를 하고 마침내 아침 9시 30을 넘겨 우리 일행은 덴마크 코펜하겐 땅을 밟기 위해 줄지어 나섰다. 우리를 맞아준 가이드가 보인다. 부산스럽고 시끄럽기만 했던 노르웨이 가이드와 달리 작은 키에 정숙하고 지적인 모습이 단번에 친근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와 오늘까지 이어지는 그의 가이드는 100점을 주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 충실하고 깔끔했다.

 

코펜하겐의 아침은 세찬 바람에 비가 날리는 날씨로 시작을 했다. 늘 쨍쨍한 태양 빛을 보이던 지난 북유럽의 하늘과 달리 이렇게 바람과 비가 날리는 날씨가 내게는 더 좋아 보였다. 함께 몸을 실었던 토비야스의 버스를 어렵게 타고 우리는 코펜하겐의 첫 일정을 첫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리고 예정된 학교는 애프터스콜레. 덴마크 청소년 14세에서 17세 아동, 즉 중학생 나이가 찾는 독특한 학교이다. 학교 이름은 케스테냐 와이라고 하는데, 길 이름을 딴 것이라 한다. 덴마크의 교육은 다른 북유럽과 또 다른 깊은 철학이 베여 있는 곳이다. 한국에도 책으로 덴마크 교육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그들의 교육은 가이드도 말한 것처럼,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교육이다. 영재교육에 더 관심을 보이는 미국과 한국교육과 달리 그들의 교육은 모든 아이들이 자기 재능을 곳곳에서 발휘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교육은 학급 내에서 수준별 교육이나 분반하여 영재반을 만드는 철학의 빈곤만 보여주는 한국교육과 근본적으로 다른 교육철학에 바탕을 둔 교육체제를 갖추고 있다.

 

다양한 능력과 배우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을 위한 교육은 수준별 교육이나 영재교육과 같은 차별교육이 아니라, 그들에게 맞는 수업과 학교를 제공하여 배움에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이 또한 그들의 정치적 합의에 바탕을 둔 오랜 역사를 통해 얻어진 산물이지만,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다양한 능력과 배우는 속도가 다른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애프터스콜레. 이들 학교가 만들어지는 바탕에는 덴마크 교육의 존경받는 목회자이자 철학자였던 프레데릭 세베린 그룬트비와 그의 사상을 창조적으로 확장시키고 실천했던 크리스텐 미켈센 콜이 있었다. 그들은 놀랍게도 18세기에 이미 암기식 주입식 교육을 거부했고 체벌을 금지했다. 벼락치기 공부의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도식적인 시간분배 거절, 구획적인 교과구분도 거부했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수업을 통해 아동의 활동 욕구를 촉진시키려 했으며 학무모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특히 살아있는 말(이야기, 대화, 노래)를 강조했던 지점은 매우 놀라웠다. 나아가 인간적인 학교의 크기나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삶을 지향했던 점에서 이들은 21세기가 요구하는 교육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덴마크 교육의 의무교육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의무교육과 전혀 다르다. 국가권력과 종교적인 권위를 지속적으로 파급시키기 위해 시작한 덴마크의 의무교육과 만인을 위한 평등교육을 지향하는 오늘날의 의무교육을 같은 선상에서 논의할 수 없다. 그룬트비와 콜이 덴마크의 의미교육을 거부했던 데에는 이와 같은 정치적 종교적 폐단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룬트비는 의무교육에 반하는 가정교육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룬트비의 영향을 받은 콜은 가정교육보다는 학교교육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프리스콜레와 회스콜레였다. 특히 나중에 회이스콜레가 18세 이상 중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 아래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오늘 우리가 찾은 에프터스콜레. 현재 덴마트 스톨혹름 에프터스콜레에는 25%정도의 학생이 이곳을 거쳐간다고 한다. 프리스콜레를 졸업하고 기존의 학교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부를 하고 싶은 아이. 기존의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아이, 혹은 특별한 영역(음악, 미술, 공예, 체육 등)에 재능과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며 잠시 휴식을 하는 독특한 학교이다.

 

 

 

 

 

 

 

 

 

현재 이곳을 다녀가는 아이들은 짧게는 6개월에서 1년을 지낸다고 한다. 물론 그 이상을 다니는 학생도 있는데, 고등학교 진학을 대부분 염두해 두고 있어 그 이상 머무는 아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이곳을 안내해준 앨마라는 학생에 의하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이곳을 떠나기 전 평가를 치르기도 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순전히 아이들이 원해서일 때만 이뤄진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자신의 위치를 알기 위해 평가를 지원하여 받는다고 한다. 앨마가 처음 우리 일행을 안내한 곳은 미술실, 공예실이었다. 자신은 공예를 전공하고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모방을 하는 작업에서 출발하는 듯 온갖 잡지에서 훌륭한 작품들의 사진을 가져와 벽에 붙여 놓은 모습도 보였다. 앨마는 부부교사의 딸이기도 한데, 에프터스쿨에서 교사로 일하시는 아버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이곳 학교를 선택했다고 한다.

 

이어서 우리를 안내한 곳은 덴마크어 수업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무척이나 쉽게 문을 열어 수업장면을 보여주어 괜히 미안했다. 진지하게 공부하는 그들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곳에서는 관심 있는 예체능 영역 외에도 텐마크어, 영어, 수학을 필수과목으로 배워 고등학교 진학에 대비하고 있었다. 또 다른 덴마크어 수업에서도 그들의 수업은 매우 진지하면서도 편안 모습들이었다. 책상에 휴대폰을 자유롭게 꺼내 놓은 모습이라던지, 편안한 자세가 매우 흥미로웠다. 이어 음악실, 밴드실도 둘러보고 사진 현상, 편집실까지 이 학교가 애프터스쿨 중에서도 예체능에 목적을 둔 학교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친절한 소개이자 방문이었다. 자신의 기숙사까지 공개하며 친근감과 친절함을 보여준 앨마 덕에 조를 나누어 방문한 다른 조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조미경 가이드의 충실한 통역이 빛을 발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에 두면서도 앨마의 의도를 잘 파악해 우리들에게 충실하게 전하려는 그의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녹음을 해 놓았으니 나중에 이를 다시 정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후, 간단한 브리핑을 끝내고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코펜하겐 시내로 다시 출발을 해야 했다. 브리핑 내용은 이미 앨마에게 상당수 들었던 터라 새로운 것은 별로 없었다. 다만, 시간에 쫓겨 너무 서둘러 나온 과정이 조금은 아쉬웠다. 아무튼 내후년에 꼭 제대로 된 국외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우리 모임선생님들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가 찾은 코펜하겐의 점심 장소는 코펜하겐 대학 뒤편에 있는 뷔페식당이었다. 대학이라고 해야 건물이 하나인 터라 도시 자체가 하나의 대학로인셈이었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삼결살 구이도 나오는 맛있는 뷔페식당이었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코펜하겐의 짧은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걸었다. 차량이 있는 곳은 코펜하겐 대학의 정문 쪽이었는데, 바로 맞은 편에 큰 교회가 있었다. 이 교회는 코펜하겐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중의 하나라고 한다. 가이드의 말로는 이 곳 안에 귀한 조각상들이 있어 잠시 들어가 안내해주겠다 한다. 토드발드센이라는 덴마크의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이 가운데 예수상을 비롯해 좌우로 12세자의 상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정교하고 섬세한 작품이 놀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곳을 나와 우리가 찾은 곳은 덴마크 스톡홀름을 찾으면 누구나 방문한다는 그곳. 인어공주가 있는 곳이었다. 안데르센의 유명한 동화에 나오는 인어공주의 동상은 칼스버그 맥주회사의 2대 사장 카를 야콥센이 왕립극장에서 상영된 발레, ‘인어공주’를 관람하고 건립을 추진해 1913년에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슨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인어공주의 실제 모델은 왕립극장의 프리마돈나로, 이것이 인연이 되어 나중에 조각가의 부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인어공주는 전체 길이 80cm에 불과한 작은 동상이어서 기대를 갖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때로는 실망을 준다고도 하는데, 내가 바라본 인어상은 그렇지는 않았다. 다소 우울하고 처량해 보이는 인어상. 다만, 우리가 상상했던 하체가 생선모습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알려주어야 할 듯. 인어상 앞에서 짧게 촬영을 한 뒤, 한동안 그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며 사진도 찍었다. 참, 올해가 그녀의 나이 100살이 되는 해라고 한다. 어느새 파란 하늘이 하얀 구름사이로 보이는 코펜하겐. 파란 하늘은 그야말로 사진에 선명하게 드러난다. 요트장을 배경으로 찍은 하늘은 그렇게 맑고 또 맑았다. 북유럽의 하늘은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눈이 시원해지는 하늘이었다.

 

 

 

 

 

 

 

 

 

 

 

 

 

 

 

 

 

인어공주를 뒤로 하고 우리가 찾은 곳은 아말리엔보르 궁전. 이곳은 책자에 소개된 것처럼 궁전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검소한 건물이다. 현관에 곰털모자를 쓴 위병이 서 있지 않다면 그저 평범한 건물로 보일 정도. 18세기말 당시 궁전으로 사용하던 크리스타인스보르성에 화재가 나자 귀족 4명이 살던 이 건물을 왕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라도 한다. 궁전은 크게 4개의 건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중 하나인 크리스티안 8세 왕의 궁전은 보물 전시실로 공개되고 있고, 크리스타인 9세부터 프레드릭 9세에 이른 1863년부터 1972년까지 사용되던 왕족의 침실과 보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크리스티안 7세의 궁전은 여름에만 한정적으로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가이드 투어를 한다고 한다. 궁전에 여왕이 머무르고 있으면 궁전 지붕에 덴마크 국기가 걸리는데, 정오에는 화려한 위병 교대식을 볼 수 있다 한다. 우리는 물론, 그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아말리엔보르 궁전을 포함해 주변 전체를 설계한 건축가이자 도시계획자인 니콜라이 에이트브가 축조한 교회, 프레데릭스 교회가 저 말리 보인다. 1754년 에이트브가 죽은 뒤 프랑스인 자르댕이 건축을 맡았지만, 값비싼 노르웨이산 대리석을 자재로 사용해 비용이 많이 들자 1770년 당시의 스트르엔세 수상이 건축을 중단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그후 1세기가 지난 1894년, 유명한 목사이자 시인이었던 그룬트비가 마침내 완성해 대리석이 풍부하게 사용된 로마네스크,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이 교회를 코펜하겐 시민들이 찾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왕족의 교회로 기획돼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이곳은 시민들의 것이 되었고 정작 여왕은 소박한 교회를 찾는다고 한다. 아말리엔보르 궁전을 지나 프레데릭스 교회를 찾아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정숙한 교회 모습. 하지만 웅장하고 간결한 디자인. 바깥에서 바라본 돔 주변에는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를 포함한 12명의 동상이 있었다. 하지만 더 아름다운 것은 돔 주변의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었다.

 

 

 

 

 

 

 

 

 

 

 

 

 

 

 

 

 

다시 자리를 옮긴 것은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풍경으로 유명한 운하 연안에 형형색색의 목조주택이 늘어서 있는 뉘하운지역이었다. 에전에는 긴 항해를 끝낸 선원들이 먹고 마시며 휴식을 즐기던 술집 거리로 붐볐던 곳이라 한다. 현재는 운하를 따라 북쪽 거리에는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고 여름에는 밖에 테라스석이 생기기도 한단다. 안데르센이 사랑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 그는 뉘하운에 새 채의 집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아직도 집이 남아 있으며, 건물 벽면에는 그의 이름과 유래를 새긴 석판이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그곳까지 가지는 못했다. 뉘하운을 하고 우리가 찾은 곳은 일명 보행자 거리로 일컬어지는 곳. 시청 앞 광장에서 니하운의 초입, 콩겐스 뉘토르까지를 잇는 길이 보행자의 천국 스트뢰에이다. 덴마크어로 ‘걷는다’라는 뜻인 이 길은 코펜하겐 유일의,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커다란 소핑 거리로 각국의 유명 브랜드와 덴마크가 내세우는 브랜드들. 카페와 레스토랑, 바들이 즐비한 곳이다. 그 사이사이에 거리의 음악사와 행위 예술가들, 각종 군것질거리가 적당한 거리로 늘어서 있다. 이곳을 나는 때때로 혼자 건기도 하고 기념품점에 들어가 옷을 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보행자 거리답게 길에 차가 전혀 보이지 않고 다니지도 않는다. 김미연선생님과 또 만나 저 멀리 작은 시장이 있는 곳까지 걸어보았다. 시계점에 들어가 흥정도 해 보고 김미연선생님이 좋아 하는 스포츠매장에도 들어가 보기도 하고 나중에는 주스도 얻어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리가 아파 벤치에 앉아 있으려니 옆에서 거리 음악사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앞을 스친다.

 

 

 

 

 

 

 

 

 

 

 

 

 

 

 

 

 

이렇게 코펜하겐의 첫날 일정이자 마지막 일정을 바쁘게 끝냈다. 한식당에서 불고기로 거하게 배를 채운 우리 일행은 마지막 묵을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머물 숙소는 BELLA SKY 호텔. 2011년도에 세워진 이 호텔 주변은 신생에너지를 적용한 신도시라고 한다. 더욱이 이 호텔은 2년 전 유럽에서 주어지는 디자인 대상을 받은 쌍둥이 건물이기도 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이 건물에서 우리가 마지막 날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우리 일행은 매우 흥분해 있었다. 로비에서 수속을 마치고 들어간 호텔방은 이제껏 머문 방 중에서 최고였다. 아늑한 숙소에다 넓은 조망. 나 또한 매우 만족했다. 더구나 이곳에서 혼자 방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더욱. 이곳 호텔은 두 개의 쌍둥이 건물을 하나의 다리로 이어 놓았는데, 23층 꼭대기 한 쪽에는 스카이 바라는 곳을 만들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느새 5인방이 된 홍성팀과 이갑순선생님과 나는 그곳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날을 보냈다. 이어 청주교대 연구년선생님들, 충남선생님들도 들어오셨다. 스카이라운지에서 코펜하겐의 야경을 보며 맥주라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었다. 맥주를 다 비운 우리 5총사는 안문자선생님 방으로 자리를 옮겨 남은 술을 모두 비우기로 했다. 이런 저런 이번 여행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11월에 함께 갈 7번 국도여행을 약속하며. 방으로 돌아온 나는 일기쓰기를 포기하고 짐을 하나씩 챙겼다. 이런 저런 기념품들이 구석구석에 어지럽게 박혀 있었다. 다 정리하고 몸을 씻으니 12시 30분을 가리켰다. 아쉬운 코펜하겐의 마지막 밤을 나는 그렇게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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