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9월 16일 토요일, 맑음.
아침 7시에 식사를 한다. 식당으로 내려간다. 스크램블과 고기 페티, 거기에 아내가 만든 와플로 풍성하다. 우유커피를 곁들여 풍성하게 먹었다. 숙소 창문을 내려다보니 정원에는 파란 수영장이 만들어져 있다. 수영복이 없음을 아쉬워했다. 대부분의 숙소에는 수영장이 딸려있었다.
여유 있게 수영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쫓긴다. 아침 8시에 출발하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이다. 고속도로에는 차량이 밀린다. 주유소에 들러서 연료를 보충한다. 주유소에는 버거킹 매장이 함께 있다. 95번 도로를 계속 타고 간다.
차들이 점점 많아지니 도로가 복잡하고 좁아지는 것 같다. 점심시간이 된다. 휴게소로 빠져나와 그늘에 차를 대고 식사를 한다. 주먹밥이다. 김 가루를 찍어먹는 주먹밥은 쏙쏙 잘 넘어간다. 건너편에는 미군기지 같은 입구가 보이고 왼편에는 성조기가 펄럭인다.
다시 출발하여 워싱턴에 가까워지니 도로도 복잡하고 차량들도 엄청 많다. 정신을 차리고 네비를 보고 운전해 간다. 시내를 들어가 힘들게 숙소(Motel 6-Washington, DC - Convention Center)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드디어 차를 몰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도착한 것이다.
오후 2시 30분이다. 두 번째 방문으로 낯설지 않다. 체크인을 하고 시내 구경을 한다. 링컨 기념관이나 국회의사당을 찾아간다. 먼저 지하철을 타고 가려고 메트로를 찾았다. 가까이에 무슨 역이 있는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친절하게 알려준다. 걸어간다. 햇살이 뜨겁다.
왼편 낡은 건물이 Union Market 건물이다. 멕시칸 식품과 식당이 있다. 그 길가에 한국 매장도 보인다. 반가웠다. 걸어가기에 약간 멀어 보인다. NoMa-Gallaudet U 역을 찾았다. 붉은색 노선이다. 시내를 오가는 지하철에는 레드, 오렌지, 블루, 옐로, 그린의 5개 노선이 있다.
요금은 행선지에 따라 다르다. 승차권은 카드를 구입해 충전해서 쓰는 것을 선택했다. 카드 한 장에 돈을 충전해 여러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메트로 센터 역에서 갈아타고 파란선의 지하철을 타고 Foggy Bottom역에서 내렸다. 워싱턴 D. C. 정식 명칭은 Washington, District of Columbia.
1790년 국회의 동의를 얻어 지정되었고, 새로운 국가의 영구 행정부 소재지로 선정된 컬럼비아 특별구다. 메릴랜드 주(북동쪽)와 버지니아 주(남서쪽)를 경계 짓는 포토맥 강의 항해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있다. 워싱턴만큼 명백하게 국가 행정부의 소재지로서, 그리고 국가를 대표하는 대외적 활동의 중심지로서 설립된 수도는 드물다.
자유의 이념을 시민들에게 고취시키려는 취지와, 자유의 이상을 표현한다는 기본방침으로 원대하게 설계되었다. 거주하는 시민 대부분이 흑인들이란다. 컬럼비아 특별구로서의 워싱턴은 연방정부기관들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이지만, 동시에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는 하나의 시이기도 하다.
웅장한 경관과 기념물, 정부기관들 이면에는 심각한 물리적·정신적 황폐함이 펼쳐져 있어 놀라운 대조를 이룬다. 결국 시는 원래의 설립 목적과는 달리 불안정하고 병든 모습으로 남아 있다. 워싱턴 D.C.는 계획도시이다. 1791년 워싱턴 대통령은 프랑스 태생의 건축가이자 도시 계획가인 피에르 샤를 랑팡(L'Enfant)에게 새로운 수도의 설계를 의뢰했다.
그는 도시 계획 수립을 돕기 위해 스코틀랜드 측량사 Alexander Ralston을 고용했다. L'Enfant 계획은 넓은 거리와 직사각형에서 방사형으로 뻗어나가는 도로를 특징으로 하여 열린 공간과 조경을 위한 공간을 제공했다. 그는 토마스 제퍼슨이 그에게 보낸 파리, 암스테르담, 카를스루에, 밀라노 등의 도시 계획을 바탕으로 디자인했다.
L'Enfant의 디자인은 또한 현재 내셔널 몰(National Mall) 지역에 길이가 약 1마일(1.6km), 폭이 400피트(120m)인 정원이 늘어선 "그랜드 애비뉴"를 구상했다. 워싱턴 대통령은 수도 건설을 감독하도록 임명된 3명의 위원과의 갈등으로 인해 1792년 3월 랑팡을 해임했다.
L'Enfant와 함께 도시를 조사하던 Andrew Ellicott가 디자인을 완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Ellicott는 일부 거리 패턴 변경을 포함하여 원래 계획을 수정했지만 L'Enfant은 여전히 도시의 전반적인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시를 설계한 프랑스의 공학자 피에르 샤를 랑팡은 1791년 2가지 기본골격에 따라 도시계획의 초안을 완성했다.
첫째, 그는 300만 명의 주민과 13개 독립주로 이루어진 당시의 미국을 위한 수도를 설계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50개 주와 5억 인구로 구성될 공화국을 예견하고 그에 상당한 규모의 수도를 계획했다. 그가 상상한 수도의 규모는 당시 미국 전체인구의 1/4이 넘는 80만 명의 인구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정도였다.
둘째, 그의 설계에 영향을 끼친 요인은 바로크 양식의 건축술로서 그는 파리와, 바로크식 경관으로 이름난 베르사유에서 강한 영향을 받았다. 국회의사당에서 링컨 센터까지 뻗은 몰 산책로는 원래 파리의 샹젤리제가(街)처럼 넓은 가로수 길로 만들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과는 달리 푸른 잔디가 덮여 있고 군데군데 건물과 교차로까지 들어서게 되었다. 몰 산책로에 접한 콘스티투션가를 따라 늘어선 인상적인 외관의 공공건물들이 삼각지대를 구성한다. 이 가운데에는 연방행정부서들과 중요한 국가기관들이 많이 있다.
몰 산책로 주변에는 그밖에 국립미술관, 국립공문서보관소, 국립자연사박물관, 국립 아메리카 역사박물관,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등이 있다. 캐피털 힐의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대법원과 국회도서관을 비롯해 상·하원의 사무실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은 조지 워싱턴 대학교(The George Washington University)다.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흉상이 있다. 대학 병원 건물이 그 옆에 있다. 길 건너편에 베르나르도 데 갈베스(Bernardo de Galvez,1746~1786) 기마상이 있다.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한 스페인군을 이끌었던 군사 지도자이자 정부 관료다. 2014년 갈베스는 명예 미국 시민권을 받은 단 8명중 한 명이 되었다.
그 외에도 여러 명의 중남미 국가의 위인들이 세워져 있다. 아메리카 미술관(Aer Museum of the America)도 있다. 미국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의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Triangle Park에는 산 마틴(San Martin Statue)장군의 기마상이 있다.
아르헨티나의 독립운동가, 1972년에 아르헨티나에서 기부한 것이란다. 시몬 보봐르 장군의 기마상도 있다. 좀 더 걸어가면 호세 아르티가스(Jose Artigas, 1764~1850)동상도 있다. 1950년에 세워진 것인데, 우루과이의 독립 영웅이란다. 파란 하늘로 높이 솟은 워싱턴 기념탑이 보인다.
아름다운 녹지대가 이어지는 몰의 한가운데 우뚝 솟은 가늘고 긴 탑이다. 높이 169.3m. 석조 건축물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위업을 기려 1848년에 완성. 꼭대기에 있는 전망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70초 만에 올라갈 수 있다. 전망대에는 각 방형으로 작은 창문이 2개씩 나 있다.
동쪽으로는 몰과 국회의사당, 남쪽으로는 제퍼슨 기념관과 포토맥 강, 북쪽으로는 백악관, 서쪽으로는 링컨 기념관과 알링턴 국립묘지 등이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티켓이 필요하다. 탑이 서 있는 언덕 아래쪽의 카운터에서 매일 7시 30분부터 나누어 준다.
탑을 만나고 우리는 링컨 기념관으로 걸어간다. 중간에 인공 연못을 만났다. 제2차 세계 대전 기념비(World War II Memorial). 호수를 중심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1,600만 명의 미군을 기리는 대표적인 야외 기념물이 만들어져 있다. 북쪽으로 John Paul Jones Memorial이 있다.
화장실 때문에 걸어간 곳이다.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는 영국으로부터 미국의 독립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 스코틀랜드 출신의 매우 흥미로운 젊은이다. 현재 미국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데 도움을 많이 준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위한 기념비를 세우는 일는 1912년에야 이루어졌다.
동상, 부조 및 인용문은 정말 훌륭하다. 이렇게 저렇게 사진을 찍고 그늘이 만들어지는 고목나무 사이 길로 걸어서 간다. 시원하고 걷기 딱 좋다. 잔디에 앉아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보인다. 길게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연못을 따라 걷는다. Lincoln Memorial Reflecting Pool이다.
내셔널 몰에 위치한 이 커다란 상징적인 연못에 링컨 기념관과 워싱턴 기념탑이 비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그 장면이 생각나는 멋진 호수다. 걷는 이들도 많다. 다람쥐도 나와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왼편에 있는 워싱턴 D.C. 한국 전쟁 참전 용사 기념관(Washington D. C. 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을 들렀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씨가 보인다. 살아 있는 듯한 용사들의 동상이 있다. 1995년 한국 전쟁 당시 전사한 5만 명의 미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국립묘지이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자세히 묘사된 19명의 미군 동상을 보면 참혹한 전쟁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특히 우리나라와 관련이 있어 더욱 마음이 간다. 이들 덕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오후의 시간이라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으로 열심히 걸어간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미국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건축가 헨리 베이컨이 1922년에 건축했다.
그리스 신전 스타일의 건물로 1센트 동전 뒷면에도 새겨져 있다. 링컨의 동상을 중심으로 둘러싸인 36개의 기둥은 링컨이 암살된 1865년에 있던 36개 주를 상징한다. 링컨 좌상의 왼쪽 면에는 링컨의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문인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 중 일부가, 오른쪽 면에는 링컨의 제2회 취임 연설문이 조각되어 있다.
조각상 뒤쪽에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명성은 그의 의해 구원된 미국인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이 신전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언제나 감격적이다. 1963년 마틴 루터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를 이곳에서 처음 연설했다. 보수 공사로 루터 킹의 글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기념관 앞에서 보는 경관이 장관이다. 반대편으로 이제 국회의사당을 향해서 걸어간다. 넓은 파크 앳 링컨 메모리얼(Park at Lincoln Memorial)에는 젊은이들이 주말을 맞아 축구와 배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즐기는 ‘DCist’들이 건강해 보인다. 베트남 베테랑 메모리얼(Vietnam Veterans Memorial)을 지난다.
베트남 전쟁 기념물 벽에 사망자와 실종 군인 58,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관 방문은 처음이다. 길이 151m의 반사되는 검은색 화강암 벽과 표면에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진 이 디자인은 봉사하고 희생한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경의다.
이곳은 방문객들이 베트남 전쟁 중 치른 희생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반성할 수 있는 깊은 존경의 장소인 것 같다. 고요한 주변 환경과 아름답게 관리된 기념관은 의미 있고 감동적인 경험을 주었다. 기념비 서쪽에 있는 3명의 동상(The Three Servicemen Statue)을 자세히 보면 용감하기보다는 전쟁에 지친 모습이다. 베트남 전쟁의 허망함을 상징한다. 그 옆에 또 하나의 조형물이 있다.
베트남 위민스 메모리얼(Vietnam Women's Memorial)이다. 간호사 2명의 기념비다. 간호사들은 부상당한 군인을 치료하고 그를 구출할 헬리콥터를 찾는 형상이란다. 컨스티츄션 가든스(Constitution Gardens) 56 시그너스(Signers) Memorial이다. D.C.의 몰을 따라 있는 Constitution Gardens Pond에서 56명의 독립 선언 서명자 기념관을 찾을 수 있다.
기념비는 연못 북쪽의 짧은 인도교로 연결된 작은 섬에 있다. 이것은 독립 선언서의 최초 서명자들에게 헌정된 흥미로운 기념물이다. 그것은 56개의 별도 돌 블록으로 구성된 단순한 디자인과 구조로, 각각 서명자의 서명의 금박 사본과 고향과 직업이 돌에 새겨져 있다.
블록은 분할된 반원을 형성하는 두 줄로 배열되며 연못의 남쪽이다. 결국 이것은 미국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단순히 여행 중에 기념물을 보는 것을 즐기는 경우 찾을 수 있는 명소다. 우리는 백악관 방향으로 걸어간다. 큰 길을 건너간다. 넓은 잔디 끝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백악관이다. 백악과 옆에 있는 건물이 블레어 하우스다. 블레어 하우스는 미국 정부가 외국 정상에게 제공하는 공식 영빈관이다. 펜실베이니아 대로를 사이에 두고 백악관 건너편에 자리 잡은 블레어 하우스, 블레어 하우스 인근에는 백악관을 구경하는 관광객이 몰리는 만큼 삼엄한 경비가 함께 이뤄졌다.
블레어 하우스는 워싱턴 펜실베이니아 대로 1651번지에서 1653번지까지 걸쳐 있는 건물 4채로 구성된 타운하우스를 가리킨다. 본관은 1824년 미국의 첫 공중위생국 장관이었던 조지프 로벨의 개인주택으로 건립됐으나 1836년에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자문역이자 신문편집인이던 프란시스 프레스턴 블레어에게 팔린 뒤 블레어 하우스라 이름이 붙여졌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현안 협의를 위한 외국 귀빈들의 방문이 잇따르자 공식 영빈관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고 블레어가(家)로부터 이 건물을 사들였다. 일부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을 앞두고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또 로널드 레이건,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당시 그들의 부인인 낸시 여사, 베티 여사에게 문상객을 맞이하는 장소로 제공되기도 했다. 그동안 3차례나 이웃집들을 ‘흡수’해 원래 모습보다 확장됐다. 방이 115개나 되고 바닥 면적만 해도 백악관 전체와 맞먹을 정도로 넓어졌다.
1942년 5월 미 백악관 영빈관인 블레어 하우스 첫 공식 손님이 된 페루의 마누엘 프라도 대통령.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처음 이용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도 여기서 머물렀다. 미국의 제로 마일 스톤을 만났다. 헤르메스의 모자가 조각되어있다.
미국은 워싱턴의 백악관 앞에 '제로 마일 스톤(Zero Mile Stone)'이라는 도로원표가 있고, 프랑스는 파리 노트르담 성당 앞에 '제로 포인트(Zero Point)'란 도로원표가 있다. 서울은 세종로 네거리 미관 광장에 도로원표가 있다. 버트-밀레 메모리얼 파운탱(Butt-Millet Memorial Fountain)은 미국 워싱턴 D.C.의 대통령 공원에 위치한 기념 분수다.
1913년 10월에 헌정되었으며 Archibald Butt와 Francis Davis Millet의 죽음을 기념해서 만들어졌다. 두 사람은 1912년 4월 15일 타이타닉호 침몰 중에 사망했다고 한다. 백악관 앞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높은 울타리 안으로 백악관이 보인다.
백악관(The white house , 白堊館),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백악관은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때만을 제외하고 역대 미국 대통령의 집무실 겸 관저로 쓰인다. 1914년 미영 전쟁 때 화재로 그을린 부분을 가리기 위해 하얀색 페인트로 칠하면서 ‘화이트 하우스’라고 불렸다.
관람객 중에서는 텔레비전에서 보던 것과 달리 외관이 작아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부에 135개의 방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다. 1~2달 전에 예약하면 10명 이상의 그룹 관람객에 한해서 백악관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백악관 앞에 펼쳐진 잔디밭을 더 엘립스(The Ellipse) 라고 부른다.
프레지던트 공원 내 탁 트인 잔디밭으로 타원형 차로와 기념 및 시위 장소로 사용된다.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미국 국립 크리스마스 트리(National Christmas Tree)다. 1923년 시작된 전통을 기리는 살아 있는 상록수로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불을 밝힌다.
그 뒤로 워싱턴 기념탑과 멀리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Thomas Jefferson Memorial)이 보인다. 미국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1943년에 설립된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만든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살아 있을 때 원형돔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건축가 존루셀 폽은 이것에서 영감을 받아 하얀색의 아름다운 원형돔이 매력적인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을 탄생시켰다. 제퍼슨 동상이 원형돔 아래에 있고, 동상을 둘러싸고 있는 벽면에는 독립선언문이 새겨져 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7월 4일)은 미국의 가장 큰 축제 중 하나이다.
1776년 7월 4일, 영국의 식민지였던 13개의 주가 모여 독립 선언을 한 이후로 영국은 쉽게 물러나진 않았지만, 8년의 싸움 끝에 미국은 결국 독립을 하게 되었다.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 존 애덤스(제2대 대통령), 로저 셔먼, 로버트 리빙스턴, 토머스 제퍼슨(제3대 대통령) 5명이 1775년 독립 선언서를 만들었다.
이 독립 선언서는 토머스 제퍼슨 기념관에도 새겨 있다. 이제 국회의사당을 목적지로 정하고 걸어간다. 국립 흑인 역사 문화 박물관(National Museum of African American History and Culture)을 지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역사, 문화와 지역 사회에 대한 독특한 전시물로 유명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다.
최근에 지어진 멋진 박물관이다. 과거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미국 땅에 와서 하층민 계층으로 살았지만 200여년 동안 미국이 부흥하는 것과 발맞추어 그야말로 눈부신 성장을 함. 현재 스포츠, 음악, 영화분야에서는 이미 주역이고 최근 오바마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정치, 사회분야에서도 그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고 있는 흑인들의 역사가 전시되어있다.
스무디 판매차량이 화려하다. 건너편 박물관 본부가 보인다. 스미스소니언 협회(Smithsonian Castle, Institution)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슨의 유산으로 건립된 연구기관이다.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관리를 받는 부서가 많다. 1855년에 건설한 이 건물은 성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내셔널 몰 방문객을 위한 안내소 역할을 한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앞에는 Professor Joseph Henry 동상이 서 있다. 최초의 스미소니언 비서인 조셉 헨리(Joseph Henry)는 1846년부터 1878년까지 재직했다. 뉴저지 대학의 교수였던 그는 전자기학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을 준 물리학자였다.
바로 옆에 메트로 역도 있다. 커다란 잔디 밭 건너편의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이다. 희망 다이아몬드 등 유명한 전시품들의 집합. 워싱턴 D.C.에 있는 대부분의 박물관 입장료는 무료이다. 그래서 뮤지엄 러버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
특히 스미스소니언에서 운영하는 박물관 19곳 중 16곳이 워싱턴 D.C.에 있다.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은 인류, 동물, 자연의 발달 과정을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잘 정리했다. 모나리자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이 관람한 ‘블루 다이아몬드’와 ‘희망 다이아몬드(the Hope of Diamond)’가 스미스소니언 자연사 박물관에 있다.
박물관 앞에 있는 긴 잔디밭을 걸어간다. 젊은 남녀 찬양 팀이 연주를 한다. ‘큰 길을 만드시는 주’라는 곡이다. 주 여기 역사하시네, 나 경배해 주 경배해~ 아는 곡이다. 감격이다. 앞에 서서 함께 찬양한다. 아내는 손을 들고 함께 찬양한다. 하늘을 우러러 눈물이 난다.
정말 은혜로웠다. 자유로이 찬양하는 여기 이들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석양에 국회의사당이 비친다. 국립항공우주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뒤편에 있는 성경박물관(Museum of the Bible)을 보고 싶었다.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의 모형 등 다양한 몰입형 전시와 고대 두루마리, 희귀한 성경을 관람할 수 있다.
성경의 역사적 기원, 변천과 그 내용을 다양하게 다루어 볼거리가 너무나 많다고 한다.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아쉬웠다. 더 아메리칸 인디언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도 지나간다. 유물과 현대적인 체험형 전시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철저히 땅을 점유하고 빼앗은 자들의 시각으로 전체 전시가 구성된 느낌이 든다. 이제껏 역사 속에 원주민들의 아픔, 슬픔, 고통, 수난 그리고 생존, 이 모든 것들의 많은 부분이 감춰진 현장이다. 국립박물관이라 입장료 없이 출입가능하다. 미국 국회의사당(United States Capitol) 앞에 섰다.
미국 입법부의 핵심. 미국 입법부의 핵심으로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1793년 초대 대통령 때 세워졌고 링컨 대통령 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 내부는 가이드 투어에 의해서만 볼 수 있다. 원형 돔인 ‘로툰다’에는 콘스탄티노 브루미디의 프레스코화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미국은 국회의사당을 중요하게 간주한다. 그래서 워싱턴 D.C.에 건물을 지을 때는 국회의사당 꼭대기 원형 돔이 보일 수 있도록 13층 이상으로 건물을 짓지 못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워싱턴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고층 건물을 볼 수 없다. 연못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Peace Monument가 있다.
DC의 심장부에 있는 가슴 아픈 상징이다. 평화 기념비는 평화와 화합을 위한 희생을 부드럽게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단순한 동상이 아니고 그것은 역사와 희망의 증거다. 가운데는 Ulysses S. Grant Memorial, 남북전쟁의 영웅이자 제18대 대통령이었던 그랜트 대통령 동상이다.
역마차 상과 함께 있다. 50$권 화폐의 주인공이다. 왼편에는 Garfield Monument(가필드 동상)가 있다. 제임스 가필드(James Garfield)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비다. 율리시스 S. 그랜트 기념관과 캐피탈 리플렉팅 풀(Capital Reflecting Pool) 근처의 국회의사당 부지에는 제임스 가필드 전 대통령의 동상이 있다.
가필드는 집권한 지 몇 달도 안 되어 1881년에 살해당했다. 뉴욕시의 페더럴 홀 앞에 유명한 조지 워싱턴 동상을 세운 존 퀸시 애덤스 워드(John Quincy Adams Ward)는 1887년에 이 동상을 조각했다. 양복과 외투를 입은 가필드 대통령이 한 손으로 펼쳐진 책, 어쩌면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의 가슴을 교차한다. James Garfield Monument의 받침대도 마찬가지로 매우 놀랍다. 리차드 모리스 헌트(Richard Morris Hunt)가 보자르(Beaux-Arts) 스타일로 디자인했으며 세 직업 정치가, 학자, 군인으로 구성된 은유를 특징으로 한다.
여기서 이도원 집사님 내외를 만났다. Voice of America, 미국의 소리 방송국이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미국 정부가 재정을 부담해 직접 운영하는 방송이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직후인 1942년 2월 24일 국무부의 국제협력국 소속으로 뉴욕에서 나치 독일 국민을 상대로 방송을 개시했다.
한국어 방송은 1942년 8월 29일 첫 방송을 내보냈다. 당시 경성방송국 직원들이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미국의 소리 한국어 방송을 몰래 듣다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단파방송밀청사건이라고 한다.
라디오 단파 방송으로 시작한 VOA는 현재 초단파와 AM·FM 라디오뿐만 아니라 위성 TV, 인터넷(2002년 3월 4일 웹사이트 개설)을 통해서도 방송되며, 한국어를 포함해 스와힐리어·다리어 등 53개 언어로 전 세계에 방송되고 있다. 미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지만 정부에서 독립된 방송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며 독립된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
VOA의 종사자는 전 세계에 1,200명이 넘으며 16개 국내외 지국에 25명의 상주기자와 프리랜서 기자 수백 명을 두고 있다. 건믈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사자상이 인상적이다. 워싱턴 DC의 도시 설계로 엄청 넓은 초원 지하로 모든 관공서가 연결되어 있단다. 저녁식사를 함께 한다.
한식집을 선택했다. 차를 타고 함께 이동한다. 포토맥 강을 건너 펜타곤을 오른쪽에 두고 달려간다. 펜타곤(The Pentagon)은 거대한 오각형 형태의 미국 국방부 건물이다. 빛고을 순두부집에 도착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커다란 식당인데 고급스럽고 사람들이 많다.
예약된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순두부와 불고기에 김치 등 한국 음식을 잔뜩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한식이다. 선교얘기를 들었다. 시리아,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 선교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님이 오셔서, 성령의 역사로 복음이 전파되고, 믿는 자들이 드러나고 있단다.
김치가 생각나면, 중국 식당 오이짠지 차쵸이(자차이, 짜사이)를 찾는다고 한다. 중식당 가서 먹어보면 오독오독 식감도 좋고 기름기 많은 중식에 함께 먹기 좋은 개운한 중국식 짠지 반찬이라고 추천해 준다. 뉴욕을 간다고 하니 뉴욕 인근 도시 뉴저지를 소개해 준다.
위호켄(Weehawken)은 버스를 타거나 차를 몰고 링컨터널을 가고, 호보컨(Hoboken)은 기차를 타고 건너갈 수 있다고 알려준다. 지하로 연결된 워싱턴 이야기를 듣고 뉴욕에서의 2층 버스 여행도 추천해 주었다. 너무 풍성히 대접 받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너무 감사했다.
부부가 참 행복하고 신실해 보여 마음이 흐뭇하고 감사했다. 이재무 장로님 얼굴이 떠오른다. 깊은 밤, 식사를 하고 우리 숙소까지 태워다 주어서 정말 감사했다. 먼 이국 땅, 미국의 워싱턴에서 멋진 부부를 만날 수 있다니 참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