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
김재희
그저 쇳조각이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 중 가장 뚜렷하고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건축물인 에펠탑은 그야말로 수많은 쇳조각들에 불과했다.
불편한 좌석 틈에서 몸부림치며 12시간을 넘게 날아 찾아간 댓가라고 하기에는 뭔가 매우 부족한 인상으로 남았다. 어느 사진에서나 멋들어진 모습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켜쥐었던 건물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리 초라해 보이다니. 너무 기대가 컸었나 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깐 순간에 그쳤다. 한껏 부풀었던 기대에서 온 실망감을 내려놓자 파리라는 도시의 가치가 보였다.
수많은 쇳조각 사이로 내려다본 파리 시내 전경은 무척 다소곳한 모습이었다. 역사적인 기록을 떠나서 보는 파리 시내의 전경은 그야말로 고즈넉하고 평온한 도시였다. 속이 확 뚫릴 듯한 곧은 직선거리와 그 사이로 빗살처럼 뻗어나간 도로, 그 뒤로 펼쳐지는 지평선 등등. 360도를 돌면서 내려다보이는 풍경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유유히 흐르는 센 강을 따라 움직이는 유람선상에서 보는 에펠탑 또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멋졌다, 때론 가까이서 때론 멀리서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모양마다 새로운 작품을 보는 듯했다. 그것은 차디찬 느낌보다는 따뜻한 생명의 피가 돌고 있는 자태였고 나라를 대표하는 모성애 같은 감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거였구나.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인 건물이 된 것이…….
파리시내에서 보는 에펠탑과 에펠탑에서 보는 파리시내의 모습에서 경건함과 평온함이 곁들여진 도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낮 쇳조각들의 모습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건물이었다.
비록 쇳조각에 불과했지만 그 조각 하나하나에는 깊은 뜻이 어려 있는 듯했다. 재료로서의 존재. 만든 사람의 존재, 많은 사람에게 보이는 존재 등등. 이런 것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이루어진 건물이리라. 이런 어울림이 있었기에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구나 싶다. 어울림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다가왔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우뚝 솟아오른 모습과 근처의 풍경은 참으로 멋진 광경이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엔 각자에게 맞는 어울림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 실감나게 다가온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인간의 세계에서도 어울림이라는 존재가 중요한 것이리라, 나와 타인과 어울림, 우리와 다른 이들의 어울림, 이 단체와 저 단체의 어울림 나라와 나라와의 어울림 등등.
수없이 많은 어울림이 엮이어 사화가 되고 인류가 되고 세계가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것이 아무리 아름답고 좋다고 해도 나와 관계가 없는 것이라면 별 의미가 없을 터이니 지금의 내 존재도 아름다운 것임을 인식하게 된 여행이다. 나이 들어감에 따른 좌절감,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것에 대한 피해감 같은 것들에 대한 마음을 곱게 정리해 보는 계기도 되었다. 굳이 들추어 내지 않아도 되는 것까지 생각해 가며 움츠러들었던 일들이 마냥 아쉽다.
또한 다른 나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게 된 것이 감사하다면 내 나라의 아름다움도 함께 감사하는 마을을 가져야 함을 터득하게 된 깊은 여행이다. 다른 나라의 경치 앞에서 감탄하면서 내 나라 경치에는 덤덤했던 일, 늘 편하게 살고 있으면서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은 모르고 지냈던 일 등등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넓고 깊게 보아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역시 보이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터득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구나 싶다. 그동안 다녔던 국내 여행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마음으로 의미를 새겨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도해 볼까 싶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은 나라를 찾아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그에 비례해서 내 나라의 아름다움도 깊이 느껴 볼 기회를 만들고 싶다.
“움직일 수 있을 때 많이 움직이고 볼 수 있을 때 무엇이든 보고 배워라.”고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내가 할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된다. 비록 많이 보지 못하셨어도 사람 사는 이치에 대해서는 연륜이 있으셨던 모양이다. 역시 삶의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