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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6장
땅의 장막 하늘의 장막, 예수님의 심판대, 대속적 속죄,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땅의 장막 하늘의 장막, 복음을 거부하는 이들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이 타락한 세상 중에 새 창조가 시작되게 하시기 때문에 사역 가운데 낙심하지 않습니다.
1~10절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란 죽게 될 현재 인간의 몸을 가리킵니다. '있는', 이는 미래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하늘에 있는 영원한', 이는 신자들이 마지막 날에 받을 부활의 몸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사는 동안 장막을 만들었고 고린도 교인들은 아마도 장막을 선원들에게 팔거나 이스트미아 경기대회에 참석하는 방문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사용했을 것이므로 장막의 비유는 매우 적절한 비유였습니다(1절).
바울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고 부활을(즉, '덧입기를') 바라며 탄식합니다. 벗었다는 것은 아마도 신자들의 영혼이 하나님과 함께 있지만 아직 부활한 몸을 가지지는 못한 중간 상태를 가르키는 말일 것입니다(2~4절). '보증으로 성령을', 현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성령의 임재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그들이 부활의 몸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계약금 내지 보증입니다(5절).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이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가올 영광의 충만함을 아직 볼 수 없을 때에도 삶 전체를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확고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7절).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란 그리스도인의 죽음과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마지막 날에 있을 모든 신자들의 몸이 부할 사이에 중간 상태를 가리킵니다. 바울의 말은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의 육체는 여기 땅속에 묻히겠지만 자신은 몸이 없는 영혼으로서 즉시 그리스도 임재 속에 들어가 부활의 날까지 그 상태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을 기대한다는 뜻입니다(8절).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느라 힘쓰노라', 바울은 평생을 매일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께 기쁨을 가져다 드릴 것이라는 소망에 비추어 삽니다. 그리스도는 매일의 행동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불쾌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불쾌하시게 하기를 두려워합니다(9절).
'그리스도의 심판대', '심판대'는 총독이 앉아서 사법적 판결을 내리는 로마법정의 판사석이었습니다. 다가올 시대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심판하시며 성부께서 자신에게 주신 나라를 다스리실 것입니다.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에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는 현재 행동에 영원한 결과가 있다는 원리를 강조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그들이 지상에서 살 때 행한 행위에 대해 그들에게 합당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1) 심판의 목표가 그리스도가 다가올 시대에 받을 상급의 분량을 결정하는 것인지 (2) 누가 버림받고 누가 구원받는지에 대한 분명한 증거를 제공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바울의 진술의 문맥은 신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과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상급을 모두 가리키므로 바울은 두 목표를 모두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10절).
11~18절
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12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대속적 속죄, '우리가 많이 미쳤어도....정신이 온전하여도', 이는 아마도 바울이 미쳤다는 고린도 교인들의 조롱에 대한 반응일 것입니다. 이는 분명 바울이 바울 자신의 예배와 기도 속에서 사적인 경험과 바울이 긍휼 어린 사역을 하면서도 정신이 온전한 것을 대비하는 표현입니다. 바울의 동기는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므로 사람들 앞에서 바울이 우선 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들의 색다른 종교적 체험을 추구하도록 애쓰거나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13절).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죄에 대한 죽음의 대가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 대해 지불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옛 삶을 끝난 것으로 간주하심으로써 그들의 어떤 미래의 형벌에 대한 요구에서도 해방하십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의 죽음의 결과로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죄의 권세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 대해 깨어졌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는' 자로서 모범을 보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위해 신자를 자유롭게 합니다(14~15절).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즉 현재의 육신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사는 데서 비롯되는 세속적인 기준과 가치관에 '따라 알지 하노라', 바울은 회심 이전에는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습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를 가짜 메시아로 간주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하나님의 저주로 보았습니다(16절).
'새로운 피조물', 이제 타인을 위해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온 한 백성의 구속은 이 악한 시대 가운데 찾아오도록 예정된 새로운 창조의 시작입니다. 이 새 창조는 또한 포로기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이스라엘이 마침내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17절).
'화목',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구원 활동의 의미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 구절들은 (1) 바울의 언약에 사도적 사역의 기초(바울 자신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목) (2) 그 사역의 결과(바울의 그리스도를 위한 세상과의 화목의 사역과 메시지) (3) 그 사역의 본질적 내용(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한 죄 용서) (4) 그 사역의 요청('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등의 개요를 서술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게 될 이들은 죄와 형벌과 권세에서 해방시킬그들과의 평화 조약을 공표하도록 하나님의 새 언약에 선지자적인 일꾼으로 보냄 받았습니다(18~20절).
이 구절은 속죄와 칭의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인 것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죄로 삼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 결코 죄를 짓지 않으셨지만 성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죄로 간주되고 취급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이 일을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죄(그리스도를 믿을 모든 이들의 죄)를 마치 우리의 죄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에게 속한 것처럼 간주하시고 취급하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셨고(고후 5:14) 베드로가 말한 대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벧전 2:24).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심으로써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떠맡으셨고 이를 통해 우리의 대속물로서 하나님의 진노(우리가 받아 마땅한 형벌)를 우리를 대신하여 담당하셨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이 기초적 교리를 가리키는 전문적인 용어는 대속적 속죄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속물로서 모든 믿는 자의 죄에 대해 속죄 제사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배경은 히브리어 구약의 헬라어 역본(70인역)에서 인용한 이사야 53장인데 이 장은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가장 길고 자세한 구약의 예언을 포함하고 있고 고후 5:21과의 많은 유사점을 담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구체적으로 죄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헬, '하마르티아')를 단 몇 구절 안에 오실 구주(고난 받는 종)와 관련해서 5회, 예를들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사 53:4)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5)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 53:6)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1)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사 53:12)- 사용합니다.
이 예언의 정확한 성취로 그리스도가 자신을 믿는 이들을 위해 죄가 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의 죄와 죄책을 그리스도께 전가하신 것처럼(죄로 삼으신) 그리스도의 의-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닌 의-도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전가하신다는 뜻입니다(21절)
1~13절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12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13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영적인 무기,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만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돌아서는 이들은 그들이 처음 외관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실제가 아니라 헛되이 받은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1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호소를 요약하기 위해 사 49:8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역을 다가올 구속과 심판의 날을 고려하여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이사야 선지자로서의 역할과 동일시합니다. '보라 지금은', 바울은 이 구원의 때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도래했다고 선언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미 다가올 시대에 많은 복을 쏟아붓고 계십니다(2절).
'모든 일에....자천하여', 승리와 성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어려움을 견뎌내는 방식을 통해서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사역에 신실함을 증언합니다. 복음의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가 고난과 반대에 대응하는 방식을 통해 빛납니다. '많이 견디는 것과', 하나님이 가능케하신 바울의 삶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바울의 일반적인 증거이며 이는 이어지는 구체적인 예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4절).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이는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영적인 무기에 대한 언급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아마도 (오른편에는) 공격력 무기인 칼과 (왼편에는) 방어용 무기인 방패를 의미할 것입니다(7절).
14~18절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매지 말라', 6:14~7:1에서 바울의 주된 요점인 이 명령은 이 단락 끝에서 다른 말로 재차 진술될 것입니다. '멍에를 함께' 멘다는 것은 똑같지 않은 다른 짐승과 함께 수레에 메이거나 심지어 이종교배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불신자들과 연합하거나 그릇되게 동일화되는 것을 뜻하는 이미지나 문맥에서 이 말은 특히 아마도 교회 안에서 바울에게 대적하고 있는 이들을 가리키며 바울은 지금 충격적이게도 이들에게 불신자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습니다(14절).
'벨리알',('무가치함', 또는 '파괴'를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에서 나온 '베리알'이라고 철자되기도 하는 헬, '벨리아르') 사탄을 뜻하는 이 이름은 구약이나 신약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지만 바울 시대의 유대교에서는 사용되었습니다. 사탄의 특징 가운데 하나 즉 사탄은 무가치하거나 기만적이라는 것에서 유래된 이 이름은 하나님의 대적자로서의 사탄의 활동을 강조하는 문맥에서 자주 사용되며 이는 바울과 대적들과의 관계와 잘 들어맞습니다(15절).
'우상',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성전에 해당되는 단어(헬, '나오스') 일반적인 성전 구역이나 건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언약궤 위로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난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결코 성정과 동일시되지 않으므로 이러한 신자와 지성소와의 동일시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직접적으로 즉시 거하시는 새 언약에 엄청난 실제, 성령을 통해 시작된 실재를 반영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이 하나의 문구를 시작으로 6:16~18에서 여섯개의 구약 인용구 전체가 연쇄적으로 등장하며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라는 유사한 표현으로 인용구가 마무리됩니다(16절).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이 되는 것의 함의로 이사야 52장11절의 세 가지 명령('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과 겔 20:34, 사 43:6의 세가지 약속('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으로 도출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원래는 이스라엘에 주어진 약속들을 적용하는 것은 교회가 곧 새 언약 아래 회복되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성취라는 자신의 확신을 반영하는 것입니다(17~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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