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리뷰 『WlNTER 8000』 버나데트 맥도널드 지음. 김동수 옮김/2021년 하루재클럽
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 이용대
『윈터 8000』은 8000미터 고봉에서 이룩한 동계초등기록들이다.
고소동계등반의 원조 안드제이 자바다가 이끈 1980년2월 에베레스트에서 시작된 동계초등은 1984년 마칼루.1985년 다울라기리. 1985년 초오유. 1986년 칸첸중가. 1987년 안나푸르나. 1988년 로체. 2005년 시샤팡마. 2009년 마칼루. 2011년 가셔브룸 2봉. 2012년 가셔브룸1봉. 2013년 브로드피크. 2016년 낭가파르바트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동계초등기록이다.
자이언트 14봉 중 K2의 초등기록이 빠진 것은 책이 발간된 이후인 2021년 1월16일에 네팔 셰르파 10명에 의해 K2 동계초등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8000미터의 동계등반은 고통 그 자체다.
그래서 ‘극한의 예술’이라고도 하며, 그런 류의 등반을 하는 사람들의 등반을 한수 더 높게 평가한다. 이 책에는 그런 등반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희박한 공기와 얼음, 살을 저며 내는 혹독한 추위 속에 자신을 내던지는 용감한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겨울 히말라야를 오르며 경험했던 고통과 노력, 성공과 실패에 대한 처절한 기록들이 가감 없이 독자들 앞에 펼쳐진다.
히말라야 8000미터 고봉등반역사를 살펴보면 1950년 안나푸르나로부터 1964년 시샤팡마 까지 14년이 걸렸지만, 동계 초등은 1980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2021년 K2까지 41년의 기간이 소요됐다. 단순한 비교이나, 그동안 장비와 기술. 고소의학이 발전했지만 이런 눈에 띠는 기간의 격차는 겨울철 8000m 등반의 어려움이 어떤지를 명백하게 보여준다.
8000미터의 겨울은 상상을 초월한다. 너무나 추운 나머지 폐가 타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들 정도다. 어느 시즌이든 고소에서는 희박한공기로 숨이 차고, 두통과 구토가 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겨울철엔 문제가 더 심각하다.
고소의학전문가 피터 해켓 박사에 의하면 고소에서의 기압은 여름보다 겨울이 더 낮다고 한다. 기압이 낮다는 것은 ‘체온유지와 전진’을 가능하게 하는 산소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며, 이 두 가지는 극심한 추위 때문에 겨울에 훨씬 더 어렵다고 한다. 서리로 뒤덮인 눈썹은 서로 엉겨 붙어 시야를 가리고 노출된 피부는 시시각각 얼어붙는다. 또한 스토브가 작동하지 않고 금속제물건은 쉽게 부러진다.
이처럼 8000미터에서의 동계등반은 그 어려움이 몇 배나 더하며 고소등반가들에게 그곳은 여전히 미답의 영역이다. 이 책은 고소동계등반가들의 고통과 노력, 실패와 승리에 대한 증언이다.
8000미터 급 고봉을 오르는 것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한겨울에 이런 산에 도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영하 40도이하의 기온, 지속적으로 불어대는 허리케인 급의 강한 바람, 거기에 낮은 기압까지 더해져 다른 계절보다 공기 중의 산소가 훨씬 더 적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폴란드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는 그런 등반을 ‘고통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히말라야 자이언트 동계초등기록을 살펴보면 10개봉 정도가 폴란드 원정대가 이룩한 성과다. 이처럼 폴란드산악인들은 동계등반에 강했다. 그들은 모산 타트라 산에서 한겨울 눈 속에서 팬티만 걸친 채 혹독한 내한훈련을 하며 몸을 단련한다. 이런 일련의 트레이닝과정이 그들을 동계등반의 최강자로 키워낸 것이다.
1980년 2월17일 폴란드대의 에베레스트 동계초등이 성공했을 때 세계 산악 계에서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전설적 산악인 라인홀드 메스너는 폴란드대가 오른 것은 동계등정이 아니라고 이견을 내놓았다. 네팔이 동계시즌을 1월 31일까지로 단축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를 계기로 동계시즌의 조건에 대해 열띤 논쟁이 일어났다.
천문학상의 겨울은 12월21일에 시작되어 3월21일에 끝난다. 오스트리아 기후학자 카블은 “등산을 위한 겨울은 12월 21일에 시작되어 3월21일에 끝난다. 이때의 전후가 천문학상의 겨울 내의 날들보다 더 춥고 바람도 많이 분다고 말했다. 네팔의 공식적인 동계등반시즌은 12월1일부터 2월15일까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계등반가들은 네팔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 등산사학자는 ‘기상학적 첫 동계등정’은 12월1일과 2월말 사이고, ‘천문학적(절기상) 첫 동계등정‘은 12월 21일과 3월21일 사이라고 했다.
폴란드 팀의 동계초등에 부정적인 주장을 펴면서 물고 늘어지던 메스너는 네팔관광성이 공식적으로 동계초등을 인정하자 마침내 그의 주장을 번복하며, “그들은 정말로 동계에 등정했습니다.”라고 꼬리를 내렸다.
폴란드 등반가들은 동계등반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루트로 1984년 1월12일 마나슬루(8163m)동계 초등에 성공했는데 그들은 무 산소등반으로 쾌거를 이루었다. 겨울의 고산에서 극한의 추위를 이기는 데는 산소는 필수적인 것이지만 무 산소등반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이다. 등정에 성공한 베르베카는 하산 중 이전에 한국 팀이 남긴 하켄을 전리품으로 뽑아가지고 내려왔다. 하산과정에서 그들은 허리케인 급의 바람이 앞을 가로막자 무릎을 끓고 기어내려 오며 사투를 벌였다.
1985년 1월21일 폴란드원정대의 안드레이 초크, 예지 쿠쿠츠카가 동계 다울라기리(8167m) 등정에 성공한다. 1985년 2월12일엔 안드제이 자바다가 이끄는 폴란드원정대가 두 번에 걸쳐 5명이 동계 초오유(8188m)정상에 오른다.
1989년 겨울 초오유에서 한국원정대와 벨기에 팀 사이에서 난투극이 벌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으며 한국은 7800m에서 셰르파 실족사로 등반을 포기하고 하산했으며 벨기에 팀도 등정에 실패한다.
국제분쟁을 야기한 한국과 벨기에 팀은 벨기에 팀이 자기들의 루트로 허가 없이 등반했다는 이유로 한국대의 고정로프를 절단회수함으로서 야기된 사건이다. 국제산악연맹원정분과 위원회에서 벨기에 팀의 일방적인 항의만을 받아드렸던 사건으로 후에 한국대가 해명함으로서 종결된 사건이다. 서구산악인들의 편파적인 이의제기라는 인상이 짙었던 사건이다. 이 사건은 양 팀의 원활한 언어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한국 원정대의 이호상 대장은 “산은 결코 싸움터가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제목으로 『산악인』1990년 봄 호에 사건의 경위를 기고한다.)
1986년 1월11일 안드제이가 이끄는 폴란드원정대의 예지 쿠쿠츠카와 삐엘리츠키가 칸첸중가(8586m)동계등정에 성공한다.
안나푸르나(8091m)는 1950년 인류가 오른 최초의 8천 미터라는 상징성을 지닌 산이지만 그곳을 한 겨울에 오른 사람은 없었다. 이산을 겨울철에 최초로 오른 팀은1987년 2월3일 안드제이 마흐니크가 이끄는 폴란드원정대의 예지 쿠쿠츠카, 아르투르하이제로다. 당시 이 팀에는 폴란드의 매력적인 여성 산악인 반다 루트키에비치가 합류했다. 그녀는 에베레스트 유럽 여성최초등정과 K2등정을 비롯해 몇 개의 8천m고봉을 오른 여성등반가로 여성최초의 14개봉 완등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겨울철 안나푸르나는 체력의 열세로 오르지 못한다.
그동안 8개 팀이 로체(8516m) 동계등반에 도전했으나 모두가 실패했다. 폴란드 벨기에 합동원정대의 폴란드 등반가 크지슈토프 비엘리츠키가 1988년 12월 31일 허리에 코르셋을 차고 무산소 단독등반으로 정상에 오른다. 그는 1980년 에베레스트 동계초등의 위업을 달성하고 칸첸중가를 동계 최초로 올랐으며, 브로드피크를 21시간10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뛰다시피 오르내렸다. 또한 마나슬루에서 신 루트를 개척했고, 마칼루를 알파인 스타일로 올랐으며,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로체남벽을 두 번이나 도전했다. 그는 4개월 전 가르왈의 바기라트에서 당한 사고로 가슴의 8번째 늑골이 압착되어 폐가 손상되었고 손상된 척추를 강화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코르셋을 차고 등반을 했다.
시샤팡마(8027m)는 산 전체가 티베트 영토 내에 위치한 8000미터 급의 산으로 1964년 중국원정대가 초등을 하고나서 외국원정대에 개방한 산이다.
그동안 많은 등산가들이 혹한의 겨울 산에서 동계초등. 동계 신루트. 동계 알파인 스타일. 동계 단독에 도전하며 기회를 만들어왔다.
2005년 1월14일 폴란드와 이탈리아 합동원정대의 폴란드 등반가 표트르 모라브스키와 이탈이아의 시모네 모로가 시속 150km의 강한 바람과 영하 52도의 기온 속에서 시샤핑마(8027m) 정상에 오르는 또 하나의 동계초등을 이룩했다. 그 후 모라브스키는 8000m급 고봉5개를 더 오른 뒤 그의 경력은 비극으로 끝맺음한다. 2009년 다울라기리에서 크레바스에 빠져 32살의 나이로 세상과 하직한다.
네팔과 티베트 국경에 위치한 마칼루(8485m)는 가파르고 아름다운 사각형의 피라미드다. 이 산은 인근의 에베레스트가 1980년 동계 초등된 이후 동계등반가들의 시선을 끌었고 여러 차례 도전을 받았지만 시속 160km에 이르는 강풍으로 패퇴했다. 1985-1986년 시즌에 유명한 메스너가 자신의 파트너였던 한스 카머란더 와 함께 도전에 나섰지만 이 두 슈퍼스타들조차도 마칼루의 악명 높은 강풍으로 물러서고 만다.
정상 800미터 아래에 설치한 텐트에서 시모네 모로와 데니스 우루브코는 일박을 했다. 텐트안의 기온은 영하 40도를 기록했고 그들은 다운 옷을 입고 부츠의 내화를 신은 채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다음날 이들 두 사람은 정상을 향해 움직였다. 이전 팀이 남긴 썩은 피톤을 학보물 삼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사실 그것은 ‘심리적 확보’였다. 2009년 2월 9일 오후 1시에 마침내 두 사람은 마칼루의 뾰족한 정상에 올라섰다. 이 순간을 회상하며 데니스는 “간절히 바라면 무엇이던 할 수 있다. 우리는 목표를 좇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칼루에서 동계등반이 처음 시도된 후 29년이 흐르는 동안 13개 팀이 도전에 실패했지만 데니스와 시모네는 20일 만에 보조 산소도, 고소포터도 이용하지 않고 훌륭한 스타일로 등정에 성공했다.
2011년 2월2일에는 국제원정대의 시모네 모로, 데니스 우루브코, 코리리처즈 등3명이 가셔브룸 2봉(8034m) 동계등정에 성공한다. 이들은 하산 중 거대한 눈사태에 휘말리고도 극적으로 살아서 베이스캠프로 돌아온다.
2012년 3월9일 폴란드원정대의 야누시 고왕프, 아담 비엘레츠키가 가셔브룸1봉(8080m) 정상에 올라 또 하나의 동계 초등정 기록을 세운다.
K2의 베이스캠프에서 산의 모습이 또렷하게 보이는 브로드피크(8051m)는 폴란드원정대의 마치에이 베르베카, 아담 비엘레츠키, 아르투르 마웨크, 토마시 코발스키 등 세 사람이 동계등정을 성공시킨다.
‘벌거벗은 산’ ‘산들의 왕’ ‘마(魔)의 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낭가파르바트(8125m)는 모든 알피니스트들이 숭배하는 산이다. 8000m 14개봉 중 겨울철등반이 이 산만큼 많이 시도된 산은 없다. 무려 서른세 번 폭풍설에 휘말려 셋 중 둘이 사라져 비극으로 끝난 원정대까지 합산하면 서른네 번이다. 낭가파르바트는 히말라야 서쪽 구석에 위치한 파키스탄 제2의 고봉이다. 특히 정상까지 4500m나 치솟은 루팔 벽은 그 위용이 대단하다. 이 산은 라키오트벽, 가파른 바위로 된 디아미르벽, 남향의 거대한 루팔벽으로 이루어져있어 등반가들에겐 비교적 선택의 폭이 넓은 곳이다. 이산이 동계에 초등된 것은 2016년 2월26일 알렉스 치콘과 시모네 모로가 이끈 합동원정대의 알렉스 치콘, 알리 사드파라, 시모네 모로에 의해서 정상이 등정된다. 이로서 8천 미터 봉 13개 모두가 동계 초등이 된다. 그동안40여년에 걸쳐 겨울 산의 정상에서 국기를 날린 국가들은 많았지만 폴란드만큼 독특한 열정을 보여준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