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최대의 계곡미를 자랑하며 험난한 산세와 수려한 경관, 그리고 지리산 최후의 원시림을 끼고 있는 칠선계곡은 설악산의
천불동 계곡, 한라산의 탐라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손꼽힌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소재한 칠선계곡 산행은 추성동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두지동과 출렁다리, 선녀탕, 옥녀탕을 거쳐
비선담에까지 8km 거리에 두루두루 숲 구경, 물 구경, 바위 구경하면서 걷다 보니 총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비선담에서 천왕봉으로는 개별적으로 갈 수 없는 코스이니 비선담이 산행 꼭지점이다.
두지동 마을을 지나면 시멘트로 포장된 가파른 고개를 한 이십 여분 걸어야 한다.
그 고개를 넘으면 비로소 칠선계곡의 입구로 들어선다. 고개 정상에서부터는 내리막길로 흙길이다.
칠선 계곡의 흙길은 30%정도이고 대부분 바위길, 돌길이다. 흙길이 나타나다 바위길이 나타나고 바위길이 나타나다 흙길이 나오지
만 그리 험하지는 않더라도 그래도 지리산이니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내리막 흙길에서 잠시 멀리 바라보면 지리산 능선이 구비치고 무성한 원시림이 우거져 장엄한 지리산의 풍경이 드러난다.
숲은 보이되 나무는 보이지 않고 물소리는 들리되 큰 물은 보이지 않는다.
숲이 계곡을 둘러싸고 자작나무 속살처럼 하얗게 살짝 드러난 계곡은 숲의 깊이와 넓이를 말해준다.
지리산 칠선계곡은 숲속의 목욕탕처럼 자신을 감추고 숲속으로 내내 흐른다.
그 길이와 깊이를 알 수 없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도 없지만 조심해서 듬성등성 드러난 바위길따라 계곡으로 다가서
면 수천 년의 세월에 돌이 깎이고 그 계곡 바위로 수량이 풍부한 물이 힘차게 흐른다.
칠선계곡 진입 전 주변 풍경을 보노라면 파란 하늘이 도화지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숲이 삼분의 이를 차지한다.
숲이 우거진 중턱 능선 언저리에는 여지없이 아름다운 가옥이 들어서 있다.
칠선계곡으로는 산행을 할 수 없고 계곡 옆으로 난 길따라 쉼 없이 오른다.
칠선 계곡 숲으로 들어서면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나무와 숲이 우거져 있고 칠선계곡 전체가 마치 숲과 물의 나라처럼 등산을 하고
나면 지리산의 아방궁에 들어갔다 나오는 느낌이다.
빨간 칠선교 아래부터 조그만 소가 만들어져 물빛이 파랗고 전형적이 바위 계곡미를 드러낸다.
수량이 참 풍부하다.
많고 많은 유명한 산을 갔어도 여름 칠선계곡만큼 수량이 풍부하고 그 계곡 옆 길을 따라 등산할 수 있는 산도 드물 것이라 여겨진다.
산길을 걷다 보면 산중따라 졸졸 흐르는 물과 작은 바위도 마치 조경을 꾸며놓은 듯 한 폭의 그림같다.
계곡을 약간 거리를 두고 흐르는 길은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사람도 오르락내리락 거린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실바람을 타고 야생화로 뒤범벅된 꽃향기가 상큼시큼하게 코끝을 자극한다.
나도 모르게 긴 호흡을 하고 산 향기를 빨아들이고 내뿜는다.
산길이 끝나고 바위길이 바로 계곡으로 내리닿는 곳에 수량이 풍부한 절세미인 계곡이 도사린다.
그냥 넘어갈 수 없기에 절세미인 계곡 옆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계곡 바위에서 힘차게 흐르고 실타레처럼 풀어지며 쏟아지는 물보라를 풍경삼아 멸치 몇 점과 김치 반찬에 밥을 먹으니 물처럼
부드럽게 식도를 넘어가는 밥맛이란 뭐라 형용키 어렵다.
적어도 천년 넘게 바람과 물로 갈고 닦은 여성의 자궁처럼 부드럽고 미끈한 바위에서 두 갈래 물이 힘차게 쏟아진다.
마치 생명의 힘찬 물줄기를 쏟아내 듯 바위 자궁에서 쏟아내는 물줄기는 바위 아래 조그만 소에 실타래처럼 낙하하며 하얀 솜사탕
처럼 거품이 인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지만 흐르는 물에 갈고닦은 바
위는 움푹패여 미끈하다. 물과 바람의 풍화작용과 세월의 더께는 바위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다.
아마 수 천 년의 세월이 또 흐르면 미끈한 바위로 흐르는 물은 옥수가 되고 바위는 마부작침(磨斧作針)처럼 바늘 바 위로 변신할
듯 하다.
흙길, 바위길은 사람의 때가 묻은 길이고 사실 칠선계곡으로 본격 들어서면 비선담까지 계곡을 옆구리에 끼고 등산을 한다.
계곡의수량이 정말 풍부하다.
물이 너무나 맑고 고와 손을 넣으면 감미롭고 비단결처럼 보드라운 물 촉감에 손이 얼어버린다.
계곡은 온통 바위로 물은 바위를 타고 흐른다. 그 흐르는 물에 도취되어 몇 번이고 세수를 해도 아쉽다.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은 계곡 바위 형태에 따라 수 갈래 물길을 만들고 수십 갈래 물줄기를 터뜨린다.
성하지절 깊고 푸른 지리산의 웅장함을 가득 싣고 구비구비 흐르는 칠선계곡은 비단 융단을 깔아 놓은 듯 계곡의 자태는 필설로
다 말할 수 없다.
지리산의 바위 구멍 사이로 검푸른 소에서 소용돌이치며 물은 바위를 타고, 바위는 물을 싣고 힘차게 쏟아진다.
물아일체(物我一體) 바위와 물은 하나 되어 에너지를 발산하며 흐르는 칠선계곡에 들어가면 세상시름 잊기에 족한 치유와 힐링의
백미 계곡이다.
칠선계곡 등산의 3분의 2는 계곡옆 숲길을 걸었고 3분의 1은 계곡을 바짝붙어 흐르는 바위길을 따라 걸었다.
계곡 숲길은 계곡에서 때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지만 무성한 숲사이로 계곡이 보이지 않아도 등산 내내 칠선계곡을 흐르는 물소
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마치 영덕 창포말등대 앞바다에서 포효하는 파도소리처럼 귓가를 때리고 심장을 파고든다.
숲의 나라, 물의 나라에서 잠시 아득히 사념에 잠긴다. 물소리는 파도소리로 치환되고 숲은 바다로 치환된다.
칠선계곡은 산중의 바다요, 바다같은 웅장함과 지리산의 기개를 지녔다.
비선담에는 검푸른 물을 담고 주변에는 기이한 바위가 놓여있다.
절구통같이 움푹 패인 바위에는 따가운 햇살이 쏟아지고 물이 쏟아지는 절구가 찰랑대며 숨을 쉰다.
비선담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구름다리는 한 사람 이 지나가도 삐그덕거리고 매우 흔들려 잠시 주춤하지만 단단한 쇠심줄로
이어져 그리 위험하지 않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물소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달리 들린다고 했다.구름다리 아래 비선담의 검푸른 비경이 두려움과 공포를
압도한다.
하산주로 먹은 지리산 마천골 생막걸리가 달짝지근하고 칠선계곡처럼 시원하고 상큼하다.
젊은 여주인은 오늘 문을 열었다며 간이 마루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는 일행들에게 선풍기를 튼다.
칠선계곡 옆 길따라 등산하면서 내내 물음표를 던진,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피아를 끌어않았던 지리산 칠선계곡. 6.25 직후
지리산 빨치산 루트아니냐며 몇 마디 물어보니 여주인은 고개를 끄떡인다.
한때 이념의 마당에 속아 이 계곡에 피를 토하고 험난한 길따라 모질고 억센 인생길따라 도주했던 그들이, 어쩌면 도주했던 그 길이
지금은 치유와 힐링의 길이자 계곡으로 변신한 칠선계곡은 무수한 사연을 안으로 간직하며 그렇게 힘차게 도도히 흐르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