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너희를 진리하게 하리라/정재현

자유가 너희를 진리하게 하리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신약성경》개역개정, 〈요한복음〉8:52   이 글의 제목과 바로 아래 인용문을 연이어 보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성서 구절을 뒤집어 제목을 붙였기 때문이다. 경전 모독이 아닌가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렇게 뒤집어 봄으로써 본래의 뜻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성서 구절이니 기독교인들에게 이에 대해 어떻게 새기는지 물어보았다. 대체로 교리적으로 새긴다. 예를 들어 어느 주석처럼 ‘진리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가리키며, 자유란 이러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읽게 되면 진리와 자유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되고 만다. 표현까지 구태의연하니 우리에게는 별다른 뜻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관연 우리 일상생활에서 진리와 자유가 같은가? 일상에서 진리는 보편적으로 타당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리를 말한다. 보편타당성과 객관성을 한 마디로 묶는다면 ‘동일성’이다. 말하자면 ‘같음’이 핵심이다. 이에 반해 자유는 보편이기보다는 ‘개별’이고 또한 객관이기보다는 ‘주관’이어서 같음보다는 ‘다름’이 핵심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일상에서 진리와 자유는 정반대로 움직이다. 진리는 같음을 근거로 누구에게나 평안을 준다면, 자유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을 동반한다. 안정을 제공하는 진리와 불안을 끌고 들어오는 자유는 그야말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두 마리 토끼’ 같은 관계다. 그런데 이를 외면하고 진리와 자유를 같은 말로 풀이해왔기 때문에 저 중후하나 말씀이 거의 무의미한 주술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리와 자유의 관계를 다시 보자.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성서명제를 견주어도 좋겠다. ‘하느님’이라는 주어와 ‘사랑이다’라는 술어 중 어느 것이 먼저일까? 흔히 주어가 술어보다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사랑이 아니어도 여전히 하느님일까? 아니라면 그 뜻으로 볼 때 오히려 술어가 주어보다 먼저인 것이 아닐까? 같은 방식으로 자유하게 하는 데서 진리가 나타난다는 것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그러므로 진리는 결코 자유보다 앞설 수 없다. 오히려 진리가 진리이기 위해서는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돌이키건대 역사상 벌어졌던 수많은 순교와 배교의 현장에서 뭇사람들을 몰살시켜가면서까지 지켜져야 했던 ‘진리’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또한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살육과 억압이 진리의 이름으로 자행되었을까? 진리에 대한 숭고한 신념과 끓어오르는 희열로 가득 찬 신앙이 바로 그 진리의 이름으로 극악무도한 살인을 얼마나 많이 저질러 왔을까? 이런 사건들은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진리가 단순히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매우 억압적이고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상 우리는 진리의 이름으로 남도 속이고 나 자신도 속인다. 우리는 진리의 이름으로 남도 억누르고 나 자신도 억누른다. 우리는 진리의 이름으로 남도 죽이고 스스로도 죽인다. 말하자면 자유하지 못하게 하는, 아니 오히려 우리를 옭아매는 진리가 우리 주위에, 그리고 우리 자신 안에 너무도 많다. 그러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면서 신앙이 독실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동안 종교가 이것을 더욱더 부추겨왔다. 그러나 종교의 본뜻이 ‘인간해방’이라면 이제는 솔직해져야 한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는 신뢰하되 진리를 붙잡았다고 하는 자는 의심하라”는 앙드레 지드Andre Gide의 말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정재현, 『인생의 마지막 질문』, 「무엇이 먼저인가」, 청림출판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