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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분수령에 솟은 문경 대야산(931m)은 암봉이 수려하거니와 그 품에 안긴 계곡의 널따란 반석으로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셀 수 없이 쏟아지며 아기자기한 담과 소를 빚어낸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이곳에 ‘신선들이 노니는 골짜기’라는 선유동(仙遊洞)이 있다.
조선시대부터 명성 드날린 선유동 물줄기 따라 조성한 ‘선유동천 나들길’은 문경 출신의 의로운 인물인 이강년 의병장을 뵙고, 선유칠곡(仙遊七曲)과 선유구곡(仙遊九曲)의 아름다운 계류를 지나 하트(♡) 모양의 소가 있는 용추폭포 등을 모두 구슬처럼 꿸 수 있는 명품 도보 여행 코스다.
‘선유동천 나들길’ 트레킹은 문경 가은의 운강 이강년 의병장 기념관 앞에서 시작한다. 구한말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서 싸우다 끝내 순국한 이강년(李康䄵·1858~1908) 의병장. 칼을 든 선비 차림의 동상을 우러러보고 운강의 의로운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길을 나선다.
- ▲ 선유구곡의 제9곡 옥석대 주변 풍경. 왼쪽 바위에 새겨진 ‘仙遊洞’이란 바위글씨는 최치원이 쓴 것이라 한다.
- 선유동천 나들길의 첫 명소는 선유칠곡의 제1곡 완심대(浣心臺). 시냇가에 있는 둥근 너럭바위다. ‘씻을 완(浣)’자에 ‘마음 심(心)’이니 선유구곡의 세심대(洗心臺)와 같은 뜻. 완심대 조망대에서 데크를 따라 몇 십 보 걸으면 왼쪽으로 높다란 암벽이 나타난다. 칠우대(七愚臺)다. 구한말 가은 지방 일곱 친구는 모임을 만들어 서로 만나는 장소로 선유칠곡을 경영하며, 이 바위에 칠우대라는 글씨를 쓰고 일곱 벗의 이름을 새겼다.
칠우정 터에서 내려와 제2곡 망화담(網花潭)으로 간다. 작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면 둥글게 생긴 바윗돌에 ‘網花潭’이라 새겨진 글씨가 반갑다. 선유동의 구곡과 칠곡을 흘러온 온갖 꽃잎들이 이 담(潭)에서 잠시 머물며 그물처럼 펼쳐져서 망화(網花)인가.
망화담을 뒤로하고 왼쪽 둑길을 따라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선유동교 아래 시냇물 한가운데 있는 너럭바위가 바로 제3곡 백석탄(白石灘)이다. 선유동을 흘러온 계류는 새하얀 너럭바위를 지나면서 새하얗게 반짝거리는 물결을 이룬다.
근래 지은 정자와 벌들의 윙윙대는 날갯짓 소리 요란한 벌통들을 스쳐 지나면 점점 계곡의 풍치가 더해 간다. 징검다리를 건너다 그 위쪽의 너럭바위로 올라가보니 ‘臥龍潭’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선유칠곡의 제4곡 와룡담(臥龍潭)이다. 상류의 홍류천을 지나온 물줄기가 여기서 경사진 너럭바위를 지나는데, 용틀임하듯 심하게 여러 번 굽이친다.
와룡담 바로 위는 제5곡 홍류천(紅流川). 냇가 주변의 나무들이 숲 그늘을 이루는 완만한 너럭바위에 ‘紅流川’ 세 글자를 길게 세로로 썼는데, 홍(紅)은 작고, 류(流)는 조금 크고, 마지막 천(川)을 제일 크고 길게 써내려 가니, 글자가 마치 물처럼 흐르는 느낌을 준다.
비슷하게 어여쁜 너럭바위들을 줄줄이 지난다. 홍류천에서 50m 정도 오르면 너럭바위 지대 한쪽에 거뭇거뭇한 직사각형 바위에 새겨진 글씨가 보인다. 제6곡 월파대(月波臺). 일곱의 벗은 달뜨는 저녁, 여기에 이르러 부서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맑은 여울 꺾어 돌아 만나는 제7곡 칠리계(七里溪)는 선유칠곡 일곱 굽이의 극처(極處)다. 선유동을 흘러온 옥빛 계류가 여기서 계곡 전체를 덮은 너럭바위를 만나는데, 작은 여울을 사이에 두고 이 선유칠곡으로 흘러내린다.
- ▲ (위부터) 선유칠곡 출발점에 세워져 있는 ‘선유동천 나들길’ 표지석. / 선유칠곡의 제3곡인 백석탄 너럭바위. 왼쪽 아래에 바위글씨가 보인다. / 선유칠곡의 제7곡인 칠리계 여울. / 영사석 근처에 있는 ‘장군손바위’. 여기서 도를 닦은 신선의 손바닥 자국이라 한다.
- 칠리계에서 상류로 여울 하나만 넘어서면 이내 수백 평이나 되는 너럭바위가 반긴다. 선유구곡 아홉 굽이의 제1곡 옥하대(玉霞臺)다. 너럭바위 주변 물가로는 큼직한 바윗덩이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옛날에는 이곳 어느 바위엔가 ‘玉霞臺’라 새긴 글자가 있었으나 큰물에 갈라져 지금은 그 장소를 알 수 없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선유동을 찾아와 노닐며 감상하고 시를 지은 이들은 많다. 구곡을 연구한 학자들은 수백 년간 이곳과 인연을 맺었던 인물 중에서 선유동에 옥하정을 짓고 머물던 손재(損齋) 남한조(南漢朝·1744~1809)를 주요 인물로 여긴다. 그의 시에는 선유동에 반한 이유가 잘 드러난다.
어찌 굳이 선계의 도사들만이(何必羽衣客)
이곳에서 신선처럼 노닐겠는가(爲仙遊此谷)
매번 이 산문으로 들어올 때마다(每一入山門)
표현히 세상을 떠나 나 홀로 있네(飄然遺世獨)
손재가 세상을 떠나고 1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찾아온 외재(畏齋) 정태진(丁泰鎭·1876~1956)에 의해 비로소 선유동은 9곡으로 완성된다. 정태진은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국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는데, 1919년 4월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에 서명했고, 이후 독립운동 군자금 확보에 힘쓰다가 체포돼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다.
정태진이 선유동을 찾은 건 1947년 음력 5월. 광복의 기쁨과 이념의 갈등이 혼재한 어수선한 시기에 신록으로 물들어 가는 금수강산은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현재 선유동 각 굽이의 안내판에는 당시 정태진이 유람하면서 지은 구곡시(九曲詩)를 걸어 놓아 21세기의 여행객을 신선의 세계로 차근차근 이끈다. - 하늘의 은하수가 누워 있는 계곡
바위글씨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계속 오른다. 얼마 뒤 널찍한 암반이 오른쪽으로 나타난다. ‘신령스런 뗏목’이라는 제2곡 영사석(靈槎石)이다. 남한조는 여기에서 ‘은하수 물가에 묶여 있지 않고 / 이 깊은 계곡에 길게 누워 있구나’ 노래하며 은하수를 떠올렸다.
영사석 오른쪽의 ‘용송(龍松)’ 옆 길가에는 큼직한 손바닥 모양의 ‘장군손바위’가 눈길을 끈다. 먼 옛날 선유동에서 수련하던 선인의 흔적이라 한다. 선인이 어찌 철사장(鐵砂掌)을 연마했으랴만, 신선이 노닐던 선유동이니 이런 전설도 허투루 여겨지지 않는다. 그 손바닥을 ‘잘 가라’는 신선의 손짓인 듯 여기고 물길을 거슬러 오른다. 널따란 콘크리트 농로가 이어진다.
신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뗏목’을 타고 도달한 곳은 제3곡 활청담(活淸潭)이다. 개울을 건너기 전 오른쪽 가로로 길쭉한 바윗덩이에는 ‘活淸潭’임을 알리는 글씨가 선명하다. 투박하지만 건강함이 넘치는 필체는 ‘활발하게 움직이며 맑다’는 활청(活淸)의 기운을 표현하는 듯하다. 시원한 계류는 너럭바위를 흐르다 패인 못을 만나 고이면서 잠시 머무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맑은 물은 고요히 멈춰 있는 듯하지만, 역시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 움직임으로 못의 물은 항상 맑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 ▲ (위부터)선유구곡의 일곱 번째 굽이인 영귀암. / 선유구곡의 제8곡 난생뢰 석각.
- 제3곡에서 150m 정도 오르면 길쭉한 바윗돌을 입석처럼 세워 놓은 곳에 제4곡 세심대(洗心臺)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 너머 개울로 들어서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다. 옥빛의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개울 건너 주사위를 닮은 마름모꼴 육면체 바위에 새겨진 글씨, 洗心臺. 선유동을 흐르는 물처럼, 선유동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이 전서체 바위글씨에 담겨 있다.
- 예술의 경지를 보여 주는 전서체 바위글씨
맑은 계류와 시원한 반석, 절묘한 글씨로 마음을 씻고 한층 밝은 발걸음으로 오르는데, 작은 바위에 구로천(九老川)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바로 위쪽 바위의 구은대(九隱臺)라는 글씨 옆에 아홉 명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개울 오른쪽의 길쭉한 바위를 더듬어가자 나뭇가지 그늘 사이로 ‘觀瀾潭’이란 바위글씨가 보인다. 돌이끼도 얼룩덜룩하고 글자도 깊지 않아 유심히 관찰해야 하는데, 그 바위 앞으로는 제법 널찍하고 깊은 담(潭)이 형성돼 있다.
많은 시인묵객들이 사랑해마지 않았을 제5곡 관란담(觀瀾潭)은 ‘물결(여울목)을 보는 곳’이다. 선유동 계곡 경사진 너럭바위 위를 요란하게 흘러내리는 물결은 이곳에 고이면서 잠시 잔잔해진다. 유학자들은 여기서 물의 흐름을 보고 깨달음을 얻는다.
선유동을 찾은 많은 유학자들이 그러하였듯 우리도 물결의 근원을 찾아 상류로 발품을 판다. 계곡 오른쪽의 호젓한 흙길로 100m 정도 오르면 계곡 위로 펼쳐진 하늘이 점점 좁아진다. 제6곡 탁청대(濯淸臺)다. 개울 왼쪽 네모난 바윗덩이에 ‘濯淸臺’라는 가로 글씨가 보인다. 그 너럭바위 양쪽으로 적당한 크기의 바윗덩이들이 계류를 따라 솟아 있고, 하늘이 반쯤 보이니 과연 속세의 일을 잊고 맑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탁청대의 고즈넉한 풍경에 마음을 씻고 가다듬으니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흙은 한 줌도 보이지 않고 온통 맑은 수석만 가득한 계곡이니 마음도 몸도 한껏 흥겨워진다. 계류가 아랫도리를 적시고 휘도는 주름진 너럭바위. 한눈에도 제7곡 영귀암(詠歸巖)인 줄 알겠다.
‘노래하며 돌아오겠다’는 뜻의 영귀(詠歸)는 공자와 증석(曾晳)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어느 날 공자가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 이렇게 네 제자와 대화를 나누다 제자들에게 이루고 싶은 것을 말해 보라고 했다. 모두들 벼슬에 올라 펼쳐 보일 정치적인 야망을 말했다. 그런데 증석은 아니었다.
“늦봄에 봄옷이 이미 이루어지면 관(冠)을 쓴 어른 대여섯 명과 동자(童子)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
봄옷을 펄럭이며 자연 속에서의 삶을 고대하던 시인의 모습이 시원하게 흐르는 계류에 겹쳐진다. 영귀암 위에 쓰인 글씨도 예사롭지 않다.
- ▲ (맨 위)선유구곡의 제1곡인 옥하대 너럭바위.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 주사위 닮은 바위에 새겨져 있는 세심대 바위글씨./ 하트 모양의 대야산 용추폭포
- 떨치기 아쉬운 발걸음 겨우 떼어 수십 보 오르니 길고도 긴 너럭바위 위로 맑은 물이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며 흐른다. 여기가 바로 제8곡 난생뢰(鸞笙瀨)다. 문득 계곡 오른쪽 바윗덩이를 보면 경사진 면 위에 쓰여 있는 특이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문경구곡원림보존회 회원인 이청산 작가는 ‘발을 동동거리며 춤을 추는 듯도 하고 눈을 쫑긋 뜨고 길손을 맞는 듯도 한 글씨’라고 풀어냈다.
난생(鸞笙)은 신선이 타고 다니는 난(鸞)새와 악기인 생황(笙簧)을 뜻하니 이는 곧 난을 타고 생황을 부는 신선을 말한다. 뢰(瀨)는 여울이다. 저 여울을 흐르는 물소리가 바로 신선의 피리 소리인 것이다.
자그마한 징검다리로 지나고, 너럭바위의 경관에 취해 오른다. 물에 비친 하늘빛이 참으로 곱다. 계곡에 난생의 소리는 여전한데, 어느덧 선유구곡의 극처(極處)인 제9곡 옥석대(玉舃臺)에 다다른다. 계곡 너머 평평한 마루 같은 너럭바위 앞면에는 ‘玉舃臺’라는 세 글자가 가로로 새겨져 있다. 옥석(玉舃)은 ‘옥으로 만든 신발’을 말하는데, 후인들은 이를 득도자, 즉 신선이 남긴 유물로 해석한다. 옥석대 위쪽에 솟아 있는 바위에는 최치원이 쓴 것으로 알려진 ‘선유동(仙遊洞)’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 선유동에서 용추계곡으로 이어지는 길
‘선유동천 나들길’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옥석대를 지나 선유교를 건너면 계곡을 오른쪽에 끼고 대야산 입구까지 걷는다. 작은 언덕을 잠깐 넘어선 다음 작은 밤나무밭도 지난다. 선유칠곡이나 선유구곡과 달리 사연 있는 굽이 이름은 없지만 드문드문 멋진 계곡 풍광이 나타난다.
상가지구 맨 끝집 청주가든 앞의 맑은 소(沼)는 100여 년 전, 여기서 빠져죽은 새댁의 넋을 위로하던 무당도 굿을 하던 중 빠져죽었다는 무당소다. 여기서 작은 고개를 넘어 계곡 옆으로 난 길을 오른다. 개울 물소리가 요란하다. 이렇게 10여 분 오르면 대야산 명물인 용추폭포가 반긴다.
- ▲ 선유동천 나들길 개념도
- 상단 폭포 아래에는 하트형(♡)으로 깊게 파인 윗용추가 있다. 여기서 잠시 머물던 계류는 다시금 매끈한 암반을 미끄럼 타듯 흘러내려 아랫용추로 흘러간다. 폭포 양쪽 바위에 있는 비늘 모양의 흔적은 용이 승천할 때 남긴 용비늘이라는 전설이 남아 있다. 용추계곡은 경관도 수려해 한여름에 며칠 머물면서 무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용추폭포에서 다시 산길을 잇는다. 쉬엄쉬엄 20분쯤 올라가면 ‘선유동천 나들길’의 종점인 월영대(月影臺)가 반긴다. 달이 뜨는 밤이면 희디흰 바위와 맑디맑은 물 위에 달그림자가 비친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던가.
월영대 너럭바위에 앉아 반석 위를 흘러가는 물을 바라본다. 사위는 더 없이 조용하다. ‘선유동천 나들길’을 걸어온 답사객들은 땀을 훔치며 시원한 물소리, 청명한 바람소리, 이따금 계곡을 울리는 산새소리에 마음이 한껏 흥겨워진다. - 문경 선유동 | 5.7km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
•여행길잡이•
문경의 ‘선유동천 나들길’은 크게 두 개의 코스로 나뉜다.
제1코스 이강년 의병장 기념관~선유칠곡~선유구곡~대야산 입구까지로 선유동 물줄기 따라 걷는 길이다. 1시간 20~30분 정도 걸린다.
제2코스 대야산 입구~무당소~용추~월영대까지로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종점인 월영대에서 되돌아 내려와야 한다. 왕복 1시간 30분 정도. 따라서 ‘선유동천 나들길’ 전체를 걸으려면 최소 3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 •숙식(지역번호 054)
용추폭포 가까이에 있는 대야산자연휴양림(571-7181)에서 숙박하는 게 가장 무난하다. 대야산장식당(572-0033), 용추골식당(571-0262), 돌마당(571-7750), 벌바위가든(571-5691) 등은 대부분 민박도 같이 한다.
• 교통 •
대중교통
문경시(점촌)에서 1일 4회(08:20, 10:20, 12:20, 17:00) 운행하는 용추계곡행 시내버스를 타고 이강년 기념관 앞에서 하차. 1시간 10분 소요. 문의 점촌시내버스정류장 553-2232, 가은읍 버스정류장 571-7233
자가운전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 IC → 3번국도 → 마성 → 901번 지방도 → 가은 → 922번 지방도 → 완장리 → 운강 이강년 기념관 주차장
첫댓글 오래전에 남군자산/갈모봉을 들린 후에 하산길에 선유구곡 일부만 들렀었는데요.
참 계곡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