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 (2)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시편 19:1~14
I. 서론
기독교 변증가이자 영국 옥스포드대학 영문학 교수였던 C. S. Lewis는 우리가 오늘 읽은 시편 19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시편 19편은 시가서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시어 중 하나이다.” 시가서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이다. 성경에서 시가서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를 의미합니다. 이 모든 시가서에 나오는 시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문학 교수로서 수많은 시를 읽어 보았을 텐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시어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C. S. Lewis는 왜 시편 19편을 이렇게까지 극찬했을까요? 시편 19편은 그 구조와 내용에 있어서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시편 19편을 이해하기 위해서 시편 19편의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시편 19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6절 / 7~10절 / 11~14절. 1~6절은 하나님의 일반계시, 7~10절은 하나님의 특별계시, 11~14절은 시인 다윗의 개인고백과 기도입니다. 1~6절에 나오는 일반 계시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고, 7~10절에 나오는 특별 계시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으며, 11~14절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에 대한 반응으로 시인 다윗의 개인 고백과 기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 본문의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II. 본론
1. 첫째, 일반 계시입니다.
1~4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계시의 정의에 대해서, Regent College의 James Packer 교수님의 말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계시란 뭔가 숨겨진 것을 밝혀서 그것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계시란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사람들에게 그의 영광과 능력, 그의 특성과 성격, 그의 의지와 계획들을 보여준다는 것을 뜻한다.” 일반계시란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자연 세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1절을 보시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궁창으로 대표되는 피조 세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하나님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인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볼 때에 분명히 이 세계를 우연히 생겼다고 정의하기에는 너무나 정교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어떤 지적 존재가 창조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 건물은 몇 개의 부품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이 모든 부품들을 모두 분리한 다음에 공중으로 던졌을 때, 지금의 모양으로 교회당이 만들어질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이 교회당이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믿는 것보다 어떤 지적 존재가 설계를 하고 공사를 해서 지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몇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세포들이 우연히 조성되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어떤 지적 존재가 설계하고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 계시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계시가 사실이지만, 하나님을 정확하게 믿고 구원을 얻기에는 불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 계시를 주신 것입니다.
2. 둘째, 특별 계시입니다.
7~9절, “여호와의 율법 (law)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 (testimony)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 (precepts)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 (commandment)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fear) 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 (rules)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여섯 가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을 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 증거, 교훈, 계명, 경외하는 도, 법.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 말씀의 속성과 그 역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킵니다. 여기서 ‘율법’은 히브리어로 ‘토라’를 번역한 것입니다. ‘토라’는 ‘모세오경’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여호와의 율법은 모세오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오경뿐만 아니라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임을 알고 있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여호와의 율법이 ‘완전하다’는 것은 백과사전식으로 모든 정보를 완전하게 제공해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 안에서 최신 셀폰의 정보나 자동차 매뉴얼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하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부족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혼이 소성되는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증거’는 법정 용어입니다. 여기서 ‘증거’는 “믿을 만한 증인의 증언”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신 증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증언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우둔한 자’는 히브리어 원어로 ‘열려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 대문이 열려 있듯이 “열려 있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교회에 나오시면서 집의 대문을 잘 닫고 나오셨습니까?
이제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약해진 노부부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함께 차를 타고 교회를 가던 중, 아내가 한참을 가다가 갑자기를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 전기다리미를 안 끄고 나온 것 같아요” 남편은 놀라서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가보니 전기다리미는 꺼져 있었습니다. 다음 주일에도 아내는 한참을 차를 타고 가다가, “오늘도 전기다리미를 깜빡 잊고 안 끈 거 같아요. 어떡하지.”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집에 불이 날까 봐 집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그날도 다리미는 꺼져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되었습니다. 차가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자, 아내가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머, 어떡해. 다리미를 끄고 나왔는지, 안 끄고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러자 남편이 차를 도로변에 세우고 트렁크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있다. 다리미.”
오늘 교회 오실 때, 여러분은 집의 대문은 잘 닫고 나오셨습니까? 혹시 집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우리의 집에는 대문이 있습니다. 왜 집집마다 대문이 있을까요?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습니다. 누군가 초인종을 울리면, 내가 문을 열어주기 전에, 그 사람을 확인한 다음에 문을 열어 줄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또한 문은 동물이나 벌레의 침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그런데, ‘우둔한 자’는 항상 문을 열어 놓고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의 집안으로 아무 사람이나 들어오고, 아무 동물이나 벌레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유튜브가 대중화되어서 수많은 영상들이 인터넷으로 올라옵니다. 저도 유튜브를 통하여 정보를 많이 얻는 편입니다. 영어 강의도 듣고, 평생 가보지 않은 곳도 여행 프로그램을 통하여 다녀옵니다. 여러분은 어떤 프로그램을 주로 보십니까? 여행, 음악, 스포츠, 요리, 영어. 이런 영상들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이런 영상만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인들도 자신의 설교나 강연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영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영상의 내용을 걸러낼 문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이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거 즉 하나님의 말씀이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줘서 자신이 보는 영상에 대해서 문을 열어줄지 말지를 결정하도록 도와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제대로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성경의 지혜는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규모가 좀 있는 한국교회에서는 성경대학, 제자훈련이라는 세미나를 개설하여 이런 교육을 성도님들에게 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면에 있어서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내년 상반기에는 주일예배 시간을 통하여 좀 체계적인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신학교에서는 이것을 “조직 신학” (systematic theology) 라고 부르는데, 제목은 딱딱하지만, 내용 자체가 생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성경의 지식을 조직적으로 정리해서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로부터 오는 영적인 정보에 대해서 문을 하나씩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3)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교훈’은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정직하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다’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정직하다’는 의미는 ‘올곧다,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교훈이 정직하다’는 의미는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따라 정도를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비록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정도를 걷는 사람의 영혼에는 기쁨과 평안이 있습니다.
4)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명”입니다. “하나의 의견이나 추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런데 이 명령이 ‘순결하다’는 것은 히브리어로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분명합니다.
대표적인 여호와의 계명은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애매모호한 것은 한 가지도 없습니다. 1.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2. 우상을 만들지 말라 3.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4. 안식일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5. 부모를 공경하라 6. 살인하지 말라 7. 간음하지 말라 8. 도둑질하지 말라 9. 거짓말하지 말라 10. 탐내지 말라. 하나님의 계명은 분명합니다. 신비스럽거나 비밀스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계명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여기서 ‘눈을 밝게 한다’는 것은 시력이 좋아진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깨닫게 되어 올바른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시 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5)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우리는 결국 여호와를 경외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는 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한 시대에만 필요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존재할 것이며, 그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마 24: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6)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롭습니다. 여기서 ‘법’은 히브리어로 ‘법정에서의 판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최고의 권위자로서 판결하시는 것은 모두 진실하고 모두 의롭다는 것입니다. 세상 법정에 삼심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판결에 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높은 권위에 호소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은 모두 진실하고 의롭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이 모든 하나님 말씀의 특성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장 귀하고 가장 달콤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10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다윗 당시에 가장 귀한 것은 순금이었고, 가장 달콤한 것은 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귀하고 가장 달콤한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매일 읽고 묵상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마지막 세 번째 단락, 개인의 적용입니다. (이 부분은 다윗의 고백과 간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13절,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또 주의 종에게 고의로 죄를 짓지 말게 하사 그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소서 그리하면 내가 정직하여 큰 죄과에서 벗어나겠나이다”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의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를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과 능력으로 온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물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심으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두 가지 계시를 묵상하면서 이 계시를 자기 자신에게 직접 적용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세 가지를 깨닫고 기도했습니다.
1) 첫째, 자신의 허물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된 자신의 허물, 즉 죄를 고백한 것입니다. 2) 그 다음은 숨은 허물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이지만, 자신이 깨닫지 못한 (인식하지 못한) 숨은 죄가 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도 완벽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는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한 말과 행실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숨은 허물’이 있다고 고백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숨은 허물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3) 마지막으로 고의로 짓는 죄입니다. 이 부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연약함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고의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진 자신이 깨달은 죄, 자신의 숨은 죄, 그리고 고의로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다윗의 고백처럼, “이런 세 가지 죄가 나를 주장하지 못하게 해 달라” 간구하면 좋겠습니다.
III.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성품을 나타내셨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계시의 정점은 아직 여기에 언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정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가서 우리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성경이 여호와의 지혜를 선포하듯이,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은혜의 복음을 온 세상에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