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목) 13:30 봉은사역 삼성1 문화센타 7층 대강당
"북한의 산과 산악문화 분석"
세미나에 많은 참석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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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삭륜(索倫)”
글쓴이:조장빈
금강산 발봉의 하강 연습(1930, 박석윤 일행) / 도로시 필리의 <CLIMBING DAYS> 겉표지
암벽등반을 하며 버려지는 슬링에 대해, 1930년 7월 매일신보(총독부
기관지) 기사는 재미난 표현을 하였다.
“작일 발봉에서 연습하든
현수하강을 생명을 거러 노코 실현하는 거슬 보았습니다. 보조 “롭”은 양단을 잡아매어 암두에 걸고 그곳에
“롭” 을 연결하야 그 줄을 잡고 재치잇게 나려오더이다. 암두에 걸닌 삭륜은 영구히 걸녀 잇슬 것이올시다. 몃 성상 풍우를 격그면 썩어 업서질 것이올시다. 그것이 우리가 애무하든
“롭”의 일단이오. 현재 두 사람의 생명의 삭륜이라 하면 우리는 충심으로 조의를 표하고 그 공을 치사치
아니할 수 업나이다. 차차로 해는 세존봉 저편으로 너머 갑니다."-출처:첨암등반본기(1), 박석윤, 매일신보,1930.7.8.
당시 박석윤(한국인 최초
몽블랑 등정자) 일행은 금강산 집선봉 클라이밍을 하기 전, 온정리
발봉(鉢峯)에서
하강 연습을 하며 설치한 슬링을 두고 “자일과 한가지요, 생명의
삭륜(索倫)”이라며 버려지는 하강용 링슬링에 조의를 표한다. 사진의 현수하강은
어깨로 자일을 넘긴 자세로 보인다. <CLIMBING DAYS> 겉표지의 하강 사진은, 마찰력으로 인한 제동이
거의 없고 단순히 자일을 잡고 내려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1910년대 이전의 하강 자세이다.
1920년대 중반 이후 대부분 한국의 암벽 등반 대상지를 초등한 이이야마 다쯔오(<북조선의
산>의 저자)는
1933년 3월 이즈미 세이찌와 집선연봉을 등반하는 중에,
집선봉 S.1 서봉의 정상에서 아래로 대략 30미터의
수직의 북벽 절벽을 현수하강 한다. 30미터 이상의 현수하강은 처음이라며 “그곳에서 40미터 자일을 두동 연결하여 바위 돌출부에 걸려 있는 버리는
줄(捨の繩)을 통과시켜 늘어뜨렸다.”고 하며 하강용으로 설치한 슬링을 단순히 “버리는 줄”로 표현하였다. 삭륜이라는 표현은 1962년 발간한 손경석의
<등산백과> ‘아브·사이렝(懸垂下降)’ 설명에 보인다. “바위에 자일링을 걸어서 카라비나를 끼고 로우푸를 거는 법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자일링”이, 말 그대로 “삭륜(索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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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윤(친일반민족행위자)과 함께한 카가미 요시유키(各務良幸)는 1929년 몽블랑과 이웃한 몽모디(Mt. Maudit 4,465m)의 동남릉(정면으로 보이는 설사면 우측 능선)을 초등한 초기 일본산악회의 리더였다. 1927년 7월에는 박석윤과 함께 몽블랑을 올랐다.
출처: https://www.summitpost.org/
*도로시 필리(DOROTHY PILLEY RICHARDS, 영국, 1894~1986)는 융프라우 북동능선(1923), 그리볼라(Grivola, 1924) 북부, 그리고 당블랑쉬(Dent Blanche, 4,357M) 북주능선의
두번째 등정자(1928)이다. <CLIMBING DAYS>는 그녀의 등반 기록을 쓴 자전적 기록이며, 1930년대에 산악인인 남편과 함께 금강산을 찾았다.
On
the Iimesone Glacier National Park / The northern ridge of Dent Blanche
첫댓글 의미 있는 행사입니다. 잘 감상합니다.
멋진 행사 기원합니다.
회장님과 이동훈 교수님의 기획력과 추진력에 감사드립니다...
발제하시는 분들의 면면과 내용이 기존에 산악계에서 논의되던 수준을 넘어 서는 것 같아
기대를 하실 분들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