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상에서 가져온 윤소정 님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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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에 예수의 부활을 다시 되새겨 본다
김재진, 『예수의 부활: 교회의 반석』(대한기독교서회, 2023)
1. 사순과 부활의 계절이다. 이 시점에서 김재진 교수의 최근 저서 『예수의 부활: 교회의 반석』을 읽으면서 부활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은 뜻깊은 일이다. 그는 머리말에서 부활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 주제이면서 죽음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주제이기에 관심을 갖고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예수의 부활이 기독교 최초의 케리그마이자 신약성서의 중심 주제이고 그 신학적 전제와 성서적 근거가 구약성서에서 왔으며, 부활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말한다. 계속하여 그는 부활의 현재성/현실성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활의 현실성이라는 것은 부활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라는 뜻이다. 부활이 역사적·현실적 사건이듯이 기독교의 ‘구원’ 사건도 역사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저자는 예수의 부활 소식, 즉 최초의 케리그마를 통해 초대교회 공동체가 설립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2. 그렇다면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는 부활이 죽음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어서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아담이 죄를 지어서 사망이 들어왔으나, 예수가 하나님께 철저하게 순종하고 십자가 죽음으로 온 인류를 대속하고 새로운 생명을 얻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 성령으로 예수를 다시 살리셨고, 그로 인하여 우리 인간도 하나님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즉 예수는 “살려 주는 영”(고전 15:45)이고, 부활은 그 예수를 믿는 자에게 은혜로 주어지며, 예수의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새 생명 창조의 역사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예수의 부활 사건이 철저히 구약성서의 이해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출애굽 전승이 형성된 과정이 부활 전승이 형성된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약성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을 그린 책으로 볼 수 있고, 신약성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집대성한 책으로 볼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으로 이끌었듯이, 예수도 부활 사건을 통하여 인류를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주님이라 고백하는 근거는 바로 예수가 부활했다는 역사적 사건에서 기원한다는 것이다.
또한 예수의 부활 사건은 구약성서의 부활에 관한 증언들로 뒷받침된다고 볼 수 있다. 다니엘 12장과 이사야 26장 8-21절에서 부활을 언급하고 있고, 에스겔 37장에서도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통해 부활이 추가로 묘사된다. 저자는 이러한 본문들을 나열하면서 예수의 부활 사건은 구약성서에서 시작되는 구원 역사의 완성이라고 논한다.
그렇다면 부활의 현재성은 어떻게 논의될 수 있는가? 신약성서는 부활 이후 예수가 승천했다고 기술한다. 여기서 저자는 예수의 부활과 승천의 역사성을 부인한 채 그 의미만을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종말론적 기대를 약화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경계한다. 예를 들어 십자가 사건만을 강조하는 불트만의 논의에 대하여 저자는 전경연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비판적 태도를 표명한다. 부활을 약화시키는 해석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도 ‘세상의 그리스도’도 아닌 세상을 가장 모범적으로 살았던 인간 중 한 명으로 의미를 축소해 버린다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서 아담이 잃어버렸던 ‘영원한 생명’을 되찾게 되었으며, 사탄의 권세, 즉 사망의 권세에서 모든 인간을 해방하고 구원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힘을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에 의하면 현재에도 예수는 승천한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저자는 여기서 예수가 앉아 계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하나님 옆에서 자신의 몸(교회공동체)의 지체들(성도들)을 대신하여 기도하고 계신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우편’이라는 공간은 세상과 교회공동체를 통치하는 ‘영적 측면에서 최고의 주무관청’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과거의 사건일 뿐만 아니라 현재성을 가지며 부활의 현재성은 ‘성도들의 부활’로 입증된다.
저자는 예수가 부활하셔서 현재 하나님 옆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재 세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천지창조의 전승으로 돌아간다.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혼돈의 세계는 절대적인 영적 ‘땅과 하늘’이며, 둘째 날과 셋째 날에 창조된 ‘궁창’에 둘러싸인 세계는 현재 우리가 사는 가시적 시공간이며 영과 물질이 분리되어 있다고 본다. 부활의 세계에서는 태초에 창조하신 보이지 않는 세계와 ‘궁창’ 안에 창조하신 보이는 세계가 융합된다고 한다. 동시에 이 부활의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거할 영원한 거처라는 것이다. 부활의 세계에서는 죽음을 극복하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이 부활은 우리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가? 저자는 예수의 부활이 옛 인간, 곧 첫 번째 아담의 ‘창조의 회복’이며 동시에 마지막 아담(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자 ‘새 인간 창조’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 부활은 세례와 성만찬을 통하여 나를 위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전이된다. 그렇다고 해서 세례와 성만찬이 어떤 마술적 효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원의 표징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인간의 믿음, 그리고 보혜사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만이 성례전은 온전히 기능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제11장 ‘예수의 부활: 나의 부활’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신 은혜를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면서, 그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나의 부활’을 기쁨으로 수용하는 것을 왜 주저하고 있는가?… 왜 ‘죄 용서’에 대하여는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죄 용서’보다 더 큰 ‘부활의 은혜’에 대하여는 깊이 감사하며, ‘소망’하지 않는가?”(206쪽)라고 질문을 던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은 보이는 시공간에만 갇혀 있어서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초월적인 영적 세계를 부인하고 그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성서의 증언을 모두 환상으로 일축해 버린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소극적이고 보편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도 성서의 모든 증언과 신학적 진술 그리고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필연적인 전제이며 목표라고 제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도 생명을 위한 실질적인 필연성이며 결국은 기독교 신앙 및 신학의 공리라고 명시한다.
3. 김재진 교수는 이 책에서 부활 신앙을 체계적으로 주의 깊게 서술해 나갔고 부활 신앙에 관련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거의 모든 주제를 자세히 다루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도움이 될 풍부한 자료들을 제공한다. 읽으면서 드는 한 가지 의문은 저자가 예수의 부활과 승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자들이나 예수가 영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 등을 수차례 거론하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일관성 있고 명쾌하게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군의 철학자들을 의미하는 것인지 신학자들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실치 않다. 더욱이 그들이 현재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어떠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으면 부활의 현실성이 좀 더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덧붙여서 부활의 역사성은 부활이 논의의 대상이 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이다. 판넨베르크가 지적하듯이 이는 신앙이 아니라 역사적 자료의 검증을 통해서 확인되어야 할 주제이다.1 그러나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적 자료들, 즉 복음서의 기술들은 일관성 있는 기록이라고 보기 힘들다. 예를 들어 공관복음에서는 예수가 유월절 다음 날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고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유월절 당일에 죽음을 당하였다고 하면서 유월절에 제물로 바쳐지는 희생양의 의미를 부여한다. 예수의 부활에 대하여서는 더욱더 상충되는 자료들이 기록되어 있다. 부활의 목격 상황도 복음서마다 다르며, 승천한 예수의 이야기 역시 다르거나 충분치 못하다. 이러한 자료의 불일치로 인해 예수의 부활과 승천 사건을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부활의 역사성을 말할 때는 그것이 일어났다는 사실 말고는 더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몰트만은 부활절 증언에서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부활의 증인들이 예수의 죽음과 빈 무덤의 발견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과정을 통해 부활했는지 또는 예수의 몸 상태가 부활 이후 어떠하였는지 기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몰트만은 예수의 부활이 죽은 예수가 살아생전 인간의 몸으로 그대로 복구(revivification)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활을 당시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묵시문학적 희망, 새로운 세상의 구현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예수의 부활은 고난받는 자들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머지않은 미래에 구현될 것이라는 기대를 함축하는 것이며, 이 세상에서 고난받는 힘없는 자들이 결국에는 승리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의로움(righteousness)의 실현을 미리 맛보는 것(foretaste)이라는 주장이다.2
부활에 대한 이러한 종말론적 신앙과 기대가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결국 부활 사건이 우리의 현실의 개혁과 연결될 때 『예수의 부활: 교회의 반석』이 지향하는 부활의 현실성이 역동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본다.
주(註)
1 Wolfhard Pannenberg, Jesus, God and Man, trans. by Lewis L. Wilkins and Duane A. Priebe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8), 98.
2 Jürgen Moltmann, The Crucified God, trans. by R. A. Wilson and John Bowden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169-178.
윤소정|미국 개릿신학교에서 석사 학위(M.Div.)를,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신약학으로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이화여대, 연세대, 감신대, 한신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지은 책으로는 『기독교와 세계』(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