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자존감을 설계하는가
김학진
자존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왜 위태로워지는 걸까?
“이 책은 최신 뇌과학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자존감이라는 개념을 생물학 용어로 재 정의함으로써, 불안, 우울, 중독, 분노 조절 장애 같은 자존감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과학적 접근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인간의 뇌를 신체와 별개인 독립적 존재로 보기보다는 신체의 일부로 본다. 신체로서 항상성 조절및 유지의 기능을 담당한다는 관점이다. 영혼이 신체의 주인으로 군림한다기보다는 신체를 주인으로 섬긴다고 할까.
-p19-
자기를 인식한다는 것은 다른 개체에게서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탐지할 능력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종들은 이러한 능력 덕분에 자신과 유사한 다른 개체와 무리를 지어 비교적 큰 사회적 집단을 이룰 수 있다. 자기 인식 능력이 사회적 행동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는 말이다. -p22~23-
감각이란 외부 감각, 내부 감각, 고유 수용성 감각등 세 유형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외부 감각이란 신체 외부의 환경에서 오는 감각 정보를 말하며, 내부 감각이란 심장이나 다른 장기처럼 신체 내부의 기관에서 오는 감각 정보를 말한다.
고유 수용성 감각이란 주로 근육이나 관절의 수용기로부터 뇌로 전달되는 감각 정보를 말하는데, 몸의 움직임 또는 신체의 공간적 위치나 상태를 알려준다. -p26-
어쨌든 내부 감각은 외부 감각보다 의식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져 있는데, 우리 의식 자체가 애초부터 내부 감각보다는 외부 감각에 민감하도록 발달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p27-
내가 눈앞에 놓인 커피잔으로 손을 뻗어 내 손가락이 커피잔 손잡이에 닿는 시각 경험을 하면, 손가락에서 커피잔 손잡이의 표면이 주는 촉각 정보가 감지되어 시각 정보와 동시에 뇌로 전달되고 하나로 통합된 지각적 경험이 이루어진다. 이런 경험은 내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나의 신체와 환경 간에 관계를 잘 이해하며 통제한다고 느끼게 하며, 바로 자기감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p28-
신체 내부 기관에서 전달하는 신호를 뇌가 수용해서 반응하는 것을 내수용 감각이라고 한다. -p40-
매 순간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뇌는 끊임없이 신체 내부에서 전달되는 신호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심장으로, 우리 뇌는 매 순간 심장 박동을 모니터링한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빠르면 늦추고 너무 느리면 재촉하면서 적절한 범위에서 박동수를 유지하도록 조절한다.
-p42-
‘나’를 구성하는 신체소유감을 형성하는데에는 신체라는 내부 신호와 환경이라는 외부 신호가 사용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람마다 자기 신체의 범위를 규정하는 데 내부 신호와 외부 신호를 사용하는 비율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기 신체의 범위를 정의하기 위해 주로 내부 신호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고, 주로 외부 신호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다. 두 부류 간의 명확한 경계를 찾기란 쉽지 않을 텐데, 이처럼 자기를 정의하는 방식의 개인차가 삶을 영위하는 방식에서 어떤 심리적. 행동적 차이로 이어지는지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 심리학과 뇌과학이 밝혀야 할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목표가 될것이다. -p45-
안정적이고 유연한 신체소유감으로 ‘나’를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뇌의 기능은 바로 예측이다.
이와 같은 뇌의 예측 기능은 우리가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하며 자기라는 개념을 형성하고 수정하거나 확장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 -p47-
모든 생명체는 궁극적으로 ‘항상성’이라는 질서를 추구한다. 사실 이는 엔트로피의 증가 혹은 무질서를 향해 가는 자연스러운 물리 법칙에는 어긋나는 현상이다. -p55-
신체 항상성 불균형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측하고 능동적으로 외부환경을 활용하여 예방하려는, 유기체 전체의 전략적인 신체 항상성 유지 방식을 알로스테시스라고 한다. -p57-
일생 뇌가 하는 일이란 이렇게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예측하고 예방하기 위해 환경을 활용하여 최선의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내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p59-
세상 모든 담배 중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피우는 첫 모금이다.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잠시 강렬하게 느낀 이 행복감은 그 후 빠른 속도로 사라져버린다. 이 행복감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라는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린 알고 있다. 이 하루 첫 커피의 첫 모금이 주는 행복감도 매일이라는 시간이 겹쳐 지나가는 동안 서서히 조금씩 줄고 있다는 것을. 행복감은 오랜 절제 끝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선물하는 찰나의 경험이다. 따라서 행복은 그 찰나의 경험을 추구하는 일이 아니라 절제의 시간을 오래도록 쌓는 노력일 수밖에 없다 행복은 그 경험을 향해 다가갈수록 도리어 더 멀어질 수밖에 없고, 단념하며 돌아서려는 순간 어깨를 잡아채며 느닷없이 선물처럼 안긴다. -p65-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돈보다 훨씬 먼저 학습한, 훨씬 강력하고도 중요한 이차적 보상이 있다. 바로 ‘타인’이라는 사회적 보상이다.
타인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욕구는 갓난아기가 태어나 처음으로 신체 항상성과 불균형을 경험할 때, 즉 배고픔이나 통증이나 불편을 겪을 때 이를 해소해준 최초의 타인인 엄마로부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사회적 보상은 일생에서 가장 먼저 학습하는 이차적 보상이다. -p66-
이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보상 가운데 생존과 번식의 목적에 모두 부합하는 보상은 드물다. 이 점에서 사회적 보상은 독보적이다. -p67-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배내측 전전두피질의 중간에 있는 문내측 전전두피질의 기능은 좀 더 특별하다.
이 부위가 자기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으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유추해 볼때, 신체가 만들어내는 생명 유지의 욕구가 환경이라는 제약과 충돌할 때 이 두 힘 사이 균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이 과정에서 바로 ‘자기’라는 개념이 비로소 만들어진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p102-
신체 에너지라는 유한한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우리 뇌는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p109-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을 가리킨다는 최근 연구가 많이 있지만, 여기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내 생각은 반영된다. -p113-
나의 생존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보상들 중에서 특정 보상에만 과도하게 몰입하고 다른 보상들은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현상을 가리켜 중독으로 정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신체 항상성의 불균형을 알리는 다양한 신체 신호를 무시하고 사회적 보상에만 몰입하는 현상을 가리켜서도 중독이라 정의 할 수 있다. 바로 인정 중독이다. -p135-
자기 통제력은 무조건 충동을 억누르는 억제력이 아니라 선택지들 중에서 자신에게 더 유리해 보이는 선택지를 고르는 가치 계산 능력이다.
즉, 사회적 인정이라는 강력한 보상으로 이끌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줄때 인정 욕구는 다양한 중독을 이기는 새로운 힘이 된다. -p141-
어떤 보상이건 보상을 받는 매 순간마다 우리 뇌는 변화한다. 그리고 한번 경험한 기억이 절대 뇌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일단 한번 보상을 받게 되면 보상을 받기 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수 있다. 이는 바로 보상에 대한 기대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화한 기대 수준 때문에 동일한 보상이 두번째 주어지면 이전에 같은 보상이 주었던 것과 동일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성능이 놀랍도록 우수한 보상 예측 기계인 우리 뇌는 아무리 작은 보상일지라도 이를 예측해내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한다. 따라서 아무리 강한 보상이라도 완벽하게 예측해낼 수 있다면 뇌는 절대 반응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p143-
중독이란 신체의 생존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여러가지 보상들 중 극히 일부만 선택하고 나머지 보상들은 모두 포기한 상태를 가르킨다. 이렇게 선택되어 남겨진 희소한 보상만으로 유기체가 생존이라는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무리가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환경이 바뀌어서 그동안 무시하고 포기했던 보상들이 새로이 절박해지는 상황이 닥치면 그 유기체는 생존을 지속하는 데 실패하고 말 것이다. -p144-
신체 항상성을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자극을 스트레스라고 한다.
스트레스가 일시적으로 발생하면 신체 항상성을 쉽게 회복할 테지만, 스트레스가 강한 수준으로 반복되면 신체 항상성의 회복이 지체되거나 불충분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강한 스트레스의 반복이 오래동안 지속되면 아예 항상성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한다. -p147~148-
불행에 빠질 확율이 증가하면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알로스테시스 기능이 다시 작동한다. 우연히 시험 성적이 올라 행복을 경험하면 나와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 성적의 상승 가능 폭은 더 좁아지고, 이전 성적보다 상향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서 이 불안감을 피하기 위해 나는 더 노력할 수 밖에 없다. 항상성의 불균형을 최대한 일찍 예측하고 예방하려는 알로스테시스 기능은 결국 우리로 하여금 벼랑 끝까지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가도록 채찍질한다.
어쩌면 불행을 증가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노력 그 자체인 것은 아닐까? -p153-
원형 선호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매력적인 얼굴에 끌리는 것은 다양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발달시켜온 일종의 범용 정보 처리 시스템의 부산물일 뿐이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무한대의 정보들을 모두 처리하고 저장하기에 뇌의 용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마 매력적인 얼굴은 바로 이처럼 우리 뇌가 발달시켜온 원형에 대한 편향된 선호의 한 사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가설에 따르면, 평균적이고 대칭적인 얼굴은 원형과 유사해서 더 쉽고 유창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다. -p165-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의 가장 근본적 기능이란 고정관념과 사고의 틀을 깨뜨려 인간의 정신이나 마음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p181-
여행자의 딜레마를 예로 들어 이해를 돕자면, 낯선 곳으로 여행을 계획할 때는 여행하는 동안 매일 새로운 것을 하려고 마음 먹는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새로운 장소를 구경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여행 첫날 하루 종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나서 급격히 피곤해지고 이런 피곤은 익숙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여행 둘째 날에는 한국 식당 또는 한국에서도 자주 찾았던 유명 프랜차이즈 레스토랑 같은 익숙한 것을 찾아다닌다. 그러나 둘째 날을 모두 익숙한 것들로만 채우고 나면 이튼날부터 다시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고 계획을 바꾼다. 이처럼 새로움과 익숙함의 순환은 여행 기간 내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익숙함과 새로움 간의 딜레마는 어쩌면 우리 뇌의 작동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일생동안 끊임없이 익숙함과 새로움 간의 균형을 추구하며 가치를 학습해온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신체와 환경의 변화에 크게 영향 받지 않고, 생존을 위한 핵심적 가치들을 점차 터득하게 된다.
바로 직관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p181~182-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은 신체 항상성을 유지해야 할 숙명에 처하고 신체적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안해낸다. 이 과정에서 인정 욕구라는 가장 효율적인 보상을 찾아내고 이 보상을 얻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을 일생 동안 찾으며 학습한다. -p183-
타인의 기분이나 상황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사실 세상 모든 사람은 자기중심적이며, 자기중심성이야말로 생명이 부여하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성이다. 생명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복제를 남기고 사라지기 전까지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생명의 자기중심성은 알로스테시스 과정을 통해 다양하고 복잡한 가치를 만들어내고 사회화 과정을 거치며 주변 환경과 타협점을 찾아가도록 해주는 원동력이다. -p199-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모든 대상은 나와 별개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의 뇌가 신체의 항상성 유지에 필요한 정보만 선택한 것이다.
즉, 뇌의 관심을 외부 환경에서 내부로 옮겨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뇌가 설계된 방식을 역행하는 작동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뇌의 설계 방식 때문에 우리는 항상 괴로움이나 불안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타인 혹은 주변 상황에서 찾을 운명인 것은 아닐까? -p225-
뇌와 신체의 소통을 증진하는 방법이라고 하면 명상을 떠올리기 쉽다.
명상을 통해 뇌는 외부환경에도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사실 뇌는 인간이라는 유기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기관인데, 이런 뇌가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는 기능은 바로 신호 전달이다.
뇌와 신체의 원활한 소통을 회복하기 위해 명상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없을까? -p236~239-
뇌는 언제나 환경에 따른 신체 상태의 변화를 끊임없이 예측한다. 이 과정에서 예측한 상태와 실제 상태 간에 불일치를 검지하면 예측 오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 모든 시도를 통해 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예측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라는 이름의 자기감을 빚어내고 공고히 다지며 유지해 나가는 ‘뇌’의 일생이다. -p245-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심지어 우리가 고귀한 인간의 본성이라고 믿는 이타성과 공감 역시 자기중심적인 동기로부터 비롯한다.
하지만 나의 자기중심성을 인식하는 순간 역설적으로 나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내가 알아차린 자기중심성을 거부하며 감추려 하거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려 들면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자기 내부에서 감정의 원인을 찾아 수정하려는 감정 해소 방식은 뇌가 설계된 방식을 거스르는 가장 높은 차원의 기능이라 할수록 있다. -p259-
최근 사회심리학에서는 ‘경외감’이라는 감정에 주목하고 있다. 경외감이란 우리가 가진 세상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방대한 어떤 존재를 향해 느끼는 감정을 말한다.
경외감이 들때 ‘자기’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지거나 축소 된다고 하며, 겸손해지거나 겸허해지고, 나아가 타인에 대한 친사회적 경향성이 높아진다고 한다.
경외감의 놀라운 점은 자기에 대한 개념의 변화가 타인을 포함한 외부 환경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나 태도, 관계의 양상까지 변화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p296~297-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목표는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온전하게 확립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나의 욕구가 세상의 흐름과 어긋나지 않은 상태, 이 둘이 서로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 어우러져가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 도달하는 데 가장 현실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이야말로 다름 아닌 ‘자기 감정 인식’이다.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