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가끔 음원을 제공하는 사이트 중에서 자료를 찾아 봅니다.
네이버뮤직이 바이브로 통합되면서 해당자료가 치워졌기 때문에 현재 가장 친절한 시대별차트는 벅스뮤직입니다.
멜론뮤직도 충실한 편인데 거기는 스마트폰과 연동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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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자료의 콜렉션 앨범은 벅스뮤직 - 테마 - 연도별 차트에 있습니다.
사실 해방 이전 자료는 관심이 없지만 차분히 거슬러 올라갑니다.
1940년대 이전 베스트 가요 콜렉션
앨범 소개
# 한국 대중음악의 태동
현재까지 확인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레코드로 취입된 첫 창작곡은 성악가 안기영이 부른 '내 고향을 리별하고'를 꼽고 있다.
이후 1926년 8월,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사진)이 '사의 찬미'와 '부활의 깃붐' 등을 <닛오토> 레코드에서 취입한 후 귀국길에 현해탄에서 투신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1928년 빅터와 콜롬비아가 서울지사를 설입한데 이어 29년 영화주제가 '낙화유수'(이정희)가 발표되는데, 이 노래를 현 한국대중음악의 첫 창작가요로 삼고 있다.
당시 소리판으로 불리던 축음기 음반(SP, Standard Playing Record)은 직경 10인치 크기로 앞뒤 한곡씩 담을 수 있었다.
# 대중음악의 개화기, 저항가요 시대
1930년대는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꽃을 피웠던 시기이다.
이때를 전후해 '노들강변', '처녀총각' 등 신민요가 등장했다.
또한 직업가수 1호로 불리는 채규엽(사진)은 1930년 3월 직접 작사, 작곡, 노래한 '유랑자의 노래'와 '봄노래 부르자', 2곡을 발표,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 송라이터로 알려져 있다.
1937년부터 방송에서 '유행가'라는 용어 대신 '가요곡'이라 사용했고, 레코드 산업이 호황을 누렸지만 서울에 녹음실을 설치한 곳은 37년 오케 레코드사 뿐이었다.
1930년대에 발매된 음반 라벨에는 노래의 장르를 다양하게 분류해 놓고 있는데, 이중에서 유행가, 유행소곡, 서정소곡, 애정소곡, 영화주제가, 가요곡, 신가요, 만요 등이 오늘날 민요, 가곡, 동요 같이 세분화된 대중음악의 범주에 드는 것들이었다.
# 광복 그리고 남북분단 가요시대
1941년 조선연극협회와 연예협회가 통합, 조선연극문화협회가 창설됐고, 연예인들에게는 기예증이 발급됐고, 1943년부터 45년까지는 태평양전쟁으로 인해 음반제작이 중단되고 오로지 군국가요만이 울려퍼졌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우리말과 노래도 함께 해방됐으나, 당시 음반산업은 일본 레코드사들이 모두 철수한 뒤라 말 그대로 불모지였다.
1947년 고려레코드사가 설립됐고, 48년 작곡가 박시춘에 의해 본격적으로 녹음시설을 갖추고 설립된 럭키레코드사는 현인(사진)의 '신라의 달밤'을 1호 음반으로 출시했습니다.
남북분단의 혼란기를 전후해 월북/월남 등으로 가요계 또한 남북으로 갈라지며 이후 월북작가의 곡은 한동안 금지곡에 묶여 묻혀지기도 했습니다.
※ 1920~40년대에 인기를 얻었던 대표적인 노래 100곡을 선곡했으며, 각 연대별로 발표된 연도순으로 나열했습니다.
현인 '신라의 달밤' :1947년
1920년대 : 안기영 '내 고향을 리별하고' ~ 이애리수 '황성옛터'
1930년대 : 채규엽 '봄 노래 부르자' ~ 김영춘 '홍도야 울지마라'
1940년대 : 백년설 '나그네 설움' ~ 옥두옥 '청춘 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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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벅스뮤직에서 선정한 베스트곡 앨범과 자료출처 : https://music.bugs.co.kr/musicpd/albumview/6801
첫댓글 귀한 지료 감사합니다
이른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양귀비 꽃 같네요
좋은 날 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