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아타리가 개발한 슈팅게임, [퐁]
방식은 간단하다. 게임기에 동전을 넣는다. 화면에 움직이는 공을 막대로 쳐낸다. 검은색 바탕에 공처럼 생긴 흰색 ‘점’과 라켓을 연상시키는 ‘막대’만 화면 위를 왔다 갔다 한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탁구를 치는 것 같다고 해서 이름도 [퐁]이라고 지었다.
지금 보면 차마 ‘게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이 단순한 슈팅이 게임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타이틀 [퐁(Pong)]이다. ‘퐁’은 1972년 미국 게임회사 아타리가 개발한 슈팅게임이다. 이 게임은 게임뿐만 아닌 미국 IT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게임을 디자인한 ‘놀런 브시넬’, ‘알 알콘’은 물론 ‘스티브잡스’, ‘스티브워즈니악’ 등 역사를 바꾼 천재들이 이 게임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었고, 꿈과 열정을 펼쳤다. 전 세계 IT의 역사는 이 간단명료한 ‘탁구게임’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퐁]이전에 개발된 세계 최초의 전자게임 [스페이스워]. [퐁]에 큰 영향을 끼친 게임이다.
사실 최초의 게임은 1958년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만든 테니스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초의 전자게임은 1962년 MIT 공과대학 출신들이 만든 [스페이스워]다. 퐁은 [스페이스워]가 나온 지 10년 후에 발매된 게임이다. 그러나 게임의 역사를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타이틀은 [스페이스워]가 아니라 [퐁]이다. 퐁은 최초의 전자게임은 아니지만, 가장 먼저 상업용으로 제작되어 판매된 게임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탁구게임일까? 퐁의 출연은 그 당시 시대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1970년대 미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커다란 격변기를 맞고 있었다. 2차 대전 이후 수십 년간 계속된 냉전의 시대를 마감하고,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이 시절 미국과 중국의 외교수단은 탁구였다.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 주인공이 중국에 건너가 탁구경기를 하는 ‘핑퐁외교’의 한 장면처럼, 그 시절 탁구는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미, 중간 핑퐁외교가 한창인 1972년, 탁구게임 [퐁]이 나온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닌 듯 하다.
경제적으로도 격동의 시기였다. 미국의 두뇌로 불리는 실리콘밸리는 197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았다. 이 시절 가정용 컴퓨터가 처음 만들어졌고, 전자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스티브잡스’, ‘빌게이츠’, ‘스티브워즈니악’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수많은 천재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들었다. 최초의 상업용 게임 [퐁]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시대적 분위기가 깔려있었다.
아이러니 하지만 [퐁]의 성공은 실패에서 시작됐다. [퐁]을 만든 ‘놀란 부시넬’은 게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아타리를 창립해 초창기 세계 게임시장을 이끌었고, ‘스티브잡스’ 같은 걸출한 천재들의 멘토로도 유명하다. 부시넬은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면서 게임에 관심이 높았다. 당시 미국 대학가를 휩쓴 게임은 슈팅게임 [스페이스워]였다.
아직 상업용 게임이 나오지 않은 시절이라, 그 당시 게임은 미국 캠퍼스에 설치되어 대학생들의 오락거리 정도로 공유되곤 했다. [스페이스워]에 빠진 부시넬은 게임개발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대학졸업 후 회사에 다니면서도 그는 짬짬이 시간을 내 게임개발에 몰두했다. 마침내 그는 컴퓨터게임 [스페이스워]를 게임기용으로 재현한 [컴퓨터스페이스]를 개발했다. 중고 흑백텔레비전을 게임기 모니터로 장착했고, 25센트짜리 동전이 떨어지는 상자는 페인트 통을 사용했다.
논런부시넬. 퐁의 창시자이자, 아타리의 창립자. 전세계 게임계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출처: (CC)Javier Candeira at Wikipedia.org>
바둑을 좋아하는 부시넬은 바둑용어 ‘아다리’의 이름을 따 아타리를 창립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게임기가 상업용 게임기의 원형이다. 그는 너팅사를 파트너로 삼아 게임기를 대량 생산해 시판했다. 결과는 실패! [컴퓨터스페이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미 만들어 놓은 1,500대의 게임기는 팔지도 못하고 대부분 폐기처분됐다. 가장 큰 실패원인은 게임이 너무 복잡하다는 것이다.
비행선 조작, 중력장 이용, 하이퍼스페이스 점프 등 복잡한 기능들이 너무 많아 플레이어를 불편하게 했다. 게임방식을 설명하는 안내페이지를 따로 마련해야 할 정도로 게임은 복잡했다. [컴퓨터스페이스]의 실패는 부시넬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동전만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쉽고 단순한 게임이 통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단순성’과 ‘친화성’은 아타리의 게임철학으로 이어졌고, 더 나아가 애플의 디자인철학에도 영향을 준다.
알 알콘, 부시넬이 아타리로 영입한 ‘알 알콘’이라는 개발자는 [퐁]을 만든다.<출처: (CC)Alex Handy at Wikipedia.org>
어쨌든 부시넬은 게임회사를 직접 세우기로 결심한다. 평소에 바둑을 즐기는 그는 ‘아다리’라는 바둑 용어에서 이름을 따와 회사명을 ‘아타리’라고 지었다. 부시넬은 아타리에서 ‘알 알콘’이라는 개발자를 영입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변변한 일거리 없이 파트타임을 전전했던 알콘은 부시넬의 제안을 받고 아타리에 합류한다. 처음 알콘은 게임개발보다 회사에서 차를 지급해 준다는 조건에 끌려 아타리에 입사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는 “임금은 다른 회사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라 끌리진 않았지만 돈 안내고 회사차를 마음대로 굴릴 수 있는 조건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브시넬은 알콘에게 게임개발과정을 연습시킬 목적으로 몇 개의 자잘한 프로젝트를 던져주었다. 그 중에 하나가 탁구게임이다. 신입사원 알콘이 회사에 들어와 연습용 습작으로 별 생각 없이 만든 게임이 ‘퐁’이다. 게임사를 바꾼 위대한 혁신은 이렇게 아무도 예상치 않은 곳에서 시작됐다.
오리지널 [퐁]의 홍보전단지. 미국 최고인기 레저산업인 볼링장이 주춤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알콘은 연습용 게임이라고 대충 만들지 않았다. 회사는 일반적인 탁구게임을 주문했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추가했다. 원래 기획은 볼이 날아오면 그냥 쳐내는 방식이지만, 알콘은 공을 비껴 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라켓을 8개 부분으로 분할해 타점에 따라 공이 꺾이는 각도가 다르게 제작했다. 공의 속도도 추가했다. 원래는 일정한 속도로 날아가도록 기획됐으나 볼을 많이 칠수록 속도가 빨라지도록 바꾸었다.
무엇보다 [퐁]은 설명서가 필요 없는 간단한 게임이다. 부시넬은 늘 직원들에게 ‘술 취한 사람도 할 수 있는 쉬운 게임을 만들라’고 주문했다. 시연판을 본 부시넬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이 단순한 연습용게임이 최고의 상품이 될 것이라 직감했다. 부시넬은 게임을 [퐁]이라고 이름 지었다. 라켓 막대에 공이 부딪히는 소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아타리는 캘리포니아의 한 주점에 [퐁] 게임기를 설치했다. [퐁]은 미국 전역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퐁]의 인기를 보여주는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다. 한번은 기계가 고장 났다고 업주들에게 항의가 빗발쳤다. 알고 보니 기계마다 동전이 꽉 차서 동전투입구가 작동되지 않았던 것이다. 동전을 노리고 기계를 훔쳐가는 도둑들도 극성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했으면 텔레비전의 형광체가 타서 자국이 남거나 조작기가 마모되어 교체하는 일이 빈번했다. [퐁]때문에 당시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레저인 볼링장까지 타격을 입었다. [스타크래프트] 때문에 당구장이 주춤했던 국내사정과 비슷하다. 1972년 발매된 게임은 일년 만에 10,000대 이상이 팔렸다. 1973년엔 가정용 게임기로 발매되어 또 한번 인기를 끌었다. 아타리는 [퐁]으로 수천만 달러 이상 벌어들였다.
퐁이 성공하자 비슷한 게임들이 우후죽순 쏟아졌다. 부시넬은 이런 아류작들을 가리켜 “남이 사냥한 먹이를 가로챈다.”는 뜻에서 ‘자칼’이라고 불렀다. ‘자칼’은 ‘카피캣’과 함께 미국에서 ‘다른 제품을 모방하는 행위’를 비꼬는 용어로 쓰인다. 수많은 모방작들이 목을 조여오는 가운데, [퐁]은 또 한번 혁신의 기로위에 섰다. 두 번째 혁신의 주인공은 난데없이 나타난 18세의 괴짜청년이었다.
애플을 공동창업한 스티브잡스와 스티브워즈니악. 이들은 퐁의 싱글버전인 브레이크아웃(벽돌깨기)를 만든다
1975년, 알콘의 사무실에 경비원이 찾아와 “웬 히피 녀석이 로비에 들어와 행패를 부린다”고 말했다. 신기하게 생각한 알콘은 직접 그를 만났다. 수염도 안 깎고 지저분한 옷차림에 냄새가 지독한 청년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자신을 채용 해주지 않으면 나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알콘은 현장에서 시급 5달러짜리 기술직으로 그를 채용했다. 혁신과 창조의 대명사 ‘스티브잡스’는 이런 드라마 같은 일화를 남기며 역사에 등장했다. 사실 스티브잡스는 [퐁] 마니아였다. 그는 친구인 ‘스티브워즈니악’과 함께 밤 세도록 [퐁]을 즐길 만큼 광팬이다. 그런 그에게 아타리는 하고 싶은 게임을 실컷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아타리로 쳐들어갔다.
잡스는 다른 직원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의 불결한 위생상태와 괴팍한 성격에 질려 항의하는 직원도 많았다. 알콘은 할 수 없이 다른 직원이 퇴근한 저녁시간에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1975년 잡스는 돌연 인도로 순례여행을 떠난다며 회사에 사직서를 던졌다. 이번에도 알콘은 독일에 가서 게임기를 고친 다음 돌아오는 길에 인도 순례여행을 다녀오라고 지시했다. 다른 상사 같으면 불호령부터 떨어졌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것일까? [퐁]을 개발한 알콘은 잡스의 비범함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었다. 만약 그가 괴팍한 성격의 잡스를 쫓아냈다면, 지금의 애플이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이다.
스티브잡스가 만든 [브레이크아웃], 한국에는 벽돌깨기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알콘의 배려 덕에 잡스는 인도여행을 마치고 아타리로 복귀했다. 인도 승려복 차림을 하고 온 그는 알콘에게 “다시 일해도 됩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한다. 물론 알콘은 두말없이 받아주었다. 다시 저녁시간에 근무하던 잡스는 친구인 워즈니악을 불러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차지하고, 밤새도록 게임을 즐겼다.
당시 휴렛팩커드에서 일했던 스티브워즈니악은 이후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로 불리며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 창립한 인물이다. 워즈니악은 [퐁]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오락실용 [퐁]을 개인용으로 개조해 시도 때도 없이 즐기곤 했다. 그러던 중 잡스에게 미션이 떨어졌다. [퐁]의 후속작을 만들라는 지시다. 아타리 사장 부시넬은 [퐁]의 싱글 게임을 구상하고 있었다. 두 명이 함께 해야 하는 [퐁]을 혼자서도 할 수 있게 만들라는 것이다. 잡스는 워즈니악의 도움을 받아 4일 만에 게임을 만들었다. [퐁]의 완성판 [브레이크아웃]은 이렇게 탄생했다.
[브레이크아웃]은 화면 상단에 놓인 벽돌을 깨는 게임이다. 우리에게는 ‘벽돌깨기’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다. [브레이크아웃]은 1976년 출시되어 게임역사상 가장 위대한 히트작 중 하나로 남게 된다. 미국은 물론 바다건너 일본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다. 일본 야쿠자까지 개입해 게임의 복사판을 빼돌릴 정도였으니, 당시 그 인기가 실감이 난다. 아타리 입장에선 [퐁]의 모방작에 시달리더니, 이번엔 [브레이크아웃]의 복제품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잡스는 회사에서 받은 보너스를 가지고 나와 애플을 창립했다. 세계 최고기업 애플은 게임을 만들어 번 돈으로 탄생한 것이다. 아타리는 4인용으로 변형한 [퐁 더블], [쿼드라퐁], [슈퍼퐁], [닥터퐁] 같은 후속작들을 내놓는다. 일본 게임사 타이토는 [브레이크아웃]을 업그레이드시킨 [알카노이드]를 내놓았다. 조작기를 스틱이 아닌 휠로 바꾼 [알카노이드]는 80년대 국내 오락실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퐁]과 [브레이크아웃]은 이후 수많은 게임에 영감을 제시했다.
타이토에서 [브레이크아웃]을 업그레이드해 만든 [알카노이드]. 국내 오락실을 주름 잡았다
[퐁]은 게임 자체의 성공을 넘어 IT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퐁]의 게임철학은 스티브잡스의 애플 경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스티브잡스의 전기에서는 “아타리에서의 경험은 잡스가 사업과 설계에 대한 접근방식을 형성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기술되어 있다.
아타리에서 잡스와 함께 일한 론 웨인은 “(아타리 게임의) 단순성이 잡스에게 전염되었고, 그럼으로써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갖춘 제품 전문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아타리 창업주 ‘놀런 부시넬’은 스티브잡스의 ‘멘토’였다. 잡스의 전기를 보면 “‘안된다’라는 대답을 용인하지 않는 부시넬의 열정적인 모습은 젊은 스티브 잡스를 늘 감명시켰다”고 한다.
[퐁]이 출시된 지 10년 후, 부시넬이 떠난 아타리는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 가장 오만하고 우둔한 조직으로 변한다. 그리고 1983년대 시작된 ‘아타리 쇼크’로 전 세계 게임시장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다. ‘아타리 쇼크’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따로 다뤄보고자 한다. ‘단순성’과 ‘친화력’을 내세운 [퐁]의 혁신정신은 비록 아타리를 떠났지만, 대신 애플로 넘어가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참고자료 러셀 드마리아, 조니 L. 윌슨, 송기범 역, [게임의 역사], 제우미디어, 2002.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역, [스티브잡스], 민음사, 2011. 데이비드 A. 캐플런, 안진환 역, [실리콘밸리 스토리], 동방미디어, 2000. 스티븐 켄트, 이무연 역, [게임의 시대], 파스칼북스, 2002. 위키피디아 ‘퐁’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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