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적게 먹고...
최대한 많이 걸어라...」
현대인의 건강 슬로건이다.
걷는 길로서는 충분히 아름답고 적당히 다채로우며
쉴 새없이 흥미진진한 제주 올레!
오늘은 그 길의 대단원에 의미심장한 방점이 찍히는 날이다.
즉, 세계 문화유산 제주에 또 하나의 보물같은 덤, 비단길이 더해지는 날이다.
2012년 11월 24일(토요일) 아침.
밤새 세상을 다 쓸어버릴 것 같은 기세로 바람을 쏟아내던 하늘도
다행히 오늘의 의미를 아는지 비교적 청명한 하늘색을 보인다.
어제 바람의 길 올레 20코스에서 쌓인 여독이
아직도 은근히 남아 있지만 오늘은 매우 특별한 날.
서둘러 행장을 꾸리고 새로운 길, 화살표의 끝점을 찾아가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구좌읍 하도리 해녀 박물관.
올레 20코스의 끝 점이자 21코스의 시작점.
그리고 특별한 날,
오늘은 올레 21코스의 개장 축하겸, 제주 전체 올레 26코스 대장정의 완공을
자축하는 행사 마당이기도 하다.
제주올레는 제주섬을 에둘러 순환하는 메인코스 21개와
중산간 지방을 선회하는 2개의 내륙 알파코스(7-1,14-1),
그리고 우도(1-1), 가파도(10-1), 추자도(18-1)를 아우르는 3개의 섬 알파코스,
그래서 총 26개 코스로 구성되고
그 길이의 합은 서울 부산 간 거리보다 조금더 먼 425km에 이른다.
사단법인 제주 올레 서명숙 이사장(54).
오늘의 올레가 있게 한 장본인이시다.
어느날 문득, 심신을 치유하고자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 도보 여행에서
우리 토종 걷는 길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풍광 수려한 이 곳 제주땅에,
불현듯 옛길을 불러내고 오래전에 잊혀진 길까지 샅샅이 더듬어서
급기야는 바다도 품고 오름까지 오롯이 모셔다가
삽질 더하고 호미로 다듬어서 오늘에 이르렀다고.
2007년 9월.
그 이름도 시작이라는 의미의 시흥리(始興里)에서 첫길을 연지 5년 2개월,
역시 그 이름조차 끝점인 종달리(終達里)에서 마침표를 찍는 오늘,
마침내 그 시종(始終)을 마감한다.
이제 비로소 우리도 제대로 된 명품길 하나를 소유하는 날이다.
전국 각지에서 많은 하객들이 모였다.
제주 지사도, 수많은 취재진도 하객으로 그 인파에 섞이고.
물론 멀리서 날아온 우리 일행도 축하객의 일부로 이 자리에 섰다.
오로지 손과 발, 그리고 세월을 섞어 오늘을 만들었던 올레길의 주인공!
서명숙 이사장은 오늘 마침내 더운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말했다.
자기 자신도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다고.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주변에서는 제 정신이 아니라는 지탄까지 받아가며...
그래서 이 건 기적이라고...
대부분의 경우, 이런 기적을 혼자 만들 수는 없다.
반드시 주연급 조연들, 숨은 도우미들이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그늘에서
묵묵히 심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결국은 오늘을 만들어낸 올레 공로자들,
각 코스의 올레지기들.
오늘 한 번의 박수로 이 분들의 헌신을 갈음할 수 는 없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젠가는 올레 기념비에 당신들의 이름이 오를 날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5년 여의 흔적이 한 시간 남짓의 연출된 축하연으로 조촐하게 마감되었다.
이름 내세우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떨어져 이어진 길.
이제는 그 길을 겸허히 걸어 가야할 차례.
이제까지는 당신들의 보람찬 노동이 이 길의 주인공이었지만
지금부터 그 길의 주인공은 감히 우리 나그네들의 몫!
감사히 음미하며 그 길을 간다.
올레 패스포트에 입도 스탬프도 확실히 찍고,
모처럼 오늘은 길벗들도 엄청 많은 날!
항상 처음은 그렇듯, 씩씩하게 출발~!
뜬금없이 뭍으로 올라와서 본의아니게 화석으로 굳어버린 어선들도
오늘은 어엿한 하객의 자격으로 초청석에 앉았다.
다들 신났다.
일바지(몸뻬바지) 입은 학생들이 길 떠나는 나그네들을 응원한다.
올레 21코스는...
하도리 해녀 박물관에서 출발하여 연대동산-낯물밭길-별방진-각시당-토끼섬
-하도 해수욕장-지미봉 밭길-지미봉 정상-종달항을 거쳐 종달 바당에서 마감하는
총길이 10.7km의 코스 난이도, 중급의 길이다.
옛날에 봉화대가 있었다는 연대 동산,
길머리에서 만나는 작은 언덕길이다.
누군가 길 위에다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주제가 궁금하다.
누가, 왜?
시야가 확 트인 맑은 날이면 여기서
전남 여서도를 볼 수 있다는 데, 오늘은 그 정도의 시정거리가 안된다.
오늘 정말 올레꾼들 많다.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이 길을 다시 걸을 날이 있을까?
올레길이 만든 경이로움이고 결국은 이런게 기적이다.
어제 걸었던 그 길처럼 제주의 길은 이미 충분히 익숙하지만
그래도 제주의 길들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밭도, 돌담도, 멀리 바다의 풍경도, 겨울턱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마저도 좋다.
게다가 오늘은 수많은 길동무들의 다양한 뒷모습까지 덤으로 자리해 더 좋다.
올레 21코스는 제주섬의 가장 동쪽 끝점을 가는 길이다.
제주섬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이란 말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벌써 눈에 익은 뒷모습도 보이고
때론 두 세 번씩 마주치다보니 구면인 올레꾼도 생기고...
그래서 길동무 아니던가.
노상에서 즉석 연주가 가능한 음악 동아리들도 축하연에 합세했다.
그들은 배낭 대신 전용 악기로 중무장을 했다.
별방진(別防鎭),
외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위해 돌로 쌓은 성벽.
출발지로부터 2.6km지점이다.
제주 올레는 채마밭을, 마을 골목을, 온갖 갈 수 있는 길들을 내어 주더니...
마을주민들은 그들의 은밀한 화장실까지 내어 주셨다.
쉬운 듯 보이지만 말처럼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새로 복원한 별방진...
호기심 왕성한 나그네는 결코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성곽높이 올라가서 마치 처음보는 것처럼 바다도 보고,
그도 모자라서 가장 높은 위치에서 인증샷도 담는다.
그래봐야 똑같은, 어제 봤던 그 모습 그 대로인데도...
길은 다시 본격적으로 바다를 감는다.
지루할 틈이 생기면 길은 기특하게도 스스로 자세를 알아서 바꾼다.
그리고 해풍은 쉬임없이 애꿎은 나그네의 옷깃을 붙잡는다.
어제는 왕이 왔던 길을 걸었는데 여기는 대통령이 왔던 길이란다.
21코스 4.0km지점.
점심 식사를 여기서 하려고 계획했는데 발디딜 틈이 없다.
할 수 없이 허기진 배를 부여안고 가던 길로 다시...
올레 20, 21코스는 식당들이 풍족하지 않다.
적당히 휴대하고 온 이동식을 활용해서
마른 땅 골라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주저앉아 풍찬노숙.
만일 진짜 집이 없고 돈이 없어서 저러고 있다면 얼마나 불쌍할까.
스스로 선택한 올레길에서는 이마저 행복한 풍경이다.
올레 마스코트 할머니들,
길 걷는데 불편하지 않느냐고 여쭸더니
춥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으시단다.
사람들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웅성웅성 서있다는 건
그곳에 뭔가 있다는 의미!
중간 스탬핑 포인트였다.
이 곳을 거쳐 갔다는 인증 스탬핑을 꾹 눌러 찍는다.
참고로 제주 올레 패스포트는 유효기간 상관없이 두 개가 필요하다.
크게 나눠 동부권 패스포트와 서부권 패스포트.
각권 15,000원 정도~!
비자가 필요없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
올레길의 창시자, 아름다운 사람, 서명숙 이사장과도 어깨를 나란히...
어쩌면 이렇게도 높낮이가 똑같을까?
옷 색상까지 비슷.
우리 혹시 도플갱어 아닌가요~^^
십 오륙년 후의 내 모습이 그녀에게서 어렴풋이 투영되기도.
지상파 방송사들도 죄다 출동했다.
한 여인의 조금 앞선 아이디어가 만든 대단함이다.
길위에는 온통 막걸리다.
산에서만 통하는 술이 아니다, 막걸리는...
길에서도 막걸리가 대세다.
세상, 얼마나 아름다운가~!
백주 대낮에 묘령의 처자들이 막걸리로 난장을 꾸려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
그러고도 시집가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않는
정말 좋은 세상!
각시당, 마을의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바람의 여신, 영등 할망을 달래는 곳, 신성한 곳이지만 세찬 바람도 피할 겸, 여기서 시린 속을 달래기로~! 모든게 부족하고 방전된 지금, 속성 에너지로 충전을 해야 할 비상 사태이다.
다들 말리지 마세요~!
지금은 긴급 충전중~!
남들의 시선은 과감히 배제, 일단은 살기 위해 무한 흡입 모드~!
컵을 미리 준비하지 않은 우매한 친구를 마구 때릴 수는 없고,
그래서 그냥 식도에 부었다.
그래 이 맛이야!
내가 언제 잔맛으로 술먹었나, 술맛으로 술먹었지!
이 맛은 체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이 길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나를 너무나 잘 아는 친구가 컵을 준비하지 않은 것은
그 깊은 까닭이 있을 것이다.
이 제주 땅에서는 바람이 그렇게 불듯이
막걸리도 잔없이 나팔 불듯이 그렇게....
(21코스에서 일어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첫댓글 허~참~!!
퇴근 시간에....대단히 야만적인 도발을 하시는 군요~!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서 백주 대낮에 처자들이 노상 나발을 불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는 세상!
그래서 12월 19일, 무조건 투표하셔야 합니다.
오늘은 못 볼 것을 본 죄로 막걸리 집으로~! 휘리릭=====3
그래서 해리슨로드님도 퇴근후 막걸리 나발을 부셨는지요?? ^^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 장면은 음주가 아닌 충전이랍니다. ^^
우리는 나발을 분다거나 하는 야만적 음주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술을 어른들 앞에서 제대로 배웠거든요~!
흠....
ㅋㅋㅋㅋ서명숙님과 도플갱어..ㅋㅋ
정말...사실 그동안은 저분 볼때마다 나닮았다고 생각했는데...ㅋㅋ
참 대단한 분. 이번해에 안좋은일까지 더해져서 그눈물에. 만감이 교차했을듯요.
이런 걷기행사에 함께하는것도 멋진 길이될것 같아, 김작가님의 정보력과 실천력에 다시금 박수를^^
이번은 정말.바람바람바람,엿네요???
늘 안내서아랫쪽에서만 글자로 읽던 올레지기님들.이구나.....^^
저도 14코스인가? 거기서 도대체 식당은 언제 나오냐고, 올레지기에게 전화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작은 감동을...
그렇게 그런 작은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제주 올레길이기에,
그 길을 걷는 나그네는 더불어 행복할 수 있나봅니다.^^
그런데, 꽃방글님도 서명숙님과 닮았다구요??
그럼, 꽃방글님과 나도 닮았나?? ㅎㅎㅎ
머나먼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가는 사람은 많았어도 직접 우리 땅에 그런 길을 만들려는 사람은 드물었는데 서명숙 이사장님은 한생각이 범인(凡人)보다 앞서신 분이라 보입니다. 충주에 깊은 산속 옹달샘을 만드신 아침편지의 고도원님도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시죠. 세상에는 남들보다 한생각이 앞선 이유로 힘든 일을 감당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바톤을 이제 김작가님께서 받으신 것은 아닌지 혼자 주절거려 봅니다. 에너지 음료로 충분히 충전하시고 새해에도 동서남북 사해팔방 종횡무진 누비시길 기원하나이다!!!
그렇게 막중 임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시다니...
일단 에너지 음료로 충전 좀 더 하고 생각해보겠습니다. ^^
Rice Wine, 충전에 으뜸이죠!!!
ㅋㅋㅋ Rice Wine은 아무리 꼭꼭 숨겨놔도 잘 찾아낸다니까요~^^
제주도의 올레길을 여신 분이 따로 있으셨네요 제주도에서 관광객을 위해 처음 터놓은 길이 아니였군요.흐음
역시 발빠른 김작가님이세요...
올레 길도 좋지만 차에 기름 떨어지면 차 멈춰요.. 김작가님 막걸리 충전 방전전에 꼭 잘챙기세요 손후덜덜 다리후덜덜 떨리기전에..... 빨대라도 꽂아다님서 급한데로 흡입!!
함께 북한산 갔을때, 정상 봉우리에서 꺼내놓으시던 막걸리 생각이 나네요.
"김작가님을 위해 챙겨왔어요!!" 했던...
그 때도 방전됐던 제가 그 막걸리 먹고 충전했었죠?? ㅋㅋ
그런데 막걸리에 빨대 꽂고 다니며 급할 때마다 흡입하면....진짜 웃기겠다.ㅋㅋㅋ
억 제주막걸리 혼자 마시는 사진 맛있어 보입니다^^
병째 들고 마셔서 더 맛깔스러워 보이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