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기이한 인연
[1]
동해(東海).
망망대해(茫茫大海)는 칠흑의 암야(暗夜) 속에서 죽음과도 같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쿠쿠쿠쿵!
파도가 음모의 냄새를 짙게 풍기며 뱃전을 친다. 마치 심해(深海)에서 은밀히 떠오른
소름 끼치는 살심(殺心)인 양.
구월 그믐.
야공에는 잔별만이 드문드문 편광을 내비치고 있을 뿐 달도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물살을 가르는 한 척의 거선(巨船)은 중원의 북단인 요동반도(遼東半島)에서 출발하여
남쪽으로 항로를 잡고 있었다.
선체는 하나의 섬인 양 거대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순풍에 배는 돛을 한껏 펼친 채 순
항 중이었다.
기이한 것은 배 전체를 휩싸고 도는 침묵이었다.
그 크기나 위용에 비해 소음이라곤 일체 없었으며, 어찌된 영문인지 불빛 한 점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순풍을 따라 침묵의 항진을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거선의 중앙부에는 배의 규모에 걸맞게 무려 십 장 높이에 달하는 돛대가 세워져 있었
는데, 꼭대기에 매달린 커다란 기(旗)만이 바람을 받아 연신 펄럭이고 있었다.
만일 무림정황에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자가 그 기를 보았다면 크게 놀랐으리라.
금황색 바탕에 장방형의 깃발에는 열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었다. 각기 십방(十方)을
향해 용트림하듯 입을 딱 벌리고 있는 혈룡(血龍)의 문양은 바로 한 무림단체의 상징
이었다.
십방무림통사단(十方武林通社團)!
무림인 치고 누가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그들은 신화를 만든 사람들로 사도무림(邪道武林)의 전통을 무림에 뿌리내린 자들이다
십방무림을 총괄하는 무림역사상 최강의 단체, 그들은 사(邪)의 법과 도(道), 철학(哲
學)까지를 완성시킨 장본인들이었다.
이름 그대로 십지(十地)에 두루 자신들의 영역을 일궈냈으며, 나아가서는 고금 이래
최초로 무림에 정사이분(正邪二分)의 체제를 확립시킨 불멸의 단체였다.
그런 십방무림통사단의 표기인 영기를 꽂은 거선이 소리 소문도 없이 동해상에, 그것
도 그믐의 야음을 틈타 나타났다. 이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가?
쏴아아아.......
파도 소리를 동반한 해풍은 끊임없이 배를 훑고 지나간다. 습한 기운 탓인지 밤바다의
야음은 상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
선상(船上)에는 두 사람이 우뚝 서 있었다.
바람을 전신으로 받고 있는 그들의 눈에서는 시종 아무런 표정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들 중 중년인을 살펴보자면, 그는 일신에 자삼(紫衫)을 걸치고 있었다. 용모는 수려
했으며 피부 또한 지나칠 만큼 희었다.
특히 눈매가 인상적이었는데 그 눈에는 누구도 따르지 못할 무궁한 지혜가 담겨 있는
듯했다. 허리에는 옥대(玉帶)를 둘렀으며, 한 자루의 옥검(玉劍)을 단정하게 차고 있
었다.
그의 손은 여인의 섬섬옥수인 양 희고 섬세했다. 우수에는 군선(君扇)이 쥐어져 있어
허리에 매달린 검만 아니라면 만학(萬學)에 통달한 일대문성(一大文聖)처럼 보일 듯했
다.
다만 그의 기도는 달랐다. 전신에서 만인을 질식케 할 만한 한기(寒氣)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눈에서는 금석(金石)이라도 녹일 듯한 섬뜩한 자광(紫光)이 뻗어 나와 극고의 마문기
공(魔門奇功)을 익힌 자에게서나 엿봄직한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천하에서 이런 기도를 풍기는 인물은 결코 흔치 않다. 고작해야 손가락을 꼽을 정도밖
에는 없을 것이다.
그의 뒤에는 한 명의 흑삼청년(黑衫靑年)이 그림자인 양 서 있었다.
청년은 전신이 검었다.
일신의 흑삼은 물론 하시라도 발검할 수 있도록 왼손에 비스듬히 쥐고 있는 검도, 신
고 있는 혁화(革靴)도 온통 흑색 일색이었다.
청년은 이십대로 보였는데 나이에 걸맞지 않게 표정이 목각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
다. 너무도 냉연하여 무심(無心) 그 자체였다.
도무지 젊은이다운 활력이나 충동적인 점은 그에게서 눈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 없었
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 그의 우수에 살아 있는 뱀을 연상케 하는 채찍이
칭칭 감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쏴아아아!
파도가 조금 높아졌다.
영원히 열려질 것 같지 않던 흑삼청년의 얄팍한 입술이 열렸다.
"총사(總師), 이번 일의 성공으로 계획이 적어도 십 년은 앞당겨질 것입니다."
중년인의 답이 이어졌다.
"아직은 안심할 단계가 아니다. 제룡(帝龍), 천라대성부(天羅大星府)에서는 이미 우리
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만상구중련(萬像九重聯)의 존재도 언제든 상황을 뒤
집을 만한 변수로 작용될 수 있지."
그의 음성은 침중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십방무림통사단의 총사란 사도무림을 통틀어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至下萬人至上)의
지고무상한 지위였다.
사중제일뇌(邪中第一腦) 천뇌만기자(千腦萬機子) 북리무해(北里無海).
이러한 명호를 지니고 있는 그는 명실공히 십방무림통사단의 제이인자였던 것이다.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들도 범상치 않았다.
천라대성부란 현무림의 태두격인 대정천(大正天)을 말한다.
정도십문(正道十門)을 위시하여 총 칠백팔십이 개의 정도류가 가입되어 있어 천 년 무
림사상 최대 규모를 달성한 연합체였다.
반면 만상구중련은 버려진 자나 패배자, 온갖 한(恨)으로 뭉쳐진 자 등이 결성한 무림
의 숨은 하늘이었다. 그들의 잠재된 힘은 가히 측정할 도리가 없을 정도였다.
북리무해의 말이 이어졌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무림은 혈겁에 잠길
테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선수(先手)를 쳐 거점을 확보해 두는 일 뿐이다."
그의 음성은 밤바다만큼이나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때 갑판으로 통하는 선실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하나의 인영이 미끄러지듯 출
현했다. 허공에 은은한 방향(芳香)을 뿌리는 그 인영은 백의궁장을 한 여인이었다.
삼단 같은 머리를 보옥(寶玉)으로 치장하여 틀어 올린 여인은 구슬이 박힌 면사로 안
면을 가리고 있었다.
굳이 용모를 확인해 보지 않아도 전체적인 선의 유려함으로 미루어 그녀가 빼어난 미
녀라는 점은 한 눈에 짐작할 수 있었다.
"의외로군요. 두 분께서 따로 나와 밤바다를 감상하시다니, 이런 취미를 가지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궁장녀의 음성은 신태에 비해 의외로 앳되게 느껴졌다.
북리무해는 그녀를 향해 빙글 돌아섰다. 그는 정중히 포권하더니 담담한 음성으로 말
했다.
"어서 오시오, 공주(公主). 밤바람이 차오이다."
궁장녀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견딜만 하니 염려 마세요."
그녀는 반짝이는 눈을 들어 북리무해를 정시했다.
"지금쯤 중원에는 추색(秋色)이 완연하겠지요?"
"아마도 그럴 것이오."
"아! 하루만 더 가면 중원 땅을 밟을 수 있겠군요."
궁장녀의 음성에는 기대감이 충만해 있었다.
북리무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람만 순조롭게 불어 준다면 더 빨리 당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궁장녀는 섬섬옥수로 흩날리는 머리칼을 매만졌다.
"빨리 보고 싶어요. 중원은 나에게 언제나 즐거운 공상과 꿈을 심어 주었거든요."
그 말에 북리무해의 입가에는 은은한 웃음기가 떠올랐다.
"중원을 보고 난 후에는 기대 이상의 만족을 얻게 될 것이오. 그 곳은 우리가 살던 곳
에 비하면 지상낙원(地上樂園)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그의 심중에는 정반대의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공주, 안됐오만 공주의 환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할게요. 중원에는 그대가 모르는 현
실이 존재하니까.'
궁장녀의 옥음이 그의 귓전을 울렸다.
"호호, 이번 행차에는 부왕(父王)께서도 크나큰 관심을 보이셨어요. 저야 첫강호행이
니 만큼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이지만요."
'철부지!'
북리무해는 더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잠자코 있었다. 성격상 이런 대화는 피하고
싶은 것이 그였다.
"총사."
묵중한 제룡의 음성이 그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
제룡은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 쪽을 보십시오."
"음......."
북리무해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제룡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정체불명의 괴선(
怪船)이 한 척 떠 있었던 것이다.
"무슨 배죠? 저건?"
궁장녀의 물음에 북리무해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나도 모르겠소."
밤바다 저 편에 시커먼 괴물처럼 떠 있는 배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전조를 알려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북리무해의 눈에서 특유의 자광이 번쩍 빛났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명했다.
"접근해라!"
첫댓글 감사히 즐독하겠습니다
좋은밤 보네세요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즐독 합니다!
즐독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