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摘果;열매솎기) 작업
일시 : 2011-05-19(목) 09:00~16:00
장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지금동 배 농장
참석인원 : 우리회사 서울시내 사무소장 일부와 노동조합집행간부 등 약60여명
작업내용 : 배가 튼실하고 상품성이 좋게 잘 자라도록 촘촘히 달린 열매를 적절하게 솎아 내는 작업
오늘은 노사합동 농촌일손돕기 봉사활동 가는 날이다.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마다 약간의 긴장과 설렘으로 잠을 설치는 경우가 내겐 있다.
매주 가는 청실의 산행에도 그러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오늘 가는 농촌체험 활동은 더 그렇다. 명색이 '봉사'라는 이름을 달고 가는데 농가에 누가 되면 안 되는데~~~
아침 8시에 집결지에 모여 간단히 인원 점검을 하고 작업장인 남양주로 출발.
출발할 때 가랑비가 오락가락 내려 올 작업이 걱정되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비는 그치고 날씨가 적당히 흐려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작업하기에 좋을 것 같다.
8시 50분에 배농가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여 적과작업 요령에 대해 간단하게 교육(?)을 받고 농장주가 이끄는 데로 삼삼오오 팔려(?) 나갔다. 새벽 인력시장에서 간택(?) 받는 것처럼~~~
![](https://t1.daumcdn.net/cfile/cafe/15105A4E4DD9B92808)
<올 우리 조가 작업할 배 과수원>
작업내용은 이렇다.
배나무 가지에 잎이 돋아나는 마디가 있는데 그 마디마다 배 열매가 열리는데 많게는 7~8개까지 달린 것도 있다. 여러 개의 열매 중에서 마디마다 1개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솎아 내야 한다. 처음에 달린 열매를 그대로 두면 일정한 영양분을 서로 빨아먹어 크지 못하고 돌배가 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425D4C4DD9BCEA17)
<before>
![](https://t1.daumcdn.net/cfile/cafe/14481A4C4DD9BCE704)
<after>
아무 열매나 솎아 내는 게 아니라 솎아 내는 데도 우선 순위가 있다. 우선 그 마디에서 숫배를 가려낸다. 숫배는 열매 끝이 길쭉하게 튀어 나와 있어 쉽게 구분된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길게 튀어 나오면 수컷이다. 농장주의 말은 숫배와 암배 모두 맛이나 영양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하는데 가격은 암배가 3배 비싸다고 한다. 배 수확할 때 숫배는 배즙 짜는 용도로 쓴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 가장 반듯하게 생긴 열매 하나만을 남겨 두고 모두 잘라낸다. 어린 열매일 때 모양이 좋은 배가 수확기에도 좋은 모양을 유지한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41EE4C4DD9BE2F24)
<숫배 ; 꼭지 부분이 왕관 모양으로 불룩 튀어나와 있다.
배즙용으로 소비되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보기 어렵다>
적과작업은 고통스런(?) 선택의 연속이다. 원숭이가 상대에게 친밀감의 표시로 털고르기를 하듯, 이파리 사이를 샅샅이 뒤지고 잎 뒤에 숨어 있는 열매들을 모두 검색해서 가장 좋은 놈 하나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잘라야 한다. 여기서 고통스럽다는 뜻은, 어떤 마디는 좋은 열매만 여럿 달려 있고 어떤 마디는 숫배만 달랑 한 개 달려 있는 경우가 있어, 때론 좋은 놈을 자르고 때론 못된 놈을 살려 둬야 하는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못난 열매나 숫열매도 홀로 있으면 살아 남는다. 여기선 이웃을 잘 만나면 도태 당한다. 그래서 줄을 잘 서야 한다.
현재 배 열매가 콩알만큼의 크기로 자랐는데 지금이 적과작업의 적기라고 한다. 열매가 더 자라면 눈에 잘 띄어 가려내기는 쉽지만 도태될 열매가 영양분을 더 빨아먹는 것을 막기 위해 서둘러 작업을 해야 한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잘 생긴 열매를 자르기가 가슴이 아프다고 봉사활동 나온 직원들이 말하자 농장주는 조직(?)을 위해서 도태시킬 놈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애시당초 과감하게 잘라버리라고 한다. 아이구 무서버라~~~!!
마디마다 한 개만 남겨 둬야 하므로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과감하게~~~흑흑흑
어느덧 흰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해님는 중천을 향해 달려 가는데 아낙 한 분이 새참을 이고 과수원으로 오신다. 월매나 기다렸던지~~~ㅎㅎㅎ
아~나, 왜 이러지?? 염불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그래도 본능은 숨길 수 없지.
배나무 그늘 아래서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고 열무김치 한입 싹뚝~~!!!
캬~~~~!!!! 쥑인다.
안빈락도, 유유자적, 귀거래사 등등 별별 사자성어가 다 생각나고 흘러간 유행가 홍세민의 '흙에 살리라'도 떠오른다.
이런 목가적인 낭만을 품고 있는 것이 사치스런 생각임을 깨닫는 데는 그래 오래 걸리지 않았다.
농장주와 농촌현실이나 농산물 가격파동에 대해 얘기를 나누니 농촌 삶이 고단하고 어렵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된다.
배꽃이 필 때면, 요즘은 벌이 없어, 사람이 꽃가루 수정작업을 해줘야 한다. 적과 작업을 하고 병충해와 싸우면서 애써 가꿔 놓으면 새들과 일전을 치러야 한다고 한다
여기까지 용케 잘 버텨 오면 수확기 직전에 태풍이 마지막으로 도사리고 있다.
모든 역경과 난관을 잘 극복하고 기후도 잘 받쳐 줘서 풍작이 되면 이번에는 가격 폭락이 기다리고 있다.
작황이 좋아 배를 많이 수확하면 가격이 폭락하고
가격이 좋으면 흉년이라 내다 팔 배가 없고~~~
적절하게 수확하고 적절한 가격을 받는 것이 정작 어렵다.
각설하고 이젠 쫌 쉬었으니 또 작업합세~~!
작업하기 좋게 배나무가지가 옆으로 뻗도록 와이어를 거미줄처럼 엮어 뒀는데 때론 땅 위에 서서 때론 사다리를 타고 하늘만 쳐다보며 작업을 해야 한다. 노동의 강도가 높은 작업은 아닌데 종일 목을 뒤로 저치고 있어야 하므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문득 바티칸시티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를 그린 미켈란젤로가 떠오른다. 그는 4년 동안이나 천정화를 그렸다고 하던데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농촌일손돕기 가서 별 생각 다하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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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뎌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우리는 농가에 폐를 끼칠까 봐 도시락을 준비해 갔는데 농장주는 잡곡밥으로 식사준비를 했다. 잡곡밥은 우리가 먹고 도시락은 농가에서 먹고, '교차식사'라고 해야 되나?
준비해간 기름진 도시락보다는 농가에서 준비한 푸성귀 만찬이 더 구미에 당겼다.
점심식사 후 같은 작업이 반복되었다.
일 자체는 힘든 게 아니어서 작업하면서 농업인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의 현실, 농산물 가격 파동으로 불안정한 농가소득 등등,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직접 들으니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든다.
작업이 끝날 즈음에 눈에 티가 들어가 씻어 내느라 무척 고통스러웠다. 하마터면 앰블런스에 실려 갈 뻔 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인지 온 몸이 뻐근하고 특히 목덜미가 아파 혼났다.
올 내가 작업한 배가 튼실하게 잘 자라서 올 가을 농가 소득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
일일 농촌 체험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힘은 들었지만 보람 있는 하루였다.
첫댓글 옴메나~~산돌님~~좋은일하고 오셨네요~~존경합니다~~한개의 튼실한 배가 열리기위하여~그~많은 작업이 필요한줄은 몰랐네요~이젠부턴 배를먹을땐 껍질도 얇게 깍아서 남김없이 잘 먹어야겠습니다~수고하셨네요~~
중간의 사진은 앞집 쌀집아저씨 푸근한 모습입니다~~
쌀집아저씨?
집에 마침 쌀이 떨어졌는디~~~ㅋㅋㅋ
와!! 산돌님이 농장주 같습니다.
은행 지점장 보다 더 잘 어울리는데요.
폼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산돌님 봉사정신에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농장주? 요샌 농장주가 반재벌입니다.
근데 서울 근교 과수원은 임대농이 더 많아요~~~
엥..댓글달았었는데 어데로 갔는지..^^ 산돌님 애쓰셨습니다~~~
회장님이 무슨 내용을 쓰다가 달아났는지, 그 맘 다 압니다.
굳이 복원안하셔도 됩니다.ㅋㅋㅋ
와우,,역시 산돌님이시네요~~
부끄럽습니다. 겨우 하루 일하고 생색을 넘 많이 내는 건 아닌지~~
농촌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는데~~~
산돌형님~수고 많이 하셨습다..^&^
감사합니다. 좀 더 하는건데~~~
정말 배 농장 쥔장같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쫌 어울립니까? 귀농해도 되나~~??
ㅋㅋㅋ 딱! 어울리구마는~~~
농사 잘 지을 것 같아 보입니까?
배즙용 배가 따로 있다는거 첨 알았습니다...
맛은 같은데 모양이 예쁘지 않으면 값을 제대로 못받는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