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누러 가기 전과 누고 난 다음의 마음이 바뀐다는 얘긴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늘 한결같지 않다는 거죠.
살면서 계획이 무너진 게 한두 번이었나요?
절박했을 당시 마음먹은 것도 해결을 보고난 후에는 ‘언제 그랬냐?’ 싶은 때도 많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민 갈 때의 포부나 계획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오로지 처음처럼 ‘직진’하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네요.
이민 당시 처음 가졌던 제 계획은 3년만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는 거였죠.
계획대로 돈이나 벌고, 유럽 여행이나 자유롭게 실컷 하다 돌아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3년 안에 주어졌던, 혹은 주어졌을법한 개인적 혜택이나 이익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곧 집으로 돌아갈 껀데 그깟 게 뭔 소용이 있냐는 식으로 앞뒤 생각 없이, 계획 없이 묵묵히 일만 했습니다.
계속해서 월급은 월급대로 받고, 공짜로 공부를 더 할 수 있었었는데도 불구하고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돌아갈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말입니다. 요때 같이 간 동기동창들의 마음 모두 같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이 싫어지기까지 하더군요.
그 풍요로움과 합리적인 사고방식, 그 자유로움과 질서 정연한 삶, 점잖고 예의바른 듯이 보이는 독일 사람들의 매너에
매료되기까지 했습니다.
갈수록 가관(可觀)이라고, 거무튀튀한 피부색깔과 키 작고, 가슴이 좁은 한국 사람을 비하하기까지 했죠.
반대로 헌칠한 키는 기본, 널찍한 가슴을 지닌, 거기다 희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독일 사람들이 관대하고, 너그럽고,
넉넉하다고 느껴졌고, 되게 멋있었죠.
요러니 독일에 머무르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머무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제넘게 독일 사람처럼 살아보고 싶은 생각도 나더군요.
아예 독일에 둥지를 틀고도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살고 독일 시민권을 받는다 한들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익히겠냐는 생각이 들었고,
그까짓 종이 짝 만이 아니라 아예 뇌의 구조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왕 하는 공부라면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긴 안목을 보고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독일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면 성인이 하는 대학공부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생각도 했죠.
그래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다시 밟았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부터 다시 해보고도 싶었지만, 그거야 말로 도가 지나치고, 소위 대학입학을 목적으로 한
인문계(김나지움) 중고등학교를 다녀 아비투어를 하고, 대학 공부를 했습니다.
상대방의 장점을 보고 결혼했더니 일상에선 그 장점이 단점이 된다는 얘기 아시지요?
결혼 전 아주 ‘친절’했던 애인의 장점에 끌려 결혼했더니 남편은 나한테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자상하며,
공과 사의 구분을 잘 못 하는 사람이더라, 그래서 나중에는 그 친절함이 지겨울 정도고, 오히려 ‘참견’이라 느껴져
더는 사랑할 수 없어 미워하게 되었다는 얘기 말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이 장점이 되더라는 거죠.
조금은 비슷한 경우로 제가 독일의 장점 때문에 오래 그곳에 머물렀는데 시간이 지나고나니
그 장점이 단점으로 보이더라고요.
물론, 오래오래 그 장점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고, 독일 사람이 된 양 착각하고 살았던 적도 있었습니다만,
똥 누러 갈 때와 똥 싸고 난 다음의 마음이 쌩판 달라진 것처럼 제 마음도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럴 때 ‘은혜를 모르는 고약한’ 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겠지요?
아무튼, 옛날엔 독일 사람들의 합리적이고 정확함이 좋았었는데, 반대로 한국 사람들의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게 싫었고,
‘좋은 게 좋다’라든지 ‘정이 많다’든지 하는 게 싫었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그 합리적인 면이 쌀쌀맞고, 정확한 판단력은 기계 같아서 인간미가 없어 보이고,
반대로 ‘좋은 게 좋다’는 두루뭉술한 한국적 정서가 정겹게 느껴집니다.
또한, 키만 멀쩡하게 큰 독일 덩치보다 아담한 한국 사람들이 더 괜찮아 보이는 건 어떡하나요?
첫댓글 기다렸는데. 이 또한 마음에 와 닫는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별떵이님의 계속 자서전을 기대하면서 건필을 빕니다. 감사드립니다.
기다린다는 분이 계시니......매일 글을 올릴까요??? ㅋㅋ
자서전은 아니고요, 이제껏 살아온 이야기를 써보는 거죠.
외국에 사셨던 경험이 있는 분은 아마도 제 이야기에 공감하실 거고요.
말로 하나 글로 쓰나......행여 말이 많아 불편하시진 않으셨으면 해요.
독일의 매력에 푸욱 빠지셨다가 이제 한국의 매력을 다시 느끼시는군요. 저도 캐나다의 매력에 푸욱 빠졌다가 두 아들이 한국으로 가버리고 집 몰기지끝나고나니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남편은 꼼짝도 안하려해서 고민이에요.ㅎㅎ
제가 좀 긍정적인 편이긴 해요.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하는 편이기도 하고요.
독일에 있었을 땐 독일이 최고, 스위스에 있었을 땐 스위스가 최고, 돌아와 사는 한국
역시 최고!!! 어디든 각각 매력이 있는 거 역시 사실이죠.
@별떵이 저도 여태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여기 캘거리는 일조량이 많고 겨울에는 시눅현상으로 덜 추워요. 병원비도 무료. 한번 싫증나면 힘들어하는 마음이 욕심때문이겠죠. 그냥 집에서 있어도 사실 치우고 해먹고 바쁜데 말이죠. 자전거도 타고 싶은데 안사주고...ㅠㅠ
귀거래사 나이가 들수록 뽕짝이 그리워지고 예전에 살던 고향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됀듯십습니다.뉴스만 듣지 않으면 한국살이도 괜찬은것 같아요.
뉴스도 그럭저럭 괜찮던데요?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죠, 뭐......
좋은 것만 골라서 내 것으로 만들고 살 순 없는 거 같아요.
괜찮은 한국살이는 절대적으로 본인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ㅎㅎㅎㅎㅎ
죄송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크게 웃고 있어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심리를 너무 잘 그려 주셨어요
중년의 나이로 떠난 캐나다에 잘 적응하고 살다
한국에 놀러갔다 돌아오지 않는 한 점 혈육 땜에 덩달아 돌아와서 그런지
전 캐나다에 질릴 틈이 없었네요 ㅎㅎ
웃으시라고 쓴 글이에요!!! ㅎㅎㅎㅎ
전 아직 인생에 질릴 틈이 없었어요!!!! ㅎㅎ
저는 아직 좋은게 좋다... 아니지만 많이 긍정적으로 바뀌게된 한국생활에 저 자신도 놀라고 있답니다.
매번 여름에만 가능했던 한국여행에서 날씨 땜에 매력을 못 느끼다 2년전 가을에 다녀 가면서 조금 가능성을 보았답니다.
요즘은 어차피 한국에서 지내려고 했으니로 마음을 고쳐 먹으니 좋은 점도 많이 보이고 재미까지 느끼며 지낸답니다.
저도 긍정적으로 바뀐 건 틀림 없는 거 같아요.
스위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110% 스위스로 돌아갔다는데
전 아직 잘 버티고 있네요. 한국 살기 꽤 괜찮거든요~
별떵이님의 글은..... 이런저런 표현으로 평가(?) 를 해보려고 썼다가 지웠다가 해봤지만 내 실력으로는 안되네요.
그냥 맛집 보다도 맛이 있다고 해야 하나?.... 평가 보다는 칭찬을 해야 되는데....
맛집, 맛집 해서 가보니 별거 아니더라고요. 왜 그렇게 길게 줄을 서 있는지 이해가 안 가고요.
구름님, 제 글이 웬만한 맛집보다 훨 낫죠???? 잘근잘근 곱씹어 보는 맛? ㅋㅋㅋ
그래도 언젠가 같이 맛집 한 번 가야 하지 않나요?
ㅎㅎ 결혼과 이민을 빗대어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님의 글에 100% 동의하면서 연약한 인간의 마음에 슬쩍 책임을 넘겨봅니다^^
근데 솔직히 고백하자면......우리 남편은 나와 잘 어울릴 정도의 크기(175)와 적당한 체구에
좋은 게 좋다 하는 두루뭉실한 정 많은 독일 남자에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