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생각
창세기 45:1-15
미국의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 시절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였던 강영우 박사는 앞을 볼 수 없는 시각 장애인입니다. 시각 장애인으로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정부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강영우 박사의 삶은 역경과 맞서 불가능했던 삶을 변화시켰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살 때 아버지를 잃은 강 박사는 한 해 뒤 덕수중 1학년 때 축구공에 맞아 실명했습니다. 아들이 장님이 되자 어머니는 충격을 받고 쓰러져 사망했고, 생계를 위해 누나는 다니던 학업을 포기, 봉제공장에 입사했지만 16개월 만에 과로로 숨지게 됩니다. 당시 13살이던 남동생은 철물점 직원, 9살 여동생은 보육원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이런 역경 속에서 강영우 박사가 절망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강박사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그 비결을 30년 인생계획을 세우며 미래를 꿈꾸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10년은 맹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 졸업하는 기간으로 세웠고, 다음 10년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미는 기간으로 세웠고, 나머지 10년은 신에게 영광을 돌리고 사회에 봉사하며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지요. 불가능하게 보였지만 30년 인생계획을 세우고 나니 살아야겠다는 동기가 가슴속에서 꿈틀댔습니다. 삶이 불가능하게 보였지만 생각을 바꾸니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제 삶은 역경과 도전의 산물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강영우 박사와 비슷한 또 한 사람의 승리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요셉입니다. 요셉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의 삶이 우리와 너무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기에 올라갈 수 없는 나무라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있는 자가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있는 자가 더 많이 배우게 되는 신카스트 제도가 자리 잡고 있는 이 시대에서 요셉의 기적은 다시 일어날 수 없는 기적인지 모릅니다. 노예는 그만두고라도 외국 노동자로 온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총리가 되지 못해도 우리는 요셉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배워야 하고 요셉의 정신과 승리의 비결은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어떤 역경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도전해서 나름대로 승리자의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17살의 나이에 형들의 질투와 미움 속에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애굽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머나먼 이국땅입니다. 정상적인 모습으로 가도 성공하기 힘든 마당에 요셉은 노예라는 신분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거기다가 자기를 이렇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골육 형제들입니다. 이쯤 되면 요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완전 폐인이 되어 죽임을 당하지 않고 그가 스스로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물론 근본적인 비결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 요셉의 자세입니다. 요셉이 어떤 생각과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이기며 나아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오늘 본문 5절 이하의 말씀 속에 그 비결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물론 요셉이 처음부터 이런 생각과 이런 깨달음을 가졌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한 가지 한 가지씩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의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져야 할 올바른 생각과 믿음의 자세라고 봅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생각입니다.
요셉이 강조하고 있는 말씀의 첫 번째 내용은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형들이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하는 이 믿음이 요셉을 승리의 길로 이끌었던 첫 번째 비결입니다. 형들이 팔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형들을 원망하고 그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면 요셉은 결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그를 환난과 역경속에서 지탱해주었던 든든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요셉이 어떤 신앙을 갖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요셉은 모든 것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바로 모든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갖고 산다는 말에 다름 아닙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부모님의 사랑의 결과로만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 이 세상에 왔을지언정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내가 누구와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습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좋아서 내가 택해서 이 사람과 결혼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절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비록 방법은 내가 택하고 내가 좋아해서 결혼을 했을지언정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어떤 결정과 결과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믿게 되면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 생각이 그를 붙잡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내셨기에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요셉이 그 어려운 역경 속에서 이렇게 인내하며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 뜻이 뭔지를 전혀 가늠하지 못했겠지요? 그러나 점차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생각하면 또한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그렇다면 보내신 하나님이 간섭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요셉의 일생을 보면 하나님이 순간순간 요셉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시위대장인 보디발 장군 집으로 팔려간다든지, 장군 부인을 겁탈했다는 누명을 썼을 때도 죽지 않고 감옥에 간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살아가다 보면 잘 이해가 안 되어서 힘든 부분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고 하는 믿음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내신 하나님이 도우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강영우 박사의 이야기를 했지만 하나님이 강영우를 어떻게 인도해주셨습니까? 놀랍게도 강영우가 고등학교 다닐 때 숙대를 다니던 한 누나를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 누나가 강영우에게 공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숙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갖다 와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평생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와 함께 했습니다. 그 누나가 나중에 부인이 된 석은옥이라는 여자입니다. 이 석은옥 여사를 하나님이 붙여주시므로 하나님은 강영우 박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끌어주고 하나님이 붙잡아주어야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손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뜻이 있기에 분명히 인도해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인도하심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는,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셨다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냈다고 믿었던 요셉은 계속해서 그러면 왜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왜 이곳에 보내셨을까? 여러분 하나님이 요셉을 왜 애굽에 보내셨을까요? 높은 지위에 올리기 위해서였을까요? 잘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까? 물론 그런 요소들이 없지 않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라고 요셉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요셉이 처음부터 이런 깨달음을 갖지는 않았겠지요? 아마도 흉년이 들고 형들이 찾아오면서 그 뜻을 깨닫지 않았나? 생각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는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뜻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도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데에도 우리들을 통하여 많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은혜와 섭리의 배후에 이런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고 항상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재물의 축복을 주셨습니까? 그것도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여러분들의 재물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까? 그것도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직장을 허락하셨습니까? 거기에도 하나님이 구원하시기 위하시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직장을 주신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전도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생각 속에 항상 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을 아로 새길 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될 것이고 계속되는 축복의 기회를 맞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다음 주 교단적으로 행하는 총동원 전도주일을 지키려고 합니다. 이 전도주일은 전도대상자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설교도 불신자들에게 맞춰질 것입니다. 예배 순서도 새로 오시는 분들에게 맞춰질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여러분들이 인도하시기 원하는 전도대상자들을 많이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전도에 대한 개념가운데 전도는 실패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도는 실패가 없습니다. 우선은 주님 앞에 오지 않아도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씨를 뿌린 것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금방 거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물을 대고 씨를 뿌리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농부는 절대 실망하지 않습니다. 가을의 추수를 확신하며 열심히 일을 합니다. 빈손으로 돌아오면서도 흐뭇해합니다. 여러분 전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주님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가꾸면 거두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줄 믿습니다. 생명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고 매사에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먼저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애굽에 보냈습니다. 애굽에 보낸 것은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일을 위해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먼저 보내셨다는 것이 요셉의 고백이요 신앙이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먼저 앞장서는 개척자가 있게 마련입니다. 누군가 앞장서서 개척자의 정신을 가지고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는 이루어지게 될 줄 믿습니다.
최근의 성도들의 신앙행태를 볼 때 아쉬운 것은 이런 개척자의 정신과 앞장서는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개척교회나 적은 교회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개척교회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개척정신을 가지고 교회에 자발적으로 찾아왔습니다. 이 어려운 교회에서 내가 하나의 밀알이 되어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람을 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오히려 개척교회나 적은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크고 안정된 교회로 이동합니다. 너무 힘들고 부담이 되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편하고 부담이 되지 않는 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먼저 보내셨다는 이러한 요셉의 정신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교회 생활을 하실 때도 여러분,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전도할 때도 앞장서서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봉사할 때도 앞장서고 헌금하는 일도 앞장서고 기도하는 일에도 앞장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뒤에 쳐져서 적당히 신앙생활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가 앞장서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고 하나님의 뜻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 질 줄 믿습니다. 이런 정신으로 무장했던 선교사들이 없었던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정신으로 무장했던 용감한 사람들이 예수교를 받아들였기에 이 땅에 교회가 설립되고 복음이 전파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개척자는 힘이 듭니다. 힘이 들기 때문에 앞장서지 않습니다. 앞장서는 사람은 오해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앞장 서는 사람이 가장 큰 복을 받는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전의 우리 선배들을 보면 한결같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다 복을 받아 경제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잘 되었습니다. 먼저 보냄을 받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힘이 들지만 개척자의 정신을 가지고 먼저 앞을 개척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도 일어나고 후손들이 잘 살고 평안을 누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정말 파란만장한 생애였습니다. 강영우 박사의 어린 시절도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다는 생각을 했고 이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개척자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요셉을 강영우를 높은 자리에 올렸고 애굽과 형제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큰일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물론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렇게 살아간다고 해서 우리가 대통령이 되고 국무총리가 되고 국가 고위직에 올라가고 대기업의 ceo가 되는 것은 아닐 줄 압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런 자세와 정신으로 살아갈 때 우리가 처한 형편 속에서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고 환경을 이기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시고 축복하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여는 힘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갈 때 미래를 여는 힘이 생기고 새로운 미래의 주인공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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