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두 아들이 각각 중학교 1, 3학년에 재학 중인
지인으로부터, 아들과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사실 남에게 읽을 만한 책을 권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일도 없기에,
잠시 망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관심이 있고, 또 어떤 수준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기준으로 소개하는 것은
자칫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으니까요.
대학교 3학년 때인가요,
시국이 혼란스럽고 정상적인 수업 진행이 되지 않아
한 달 정도 막노동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살던 수원에서 서울의 학교까지 2시간 이상,
왕복으로 따지면 4시간 반이 걸리는 먼 거리를
아무런 소득 없이 오가느니,
차라리 육체적 체험을 통해 새로운 공부를 하고자
나름대로의 고육책을 마련한 거죠.
오산 소재의 모회사를 짓는 공사장에서 잡부로서 일했는데,
그 뒤로도 많은 막노동을 해봤지만
이때만큼 육체적 한계를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그 일을 마치고 모처럼만에 학교에 갔을 때,
우연찮게 같은 과 한 여학생과 대화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30여 분간 얘기를 하던 중 마침 제가 읽던 책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지금은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삶과 죽음에 관한 고승들의 얘기가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그 뒤 그 여학생은 놀랍게도 자신의 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서울의 모 대학병원 영안실에 갔을 때,
이미 많은 친구들이 슬픔에 잠겨 있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은 늙거나 병들지 않아도,
또 사고를 당하지 않아도 죽을 수 있다는
냉엄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벽제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나온
그 친구의 영정을 보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사인은 연탄가스 중독으로 밝혀졌지만,
아무래도 이상했습니다.
죽기 직전 만난 그 친구는 다소 염세적인 입장을 보였거든요.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져 학교 도서관으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읽었던 책을 찾기 위함이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그 책을 저 다음에 바로 구해 읽었습니다.
제가 노란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은 일부 구절에는
더러 그 친구의 필체도 눈에 띄었습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아났습니다.
'그렇구나! 그때 이 친구는 그 당시
진정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방황하고 있었구나!'
전 그때 비로소 그녀의 사인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는 지금껏 저만이 아는 비밀 아닌 비밀입니다.
그 후 함부로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대학 시절에도, 사회에 나와서도
그 어느 누구와 책과 관련된 깊은 대화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지인에게 책을 권했으니,
또 근일에는 몇 차례 글로써 소개를 하곤 했으니,
역시 세월은 모든 것을 희석시키는 명약인가 봅니다.
다음은 책 추천을 부탁한 지인에게 보낸 쪽지 글입니다.
책의 사전적 의미는 "사상·감정·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한 종이를 엮은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떤 책이든 그 존재의 가치가 있기 마련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 책이 내게 맞는 책인가의 여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기준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령 여러 기관이나 단체에서 추천한
'중학생이 읽어야 될 책'의 목록을 보면,
과연 이 책이 중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혹시 추천자 자신의 기준으로
소개한 것은 아닌지 의아한 생각도 들지요.
사실 같은 중학생이라고 해도
똑같은 수준의 책을 읽을 수는 없을 겁니다.
당사자의 지적 수준, 관심 범위, 시간적 여유 등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이를 어느 정도 무시한다면
인터넷이나 각종 독서 단체, 대학 등의
추천 도서를 참고하면 되겠지만...
굳이 권한다면, 필립 체스터필드가 지은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를 추천하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최대의 교훈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오직 아버지뿐이라고 단정지면서,
'인간적 지혜'로 가득 찬 이야기를 9장으로 엮어낸 수작입니다.
학문, 지식,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지녀야 될 여러 가지 덕목을
알기 쉽게 잘 풀어나갔기 때문에,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해야 될 중학생 시절에
반드시 읽어야 될 책이라 할 수 있죠.
부모님, 더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읽으면 더더욱 좋을 듯싶네요.
여러 군데에서 번역을 한 책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전통이 오래된 '을유문화사'에서 펴낸 책을 추천합니다.
그 지인은 다 읽고 난 다음,
고맙게도 소감문을 쪽지로 보냈습니다.
자신이 중학 시절 이 책을 읽었다면,
자신의 인생도 분명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라는
마지막 말이 인상 깊군요.
얼마 전, 책 읽는 아버지의 모습을 엿보았습니다.
자녀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심지어 단절된 이 시대-.
책만큼 좋은 대화 수단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읽고 서로 토론을 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글로써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보다 잘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겠죠.
올 여름 방학에는 자식과 한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면 어떨까요.
물론 다다익선이면 더욱 좋겠고요.
저도 산골로 들어온 이래 <좋은생각>, <샘터>를 정기구독해 읽고 있습니다. <샘터>의 경우 창간호부터 독자이기도 하고요.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오로지 책만 좋아하면 아무래도 문제겠죠. 생활 속에서 지혜를 얻은 분들의 글을 보면서 저 또한 혜안을 얻게 됩니다.
스타디 셀러이기도 한 이 책은 여러 출판사에서 출간한 만큼, 자칫 오역 투성이의 책을 읽게 되면 그 느낌이 반감될 수도 있습니다. 늘 건안하세요.
여기댓글다시는 분들은 다 일류대 국문학출신같아요 댓글이상의 수준작문입니다 .전 그냥 채읽는게좋아서 .소설도 시도 .지금은 허영만의 부자사전읽는중입니다 .부자되는 방법배워서 잘살아보려고요.언제나 내량님의 풍부한지식에감탄~~
마음이 통해서겠죠. 꾸임이 없이 느끼는 그대로 마음을 표했기 때문이겠죠. 부자 사전도 좋은 책 읽기입니다. 뭐든지 넉넉하게 되면 편한 삶을 살 수 있으니까요. 물론 마음이 편하면 더더욱 좋겠고요.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내량님 ~~책을 좋아하는사람 보면 부러워요..저는 겨우 좋은생각 구독해서 읽는쪽인데.... 내량님께서 권하신 책좀 구입해서 읽어볼랍니다
저도 산골로 들어온 이래 <좋은생각>, <샘터>를 정기구독해 읽고 있습니다. <샘터>의 경우 창간호부터 독자이기도 하고요.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오로지 책만 좋아하면 아무래도 문제겠죠. 생활 속에서 지혜를 얻은 분들의 글을 보면서 저 또한 혜안을 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