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유등축제 유래 1.
진주 남강에 등(燈)을 띄우는 유등(流燈) 행사는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晉州大捷)에 기원을 두고 있다.
임진년(1592) 10월,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3,800여명의 수성군(守城軍)과 진주성을 침공한
2만 여명의 왜군이 벌인 제1차 진주성 전투는 6일간 이어졌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진주성 수성군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남강에 유등(流燈)을 띄워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전술로,
한편으로는 성 밖의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사용했다.
진주 유등축제 유래 2.
계사년(1593) 6월,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오로지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왜군과 항전한 7만 명의 민·관·군이 순국하면서
진주성(晋州城)은 임진왜란 국난극복의 현장이 된다.
후일, 진주 사람들은 임진·계사년(壬辰癸巳年) 국난극복에
몸을 바친 순국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流燈)을 띄웠고,
이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대한민국 글로벌축제인
진주남강유등축제(晋州南江流 燈祝祭)로 자리 잡았다.
지방자치제가 성립된 이후 우리나라 각처에서 지방축제가 본격화 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도 10여 년 전부터 나의 호기심을 가장 자극했던 진주남강 유등축제 탐방을 실현하는 날이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3년 만에 개최되는 이번 유등축제를 약 2주 전부터 계획을 하였었다.
개막식에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룰 것 같아
올해야 말로 필히 참석을 하겠다 라는 일념으로
폐막식인 10월 31일에 탐방하는 것으로 하여 처가인 금산에서 1박을 한후
폐막식 당일 오후에 관람을 시작하기로 계획하였다.
행사가 24시까지 축제가 이어진다 하니
불꽃놀이 등을 관람하면서 최대한 밤 늦게까지 축제를 즐기고 귀경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었다.
그러나 이런 젠장...!!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아니 되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으니
탐방 하루전 소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하여
못다핀 꽃들인 10대후반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151명이나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아내와 나는 당일날 아침 처가인 금산에서 이 소식을 듣고
참석 여부를 고민하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참석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여
그냥 차분한 마음으로 한 바퀴 돌아 보기로 하고 관람을 하게 되었다.
한편, 이 진주남강 유등축제를 관람하기 위하여 주차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는데
이태원 참사로 인하여 전국의 모든 축제는 취소되었으며,
진주남강유등 축제도 폐막일 행사로 예정되었던
불꽃놀이, 드론쇼, 버스킹 등 소란그런 모든행사가 취소되었다.
그로 인하여 이곳에도 관람객이 예상치를 크게 못밑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참석하게 되었고
당초 예정 했었던 ‘진주공설운동장’에서
진주성 정문 건너편 '촉석루 주차장' 인근의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고민거리를 해소함과 동시에 이동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첫댓글 다정한 부부가 두손맞잡고 여행다니시는거 부럽읍니다요.
나도 이참에 여행이나....
거 조오~~~ 치요!
머 저희와 함께 하셔도 되고요~~~
요즘은 지역마다 축제들을 많이 하는데 규모가 크게 하는것 같네요
그러나 지금은 전기를 아껴야 할터^^~~~ 구경 잘했어요~~~~
이태원 사고로 인하여 불꽃놀이 등 이벤트가 모두 취소되어 김이 빠져부럿다는...
기래서 내년에 한번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