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오스의 소들은 올림포스산의 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는 엄선된 소로 비록 신이라 할지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다만 제우스만이 이 소들을 가려서 자신과 신들에게 제사 지내게 할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가 잠든 사이 부하들이 이 신성한 소 두 마리를 잡아 먹어 버린 데는 일등 항해사 '에우릴로쿠스' 의 선동이 큰 역할을 했다. 에우릴로쿠스는 일행 중 오디세우스 다음 가는 직위였으나 성품이 음험하고 면종복배하는 형이었다. 트로이를 떠난 지 삼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고향에 도착하기는 커녕 끊임없는 고난의 항해가 지속되자 딴 마음을 품기 시작해 오디세우스의 명령을 제 멋대로 어긴 것이었다.
깊은 잠에 빠진 오디세우스가 천둥소리에 놀라 벌떡 일어 났을 때는 이미 늦은 순간이었다. 소 두 마리가 인간에 손에 잡아 먹힌 것에 격노한 제우스가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를 헬리오스의 섬으로 내려 보낸 것이다.
재빨리 전후 사태를 간파한 오디세우스는 섬에서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죽기 전에 섬을 빠져 나가자며 부하들을 다그쳤다. 일행이 서둘러 승선을 끝내고 노를 저어 항해한지 오래지 않아 거대한 파도가 배를 덮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배는 두 동강 나면서 침몰하고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40여명의 부하 선원들은 모두 익사하고 만다.
오디세우스는 이 처참한 처지를 한탄할 겨를도 없이 배에서 떨어져 나온 널판지 조각 한개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파도에 맞서고 있었다.
한참 후 파도가 잠잠해지자 오디세우스는 있는 힘을 다하여 육지가 있을 만한 방향으로 헤엄쳐 나갔다. 드디어 오디세우스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어떤 섬의 해변에 다다랐다. '오기기아' 라는 그 섬은 여왕 "칼립소"가 다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디세우스의 험난한 여정에서 우리 인생의 판박이이자 거울인 도플갱어 (Doppelgänger)를 만난다. 누구나 오디세우스의 운명이 어쩌면 나와 이토록 닮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의 끝 모를 시련과 고난을 보면서 홀로 선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디세이아"에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오디세우스는 혈기왕성한 20대 초반에 그리스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헬레네를 아내로 맞고 싶은 열망에 열렬히 구혼했었다. 수 많은 구혼자가 쇄도하자 오디세우스는 시크하게 나서서 나중에 헬레네가 누구의 아내가 되건 나머지 구혼자들은 그녀 부부가 위기에 처할 시 전원이 앞장서서 구원할 것을 맹세하자고 제안했었다.
이 맹세가 족쇄가 되어 오디세우스는 헬레네가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사랑의 도피를 하자 그녀의 남편 메넬라오스 형제가 편성한 그리스 연합군에 합류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이미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와 어린 아들 텔레마쿠스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자기가 먼저 나서서 구혼자들을 설득하여 맹세 시켰음에도 지금은 마음을 바꿔 출전을 하지 않으려고 갖은 꼼수를 쓰기도 했었다.
트로이 전쟁은 인간과 신이 합작하여 진행된 거대한 전장이었다. 트로이를 지원하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트로이 목마를 고안해 최종적으로 트로이를 멸망시킨 주범인 오디세우스를 지독하게 증오한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그는 포세이돈이 아끼는 아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무스의 눈을 잔인하게 짓이겨 버린 당사자였다.
오디세우스가 육백명의 부하들을 열두 척의 배에 나눠 태우고 조국 이타카로 향하기 시작하자 마자 포세이돈의 보복이 시작됐었다. 포세이돈이 보낸 폭풍과 거센 역풍으로 오디세우스 일행은 고향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지중해의 끝에서 끝까지 갖은 고생을 하면서 끌려 다녔다.
이제 트로이를 출발한지 삼년이 지난 때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를 떠날 때 함께 했던 수백명의 부하와 열두척의 배를 모두 잃고 그야말로 혈혈단신孑孑單身이 되고 말았다.
오디세우스가 초주검이 되어 오기기아 섬에 이르렀을 때 섬의 주인 칼립소는 이미 그의 도착을 예견하고 기다리던 중이었다.
칼립소(Calypso. 그; Καλυψώ 칼립소)는 타이탄 "아틀라스"와 바다의 요정 사이에 태어난 딸로 상위 계급의 님프였다. 아름답고 슬기로웠으나 적당한 배필이 없어 외롭게 지내고 있던 차 용맹과 지혜로 명망 높은 영웅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섬에 표류해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