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논쟁 Problem of universals 共相问题
철학교수 K는 책상 위에 빨강 사과 하나를 놓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책상 위에 무엇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학생들이 ‘사과’라고 답을 하자 철학교수 K는 ‘여기 있는 이 사과’와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사과’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었다. 그러자 명석한 P가 ‘여기 있는 이 사과는 하나의 특수한 개체를 말하는 것이고, 우리 마음에 있는 사과는 사과라는 관념의 사과이자 사과라는 류(class)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P의 답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 K는 이 단순한 물음에는 존재와 진리의 중요한 문제가 내재해 있다고 설명한 다음, 중세 보편논쟁에 대한 철학사 강의를 이어나갔다. K의 설명은 이렇다. 하나의 사과는 특수한 개체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 마음에 있는 류(類)의 사과는 사과를 망라하는 보편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유개념으로서 보편적 사과가 이 세상의 모든 사과에 선행하여 실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명목상의 이름인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이 보편논쟁은 9세기에서 17세기까지 중세 유럽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던 스콜라철학의 핵심 논쟁이었다. 스콜라철학은 기독교 교리와 신앙이 이성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신학을 중심에 놓고 철학적인 문제를 사유한 학파다. 기독교와 관련된 보편논쟁은 기독교 교리 중 삼위일체(三位一體)가 관건이었는데, 그것은 초월적 실재인 보편을 인정해야만 성부, 성자, 성령과 같은 삼위일체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만약 보편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개별적 신앙과 신자만 있는 것이므로 삼위의 존재가 부정된다. 또한 인간이 원죄(原罪)를 지었다는 것이나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 역시 보편의 실재를 인정해야만 성립하는 것이므로 중세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것이다.
보편주의자들은 ‘사물에 앞서(ante res)’ 실재인 보편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빨강 사과, 노랑 사과, 파랑 사과, 영국 사과, 일본 사과, 빌헬름 텔의 사과, 아프로디테의 사과, 11세기의 사과, 25세기의 사과 등 모든 개체의 사과에 선행하는 본질이자 실재인 사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실재의 개념을 플라톤의 이데아(Idea) 이론에서 찾았다. 이데아는 모든 본질이 영구불변하다고 보는 초월적 실재다. 그 본질이자 근거인 실재가 현상계에 그림자로 현상된 것이 현실의 개별적인 사물이다. 이 현상계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사물은 인간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므로 본질이나 진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사과가 없다고 해서 사과라는 실재가 사라지지 않는 그것이 바로 진리이자 보편이다.
명목론자들은 세계에는 보편자는 없으며 단지 하나 하나의 특수하고 개별적인 존재만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빨강 사과, 노랑 사과, 파랑 사과, 영국 사과, 일본 사과, 빌헬름 텔의 사과, 아프로디테의 사과, 11세기의 사과, 25세기의 사과는 그 자체가 실재하는 사과이고, 사과라는 유개념(類槪念)은 이 개별자의 집합에 대한 단순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론적 근거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찾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을 존중하면서 개별적인 사물에도 고유한 특성이 있으며 그 사물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근거한 명목론(Nominalism)은 보편이란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것에 붙이는 이름[nomina] 즉 명목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있는 현실의 사과 그 개별 개체가 실재이고 사과라는 유개념은 인간이 만든 기호다.
보편논쟁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 ~ 1274)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해결되는데 그는 온건한 실재론을 주장하여 이성과 신앙을 조화했다. 그는 ‘보편은 사물 안에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여 보편을 인정하면서 개별적 개체에도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그는 [신학대전]에서 신의 섭리와 자연의 경험이 모두 중요하다고 논증하여 중세 스콜라철학을 집대성했다. 하지만 필요 없는 전제는 삭제해야 한다는 오캄의 면도날로 유명한 오캄(William of Ockham, 1285? ~ 1349)은 보편자는 없으며 개별 개체가 실재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삼위일체를 부정하고 초월적 신을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중세의 신학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오캄은 이단(異端)으로 지목되었다. 하지만 오캄의 이론은 중세의 기독교신학을 붕괴시킨 이론인 한편 근대의 유물론과 경험론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었다. 이처럼 개별 개체를 중시하는 사상은 데카르트와 칸트로 이어졌으며 주체의 문제로 확장되어 근대철학의 토대를 형성했다. (충북대교수 김승환, KIM Seung Hwan, 金升煥, 金昇煥) - 끝 - *참고나 인용을 했을 경우에는 정확하게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표절은 범죄입니다. 인문천문 목요학습 342 Thursday Study 星期四学习 2014년 10월 9일(목) *참고문헌 Thomas Aquinas, Aquinas's Shorter Summa. (Manchester, NH: Sophia Institute Press, 2002). *참조 <보편논쟁>, <삼위일체>, <순수이성>, <신이 존재하는 다섯 가지 근거> |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