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위의 예술, 설계와 기획
손 원
설계와 기획을 '백지 위의 예술'이라고 한다. 무한한 창의력을 발휘하여 최고의 작품을 위한 밑그림이라는 의미다.
2022년 1월, 현대산업개발이 시공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가 38층부터 23층까지 폭탄을 맞은 듯 무너져 내렸다. 15개월 뒤인 올해 4월 29일 GS건설이 시공한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의 지하 1·2층 주차장 상부가 붕괴했다. 기둥이 내력벽 구실을 하는 무량판 구조로 154개 기둥 모두 철근을 빼먹은 사실이 적발됐다.
가장 큰 문제는 기둥만으로 천장을 떠받치다 보니 설계나 시공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공법인데도 총체적으로 부실이 발생했고, 이를 관리 감독할 감리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8월 1일부터 12일까지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부실 준비로 인한 지탄을 받고 있다.
칼럼에 의하면,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할 잼버리 대회가 혼돈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개영식 첫날부터 폭염에 쓰러지는 환자가 발생하더니 사흘 새 수백 명의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 간척지에 4만여 명이 야영을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폭우 후에 물웅덩이가 곳곳에 생기면서 벌레가 창궐, 벌레 물림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화장실은 더럽고 부족하다. 화장실 가기를 꺼려 물을 자주 안 마시다 보니 탈수 증상도 걱정된다. 남녀 샤워실은 천 한 장으로만 구분해 놓아 사용하기가 거북하다는 여론이 높다. 실신한 사람들이 실려 오는데, 병상은 부족하다. 그야말로 카오스다.
전 세계 158개국 4만 3,225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잼버리 대회가 이렇게 부실하게 운영되자 외신들의 비판 기사도 잇따르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있다며 아들의 꿈이 악몽처럼 보여 실망스럽다는 부모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과 전북의 미래상을 세계 청소년에게 보여주겠다"는 전임 전북지사의 야심 찬 포부는 물거품이 되었다. 되레 한국과 전북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줄까 걱정할 상황이다. 2014년부터 유치를 추진, 2017년 유치가 확정돼 준비 기간이 충분했는데도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2015 경북 문경 세계군인체육대회' 때 지원 요원으로 참여했다. 117개국에서 7천여 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 대회에 들어간 예산은 1,653억 원으로 같은 해 비슷한 규모로 치러진 광주유니버시아드의 6,190억 원에 비하여 저비용으로도 성공한 대회로 평가받았다. 기존의 경기장시설과 숙박시설을 최대한 활용했기 때문이다. 별도로 경기장과 선수촌을 짓지 않았다. 경북 도내 8개 시군의 경기장을 사용한 분산 개최와 선수촌도 문경 캐러밴 선수촌, 괴산 학생군사학교 숙소, 영천 육군3사관학교 숙소를 활용했다. 그러다 보니 숙소와 경기장 간의 거리가 멀어 선수 이동 등 세심한 계획과 운영이 필요했다. 수년에 걸쳐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였다. 2012년 대회조직 위가 출범하여 대회 직전까지 완벽한 계획수립에 매달렸다. 1단계인 '종합 기본계획 ', 2단계로 '세부 운영계획', 3단계 "현장 운영계획'을 작성하고 주기적으로 문제점 검토회의와 심사조정 회의를 거쳐 최상의 계획으로 보완해 나갔다. 각 운영 부서에서는 현장 운영계획을 수립하여 대비하였다. 또 대회 1년 전에는 프레대회인 '영천 육상 5종 대회'를 개최하여 운영 경험을 쌓았다. 6회째 개최한 이 대회는 직전 브라질대회에서 2조 원을 쓴 것과 비교해도 엄청난 저비용이지만 참가 선수단의 만족도는 높았다. 이 대회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선수촌 책임자로서 일례를 들어 보겠다. 괴산 선수촌, 영천 선수촌은 기존의 군 시설이고 새로 설치한 문경캐러밴(이동식 숙소) 350대 제작에 34억 원이 들었다. 대당 제작비 2,650만 원인데 경기 후 일반인에게 1,650만 원에 전량 매각했다. 조직위가 실제 부담한 비용은 대당 1,000만 원에 그쳤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큰 구상인 기획과 보다 구체적인 계획이 따른다. 단순한 계획은 머리에 담을 수도 있으나 방대한 계획은 수립과 집행에 많은 공이 든다. 계획은 일의 성공 여부와 직결된다. 미비한 계획이나 잘못된 계획을 시행하였다면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실행에 앞서 설계나 기획부터 검토하여 개선한다면 사고를 피할 수 있다.
아파트 건설만 해도 그렇다. 아파트 건립계획에 따라 건립부지 확보, 설계서 작성, 청약 및 시공 등 관련 절차 이행에 수년이 걸려 입주하게 된다. 시공자는 청약자에게 건립비용을 미리 받아 공사를 하게 된다. 당연히 계약대로 만족한 아파트를 지어 인계해야 한다. 청약자는 그 아파트에 모든 걸 걸었기여 기대가 크다. 그런 아파트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면 충격은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국제행사는 유치에서부터 개최까지 수년의 여유 기간이 있다. 그 일을 전담하는 조직도 만들어 준비를 하게 된다. 보다 꼼꼼히 챙겨 국격을 높여야 한다. 어렵게 유치한 국제행사가 준비 소홀로 망신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설계와 기획은 만사의 기본이며 성패를 좌우한다. (2023.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