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관한 시모음 86)
여름이 끝날 무렵 /김용화
또 다른 계절이 시작 되면
먼저 바람이 붑니다
계절의 덧 문을 닫을 때도
바람이 먼저 불지요
매미도 지쳐 잠든
어둠이 내린 여름
밤 정자 나무 밑에 앉아
바람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곧 가을이 온다는 소식..
바람은 마음에도 숨어 들어
길섭 코스모스를 피우고
달빛 아래 그리움 한아름 놓고 갑니다
머지않아 빛 고운 가을이 오면
향기 깊은 차 한잔 우려 놓고
숲이 보이는 창가에 앉아
그리움과 마주하려 합니다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그리움으로 멍이 들면
낙엽 편지 한장 띄우겠습니다
여름 숲은 말한다 /정심 김덕성
초록빛 빛나는 숲
나무사이로 내리는 빛줄기
여러 가닥으로 휘감으며 내리며
신비스러움에 다가온 설렘
여기가 천상이 아닌가
산의 세미한 호흡 소리
자연이 만드는 웅장한 심포니
조잘대며 흐르는 계곡 물소리
새소리와 어울린 합창
심신을 맑게 활력을 주고
녹음에 맑아지는 영혼
창조주의 솜씨 아름답구나
자연에서 얻는 신비
이 청정의 숲에 들어와
깊은 심호흡 한 번만 하면
찌든 때 씻어내는 숲
이리 신비롭다고
여름을 팝니다 /임영준
그대
넉넉한 이 여름을
얼마나 쓰고 있나요
넘실거리는 파도를
원 없이 품고 왔나요
다소곳한 계곡의 젖내를
한 아름 짊어지고 왔나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인데
하나라도 더 건져
평생 함께 가야지요
여름 친구 /노정혜
고목나무 밑에서 노래하는 나
팔자 좋은 사람
찜통 더위도 고목나무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람 시원한 생기담아 불어준다
더워 더워
고목나무는
지치고 피곤한 자 오라
쉬었다 가시오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확 뚫어 주리
수백 년 한자리에서
쉬어가라 쉬어가라
기다린다
고목나무는 십년지기 우리 친구
우리 둘이 휴식처
한 십 년 더
고목나무와 친구 하면 좋겠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님 한 백 살 잘 살다 가면 좋겠습니다
이곳에서 아픔 치료받았습니다
일 백세까지 고목나무와 친구 하고 싶습니다
고목나무 닮아 가슴속까지 확 뚫어 주는 사람 되고 싶습니다
여름 밥상 /이원문
시원한 먼동이었는데
이슬 마르니 뜨겁구나
어제 그렇듯 더 뜨거울 것인데
그래도 먹을 것은 해먹어야지
새벽녘 이리 저리 둘러본 텃밭
뜯어 무치면 다 반찬이 될 것인데
무엇부터 만들어 식구 먹이나
저녁 밥상에 모두 둘러 앉겠지
우선 열무 뽑아 열무 김치 담고
애오이 몇개로 오이 냉국 만들까
바가지의 노각은 상채로 무치고
비름나물 고추잎은 조금만 무쳐야 하나
풋고추는 썰어 된장에 넣으면 되고
그리고 또 뭐 있나
호박잎좀 뜯을까
애호박 두개로 볶음이 될런지
오이지가 빠졌구나 고추장에 된장도 그렇고
오늘 이만하면 저녁 반찬이 될 것 같은데
어디 보자 그러는 내일은
밀가루 반죽 한 덩어리더 다져 막둥이 빵 쪄주고
칼국수나 넉넉히 썰어 놓을까
애호박도 그렇지 몇개 더 따면 되고
반찬은 있는 반찬 그대로 놓으면 되겠지
여름꽃 전시회 /임재화
광장의 분수대는
시원스레 물줄기를 내뿜고
한여름 다하는 이 날에
광장엔 여름꽃 전시회 아름답고
낭만의 생음악에 호프 한 잔
가는 여름을 축하하누나
맨 가운데 있는
요염한 "칸나"를 둘러싸며
주변엔 형형색색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하다.
깨꽃, 샐비어 , 백일홍과
맨드라미 등의 꽃 이름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는
남녀 장승들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주인공 되고
시골의 옛 정취를 담은
소먹이 구유 통에는
여물 대신 예쁜 꽃을 담았습니다.
여름 안부 /정성택
입추도 지났는데
찜솥 안 옥수수 마냥
푹푹 익어만 갑니다
금년 여름은
한 낮이건, 밤이건
폭포수 더위가 맹위를 떨치네요
아무래도
시원한 쟁반대야 하나쯤
들여놔야 할런지 싶고요
성큼 처서가 도래하기를
왼종일 찌릉대는 왕매미 산울림 타고
시름만 깊어 갑니다
여름 /이상조
계절의 비 소나기
만난 사람마다
시원함을 알지
누군가 그리워하며
정자나무 앉아 쉴 때
쏟아지는 소나기를 알지
자신을 속인다는 것
참기 힘든 걱정이라
사랑하는 이를 속인다는
힘든 사랑을 알지
소나기로 가슴 적신 사랑
자신을 속이고
사랑하는 이를 속이니
쓸쓸한 아름다움인지 알지
사랑은 여름 소나기
시원함을 주는
것을 알지
아가의 여름 /이원문
아가야 울지마라
이 더운 날씨를 어떻게 하겠니
몸이 불편해 그러긴 하는데
어디가 불편한지 알 수가 없구나
어제 밤새 칭얼댔던 우리 아가
오늘 또 그러면 어떻게 하지
열도 조금 있는 것 같고
이제 눈도 안 마주치네
아가야 울지마라
부채로 부쳐대면 그리 잘 자더니
그것도 아니고 어떻게해
아픈 것은 아니겠지 아가야 우리 아가야
여름 더위 /藝香 도지현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훌러덩 다 벗고 팬티 하나만 걸치고
수돗물에 목물해도 창피하지 않으니
사람 많은 계곡 휴양지에서도
마찬가지 아랫도리만 가리면 그만인데
여자로 태어난 것이 무슨 죄인가
이 염천에 옷 하나 제대로 벗을 수 없으니
여름숲에 들어서니 /정심 김덕성
숲속의 아침은
고요를 깨우는 명랑한 새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숲의 호흡소리는
천상의 울림인 듯싶다
시원한 여름비 내리지 않고
연일 가마 속 같은 폭염 이어지는데
숲속 들어서니 어디선가 초록바람
어머니 품처럼 품어준다
초록 틈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빛줄기에서 맛보는 생명의 신비
황홀함에 벅차오르는 환희의 순간
감탄이 절로 새어 나온다
고요 속에 사랑을 만난 듯
조화된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정막을 깨며 들려오는 고운 선율
창조의 솜씨를 노래한다
한 여름의 꿈 /허수연
새벽 이슬 머금고 또르르
산천에 뭉게구름 두둥실
노래하는 연파랑 사랑
실개천에 잠자리떼 날아
은빛으로 물들이는 들판
뙤약볕에 익어가는 자두빛
허수아비 기침 소리
후드덕 놀란 아기 참새떼
원두막 처마에 구름이 걸터앉고
엉겅퀴 들녘에 터를 잡지만
세상사 요지경
한 여름 풀벌레 목청 높여 보지만
후다닥 예고 없는 소나기
노을지는 서산 해 바라보다
시원한 빗줄기에 오색 무지개
나른한 오후 한 여름의 꿈이런가
여름 斷想 1 /藝香 도지현
지구의 온난화로
기후가 많이 변해버렸다
겨우내 추위를 인내하며
그리 봄을 기다렸건만
봄은 와서 살짝 맛만 보여주고
금방 더위가 밀려온다
이제 아열대로 변했나 보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더위에
하루에 한 번씩 오는 소나기
그걸 이젠 스콜이라 해야 한단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로 힘든 상황
마스크로 더 더운 날씨에
올해 같은 더위는 숨이 탁탁 막힌다.
여름 한낮 텃밭 /백승운
응달에서 졸고있는 나른함이
바람에게 좀더 새게 돌려봐요
애원을 하는 여름
바람도 땀 뻘뻘 흘리며
나뭇가지 밑에서 어슬렁어슬렁
쉬면서 돌릴까 말까
보름달 같은 황금 품은
호박잎 어깨가 축 처져
맥아리 없이 헉헉대는데
청춘 같은 상추 야들야들
속살 들어내고 날 잡숴
물오른 오이도 불쑥 자랑질이다.
시드는 여름 /이원문
음지어도 뜨겁다
후덥지근해 못 살겠다
흐르는 땀을 어찌 할까
그렇게 미운 여름이었는데
아니면 핑게 삼아
멋 내니 그런대로
놀러 가니 찾은 곳
그곳에서도 투정이었을까
먹을 것 입는 것
여름만이 주는 웃음
그런 계절의 즐거움
일터의 짜증은 왜 없었겠나
그래도 이 여름
떠나니 아쉽고
가을 앞에 주눅 드는 마음
그 가을이 몇일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