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7 국내 신인선수드래프트가 다음주 월요일로 다가왔다.
부산 KT가 1,2순위를 휩쓴 가운데, 올해도 허훈, 양홍석, 유현준 등 재능있는 선수들의 등장으로 드래프트 행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할 예정이다.
20년이 넘는 프로농구의 역사 속에서,수많은 선수들이 드래프트를 통해 데뷔했다. 현재 '레전드'로 일컬어지는 여러 선수들 가운데 당당히 1라운드 1순위를 마크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놀랍게도 현재 명성과는 다르게 후순위로 지명된 선수들이 존재한다.
총 21회 진행된 KBL 역대 드래프트 중 각 순위를 대표하는 20명을 뽑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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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1순위 2004년 양동근
KBL을 빛냈던 선수 중 누가 최고의 선수였냐는 질문에는 여러 선수의 이름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KBL 역사상 누가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냐는 질문에는 한 명으로 답이 좁혀진다. 바로 양동근이다. 양동근은 최고의 가드이자 최고의 리더이다. 양동근이 데뷔한 이래 현대모비스가 6강 플레이오프에 떨어진 횟수는 단 2회에 불과하다.(양동근 군 복무기간 제외) 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KBL 역사에 전무후무한 쓰리핏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제는 38살의 나이로 노장 축에 속하지만,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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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2순위 2010년 이정현
KBL 역사상 최고 연봉선수. 이 한마디로 이정현의 현재가치를 설명할 수 있다. 이정현은 2010년 드래프트에서 2순위로 KT&G(현 KGC)에 입단한 이후 매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2년에는 팀의 핵심 식스맨으로 팀의 우승에 일조했고, 2017년에는 오세근과 더불어 토종 에이스로 활약하며 안양의 두 번째 우승의 주역이 됐다. 이정현이 빛났던 부분은 승부처에서 해결사의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줬다는 점이다. 특히 삼성과의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보여준 위닝샷은 KBL 역사에서 손에 꼽을만한 하이라이트 필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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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3순위 2001년 김승현
신인 시절 김승현이 보여준 플레이는 충격 그 자체였다. 단신의 선수가 게임을 지배하는 모습과 마르커스 힉스와의 합작플레이는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동양(현 오리온)은 전 시즌 최하위에서 바로 통합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김승현은 역대 최초로 신인왕과 정규경기 MVP를 석권하며 자신의 시대를 알렸다. 거칠 것이 없었던 김승현을 막아 세운 것은 부상이었다. 김승현은 계속된 허리부상으로 점점 결장횟수가 늘어갔고, 이면계약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올랐다. 이후 삼성으로 소속팀을 옮겼지만,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2014년 삼성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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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4순위 2008년 강병현
'황금 드래프트가 몇 년도냐'는 얘기는 드래프트 시기마다 심심치 않게 나오는 주제이다. 이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연도에 2008년도 있다. 2008년은 하승진, 김민수, 윤호영, 강병현이 지명된 드래프트로, 강병현은 전자랜드에서 지명됐지만, 프로 데뷔 3개월 만에 서장훈과 트레이드되며 KCC로 소속팀을 옮겼다. KCC에서 강병현은 전성기를 보내며 팀의 두 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큰 역할을 하며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이후에는 김태술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KGC로 한 번 더 이적한다. 이적 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한동안 코트를 비웠지만, 지난 시즌 복귀해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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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5순위 1999년 강혁
최근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선발된 선수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KT의 주전 가드로 자리 잡은 이재도와 DB를 거쳐 현재는 군 복무 중인 허웅이 그들이다. 하지만 커리어의 초창기를 보내고 있는 그들이 현재까지의 성과만 가지고는 강혁을 넘어서기는 힘들다. 강혁은 전성기 시절 팔방미인으로 불릴 정도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도드라진 부분은 수비력과 외국 선수와의 투맨 게임이었다. 강혁은 다재다능한 모습에 자신만의 강점까지 겸비하며 삼성의 두터운 가드진 사이에서도 항상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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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6순위 2007년 신명호
사람들은 때때로 수비가 아주 뛰어나고 그에 비해 공격은 아주 뛰어나지 않은 선수들을 과소평가할 때가 있다. 이 예시에 정확히 부합하는 선수가 신명호이다. 신명호는 약한 공격력을 가졌지만,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라는 무기를 바탕으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프로 무대에서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신명호는 커리어 동안 세 개의 수비 5걸상을 수상했는데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수비 5걸상이 없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더 대단한 기록이다. 신명호의 수비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2009년 챔피언결정전이었다. 이 시리즈에서 신명호는 평균 22분의 출전시간 동안 2개가 넘는 스틸을 기록했고 쏠쏠한 3점슛까지 곁들이며 알토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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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7순위 1998년 신기성
신기성은 대학 시절의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실망스러운 순위인 7순위에 지명됐다. 하지만 신기성은 초반부터 화려하게 빛났다. 신인 시절 한국 농구 역사상 손에 꼽히는 선수들인 서장훈과 현주엽을 제치고 당당히 신인왕을 차지한 것. 이후 신기성은 ‘총알 탄 사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TG를 정상으로 이끌었다. 신기성은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외곽슛까지 겸비하며 가드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전성기에서 내려온 후에도 KT와 전자랜드에서 팀을 정규경기 2위로 이끌며 베테랑의 품격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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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8순위 2006년 조성민
조성민은 사실 대학에 진학할 때에만 해도 큰 주목을 받는 유망주가 아니었다. 꾸준한 노력을 통해 프로 무대에 데뷔했지만, 그의 순위가 말해주듯 최고 수준의 선수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군 전역 이후 KT의 주전 선수로 입지를 굳혀나갔고 결국 나라를 대표하는 슈터로까지 인정받았다. 하지만 조성민도 아직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우승 반지이다. 2010-2011시즌 KT는 역대 정규경기 최다승 신기록을 작성했으나 4강 플레이오프에서 동부(현 DB)에 패하며 통합우승에 실패했다. 결국, 지난 시즌 조성민은 우승을 위해 칼을 빼든 LG로 트레이드되었지만,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우승 반지를 손에 넣을 기회를 다음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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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9순위 2013년 전준범
전준범은 고교 시절 기대치보다 대학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며 2013 드래프트에서 9순위까지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서 유재학 감독의 지도를 받으면서 팀의 주축으로 거듭났다. 데뷔시즌 2.05점으로 시작해 매년 발전을 거듭하며 지난 시즌에는 평균 10점 이상을 기록한 것을 보면 그의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번 여름 아시아컵에서 맹활약을 펼쳐 국민에게 자신의 이름 세 글자를 각인시켰다. 이제 전준범은 팀의 주축선수를 넘어 차세대 국가대표 슈터로의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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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10순위 2007년 함지훈
함지훈은 지명 당시만 해도 언더사이즈 빅맨으로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현대모비스의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함지훈은 식스맨으로 시작해 2010시즌에는 정규경기 MVP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모두 차지하며 현대모비스의 주축으로 올랐다. 이는 골밑에서 특유의 스텝과 영리함이 바탕이 된 것으로 운동능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리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양동근과 더불어 현대모비스의 핵심선수로 꾸준히 활약하며 10순위의 신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