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으로 사는 건 삶을 윤택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계획적이다’란 말은 부정적 의미가 강합니다. 그러함에도 개인적으론 ‘계획적 삶’을 추구하는 편입니다. 여행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저는 여행에 있어 매우 진지한 편입니다. 한 곳을 콕 집어 가는 것 아니면 사전에 오가는 길, 중간에 들러볼만한 곳, 맛집을 찾고 가까이 사는 지인들에게 검증까지 받아 동선에 따른 이동거리, 시간계획을 세우고서야 길을 떠납니다. 이왕 떠나는 여행, 볼 곳, 먹을 것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에도 가족 여행을 즐기긴 하였지만, 본격적으로 기획 여행을 시작한 건 ‘02년부터입니다. 어머니 7순 잔치를 마치고 4남매 가족이 부모님 모시고 매년 2박3일의 가족여행을 다녔습니다. 주 목표지역이 결정되면 인근의 갈만한 곳, 볼만한 것, 먹거리를 찾아보고, 물어보고 책을 보고 후보지를 선정 후 동선을 고려하여 초안을 만듭니다. 우리나라 안에도, 이 지역에 이런 곳이 숨어 있었구나, 가족들이 이런 곳을 더 좋아하겠지, 알아가는 재미, 고민하는 즐거움이 큽니다. 육해공군을 골고루 섞은 식단-비록 사 먹는 거지만-을 짜는 것도 힘들면서 재미있는 일입니다. 여행 시작 초기에는 네이버 지도 같은 것이 없었기에 도로전도에서 여행지역 지도 위에 기름종이를 얹고 동선을 따라 그린 후 스캔하여 가족들에게 메일로 보내고 출력하였습니다. 몇 번 국도로 가다가 어디서 몇 번 지방도로 갈아타고 어디로 가서 또 어디로... 거미줄 같은 도로망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우리 가족들이 다 알 수 있게 말로 풀어 썼었습니다. 행선지별 이동거리는 도로전도에 표시된 지역별 거리를 합산하여 표기하였습니다. 네이버, 다음지도 서비스가 시작된 뒤엔 한결 편해졌지요. 네이버 지도에서 경유지, 목적지를 나열해 두고 쭉 연결해 동선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한 준비사항입니다. 행선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정리하는데도 네이버, 다음박사가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여행 안내서적도 참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계획을 잡느라 해당 지역의 자료를 찾다보면 그리 넓지 않은 한반도임에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모르는 곳이 참으로 많구나 싶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에 동의하지만 보는 만큼 알게 된다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이러한 저이기에 준비 없이 떠나는 여행은 지양하지만, 며칠 전에는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났습니다. 벗이 작년부터 함께 여행가자고 하였는데 한 번도 함께 하지 못하였기에 이번 요청은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고흥으로 가자면서 그 지방의 어디를 꼭 들르고 싶다는 곳은 없었습니다. 2박3일, 어디를 보고 뭘 먹을지 막막했습니다. 문득, 작년에 계획을 잡았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던 장흥, 보성 여행계획 초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 코스 중 일부를 포함하면 되겠다, 조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웬걸, 월요일 아침에 출발 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수요일 출장 일정이 잡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여행은 1박으로 줄었고, 사정을 들은 친구가 구례 사성암으로 목적지를 바꾸자더군요. 장흥 340km 대 구례 180km,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 시작된 계획 없이 떠난 여행,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하여 한 가지 배웠습니다. 가끔은 무계획도 의미 있을 때가, 보람 있을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앞으로도 여행에 앞서 계획을 충실히 짜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즉흥적인 여행도 떠나볼 마음이 들었습니다. 여행, 참으로 가슴 설레는 단어입니다. 이번 주 중 하루는 부산 영도구의 깡깡이예술마을, 흰여울문화마을을 돌아볼까 생각 중입니다. 없는 시간도 만들면, 쥐어짜면 여유로 돌아오니까요.
구례 사성암에서 1박2일 전라도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981073679
구례 삼성벽화마을, 볼거리가 풍성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981807064
남원 광한루원과 만복사지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982655953
이번 여행의 마지막, 마이산 탑사를 돌아보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2982689833
여행을 떠나야 할 때(모셔온 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운 적이 있다면,
사실은 눈을 뜨기 전부터
가슴이 미어져서 눈을 뜨고
방금 베인 상처처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온 적이 있다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고
잠의 꼭 다문 침묵을 벌리며
몸을 뒤척인 적이 있다면,
돌아누운 쪽에서도
구멍보다 큰, 구멍보다 큰 구멍에 놀라서
머리를 무릎 안에 파묻은 적이 있다면,
말린 모양 그대로 미라처럼 말라서
부스스 흩어졌으면 한 적이 있다면,
독하게 당신은 떠나야 한다.
-----최반의 <여행, 그리움을 켜다> 중에서
저는 이 글 내용과는 무관하게, 언제든 떠납니다. 떠나고 싶다면 없는 시간을 쥐어짜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