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사노동
손 원
아침에 일어나니 허벅지에 물린 자국이 있고 가려웠다. 며칠간의 태풍에 습도가 높아 침대에 벌레가 생긴 듯했다. 안방에는 더블 침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 손자 둘과 함께 잔다. 어린것들이 물려 가려웠을지도 모른다. 주말이라 애들을 제 부모께 보내고 침대를 들치고 묶은 먼지를 털어냈다. 살충제를 살짝 뿌려 보기도 했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이불을 모두 세탁해야 개운할 것 같았다. 토요일이라 아버님이 계신 시골집에 가는 날이다. 단독 주택에 마당이 넓어 이불 말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침대 이부자리를 차곡차곡 접어 포개니 허리춤까지 쌓였다. 승용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시골로 갔다. 가끔 화창한 날이면 시골 장롱에 있는 이불을 꺼내어 한나절 말려 넣곤 했다. 말린 후 막대기로 두드리면 먼지가 풀풀 날렸다. 뽀송해진 이불을 장롱에 넣어 두면 명절 때 모인 가족들이 꺼내 덮는다.
한더위 땡볕에 늘어 말려도 충분하지만, 기왕 마음먹은 김에 손빨래를 하기로 했다. 세탁기에 몇 번 나누어 넣는 것보다 큰 다라이에 한꺼번에 넣고 밟아 보기로 했다. 이불 몇 채를 깨끗이 빨아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다. 먼저 헛간 시렁에 올려 둔 고무다라이를 내렸다. 김장배추 절임 때 사용하는 다라이는 욕조만큼이나 커서 이불 다섯째를 넣고 수돗물을 찰랑거릴 때까지 채웠다. 그런 다음 분말 세제를 듬뿍 넣고 밟았다. 반바지에 맨발로 가득 찬 빨랫감을 사정없이 밟으니, 땟국물이 시커멓게 빠졌다. 다라이 옆에는 널찍한 깔개를 깔고 세탁물을 꺼내어 반쯤 나눠 한 번 더 밟았다. 물먹은 이불을 마당 구석 수도로 옮겨 배수구를 막은 채 물을 채우고 또 밟으니, 비눗물도 쏙 빠졌다. 무거운 이불을 담벼락에 걸쳐놓기만 하면 되었다. 아내는 세탁기에 넣으면 된다며 손빨래를 극구 말렸다. 아랑곳하지 않고 30분 정도 밟고 헹구니 마무리되었다. 그동안 아내는 별도로 세탁기에 이불 두 채를 빨았다. 한 채씩 투입하여 탈수까지 하다 보니 두 시간이 걸렸다. 다라이에서 건진 빨래는 오후 늦도록 마르지 않아 처마 밑에 걸어 두고 돌아왔다. 소낙비가 와도 안심이기에 며칠 지나고 걷을 요량이다.
오늘 손세탁하기를 잘했다. 두꺼운 이불 세탁은 주부들에게 무리다. 세탁기에도 무리가 감은 물론이다. 다리 힘 있을 때 가끔은 해 볼 만하다. 깨끗하고 뽀송하게 이불 세탁을 했으니 보람도 크다. 아내의 수고를 덜어 준 것과 가장으로서 쾌적하고 포근한 이불 제공에 한몫해서다. 작년 이맘때 이불 한 리어커를 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가 간수하셨던 이불이 장롱을 채우고도 남아 보따리에 싸 빈방에 방치되어 있었다. 대용량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렸다. 그래도 장롱은 비좁을 정도로 이불이 많다. 요즘 집은 보온이 잘 되기에 이불은 줄여도 된다. 이불이 많으면 간수하기도 힘이 든다. 올여름이 가기 전에 보관하고 있는 이불을 모두 세탁해야겠다. 오늘 같은 방법으로 한 번 더 한다면 얼추 다 할 것 같다. 가족을 위한 노력 봉사기에 힘이 난다.
평소에도 식구를 위해 가사를 돕고 있다. 아파트와 시골집의 식칼을 합치면 10자루는 된다. 수시로 칼을 갈아 둔다. 음식 장만하는 아내에 대한 작은 성의다. 생활 쓰레기를 제때 비우는 것도 맡아한다. 수시로 쓰레기통을 확인해 보고 아내가 비우기 전에 먼저 비운다. 우리 집은 마트에서 생수를 구입해서 마신다. 생수가 바닥 날 때쯤이면 마트에서 승용차 트렁크 가득 생수를 사 와서 창고에 넣어 둔다. 미처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거나 하기 힘든 일을 수시로 해 주고 있다. 직장생활 할 때부터 해 온 일들이다. 은퇴 후 지금, 수고스럽기보다는 할 일이 있어 좋다. 아내를 돕고 식구들에게 긴요한 일이다.
가족공동체라고 했다. 번거롭고 힘든 일도 가족이 분담한다면 다 같이 만족할 수 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주부의 일상적인 일이 며칠이라면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수년 수십 년일 경우는 과중한 노동이 될 수도 있다. 가족이 가끔 한 가지라도 맡아 주면 주부로서는 큰 도움이 된다. 어릴 때 할머니는 남자가 주방에 들어오면 안 된다며 내쫓았다. 당시 관점으로는 이해가 간다. 옛 농촌의 대가족일 때는 일거리가 너무 많아,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을 맡았다. 가족 구성원별로 적절한 일을 분업한 셈이다. 남자는 농사일, 땔감 장만, 여자는 부엌일과 길쌈 위주였다. 지금은 가사에도 남녀 구분이 없기에 굳이 분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그때 필요한 역할을 해서 가족의 만족도를 높이고,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도록 노력하면 보다 화목한 가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23.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