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악일까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 죄가 가볍고 무겁고를 따지는 상한선은 뭐지?
사람을 심판하는 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나 악마, 그 외에 초자연적인 것들일텐데
너희들이 무엇이기에 우리를 심판한다는 거냐.
'매서커'이기 때문에 가능한거다
우리는 사신의 대리인, 신의 영역에서 벗어난 자,
악마에게 영혼을 떠맡긴 대죄인, 사람의 형상을 한 악마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심판하고 죽이고 벌하고 파괴하겠어
살육을 일삼겠어 지옥으로 보내주겠어 끝나지 않을 영원을 안겨주겠어
어디 언제까지 여유만만할 수 있을지 두고보자고.
God-
저울이 되겠다
그 추는 너희들이 되는거야
저울이 수평이 되지 않으면
가차없이 그 목을 잘라버릴테다
기울어진 저울대가 바로세워지면
그것이 곧 진리요, 정의요, 도덕이 될 것이다
동화나 우화같은 건 이미 한때의 꿈일 뿐일라고-
아직 새벽에 다다르지 못한 차디찬 밤바람이 창문 밖에서 흘러들어와 조심스럽게 방안을 휘감았다. 무례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그 바람은 고급외재가구와 붉은 카펫바닥을 휩쓸고 회오리치듯 가만히 떠돌고 있다가 연붉은 색의 커튼이 쳐져있는 커다란 침대 위로 스물스물 다가왔다. 사르락-거리는 얇은 천이 비짓거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울리면서 고요하게 잠들어있는 소년의 얼굴위로 잿빛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람이라고 생각했던 그 형상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뚜렷하고 냉철했으며 고소를 짓고 있었다.
을씨년스런 밤, 정적만이 감도는 방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어있는 금발의 소년만이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고 있을 뿐, 그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붉은 머리칼을 어깨위로 흘러내리게 한 여자는 그 머리칼만큼이나 붉게 덧칠한 입술끝을 둥글게 말아올리며 품속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들었다. 피 한방울 묻어있지 않은 그 칼날은 눈이 아플정도로 빛나고 날카로웠으며 그 위로 월광의 조각이 부서져내렸다. 그녀는 단도의 손잡이를 거꾸로 잡은 뒤 다른 한쪽손으로 소년의 심장이 있을 만한 곳을 조심스럽게 더듬거렸다. 곧 이어 미약하게 역동하고 있는 움직임이 그녀의 손끝에 느껴졌고 그녀는 작은 홍소를 흘렸다.
"끝이다, 매서커."
단도를 쥔 그녀의 손이 허공으로 천천히 올라가면서 칼끝을 소년의 왼쪽가슴으로 향하게 했다. 그 때까지도 소년은 몸 한번 뒤척이지 않고 잠들어있었다. 이제 곧 있을 그의 죽음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 편안한 얼굴로 눈을 내려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지 못했다. 소년이 알게모르게 미소짓고 있다는 걸.
"이제 곧 지옥으로 보내주마."
쉬이이익──!!
단 한번의 번쩍임이 있을 뿐, 단도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수직으로 내리꽂혀져 정확히 심장 한가운데로 향했다. 분수같은 피가 튀어나오며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와 함께 경악으로 물든 소년의 얼굴을 기대했던 그녀는 무언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을 받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졌다. 그녀의 단도가 다른 이의 손끝, 그것도 단 두손가락 사이에 잡힌 채 심장 바로 위에서 멈춰져있었다. 단 1cm도 안되는 거리를 남긴 채.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칼날끝을 저지했던 인물은 손가락을 조금 비틀어 단도를 퉁겨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는 그녀의 짙은 와인빛 눈동자를 주시하며 침대위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너.........어떻게..........잠든 게......아니었나?"
약간 떨리기까지 한 그녀의 목소리는 충분히 공포로 젖어있었다. 옅은 블로드 빛 머릿결을 가진 소년은 한쪽 손을 허리위로 올리며 고개를 약간 비스듬하게 젖혔다.
"이런 말 들어본적 없나? 매서커. 그들은 자면서도 은연중에 경계하는 자라고. 자면서도 잠들지 않는 자, 눈을 감고 있어도 모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자,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예감하며 잠못드는 자라고.......그런 까닭으로 매서커에는 암살이 통하지 않지. 그들은 '방심'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든."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냐-는 듯한 작은 비난이 담긴 눈길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상대가 어린애라고 방관한 것이 실수였다. 그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 했던 꼬마는 어린애이기 전에 '매서커'였다는 것을, 그녀는 그 사실을 명심하지 못한 채 단지 깊이 잠든 한밤중에 잠입해서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가 경매장에서의 그 일로 녹초가 되었을거라고 멋대로 판단한 결과의 오차였다. 그녀의 눈이 경악으로 조금 흔들렸다.
"그리고 지옥이라면 너무 많이 가봐서 이젠 지긋지긋하거든. 거의 단골이라고 해야할 정도야."
"그게 무슨......"
그녀의 경계심어린 시선이 소년의 금색 눈동자, 밝게 느껴지지만 왠지모를 한기를 품은 듯한
금안을 향하면서 조금씩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저 소년이 자신을 죽이기전에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만약을 대비해서 스커트 안쪽으로 숨겨둔 세개의 칼날을 살짝 움켜쥐면서 기회만을 노리고 있을 때, 소년의 금안이 급속도로 차가워져가면서 악마같은 미소를 지었다.
"한번 가보지 않겠어? 그 '지옥'이라는 곳을."
.....
"흐응~ 분명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한가한 피크닉이라도 즐기러 가는지 한쪽 어깨에 큼지막한 배낭을 든 엔비는 휘파람을 휘휘-불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황량한 들판에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풀초들이 바람결을 따라 부드럽게 고개짓을 하면서 사르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오래전에 망한 전자제품의 부품조각을 생산하던 조그마한 중소기업의 회사는 오랜 세월과 거친 비바람과 폭풍에 희석되고 부숴져서 본래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굴러다니는 철근들과 건물잔해의 조각들이 회록색의 부스러기를 뿌리고 있었다. 확실히 이런 곳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으므로 숨어있기엔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었다.
"뭐야아- 일부러 선물까지 들고왔는데-"
배낭안에서 무언가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단지 엔비의 움직임에 따라 저들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아닌, 가만히 있는데도 끊임없이 살아있는 것처럼 절그럭-거리며 배낭 밖으로 나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날카로운 칼날같은 게 잠시 번쩍-거렸지만 그 이상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배낭자체를 굵은 밧줄로 칭칭-감겨놓았기에 배낭안에 들어있는 수상쩍은 물체는 소용없는 몸부림만 치고 있었다. 엔비는 떼쓰는 동생을 달래는 것처럼 등뒤를 흘끔-돌아보면서 이제 곧 나오게 해줄꺼라며 배낭 안에 든 물체를 위로했다.
"도대체 어디 숨어있는거야? 모처럼 재밌는 걸 보여주려고 했더니 말짱 도루묵-이잖아. 괜히 힘들게 이런거나 들고오고."
엔비가 말한 '이런거'는 잠잠한 침묵을 유지했다. 확실히 엔비의 가만있으라-는 말에 대응하는 걸 보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살아있는' 것인지는 의심스러웠지만.
"......!!.."
돌연 엔비의 연보랏빛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
"으음.........여기가.....어디...지?"
"아, 깻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조금 들어올렸을 때 그녀가 본 것은 자신의 팔다리가 허공에서 4,5m정도 떨어진 벽에 붙어있다는 것과 그녀의 발밑에 천으로 둘러쌓인 (아직 알 수 없는)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살해하려던 소년이 그로부터 약 7,8m 떨어진 의자위에서 미소짓고 있는 모습이었다. 점점 뚜렷이 돌아오는 정신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그녀가 있었던 호텔의 배경이 아닌 먼지와 거미줄로 장식된 짙은 암회색의 벽과 천장까지 쌓아올려진 골판지상자가 무더기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오래된 창고나 물품보관소 안일것이라고 짐작한 그녀의 시선이 여전히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미소짓고 있는 소년에게로 향했다. 얄미울 정도로 장난꾸러기 같은 그 모습은 흡사 작은 악마처럼 보였다.
작은 악마가 말했다.
"말했잖아. 지옥을 가게 해준다고. 여기는 그 지옥의 문턱이야. 이제 곧 있을 생지옥의 광경을 기대보라고."
"날.....어쩔 셈이지?"
그녀의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작은 악마-에드의 손에 들린 리모콘에게로 향했다. 그 리모콘 표면에 불룩 튀어나와있는 몇개의 버튼은 확실히 위험해보였다. 무엇보다 이런 애매모호한 곳에 묶여있다는 것이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에드는 손에 들린 리모콘을 허공에 몇 번 던졌다 되받으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이건 지옥으로 가게해주는 티켓이자, 그 소도구야. 혹시 인어공주란 얘기를 들은 적 있어?"
"인어........공주?"
...
"으윽.....말도 안돼......"
"수십명이나 되는 인원이..........저런..........."
바닥에 고꾸라져 거칠게 숨을 몰아쉬던 남자는 끊임없는 고통이 밀어닥치는 몸을 뒤틀었다. 금방이라도 자지러지는 비명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 피로 범범이된 얼굴을 들어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 남자 외에도 창고 곳곳에서 쓰러지고 집어던져진 남자들은 하나같이 멀쩡하지 못한 모습으로 신음을 흘리며 그 와중에도 공포에 질린 채 한가운데에서 여유만만하게 채찍을 휘두르는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송이....한테.....!..........."
남자가 말한 '애송이'는 잠깐 얼굴을 찌푸리다가 곧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흐음, 난 분명히 선물까지 갖고 기분좋게 방문했는데 아저씨들이 멋대로 덤빈거잖아요. 방문객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게 어딨어요? 섭섭하게시리....."
엔비의 말에 울컥-한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우, 웃기지마! 너, 넌 우리를 죽이려고 오, 온거잖아! 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줄 알고! 절대 그렇겐 안돼지! 괘, 괜히 선심쓰는 척 하지마, 이....악마녀석아!"
쉬리리릭──, 철써억─!!
순식간에 휘둘려진 채찍이 남자의 등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채찍끝에 달린 작은 쇠고리는 남자의 등을 찢어발기며 섬뜩한 혈관을 뜯어냈고, 척추뼈를 긁으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자아냈다. 피가 섞인 고함이 창고안을 가득채웠다.
"우아아아악───!!"
"말 함부로 하지마. 이 버러지같은 자식아.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면 그 때는 산체로 가죽을 벗겨줄테니 마음껏 떠들라고. 이제 곧 재밌는 게임을 할건데 그렇게 호의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곤란하지. 안그래?"
"끄, 크으으윽....게, 게임이라고.......? 또 무슨짓을........"
피에 절은 채찍을 다시 감아올리며 살점과 핏덩이를 떨어뜨리던 엔비는 손가락으로 배낭을 가리키며 조소를 머금었다.
"아저씨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알아?"
....
"인어공주...라고? 뜬금없이 그게 무슨소리냐!"
에드의 말이 자신을 조롱하기 위해 써낸 농담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주먹을 내뻗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의 두 팔은 물론, 손목까지 두꺼운 철갑에 묶여있어서 내지르기는 커녕 그 자리에서 불끈- 쥐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붉은 입술 안에서 거친 욕설이 난무했지만 그걸 경청해야할 에드는 도리어 딴청을 피웠다.
"난 농담하는 게 아냐. 이건 진지한 거라고. 인어공주는 왕자를 살해하려다 결국 포기한 채 바다에 몸을 집어던지게 되지. 나 같은 경우엔 인어가 포기한 게 아닌, 왕자에 의해 '저지'당한 경우지만."
"하아, 니가 인어공주에 나오는 왕자라고 말하고 싶은거냐? 동화를 너무 많이 봤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도 에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싱긋-웃으면서 리모콘에 박힌 무수한 버튼 중 하나를 살짝- 눌렀을 뿐이었다.
기잉-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천이 벗겨지고 그 안에 감춰진 물체가 그녀의 발 아래서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의아한 눈동자가 아래로 향하면서 그 물체가 드러나는 것에 비례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여져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물체가 완전한 모습을 감추었을 때 그녀는 비명같이 외쳤다.
"이, 이건-!!"
휙, 파카가가각──!!
에드가 던진 리모콘이 질풍같이 회오리치는 거대한 칼날 사이로 들어가면서 끔찍한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사방에 흩날렸다. 그녀는 자신의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리모콘의 잔해를 느끼면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에드를 바라보았다. 에드는 리모콘이 없어 허전해진 손바닥을 훌훌-털며 검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여기서 문제, 인어공주는 맨 마지막에 뭐가 되었지?"
.....
"우리를......어쩔 셈이냐! 왜 죽이지 않는거지!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는거냐!"
"제길, 저 악마가 이번엔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일렬로 두 손을 등뒤로 묶인채 땅바닥에 포박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욕설과 애원을 난무해대며 엔비의 대답을 기다렸다. 바닥위로 뿌려진 흥건한 피에 젖은 배낭은 여전히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고 모두들 그 배낭속에 든 물체가 무엇인지를 공포와 불안이 뒤섞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엔비가 말한 '선물'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들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분명......
"그럼 선물을 공개하겠습니다."
-살인기구일 것이다.
부스럭부스럭 스윽-
그리고 그 물체가 나오자마자 남자들은 하나같이 당혹과 황당함에 비명과 고함을 질렀다.
"저, 저건!"
"마, 맙소사! 저런 게...."
"그것이 니가 가져온........살인병기냐?"
"딩동댕-"
엔비가 가져온 그 선물은......
달각, 달각-
"목이다! 목이다! 목을 잘라라!"
거대한 도끼를 든 하트여왕 인형이었다.
....
삐그덕, 삐그덕.
"선물이 맘에 드셨나?"
엔비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엔비의 손에 들린-아직 바닥에 내려놓지 않은-하트여왕인형, 정확히는 그 인형이 든 체구에 맞지 않는 거대한 도끼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육중한 도끼날은 금방이라도 그들의 목을 잘라버릴 것만 같았다.
".........."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엔비는 "그럼 잘들 놀아봐요-"라고 말하면서 인형을 바닥에 내려놓았고 남자들은 하나같이 움찔-거리며 꽁꽁 묶인 몸을 비틀어 뒤로 주춤거렸다.
절그럭, 절그럭.
"엔비! 엔비! 이거 다 잘라도 돼!?"
하트여왕인형은 내려놓자마자 위협적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깔깔-거렸고 엔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든 것은 하트여왕님의 뜻대로-"
-살육의 허락을.
엔비의 말을 시작으로 하트여왕인형은 곧장 앞으로 전진해나갔다. 남자들의 얼굴이 공포로 핼쓱-해지더니 급기야 온갖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허나 그들의 몸은 엔비가 팔, 다리를 꽁꽁 묶어 바닥에 뉘어놓아서 도망가는 것은 물론, 앉아있는 것 자체도 힘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거대한 도끼날이 휘둘려지면서 여기저기서 피와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쉬익, 썩둑-!
"으아아악!!!!"
부웅- 커득─!
"끄아아아아악!!"
"꺄하하하!! 목을 잘라라! 하트여왕의 뜻을 따르지 않는자는! 목을 잘라 없애버려라!"
콰득, 툭, 데구르르.
싹둑-! 비명. 잘라져가는 목. 깔깔대는 웃음소리. 콰직! 반으로 쪼개진 머리. 절규. 웃음소리.
하트여왕의 움직임과 도끼날이 내려쳐질 때마다 목이 잘리고 분수같은 피가 내뿜기를 수십차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명을 멜로디삼아 싱글벙글-웃으며 바라보던 엔비는 하트여왕의 살육이 모두 끝나자 읏차-하는 가벼운 기합소리와 함께 나무도막상자 위에서 내려왔다. 바닥으로 내려섬과 동시에 엔비가 있는 곳까지 흘러들어온 피가 철썩-! 하는 소리를 내었다. 코를 찌르는 듯한 피냄새, 역겨울 정도의 뇌수와 살점이 벽과 천정에 달라붙어 있는 광경은 그를 즐겁게 했다. 자신의 살인센스(라는 것도 존재한다면)에 대해서 엔비가 혼자 자화자찬하고 있을 때 더 이상 자를 목이 없다고 판단한 하트여왕은 삐그덕, 삐그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목이 없어! 목이 없어! 자를 목이 없어! 목을 내놔! 목을 내놔! 목을 잘라야돼! 목을 내놔!"
....
"그만, 그만둬. 제발 그만......"
에드의 본심을 파악한 그녀는 새파래진 얼굴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리모콘이 부숴짐과 동시에 그녀의 몸은 천천히 아래로 향했고 보기만 해도 섬뜩한 칼날들이 회오리치며 야수같은 이빨을 날카롭게 빛내고 있었다. 저런 칼날들 사이에 떨어지면 온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이 분명했다. 그걸 생각하자 그녀의 마음은 조급해지고 어마어마한 공포가 몰려오면서 기분이 섬뜩해졌다. 살아야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끔찍한 방식으로 죽을 순 없었다. 그것도 인어공주의 마지막장면을 재현한다는 웃기지도 않는 어느 빌어먹을 꼬마의 장난으로.
"살려줘! 부탁이야! 제발 저걸 멈춰줘!"
그녀의 눈물섞인 애원에도 불구하고 에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걸 어쩌나- 멈추려고 해도 리모콘이 망가져버렸는데?"
에드의 말을 들은 그녀는 아까 에드가 리모콘을 던진 행동이 단순히 공포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구실도 있었다는 걸 깨닫고는 분노의 고함을 질렀다.
"너! 설마 일부러....!!....."
"일부러 그랬다면? 그렇다면 어쩔껀데? 어차피 당신은 살려둘 생각도 없었어. 그냥 죽이긴 시시하고 이런 게 더 신선하잖아? 안그래 암살자씨?"
봇물같이 터져나온 목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이런 잔인한 방법을!!.........이......더러운 악마 같으니!!....."
그러나 상대방은 여전히 유유자적했다.
"자주 듣는 소리야. 매서커는 원래 인간의 탈을 쓴 악마라고 하잖아?"
....
하트여왕인형의 말을 들은 엔비는 곤란하다는 듯 주위를 쓱-둘러보았다. 이미 비명과 신음은 멈춘 지 오래였고 더 이상 목숨이 붙어있는 자는 없는 듯 했다. 몇 번이나 내려치고 토막난 머리가 핏덩이에 감겨 역겨울정도의 악취를 풍겼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기절할 만한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엔비의 눈에는 흥미로운, 한낱 재미있는 광경에 불과했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수많은 시체들과 하트여왕의 도끼를 보며 이래로운 빛을 띄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고 생각했을 때, 난데없이 하트여왕의 도끼가 휘둘려졌다.
부웅-
"목을 내놔! 없으면 니목이라도! 니목이라도 내와! 목을 내놔!"
간발의 차이로 거대한 도끼날에게서 머리를 사수한 엔비는 그 자리에서 한바퀴 공중제비를 돌아 가볍게 착지했다. 그는 또다시 도끼자루를 꼬나쥐고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는 인형을, 그 인형의 광기어린 얼굴을 보면서 만족스런 웃음을 머금었다. 하트여왕의 도끼가 또 한번 치켜올지려는 순간, 그는 양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앗, 잠깐잠깐. 잠깐만요. 여왕님. 목이라면 하나가 더 있잖습니까?"
인형의 손에 달린 도끼가 멈칫-했다. 하트여왕인형은 주위를 부산스럽게 돌아보며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주절거렸다.
"하나? 하나? 또있어? 목? 어디에? 어디에 있어?"
-조소. 그것은 소름끼칠 정도로 무서운 악마의 미소. 그것을 띄운 얼굴은 진정 악마인가?
악마가 말했다.
"여왕님의 목 말입니다."
....
키리리리릭────!!!
"살려줘! 살려줘! 제발!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구! 제발 저걸 멈춰줘! 너라면 할 수 있잖아!"
휘몰아치는 칼날위에서 단 50cm 안되는 곳까지 내려온 그녀는 악에 바친 고함을 지르며 미친듯이 머리를 휘저었다. 그녀의 어깨위로 차분하게 드리워져있던 머리칼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불길같은 형상을 띄었다. 그녀의 냉정했던 얼굴위로 공포에 질린 눈물이 왈칵-쏟아지면서 하얀얼굴을 적셔나갔다. 그러나 에드는 여전히 무덤덤했다.
"이제 곧 클라이맥스. 잘 가요 인어공주."
-지옥으로의 한걸음을 축하하며.
곧이어 터져나오는 비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퀴리리리릭!! 파가가각!! 커걱─!! 퀴귁퀴귁퀴이이익────!!
끔찍한 마찰음과 함께 발끝에서부터 그녀의 몸이 갈라지고 찢어지기 시작했다. 신고있던 신발과 바지가 거대한 칼날끝이 스쳐지나가면서 조각조각 흩어졌고 매끄러운 살결을 버터 자르듯이 잘라낸 칼날엔 살점과 검붉은 피가 빗발처럼 쏟아치기 시작했다. 신밭끝에서부터 절단되고 난도질당하는 몸은 자잘한 살덩어리와 선명한 붉은색의 핏방울로 점혈되 사방으로 무섭게 튀겨져 나갔다. 그녀에게서 약간 멀리 떨어진 에드의 발치에도 핏방울 하나가 튀면서 바닥위에 둥근 원을 그렸다. 그가 미소지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른후 그녀를 묶었던 철갑 하나하나까지 분해된 끝에야 에드는 등을 돌리며 의자위에 걸쳐놓은 검은재킷을 집어들었다. 먼지 한톨 떨어져있지 않은 재킷을 주섬주섬 입으면서 그는 흘끗-뒤를 돌아보았다. 수많은 핏방울과 살덩어리가 끔찍한 조화를 이루며 피의 폭포를 연출하고 있는 벽면에는 붉은 머리칼이 찐득-하게 달라붙어있었다. 그는 잠시간 벽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돌연 등을 돌리며 혼잣말하듯이 중얼거렸다.
".....그리하여 인어공주는 마지막에 피거품이 되어 사라졌습니다. 새빨간 피거품으로 말이죠. 해피엔딩 해피엔딩"
그리고 그가 항상 즐겨 사용하는 한구절도 있지 않았다.
"지옥에서의 행복한 파라다이스를-"
....
인근 주민의 신고로 다 헐거진 창고로 달려온 경찰관들은 안에서 배어나오는 희미한 피냄새에 혹시나-하는 불안감을 느끼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의 광경을 본 순간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끔찍하게 토막난 시체와 터지고 짓밣히고 짓이겨진 살점은 피에 물들어 천장과 바닥, 벽 등 창고안을 가득 메우며 진짜 지옥의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도저히 멀쩡한 정신으로 볼 수 없는 잔인하다 못해 잔악한 모습이었다.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에 그들은 질겁했다.
창고 한가운데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인형의 목은 데굴데굴 구르면서도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꺄하하하! 목을 잘라라! 목을 잘라라! 하트여왕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목을 잘라라!"
진짜 지옥을 보여줄까?
그럴 만한 용기가 있어?
그럴 만한 자신이 있어?
우리는 저울을 수평으로 이루는 심판자가 될꺼야
기울어진 저울대를 바로세워줄꺼야
다시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모든 것이 평등하도록 만들어줄꺼야.
그걸 위해 자르는 목은 작은 희생일 뿐이야.
단지 그것뿐이라고
세상을 심판하는 건 신도 악마도 아닌 우리들
'매서커'뿐이야
─────────
매서커를 독촉하는 압박의 소리가 커진 듯하여 이렇게 올렸습니다.
아아~ 또 언제쯤 올리려나...(먼 산)
매서커도 얼른 진도(?) 나가야 되는데....(암울;)
첫댓글 후후후~재밌어라~♡
매서커 기다렸습니다 !! 아악 !! 오랜만이시네요 !! 너무 재미있어요 ㅠ
너무 기다렸어요[시끄러워!]흑[- -]
오 매서커 진짜오랫만이네요>_< 시간나면 다른것(아랜)도올려주시길[<-독촉하지마!!]후후후...
아아 ㅇ_ㅇ! 매서커! 오랜만이네요,,!
......저기,이번 편 정말 호러스럽돠.<-/ 해피엔딩이라, 에드 무서워;ㅅ;<-
정말 무서워요....;ㅁ;
어어어어- 꿈에 나타날까봐 무서워요 [벌벌벌];_ ;
호오 재밌어요~!! 잔인한거 원추~☆<이게 미쳤구려 ㅉㅉ);; 머 매서커랑 블러즈키즈 빨리연재 부탁드려요~역시 작가님들한테 부탁하려면 살인도구가 필요하남? 하여간 쥰언니소설은 세계최강!!!
전 상상과 계산이 안되요 'ㅂ' <-니머리가 나빠서그래 'ㅅ'
해피엔딩 해피엔딩.. 제가 좋아하는 문구죠. 오늘도 역시 해, 피, 엔, 딩, 이었군요.. (씨익) 재미있어요
심장이 마구 뜁니다.꿈에 나타날까봐 무섭네요. 머릿속에 엄청난 상상이 꿈에만 안나타나기를 빌겠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저의 예상과는 전혀 빚나가버린 소설의 내용..!! 새벽에 읽었다면..잠을 못잤을지도...!! 그럼 잘읽고 갑니다.!
12시가넘은시간에 보는이짜릿함이란+ㅂ+
정말..재미있어요+ㅁ+!!!상상을 하면서 보면....더 ...짜릿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