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10년 차                        여송 이연배 영농 10년이면 농사에 달인이 될 줄 알았다. 강산이 한 번 바뀔 동안 작물을 가꾸었으니 재배법을 훤히 꿰뚫어 농사가 누워 떡 먹기일 줄 알았다. 10년이 되면 농촌 사람보다 농사를 훨씬 잘 지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농작물 가꾸기가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강화에 밭뙈기를 마련한 초창기에는 어떤 작물이든 심어만 놓으면 잘 자라고 꽃이 피었다. 비료와 농약을 잘 주지 않아도 무럭무럭 자랐다. 농민의 아들이기에 영농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속으로 흐뭇했다.  영농 초기, 밭 한쪽에 씨를 뿌려 어렵사리 부추밭을 이루어 놓았다. 부추가 어찌나 잘 자라던지. 솔잎같이 자란 잎을 가위로 베어도 금방 자라났다. 별다른 거름을 주지 않아도 황금알을 낳은 거위 같았다. 겨울에는 보온해 주지 않아도 죽지 않고 봄이면 싹이 나와 불사조 같았다. 부추는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고 죽지 않는 식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몇 년 후 작물 위치를 바꾸느라 부추밭을 옮겼다. 튼실한 뿌리를 옮기면서 믿는 식물이기에 그리 정성 쏟지 않았다. 그런데 옮겨 심은 부추가 빨리 안착하지 못했다. 급한 마음에 비료를 주었더니 몽땅 죽어버렸다. 활착되지 않은 뿌리에 화학 비료는 독성이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은 격이었다. 그 이후 몇 해 동안 씨를 뿌리기도 하고 뿌리를 사다가 심었지만, 부추밭은 쉽게 조성되지 못했다. 영농 10년째인 작년에야 간신히 다시 자리를 잡아, 튼실한 부추를 베어먹었다. 작물 가꾸기는 많은 경험과 정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작물의 연작을 피하려고 매년 심었던 가을 채소밭을 옆으로 옮기고, 사방으로 들깨 모종을 심었다. 들깨 모종이 내 키를 훌쩍 넘게 잘 자라 기분이 흐뭇했다. 나의 영농 소질에 혼자서 뿌듯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잘 자란 들깨가 사방으로 둘러있어 그 가운데 있는 무와 배추에 햇볕이 들지 못했다. 결국 무와 배추는 잘 자라지 못해 작황이 형편없었다. 햇볕 잘 드는 곳에 추가로 심은 채소로 간신히 김장은 했지만, 작물에 그늘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영농 10년째라 자랑한 게 부끄럽고 창피하기만 했다.  영농 10년째, 돌아보니 해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지난해 미흡한 부분을 신경 쓰면, 다음 해에는 또 다른 일이 발생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병충해가 창궐했다. 변화무쌍한 자연환경 속에서 작물을 잘 가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사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게 많았고, 해마다 만족보다는 아쉬운 게 많았다. 농사는 타고난 소질보다는 여러 경험과 많은 정성이 중요했다.  나의 글쓰기도 작년이 10년째이다. 글쓰기 10년이면 글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1만 시간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다. 매일 3시간씩 훈련할 경우 10년이면 1만 시간이 된다. 그래서 글쓰기도 10년을 쓰면 익숙하고 깨달아 수월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글쓰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마른 나무에서 기름 짜듯 몇 날 며칠 끙끙 앓다가 겨우 한 편 쓰지만, 나중에 살펴보면 마음에 들지 않고 문학성도 부족하다. 이는 나의 예술성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농촌에서 태어난 나에게 선천적으로 무슨 예술성이 있겠는가. 모차르트처럼 음악가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면 모르지만. 아울러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도 못했다. 어린 시절 이웃집에 굴러다닌 소설책을 몇 번 읽었을 뿐이다. 그래도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게 천만다행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동문학가이신 담임 선생님을 만난 덕에 난생처음 글을 썼다. 외할머니에 관한 내 글이 어린이 신문에 실리기까지 했다. 이후 고등학교 1, 2학년 때 세계 문학전집과 단편 소설들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도서관에서 일까지 하며 책을 빌려 보기도 했다. 이후 공무원이 될 때까지 힘겹고 바쁜 일상으로 책을 읽지 못했다. 그러다가 40대 초반에 우연히 손에 잡힌 책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드디어 독서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난 것이다. 이후 바쁜 직장 생활 속에서도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공무원 퇴직 후 다니게 된 직장을 지하철로 다니는 3년간의 독서는 나를 크게 변화시켰다. 때마침 접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나에게 예술성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이것이 글로 쓰는 예술성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굳어진 감성 속에서 10년 동안 글쓰기에 예술성이 얼마나 스며들었겠는가. 글을 쓰는 동안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이나 경치를 보고 감탄하는 걸 보면 예술성은 더 살아나고 있는 것 같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쓰려고 애쓰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영농과 마찬가지로 글쓰기 예술성도 선천성보다는 후천성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글쓰기 10년을 다시 기대해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