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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란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은행의 기능이란 돈을 예금하고 보내고 찾는 기능이다.
한때 한 사람이 여러 개의 통장과 카드를 소지하기도 했으나 요즘은 보이스피싱 등의 영향으로 통장을 개설하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도 대포통장도 있고 보이스피싱은 여전히 설치고 있지만.
필자는 장애인상담실을 운영하므로 예전에는 부산시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았으나 몇 년 전부터 사업비와 운영비 처리가 마땅치 않아 부산시 지원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 그래서 여러 은행으로 보내오는 후원자들의 후원금으로 사무실을 운영한다. 두 사람이 근무하는데 인건비는 없다. 약간의 교통비만 지원하는 자원봉사이므로.
필자가 사무실 임차료 관리비 등 운영비로 사용하는 입출금은 부산은행 인터넷뱅킹으로 하고 그 외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은행을 순례한다. 다른 은행은 액수가 많지도 않지만, 인터넷뱅킹은 은행마다 조금씩 방법이 달라 내 머리로는 여러 은행을 감당하기에 벅차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현금인출기 기존 화면. ⓒ이복남
언제부터인가 은행에서 통장을 새로 만들 때 외에는 은행 영업장에 갈 필요 없이 ATM (Automated Teller Machine)을 이용한다. 인터넷뱅킹도 있고 ATM도 있어서 은행 영업장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영업장을 이용하는 고객은 많아서 한 번씩 영업장에 가면 기다리는 대기표가 어떨 때는 10번이 넘기도 되기도 한다.
인터넷뱅킹이나 ATM을 이용하면 영업장에 올 필요가 없는데도 영업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인터넷뱅킹이나 ATM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일까. 아무튼 용호동 신한은행도 영업장은 없어서 통장을 바꿀 때면 중앙동이나 충무동 영업장을 이용한다. 그런데 이번 달 은행 순례길에 신한은행 ATM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대부분의 ATM에는 예금출금 예금조회 통장정리 등의 항목이 양쪽 옆으로 5개씩 나열되어 있다. 은행마다 약간씩 용어는 다르지만, 그중에서 필자가 필요한 항목은 통장을 정리해서 예금출금을 하면 된다. 농협이나 신협은 통장을 정리해서 누가 후원금을 얼마 보냈는지 확인하고 통장을 다시 넣고 예금출금을 하면 된다.
그런데 다른 은행은 통장으로는 예금 출금이 안 되고 신용카드나 체크카드가 있어야 한다. 필자는 카드도 여러 장을 이용하는 것이 번거로우므로 통장으로 출금이 되면 좋은데 안 된다고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아무튼 신한은행을 가보니 ATM의 화면이 기존의 화면과 달라져 있었다. 이게 뭐지? 기존의 화면은 예금 출금과 입금 등 양쪽에 5개씩 10개가 있었는데 신한은행 ATM에는 돈 찾기(출금) 돈 넣기(입금) 돈 보내기(계좌이체) 통장정리 등, 네 개의 항목만 큼직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용호동 신한은행 ATM은 ‘365일 바로바로’ 코너라고 되어 있는데 왼쪽에 있는 현금인출기에는 커다란 글씨체로 돈 찾기(출금) 돈 넣기(입금) 돈 보내기(계좌이체) 통장정리 등 네 개가 있었고 오른쪽 현금인출기에는 다른 은행과 마찬가지로 양쪽에 5개씩 10개의 항목이 있었다.
신한은행에서 이런 일도 하는구나 싶어서 반갑고 고마웠다.
신한은행 현금인출기 확대 화면. ⓒ이복남
필자는 장애인복지 일을 하는 사람이다. 현재 장애 유형은 15가지인데 그중에 시각장애인이 있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시력장애 시야장애 사시나 복시 등 몇 가지가 있다.
예전에는 장애를 1급에서 6급으로 구분하였으나 2019년 7월부터 6등급의 장애등급이 폐지되고 중증장애인과 경증장애인 2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나쁜 눈의 시력(공인된 시력표에 따라 측정된 교정시력)이 0.02 이하인 사람과 좋은 눈의 시력이 0.2 이하인 사람으로 구분되어 있다. 현재의 2가지 분류기준은 자세히 모르겠지만 시각장애인을 크게 보면 전맹과 저시력(약시)으로 나눌 수 있다.
전맹(全盲)은 불빛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저시력(抵視力)이나 약시(弱視)는 밝고 어두움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에서부터 확대 상태에 따라서 웬만한 글자(묵자)는 다 읽을 수가 있다. 어느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중 전맹은 10% 이하라고 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읽는 글자는 점자(點字)인데 비시각장애인들이 이용하는 보이는 글자는 묵자(墨字)라고 한다. 시각장애인 중에는 점자를 모르는 사람도 있고 저시력 장애인은 묵자를 확대하면 읽을 수가 있다.
2022년 말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652,860명인데 이 가운데 시각장애인은 250,767명이다. 요즘 대부분의 ATM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이 나오고 있지만, 그래도 시각장애인(약시)을 위해서 이렇게 화면을 확대했다니 신한은행의 정성이 갸륵하다 못해 눈물겨울 지경이다.
일단 필자도 확대된 화면으로 돈을 쉽게 찾았다. 사무실에 와서 신한은행 홈페이지를 찾아 화면 확대에 대해서 찾아보려고 했으나 필자의 실력으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신한은행으로 전화를 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다 알고 있겠지만 은행으로 전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이 전화를 받으면 뭔가 물어보겠지만, ARS로 몇 번을 누르세요. 몇 번을 누르세요. 만 나온다.
겨우 상담원과 연결되어 ATM 화면 확대에 대해 여쭤볼 게 있으니 홍보 담당자를 좀 바꿔 달라고 했다. 상담원이 친절하기는 했지만, 필자가 묻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해 몇 번이나 질문을 다시 하고 되묻고 한 후에야 상담원은 담당자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신한은행에서 담당자를 찾아 줄 동안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어느 기사에 “시니어 디지털 맞춤화면”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화면 확대를 몇 포인트나 했을까. ⓒ이복남
현재 장애인은 15가지인데 노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뇌병변장애인에 뇌출혈이나 파킨슨병은 포함되지만, 알츠하이머 등 노인성 치매는 해당하지 않는다. 노인은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오는 과정이므로 장애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노령인구가 많아지게 되자 은행에서도 노인을 위해서 화면 확대를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몇 시간이 지나 신한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홍보 담당 과장이라고 했다. 홈페이지에서 화면 확대에 관한 자료를 좀 보고 싶다고 했더니 홈페이지에는 없다고 했다.
홈페이지에 그 자료가 왜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신한은행에서 ATM 화면 확대는 어르신들을 위해 작년 12월부터 시작했는데 전국에 있는 신한은행 ATM 확대 화면을 순차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했다. 필자를 소개하고 시각장애인에 대해서 설명하자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므로 약시들이 있다는 것은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 눈이 침침해지면 노안이라고 생각하지, 약시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테니까.
아무튼 신한은행에서는 65세 이상 고령층 고객의 사용 편의성을 높인 시니어 맞춤 ATM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순차적으로 설치하고 있다고 했다.
신한은행 ATM 바로바로 코너. ⓒ이복남
시각장애인 중에서 전맹이 아니라면 글자를 확대해서 보기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컴퓨터 글자는 10포인트다. 어떤 서류는 처음부터 11포인트 또는 12포인트로 작성하라는 표시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경우 자기의 시력에 따라서 2배 또는 3배로 확대해서 보기도 한다.
신한은행 현금인출기에서 보이는 확대 화면은 몇 포인트나 될까? 신한은행에 전화해서 물어보기도 뭣해 일단 컴퓨터에서 72포인트로 화면을 인쇄해서 신한은행 확대 화면과 대조해 보았다. A4 용지에 72포인트로 뽑았는데 거의 비슷한 것 같았다.
신한은행에서 ATM 현금인출기의 화면 확대와 쉬운 용어가 어르신들을 위한 것이라 해도 일반 시민은 물론이고 저시력 장애인에게도 편리하게 사용될 것 같아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다른 은행에서도 화면 확대 ATM을 설치할 때는 그 목적에 저시력 장애인도 꼭 포함 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신한은행 ‘용호동 365일 바로바로 코너’는 20cm쯤 되는 계단을 두 칸이나 올라가야 하므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은 이용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연세가 높아 노안이 왔다 해도 확대 화면으로 별 어려움은 없겠지만, 걸음걸이가 불편한 어르신들은 이 계단을 어찌 이용하려나.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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