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손톤 와일더 作 단막 희극
류영균 飜譯
Childhood
A One-Act Comedy
by Thornton Wilder
Translated into Korean
by Ryu Yung-kyun
손톤 와일더의 단막희극 [어린시절]
Childhood는 1962년 1월 11일 The Circle in the Square에서 "Plays for Bleeker Street"란 제목으로 공연된 단막극 세편 중의 한편으로 초연되었다. 호세 퀸테로(Jose Quintero)의 연출로 배역은 수잔 타워즈, 데비 스콧, 필립 비스코, 베티 밀러, 그리고 다나 엘카가 맡았다.
이 연극은 어린이들의 공상세계를 그렸는데 부모와 어린이들간에 생기는 어떤 괴리로 인하여 상호간에 있어야 할 이해의 부재를 극의 주제로 다루고 있다.
[우리 읍네](Our Town), [행복한 여행](Happy Journey to Trenton and Camden) 등을 비롯한 그의 초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작가가 동양의 연극 형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발전시켰다고 흔히들 말해지는) 그의 독특한 극장주의(theatricalism)적 연극 형식을 이 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다.
와일더의 다른 작품들이 흔히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빈 무대위에서 무대장치라고는 의자 몇 개밖에 쓰지를 않고 있다. 무대장치가 거의 없는 대신 그의 독특한 극적 구성방법을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고 환상적인 동심의 세계에 비추어 우리 삶의 주요한 한 단면을 가장 생동감있게 부각시키고자 시도한다.
이 극의 주제를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어린이는 어른의 축소판이 아니라 제 나름으로 미숙하나마 독립된 개성과 판단력을 지닌 인간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가 있겠다. 흔히 부모들은 어린이들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을 망각하는 수가 많다. 부모들은 또한 자신들의 개인적인 욕망과 자신들의 삶의 목표가 자녀들에 대한 부모로서의 책임과 서로 충돌, 갈등을 일으키는 경험을 자주 겪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많은 부모들이 그들의 자녀들이 때로는 성가시고 때로는 그들나름의 삶을 영위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끼게 되는 수가 간혹 있다. 이럴때면 부모는 마치 자녀들이 그들 삶의 일부가 아닌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가 많다.
손톤 와일더는 이 단막희곡을 통해 이러한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를 섬세하게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일종의 고통스런 연민을 가지고 아무리 부보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어린이들의 환상적 세계와 어른들의 현실 제계에는 메울 수 없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류영균>
등장인물 (등장 순서대로)
캐롤라인
도디
빌리
엄마
아빠
원형무대의 바깥쪽에 몇 개의 낮은 의자가 놓여있다. 이 의자들은 처음엔 집 앞 뜰에 있는 관목 덤불을 표시한다. 뒤쪽에 짐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관객석 가운데로 난 통로가 거리쪽으로 난 좁은 길 구실을 한다. 집안에서 12살 난 캐롤라인과 열살난 도디가 나온다. 여덟살 짜리 빌 리가 급하게 캐롤라인과 도디 뒤를 쫓아 뛰어나온다.
도디 : 쉬 --! 엄마가 들으면 어쩔라고 그래? 캐롤라인, 캐롤라인, 우리 무슨 놀이
할까? 놀이해, 응?
캐롤라인 : 시간이 없어, 이 바보야. 놀이를 할려면 시간이 걸린다니까.
빌리 : 중국가는 놀이하자!
캐롤라인 : 그렇게 크게 떠들지마. 엄마가 들으면 안돼. 아빠가 곧 오실텐데. 아빠가
오시면 놀이를 못한단 말이야.
도디 : 조금만 해, 응. 호텔놀이를 하면 되잖아.
빌리 : (시끄럽게) 난 룸 서비스! 난 룸 서비스 할거야!
캐롤라인 : 호텔놀이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걸 너 알잖니?
뭘 하다가 도중에 그만 둬야되는 건 끔찍해.
도디 : (재빨리) 얘, 캐롤라인! 엄마가 아빠한테 전화하는 거 내가 들었는데 자동차가
고장나서 아빠 오늘은 버스타고 와야한데. 아빠가 아예 못오실지도 모르구. 그럼
우린 오랫동안 놀 수 있잖아.
캐롤라인 : 엄마가 그러셨어? 그럼 덤불뒤에 가서 생각해보자.
(덤불뒤에 웅크리고 모두 앉는다.)
빌리 : 병원놀이하자! 그래서 도디 뱃속을 몽땅 꺼집어 내는 거야.
캐롤라인 : 생각 좀 하게 가만 있어!
엄마 : (문간에서) 캐롤라인! 도디! (침묵) 도디, 코우트를 좀 잘 걸어두라고 엄마가
몇번이나 일러줘야 하니? 도대체 네 코우트가 어떨게 된지나 알어? 바닥에
떨어져서 벽장문틈에 끼여 이리저리 끌렸더구나. 이번 일요일엔 날씨가 좀
따뜻했으면 좋겠다. 네 코우트가 입고 다니지 못할 정도가 되었으니 하는
소리란다. 빌리, 잠간 이리 좀 나와! 아빠가 오실텐데 아빠 맞을 채비가 됐니?
덤불에서 나와! 빌리, 이리 나와!
(벌써부터 주눅이 들어있는 빌 리가 무대 가운데로 엉거주춤 나와서 엄마에게 검사를 받기위해 선다. 엄마, 말없이 고개만 절리절래 내흔든다.)
난 두손 다 들었다. 그 꼴이 뭐냐? 니네들 도대체 무얼하고 있니? 캐롤라인,
너희들 또 그 무슨 놀이인가를 하고 있는거 아니냐? 짐에 불이 났다는 따위의
놀이는 절대 해서는 안돼. 밤새도록 무서운 꿈만 꾸지 않니, 병원놀인가 뭔가 그
끔찍한 놀이도 마찬가지야. 캐롤라인, 도대체 쇼핑가는 놀이나 학교가는 놀이들을
하고 놀면 왜 안된다는거야? (침묵) 난 이제 너네들 단념했다. 진짜로 두손
들었어. (짐짓 퇴장하듯 하다 돌아서서) 잊지마! 오늘이 금요일 저녁 주말이란걸.
아빠가 오시면 키스하고 반갑게 맞이하는 걸 잊으면 안돼! (엄마 집안으로
퇴장한다.)
(빌리 누나들과 다시 합세한다.)
도디 : (극적인 속삭임으로) 캐롤라인, 장례식놀이해!
(흥분이 절정에 달해서) 캐롤라인, 우리 고아원놀이해!
캐롤라인 : 시간이 없다니까. 하루종일 걸릴텐데.
그리고 난 검은 장갑도 지금 없어.
(빌리 아빠가 관객석 사이로 걸어들어 노는 걸 보고 놀라서 소리 지른다.)
빌리 : 저기, 저기봐!
도디 : 뭐야?
셋모두 : 아빠다! 아빠다!
(모두 놀란 비둘기들 마냥 후다닥 짐으로 뛰쳐 들어간다.
아빠가 관객석 사이를 지나 으젓하게 걸어 들어 온다. 무대 중앙에 도착해서 메고 있던 윗도리를 땅에다 놓고 아내에게 신호하듯 휘바람을 휘익 분다음 골프치는 시늉을 한다. 가상의 골프채를 잡고 아주 강하고 멋진 스윙을 해본다.)
아빠 : 이백오십야드라!
엄마 : (등장, 남편에게 키스를 한 다음 남편의 윗도리를 짐어든다.)
생각보다 빨리 오셨군요.
아빠 : 제리 그 친구가 저아래 모퉁이까지 태워다 줬지. 주말이라 오다가 조그만 걸로
술 한병 사고 . . .
엄마 : 글세, 애들앞에설랑 아예 술병을 딸 생각일랑 마세요.
아빠 : (좀 힘든 겨냥을 하듯 하곤) 열 한번째 호올이라 . . . 애들은 어딜갔어?
엄마 : 조금전까지 여기 있었는데. 어디 바깥에서 놀고 있겠죠, 뭐. 당신 윗도리를
땅에다 두시다니! 정말이지 도디랑 둘이 꼭 같구려.
아빠 : 글세, 금요일 저녁에 애비가 집에 돌아 오면-- 민들레들이 여기 있어서 좀
힘들겠는데-- 애들한테 당신이 가르쳐야지. 어떻게 하는 게 자식된
도리인지를 . . . (고함친다.) 이 망할 자식들! 이리 썩 나와서 네놈들을 낳아준
이 애비에게 꿇어 엎드려 감사를 못해!
엄마 : (어처구니 없어 하면서) 제발 당신 그따위 망발은 그만하세요.
아빠 : 한주일동안 사무실에서 노역을 치룬 이 가장한테 금요일 저녁만이래도 아내와
자식들이 내 무릎에 메달려 감사의 눈물을 펑펑 쏟아줘도 모자랄 판에 이거
어디 . . . (기립하고 서서 커다란 우승컵을 받는 시늉을 한다.) 여러분 제가
오늘 이 우승컵을 받게 된 것은 본인을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집밖으로 붸아낸
내 처와 아이들의 공로가 아주 컸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 . 애들이
어디갔어? 캐롤라인! 도디!
엄마 : 어딘가에 숨어있겠죠, 뭘.
아빠 : 숨다니? 지 애비 낯짝이 보기 싫어 숨는다는거요?
엄마 : 어디선가 걔들이 하는 그 끔찍한 놀이들 중에 뭔가를 하고 있을 거예요.
이것보세요. 프레드. 애들의 그 놀이란게 아주 병적이고 위험한 거예요.
아빠 : 무슨 소리요? 위험하다니?
엄마 : 정말이예요. 제가 시집올 때는 애들이란게 그렇게 반 미치광이 같다는 걸 아무도
제게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애들이 자기들끼리 놀이하는걸 조금 엿들었더니 -- 물론 그걸 제가 일일이 죄다 엿듣고 그러기야 하겠어요. 글쎄 당신 모르실거예요. 그 애들이 글세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당신과 내가 . . .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 . .
아빠 : 가다니? 어딜가?
엄마 : 그래요. 우리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 . . 그 말 아니겠어요?
아빠 : (눈을 공에다 떨어뜨리고는) 하나 . . . 둘 . . . 셋! 거 왜, 당신이 말한 적이
있지 않소.
엄마 : 제가 뭐라고 그랬는데요?
아빠 : 당신 꿈 얘기.
엄마 : 쳇, 난 또 뭔가 했어요.
아빠 : (부드럽게, 되도록 기분 상하지 않도록 애쓰면서) 당신과 내가 . . . 지중해
유람선을 타고 . . . 그런다는 그 꿈 말이오.
엄마 : 하와이였죠.
아빠 : 그리고 우리가 -어험! 그 ... 저 ... 단둘이서만 ...
엄마 : 그래두 난 애들이 죽었으면 하고 바라는 꿈은 꾸지 않았어요. 애들이 엄마한테나
. . . 폴 삼촌 . . . 아니면 헨리에타 숙모에게 가서 있어줬으면 싶었던 때는
가끔 있었지만.
아빠 : (경건스럽게) 나도 그랬기를 바라고 있오.
엄마 : 당신 아주 야비한 사람이예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구요 . . .
캐롤라인때문이예요. 걔가 그런 엉뚱한 장난을 시작해가지고 . . . 요즈음 걔는
밤마다 무서운 꿈만 꾸잖아요. 그만 들어가세요. 저녁식사 전까지는 애들이
돌아 올거예요.
아빠 : (하늘을 쳐다보며) 일기예보에 내일 날씨가 어떻게 될거라고 그랬소?
엄마 : (집으로 들어 가면서)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홍수가 난답디다. 당신 골프
크럽에도 못가고 애들이나 보고 집에 앉아 있어야 된대요. 난 록키산맥이나 . . .
아님 중국에 가버릴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아빠 : 어딜가든 점심식사 전엔 돌아와야 돼. 캐롤라인이 밤에 뭐라고 잠꼬대를 합디까?
엄마 : 걔는 깨어 있어도 그런다구요. 엄마, 아빠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당신 그
애가 검은 장갑에 환장을 한 애란 걸 아세요?
아빠 : 말같지도 않은 소릴 . . .
엄마 : 가만 내버려두면 그 앤 하루 종일 그 짓을 한답니다. 그 장례식 놀이인지 뭔지를
. . . 자, 들어가세요. 어서요. 저녁식사 때는 얘들을 만날테죠. (퇴장한다.)
아빠 : (정 반대쪽 무대끝으로 걸어가서 아이들을 불러본다.) 캐롤라인! (침묵) 도디!
(침묵) 도디! (침묵) 빌리! (침묵) 시선을 먼 곳에 둔채 생각에 잠겨 독백하듯
말한다.)
사람이 깨어있건 잠을 자건간에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었다는 소리는 아직 못들었지만 -- 하긴 그런게 발명이 되면
큰일나지 . . . 하지만 때로는 무척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쁜 생각일까?
한번쯤은 투명인간이 되어서 애들이 꾸는 꿈이나 걔들이 하는 놀이를 엿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다시 아이들을 부른다.)
캐롤라인!
(우린 이제 꿈속에서 애들이 하는 놀이를 구경하게 된다. 아이들이 아빠가
부르는 순서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아빠에게는 아이들이 보이질 않고 아이들
역시 아빠를 보지 못한다. 아이들이 들어와서 학예회에서 노래를 부를 때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무대위에 선다. 캐롤라인은 애들용 여행가방과 엄마의
핸드백을 들고 있다. 검은 장갑을 끼고. 도디도 역시 가방과 핸드백을 들고
있으나 장갑은 끼지 않았다.)
캐롤라인 : 도디! 빨리와! 엄마 아빠한테 들키면 큰일나.
아빠 : 도디!
도디 : 빌리는 어딜갔어?
아빠 : (누나들을 쫓아가던 빌리와 마주친다.)
빌리!
(아빠 집으로 들어간다. 엄마 집에서 걸어나와 무대 끝쪽에 이르러서 돌아서서
아이들을 마주 본다. 엄마는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베일을 얼굴에 쓰고 검은
장갑을 끼고 있다. 그녀는 슬픔에 잠겨 말없이 만사에 순응하는 태도를 취한다.
캐롤라인이 마치 대사를 일러줄 듯 엄마를 자주 옆눈질한다. 약간 어색하고
딱딱한 침묵이 흐른다.)
캐롤라인 : 우선 우린 우리가 지금 얼마나 슬픈가를 말해야 될거야. (엄마에게)
시작할까요? (엄마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다.) 제일부 순서는 교회에서 . . .
아뭏튼 교회 비슷한 곳에서야. 그리고 아주 끔찍한 사건이 있었어, 비행기사건.
도디 : (재빨리) 아냐, 그건 자동차 사건이야.
캐롤라인 : (재빨리) 비행기야.
도디 : (재빨리) 비행기는 난 싫어.
빌리 : (강하고 사납게) 기선이야. 아주 커다란 기선.
캐롤라인 : 왜들 이래? 조용히 않으면 난 이 놀이 안할거야.
그건 비행기 사건이었어. 그리고 엄마 아빠가 그 비행기에 탔었어.
그리고 이젠 집에 안계셔.
빌리 : 죽었어.
캐롤라인 : (빌리를 노려보며) 그 말은 하지 말랬잖아. 그 말은 않기로 나한테 약속했지.
(거북한 침묵) 그리고 우린 아주 슬프고 또 . . .
도디 : (밝게) 그렇지만 우린 직접 가 본 건 아니다!
캐롤라인 : 그리고 우린 검은 옷을 입고 있어. 검은 옷은 없지만 . . . 윌커슨선생님께서
검은 옷을 입고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해야지. (엄마
다시 고개를 약간 숙인다.) 윌커슨선생님은 벤자민 프랭크린 국민학교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이셔. 그리고 어른들 중에서 우린 선생님을 제일 좋아해.
빌리 : (갑자기 흥분하며) 저건 윌커슨선생님이 아야. 저건 . . . 난 -- 잘봐!
캐롤라인 : 난 네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안들려. 어쨌든 입닫고 가만있어.
빌리 : (꿈에 가담하기는 아직 너무 어린 탓에 누이들의 옷소매를 잡아 당기며)
윌커슨선생님이 아니야. 저건 엄마잖아.
도디 : 넌 눈이 고장났니?
캐롤라인 : 엄마는 이젠 여기 안계신거야. 멀--리 가셨어.
빌리 : (엄마를 뚫어지게 자세히 쳐다보고는 약간 생각이 흔들린 듯) 저건 . . . 저 . . .
펜윅아줌마야 . . .
캐롤라인 : (낮으막하나 강하게)
아--니야.
(장례식놀이를 계속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이렇게 슬프진 않았어. 할머닌 그 때 벌써 백살이
넘었을 때였으니까.
도디 : 할머닌 언제나 "내가 너희들과 같이 있을 날도 얼마 안 남았다."하는 따위의
말만 자꾸 하시고 그리고 또 "죽기전에 엄마한테 할머니 진주 핀을 주어야겠다."
그런 말만 자꾸했어.
빌리 : 우리랑 같이 안 살아도 되니까 이젠 속이 쉬원할꺼야.
캐롤라인 : (애매하게) 그리고 또 . . .
도디 : (엄마에게 기뻐서 흥분된 음성으로) 우린 이제 고아가 된거지? 진짜 고아야?
(엄마 예전과 같이 눈을 내려뜨고 고개를 가볍게 약간 끄떡인다.) 그리고 하기
싫은건 안해도 괜찮은 거지? 응?
캐롤라인 : (엄하게) 도디! 그런거 죄다 이야기하면 안돼! (엄마와 의논한다.) 이젠 뭘
말해, 응?
엄마 :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아빠이야기 . . .
캐롤라인 : 참 그렇지. 응 . . . 아빠는 좋은 분이시고 . . . 그리고 . . . 또 . . .
도디 : (재빨리) 아빤 아주 심한 욕을 가끔 곧잘 하셨어.
빌리 : (흥분한 듯) 언제나 그랬어. 아빠는 나쁜 말만 쓰고 욕도 마구 하고 그랬어.
캐롤라인 : 글세, 약간은 하셨겠지.
도디 : 욕을 했어. 그래서 난 그만 콱 죽어버릴까 했었어.
캐롤라인 : 흠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거야. (천천히) 아빠는 괜찮은 아빠였잖아 . . .
어떤 때는 . . .
도디 : 사람들 앞에서 너무 크게 소릴내서 웃었어. 아빤 엄마한테 옷 살 돈을 많이
안줘서 엄마가 시내에 나갈 땐 걸레를 입고 간댔다. 아주 형편없이 낡은
걸레를 . . .
빌리 : (항상하듯 흥분해서) 아빠는 또 이랬다.
(난처할 때 하듯 손을 아래 위로 펌프질 하듯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돈이 없어! 없다니까! 없는걸 날더러 어떻하라는거야! 차라리 돌맹이를
쥐어짜보라구. 혹시 피가 나오나.
도디 : 그래, 아빠가 그랬어.
빌리 : 그러면 엄마는 "이런 옷으로 창피해서 어떻게 나가 다녀요?"하고 고함을
치시는거야. 아주 끔찍했어. 그러면 아빠는 또 "제기랄! 뭐든 갖다가 저당이라도
잡히든지 해야지 . . . 그래, 그러면 속이 쉬원하겠어?"
캐롤라인 : 빌리! 너 그런 끔찍한 말을 함부로 하다니! 다신 그런말 입밖에만 내봐라
그냥! 아빤 완전하진 못하시지만 저당잡히는 것 같은 짓은 한번도 하신 일이
없어.
빌리 : 그래두. 아빠가 그랬는걸.
캐롤라인 : (당당하게) 아빠는 최선을 다 한거야. 사람은 누구나 다 실수가 있는 법이야.
도디 : (점잖게) 아빤 술도 먹었다.
빌리 : (또 흥분해서) 아빤 술고래다! 엄마가 "당신 술이 너무 지나치지 않아요?"하고
말하면 아빠는 "마셔! 마시는거야!" 그랬어.
도디 : 그래! 그리고 또 아빤 "해장으로 한잔하는게 뭐가 나쁘다구 그래?" 그러면
엄마는, "당신 우리 보는 앞에서 콱 죽어버리고 싶으면 마셔요!"하고 소리
질렀어. 끔찍해서 난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싶었어.
캐롤라인 ; 빌리, 너무 흥분하는거 아니야? 도디 너두. 아빠는 좋은 분이시고 우릴 위해
노력하셨어. 단지 . . . 단지 . . . (주저하며) 아빤 재미있는 이야길 하신 적이
없을 뿐이야.
도디 : 아빠가 자동차 사건을 보고 와서 이야기할 때는 재미있더라. 피가 잔뜩
흐르고 . . .
빌리 : 그래, 재미있었어. 그런데 이야기하다 그만 두어버렸잖아. 엄마가 "여봇, 애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안돼요."하고 소리 질러 가지고.
도디 : 그래 아빤 이야기하다 말았어.
캐롤라인 : 어쨌든 우린 지금 아주 슬픈거야. 그리고 . . .
(엄마에게 다음 할 말을 물어보듯 그 쪽을 쳐다본다.)
엄마 : (거의 들리지 않는 낮은 목소리로)
네 엄마 이야기 . . .
캐롤라인 : 그렇지. 엄마에 대해서.
빌리 : (아주 분개한 듯) 엄만 집에 거의 없어. 언제나 쇼핑을 다니시거나 미장원에 계시니까. 그리고 한번은 몇 년동안이나 보스턴 할머니한테 가서 안 오셨다.
도디 : 딱 닷새동안 가서 계셨는걸 가지고 그래. 할머니가 굉장히 아프셔서.
빌리 : 아니야. 몇 년이나. 아주 오래 오래 가 있었어.
도디 : 엄마가 멀리 있어서 하지 말라는 소리 안들어도 되니까 좋았잖아. 이거 하지마!
저거 하면 안돼! 항상 밤낮으로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빌리 : (엄마를 옹호하려고 시도한다.) 가끔 맛있는거 만들어 주었잖아.
도디 : 삶은 콩하고 감자 이갠거? 난 아주 질색이야. "자! 먹어! 먹던 것들 다
끝내기전엔 아예 일어서서 나갈 생각은 말어." 우웩!
캐롤라인 : (동생들을 장례식놀이에 끌어드릴려고 시도하며) 엄마 잘못은 아냐! 애들을
이해를 못한다뿐이지. 애들을 이해하는 사람은 백명, 이젠 백에 백명 중 한
사람도 없어. (엄마에게) 이러면 됐어요, 윌커슨선생님? 이젠 더 할 말이 생각이
안나요. 그리구 우린 서둘러야 되요. 그렇잖음 폴 삼촌이나 헨리에타 아줌마가
우릴 . . . 아니, 더 끔찍한 사람이 우릴 잡으러 올지도 몰라요. 그전에 떠나야죠.
이젠 우리 가도 돼죠?
엄마 : (속삭임으로) 난 너희들이 얼마나 그 사람들을 좋아했고 그 사람들도 너희를
아주 귀여워했다는 걸 이야기해 주는게 좋을 것같다.
캐롤라인 : 그러죠. 어 --
도디 : 날 막 껴안고 키스하고 할 땐 끔찍했었어. 그리고 우리가 메리 루이제네
피크鎺에 따라가서 한시간 늦게 집에 왔을 때 엄마가 "걱정이 돼서, 도대체 무슨
일이라도 난게 아닌가 걱정이 돼서, 걱정이 돼서 죽을 뻔 했다! 이 몹쓸
자식들!"
캐롤라인 : (천천히) 우리가 아플 때 엄마는 우릴 제일 좋아해. 내가 팔을 부러뜨렸을
때도 그랬어.
도디 : 맞아. (지친 듯 침묵)
윌커슨선생님, 고아들도 항상 슬퍼하지 않아도 돼죠, 그렇죠?
(엄마, 머리를 약간 흔든다.)
빌리 : 고아가 되면 돈을 받아요?
캐롤라인 : 돈은 필요없어. 아빠가 시계뒤에 돈이 든 봉투를 감추어 두시거든. 사건이나
위급한 때 쓰려고 말야. 내가 여기 가져 왔어. (엄마에게 다가서서 주인이
손님을 보낼 때처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윌커슨선생님. 우린 이제 떠나야
돼요. 검은 옷을 입고 와 주셔서 고마워요.
도디 : (악수를 하며 싹싹하게) 대단히 감사합니다.
(엄마, 절을 하곤, 집안으로 미끄러지듯 퇴장한다.)
캐롤라인 : 자, 조용히 해.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을 말해줄게. 시간이 없어. 서둘러야
하니까 내 말을 방해하지마. 우린 고아야. 우리 주위에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거야. 우린 버스를 타고 (들뜬 마음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는거야. 우린 딴
사람 노릇을 하고 이름도 바꿔야 해.
(엄숙하게 가방을 연다. 모자를 꺼내서 쓰고 엄마의 털 목도리를 목에 두른
모습이 아주 귀엽다.)
난 미세스 아리조나야. 미스 윌슨, 여행 떠날 채비를 해줘요.
도디 : 뭐라고?
캐롤라인 : 미스 윌슨! 제발 모자를 쓰세요.
도디 : 오오! (가방에서 모자를 꺼내 쓴다.) 나도 결혼 할래. 난 미세스 윌슨 할거야.
캐롤라인 : 넌 너무 어려. 사람들이 널보고 웃을거야. 우린 오래 오래 여행을 할거니까
차츰차츰 중국이나 그런데서 나이가 좀 더 들면 미세스 윌슨이 될 수 있어.
빌리 : 나도 누구하고 싶어.
캐롤라인 : 난 지금 여덟살밖에 안됐잖아! 맨날 삑삑 울고 끔직한 소리 잘하는 버릇만
고치면 내가 이름을 하나 지어 줄 수 있어. 자 시작하는거야.
빌리 : 아빠, 엄마는 같이 안가? (누이들이 빌리를 흘겨본다.)
캐롤라인 : 좋아. 넌 집에 남아서 학교나 다녀. 그게 하고 싶다면 맘대로 해. 아빠랑
엄마가 좋아하시겠다. 아빤 골프치고, 엄만 쇼핑이나 다니고. 준비 다 됐어요,
미스 윌슨?
도디 : 녜, 다 됐어요. 미세스 아리조나, 고마워요.
캐롤라인 : 뛰지마! 뛰지않아도 서둘러 가면 창문쪽 자리를 잡을 수 있을거야.
(아빠 등장한다. 버스 운전수 모자를 쓰고 크고 색갈이 짙은 색안경을 쓰고
있다. 의자들을 대강 정리해서 관객석의 가운데로 난 통로 쪽으로 향한 긴
버스속의 좌석 몇 개를 나타내도록 배열한다.
아빠 : 줄서서 차례대로 타세요, 여러분. 이 차는 아사고라 카라팔라에 정차해서
이십분간 점심시간을 갖습니다. 이곳에서 여러분은 그 유명한 선과 샌드위치를
드시게 됩니다.
(아빠는 애들 앞에 서 있는 가상의 승객들의 버스표를 개찰하기 사작한다.)
부인, 그 고양이가 버스속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저희들 경험입니다만
버스속에서 행복해하는 고양이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엄격하게 한 승객을
조사하면서) 당신 혹시 얼굴에 전염성 피부병이 있는게 아닙니까? 글쎄요.
좌우간 다른 승객들과 조금 떨어져 앉아주셨으면 고맙겠군요.
빌리 : (마음이 흔들려서) 그렇지만 저건 아빤데!
도디 : 바보같은 소리마! 아빤 멀리 가셨어.
빌리 : 그래도 아빠처럼 생겼는걸 . . . 그리고 . . . (자신을 잃은 듯) 삼머박사님
같기도 하구.
캐롤라인 : 빌리, 너 왜 자꾸 그래? 아빠가 버스 운전수 노릇을 하고 있을 것 같애?
아빤 버스운전을 해야 할 만큼 돈이 없는 사람은 아니야.
아빠 : (캐롤라인에게) 승차권 좀 보여주세요, 부인.
캐롤라인 : 우린 이 차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다 가고 싶은데, 부탁해요.
아빠 : 왕복권으로 해 달라는 말씀이시겠죠? 다시 돌아오셔야 할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캐롤라인 : (마음을 못 정한다. 아빠의 눈길을 피하려고 애쓰면서) 글쎄요, 안 돌아 오게
될지도 몰라요.
아빠 : (목소리를 낮추고 은근히) 이쪽 구석에다 찍어드리죠. 돌아오시고 싶으실땐
언제라도 사용하실 수 있게 말입니다.
(캐롤라인 좌석에 앉는다. 엄마가 미끄러지듯 조용히 들어와 빌리의 뒷줄에
선다. 엄마는 갈색 모자와 짙은 갈색 베일을 쓰고 있다. 아빠가 도디의 표를
개찰한다.)
저 . . . 부인, 당신 얼굴을 어디선가 뵌 듯 한데요. 당신 혹시 그 끔찍한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그 곳에 계시지 않았던가요? 피가 흘러 길바닥이 홍수가 난
것처럼 온통 질퍽해지고 그랬던 그 곳 말입니다.
도디 : (당황하여 낮게) 아니, 난 거기 없었어요.
아빠 : 그러시다면 다행이군요.
(도디가 캐롤라인 뒤애 앉는다. 아빠가 빌리의 표를 개찰하면서 빌리에게)
죄송하지만 손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빌리 : 빌리.
캐롤라인 : (참견한다.) 그 사람 이름은 웬트워스예요.
아빠 : 안녕하세요, 웬트워스씨. (남자 대 남자로서 약간 엄격한 어조로) 앞에서부터
여섯 번째 줄까지는 금연석입니다.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 . . (의미심장하게
속삭인다.) 이 버스 속에서 음주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상당히 위축되어 빌리는 도디 앞좌석에 앉는다. 빌 리가 엄마를 보고 놀라서
쳐다본다. 아빠가 엄마의 표를 개찰한다. 문상하는 정중하고 슬픈 목소리로)
좋은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엄마 : (속삭임으로) 감사합니다. (그녀는 맨 뒷자리에 가서 앉는다.)
캐롤라인 : (핸드백속을 뒤지며) 미스 윌슨, 캔디 바 드실래요? 미스터 웬트워스, 좀
드시겠어요?
도디 : 감사합니다, 미세스 아리조나.
빌리 : 저것봐! 좀 보라구! 엄마야!
도디 : 날 자꾸 찌르지 좀 마! 아냐! 엄마가 아니래두!
아빠 : 자! 이제 가실 분들은 다 타셨죠?
(버스에 올라 운전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변속기를 한번 시험해 보고 난 다음
일어서서 정중하게 승객들에게 말한다.) 출발전에 몇가지 안내 말씀
드리겠습니다. 버스 여행이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슨 뜻인지 미세스
아리조나께서는 짐작하시리라 믿습니다만. 버스여행이란 가정생활과 같은
것입니다. 우린 모두 이 차속에 갇힌 신세죠. 우리는 상당히 위험스런 지역들을
통과하게 되니까 머리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면 검은 뱀이라고 불리우는
인디안 지역을 통과할 때 같은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방금 제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요즈음 이 지역이 약간 시끌시끌하다고 . . . 그리고 또 사자, 호랑이들이
자주 출몰하는 카피카피 강변도 위험하죠. 전 꽤 숙달된 운전수이긴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사람은 누구나 간혹 실수를 하게 마련입니다.
여러분 중 혹시 이 버스에서 내려 집에 가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지금 내리세요.
요금은 돌려드릴테니까. (엄마를 가리키며) 여기 제가 아는 믿을 수 있는 승객이
한 분 계십니다. 전에도 이 여행을 해보신 경험이 있으신 분인데 아주 끝내주게
좋은 분이죠. 면전에서 칭찬을 해서 죄송합니다, 부인. 그렇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다 진담입니다. 여러분 중 구급법에 대해 훈련을 받으신 분이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손 좀 들어 봐 주십시오.
(빌리의 엄마가 재빨리 손을 든다. 캐롤라인과 도디는 서로 엉거추춤 눈치를 보다가 손을 들지 않는다.)
이런! 나중에 강의를 받으셔야 되겠군요. 공부를 좀 하셔야겠다는 말입니다.
산꼭대기에 올라 갈때는 항상 사고가 나기 쉬운 법입니다. 자, 그럼 슬슬
출발해봅시다. 출발시에 종종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만약 목사님이 계실
경우라면 말이죠. (빌리에게) 웬트워스씨, 혹시 당신이 목사님은 아니신가요?
빌리 : 아-아뇨.
아빠 : 그렇다면 기도는 드린걸로 칩시다. (목소리를 낮춰서 빌리에게) 그리고 덧붙여
말씀드리겠는데 이 버스속에서는 나쁜 말씨는 삼가 주십시오. 숙녀분들이 그것도
아주 훌륭하신 숙녀분들이 -- 계시니까요. 자! 출발합니다. 돌격 앞으로!
캐롤라인 : (도디에게, 은밀히) 만약에 정말로 그렇게 위험하다면 저 아저씨 가까이
옮겨 앉는게 좋겠지?
(둘은 통로를 지나 아빠뒤에 있는 두 번째 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빌리는
뒤쪽으로 가서 엄마를 유심히 쳐다보고 섰다.)
빌리 : (베일을 가리키며) 그거 맨날 쓰고 다녀야 돼요?
엄마 : (부드럽게, 눈을 내려깔며) 벗을 때도 간혹 있어요.
캐롤라인 : 빌리! 그 분을 방해하지마! 이리 와서 우리곁에 앉아!
엄마 : 아뇨, 방해될 껀 없어요.
(빌리가 캐롤라인 곁 좌석에 앉는다. 캐롤라인은 빌리 어깨에 팔을 두른다.)
아빠 : (운전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말을 건다.) 버스 운전이란 힘드는 중노동입니다.
부인들께선 그 점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캐롤라인 : 아, 녜. 힘드시겠죠.
아빠 : 가끔 난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의아스러울 때가 있어요.
아침마다 . . . 집과 가족을 떠나서 버스에 오르곤 하지만 재미라곤 없어요.
정말입니다. (갑자기 앞으로 몸이 쏠린다.) 보셨어요? 하마터면 저 군인 양반을
칠뻔 했어요. 제 말을 믿지 않으실는지 모르지만 돈도 별로 많이 못 벌어요.
캐롤라인 : (굉장히 관심을 보이며) 월급 많이 받잖아요.
아빠 : 미세스 아리조나, 전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떨 때는 우리 집 식구들이
먹을게 충분한런지 걱정이 될 지경이랍니다.
도디 : 그-- 그건 끔찍해!
아빠 : 그리고 입을 옷이나 제대로 있는지 걱정할 때가 많죠. 미세스 아리조나, 입고
계신 코트가 아주 멋진데요.
캐롤라인 : 녜? 아! 이건, 저 . . . 낡은 거예요.
도디 : (아주 진지하게) 그렇지만, 아저씨 댁에선 아침하고 점심, 그리고 저녁은 먹죠,
그렇죠?
아빠 : 미스 윌슨, 염려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여태까진 그럭저럭 꾸려왔어요.
어떤 때는 . . . 그 왜 있잖아요. 삶은 콩하고 감자, 뭐 그런 걸로 때우는 때도
많았죠. 미세스 아리조나, 산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걸 아셔야죠.
빌리 : (굉장히 놀라며) 운전수 아저씨! 저거! 저것 보세요!
아빠 : (갑자기 활기를 띄면서, 모두들 왼쪽 편을 주시한다.) 신사숙녀 여러분! 저 몹쓸
인디안 녀석들이 또 나타났군요. 모두 머리를 바닥에 대고 엎드리세요. 머리를
더 숙이세요. (아빠를 제외하고는 모두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앉는다.) 저
녀석들이 쏘는 화살이 혹시 창문으로 날아 들어와 여러분 중 한 분이라도
다치면 큰 일이죠.
(아빠가 엉덩이 옆에서 권총을 꺼내 능숙하게 쏘는 시늉을 한다.)
이 놈들 어디 혼 좀 나봐라! 탕! 탕! 이 정도면 알아 모셔야지. 탕! (빌리가
일어나서 사방 팔방으로 총쏘는 시늉을 하며 신나게 설쳐댄다.) 자! 신사 숙녀
여러분, 위험은 이제 지나갔습니다. 이젠 자리에 앉으셔도 됩니다. 전 워싱턴
디.씨.에 계신 그 높으신 양반에게 이 일을 보고드릴 참입니다. 두고 보세요.
제가 보고를 하나 안하나. (엄마에게) 저 뒤쪽엔 모두 무사하신가요?
엄마 : 녜, 감사합니다, 운전수양반. 웬트워스씨의 활약이 아주 대단했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이 양반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렇게 무사하지는
못했을거예요.
아빠 : 훌륭합니다. 첫눈에 전 저 양반의 카우보이 기질을 알아챘죠. 숙녀
여러분들께서도 아주 훌륭했어요.
캐롤라인 :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운전수 아저씨?
아빠 : 자! 산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아시겠어요, 미세스 아리조나? 이건
투쟁입니다. 살아남기위한 몸부림이죠. 살아남아서 또 싸우고 살아남고. 항상
이런 식이었죠.
도디 : 우리가 . . . 우리가 만약 돌아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아빠 : 만약 제가 죽는다면 말이죠? 미스 윌슨, 우린 그런 경우는 생각하질 않습니다.
오직 우린 금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가서 아내와 자식들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그 다음 주엔 또 나가죠. 미스 윌슨, 제가 이렇게 이 핸들뒤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쉬는 날이 되면 뭘하는지 아세요.
도디 : (갑작스럽게 생각난 듯) 골프를 치시겠군.
아빠 : 머리가 좋으시군요, 미스 윌슨, 귀신같이 알아 맞히시는데요.
캐롤라인 : (엄마를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다가) 운전수아저씨, 저 부인은 왜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어요?
아빠 : 아니, 모르세요?
캐롤라인 : 몰라요.
아빠 : (목소리를 죽이면서) 그녀는 방금 좋지 못한 소식을 받았죠. 그녀의 아이들이
집을 나갔다는군요.
캐롤라인 : 그래요?
아빠 : 저 분한테 애들 이야긴 입밖에 꺼내지 마세요.
캐롤라인 : 글쎄요, 애들이란 묘한데가 있어서 . . . 아! 생각난 김에 말씀드리겠는데
나중에 여러분들께서도 뒷 좌석으로 옮기셔서 저 부인을 좀 위로해 드리는게
어떨까요? 웬트워스씨가 지금 하고 계신것처럼 말입니다.
도디 : 애들한테 잘해주지 않았나요?
아빠 : 뭐라구요?
도디 : 애들한테 잘해주지 않았나요?
아빠 : 뭐라구요?
도디 : 저분이 좋은 엄마가 아니였느냐구요.
아빠 : 글쎄요. 제가 한가지 여쭤볼까요? 좋은 엄마나 좋은 아빠가 따로 있을까요? 절
좀 보세요. 전 제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먹을 것, 옷, 그리고
신발을 마련하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하고 있어요. 두 분께서는 아주 이쁜
구두들을 신고 계시는군요. 그렇지만 애들은 이해를 못하죠.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걸요. 지난 주에 제 딸년 중 한 녀석이 제게 뭐라고 그랬는지
아시겠어요? 그 녀석은 자기가 고아였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어려워요. 아주
어렵죠.
캐롤라인 : (고심하면서) 부모들도 애들응 이해 못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데요?
아빠 :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면서) 자, 신사숙녀 여러분, 제가 여러분들게 보여 드릴게
있습니다.
(버스를 멈추고 전면 우측을 드라마틱하게 가리킨다. 모두들 놀라며 쳐다본다.)
장관이죠! 미시시피강입니다. 물이 얼마나 많습니까!
엄마 : (한동안 쳐다보다가 점차 염려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렇지만 -- 그렇지만 --
저, 운전수 양반!
아빠 : (그녀를 돌아보며 함께 걱정스런 표정이 되면서) 부인, 부인께서 뭘 생각하고
계신지 알 것 같군요. 저 역시 걱정입니다.
(엄마 시선은 여전히 강에다 둔채 통로를 따라 절반쯤 앞으로 걸어 나온다.)
신사숙녀 여러분, 강에 홍수가 났습니다. 전 물이 이렇게 높아진걸 본 일이
없어요. 문제는 오늘 강을 건느는게 안전하겠는가 하는거죠. 여러분께서 직접
한번 관찰하시고 판단해 주십시오. 저 다리가 견뎌낼 수 있을까요?
엄마 : (자기 좌석으로 돌아가며) 운전수 양반, 제가 한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요?
아빠 : 물론입니다. 하세요.
엄마 : 미시시피를 건느지 않는게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몇분이나 되는지
손을 들어 보라고 해서 알아 보는게 어떨까요?
아빠 :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강을 건너지 않기로 결정이 되면 차를 돌려 온 길로
되돌아 가야 되겠죠. 자, 신사숙녀 여러분, 잘 생각하셔서 결정해 주십시오.
강을 건너지 말고 되돌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모두 손을 들어
주십시오. (엄마와 빌 리가 재빨리 손을 든다. 아빠가 버스내의 승객들 중
이십명의 손을 진지하게 세어 나간다.) 좋습니다! 모두 되돌아 가기를
원하시는군요. 자, 그럼 출발합니다. (그는 시동을 건다.) 자, 지금부터는 굉장히
빨리 가겠습니다. 안전 벨트를 메시고 좌석에 단단히 앉아 주세요. (잠시후
어깨너머로 캐롤라인에게 비밀스럽게) 미세스 아리조나, 손드셨을 때 진심으로
드신거겠죠?
캐롤라인 : 글쎄요 . . .
아빠 : 댁에는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시겠죠?
도디 : (재빨리) 녜, 그래요.
캐롤라인 : (천천히, 눈물을 감추며) 그렇지만 우린 중국에도 못가고 그리고 사자들과
호랑이들이 나온다는 그 강에도 못가봤는걸요. 집에 다시 돌아가긴 너무 일러요.
집에선 모두들 마음에도 없는 쓸데없는 말만 하고 우릴 사람취급도 하질 않아요.
그리고 그 유명한 선과 샌드위치도 못먹었는걸요.
도디 : (당황하여) 캐롤라인, 다음에 또 가면 돼잖아.
(캐롤라인, 그 말을 믿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아빠 : (남몰래) 미세스 아리조나, 언제든지 그 버스표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해드리지요. 그리고 다시 오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캐롤라인 : (침울하게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잠시후 아빠와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죽여서) 운전수아저씨--
아빠 : 녜, 미세스 아리조나.
캐롤라인 : 아저씬 끝까지 안가도 월급은 다 받나요?
아빠 : 저요? 아, 그런 염려는 마십시오, 부인. 허리띠를 좀 더 졸라매면 되죠, 뭘. 뭘
먹어도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습니까?
캐롤라인 : (핸드백 속을 열심히 뒤지더니 훌쩍이는 음성으로) 많지는 않지만 여기!
여기 2달러 정도 있어요. 이걸 가지면 먹을걸 많이 사실 수 있을 거예요.
아빠 :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길에다 준채) 생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만
그건 도로 넣어 주세요. 올해는 아주 운수가 좋은 해가 될 것 같군요. (잠시후)
실례인 줄 압니다만 감사의 표시로 당신 손을 잠깐 잡아도 괜찮을까요?
캐롤라인 : (수줍어하며) 녜, 그렇게 하세요.
(아빠, 캐롤라인의 손을 정중히 잡았다가 다시 핸들에 손을 얹는다.)
도디 : 캐롤라인, 너 왜 울고 있니?
캐롤라인 : 누구를 위해서 뭘 해줄려고 하면 . . . 그럴 땐 . . .
아빠 : (아주 쾌활하게 큰 목소리로) 허허 참! 이렇게 일찍 집에 돌아가면 마누라가
깜짝 놀래겠지? 불쌍한 여자야! 무슨 낙이 있어야지. 가끔 쇼핑가는 정도가
고작이지.
(노래를 한바탕 불러 재낀다.)
"The son of a, son of a, son of a gamboilier . . ."
뒷좌석으로 옮기셔서 집에 불상사가 있어서 낙담하고 있는 저 부인을
위로하려면 지금이 좋은 기회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까요?
캐롤라인 : 글세, 저 . . . 가자, 도디. (캐롤라인, 뒤로 가서 엄마 앞좌석에 앉아 의자 등
너머로 말을 건넨다. 도디는 엄마 옆에 가서 선다.)
운전수아저씨가 그러시는데 아줌마 댁엔 가족 중에 누가 집에 없다고 . . .
엄마 : (눈길을 떨구며) 그렇게 말했어요? 사실이예요.
캐롤라인 : 애들은 언제나 똑같은 취급을 받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맨날 똑
같은 일만 해야된다면 이 세상에 태여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도디 : 내가 어른들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어른들은 재미있는 생각은 하질 않기
때문이죠. 너무 나이가 들고 이젠 지쳐서 아무것도 재미있다거나, 색다르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맨날 똑 같은 골프치기나 쇼핑만 하는 거예요.
캐롤라인 : (갑자기 창문 너머로 도로 표지판을 보고는) 운전수아저씨! 운전수아저씨!
다음 모퉁이에서 내려주세요. 여기서 내려야 돼요. (명령하는 투로) 이리와,
도디, 빌리. 빨리와!
(그들은 버스 출구 쪽으로 나가다가 엄마를 향해서 돌아선다. 그리고 아주
정중하게 작별인사를 한다.)
아이들 : (엄마, 아빠와 악수를 한다.) 만나뵈서 정말 반가와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빠 : (엄마가 출구에 아빠와 같이 선다.) 그렇지만 이 버스를 다시 이용해 주시겠죠?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캐롤라인 : (도디와 빌리에게 낮은 목소리로) 자, 뛰자! 모두 토끼처럼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캐롤라인 눈을 내려 뜨고 버스 문옆에 서서) 저 . . . 있잖아요 . . .
당신들은 우리 놀이에 나오는 사람들일 뿐이니까 진짜로 살아있는 사람들은
아녜요. 그러니까 우린 당신들에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는 거랍니다.
(아빠를 재빨리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그리고 또 우린
어른들과 친구가 되지 않는게 좋다는 걸 알게 됐어요. 왜냐하면 . . . 나중에는
. . . 어른들은 공평하질 못해요 . . . 그렇지만 감사해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캐롤라인 집으로 들어간다. 아빠, 모자와 색안경을 벗는다. 엄마, 모자와 베일을
벗는다. 그들은 벗은 물건을 의자위에 놓는다. 아빠는 골프 동작을 취하고 아주
힘든 코스를 칠 준비를 한다.)
아빠 : 애들이 어딜 갔냐니까?
엄마 : 어딘가에 숨어 있겠죠, 뭘. 언제나처럼.
아빠 : 숨다니? 지 애비 낯짝이 보기 싫어 숨는다는거요?
엄마 : 어딘가 걔들이 잘하는 그 끔찍한 놀인지 뭔지를 하고 있을거예요. 자, 그만
들어가세요. 저녁 식사전까지는 애들이 돌아 올거예요.
(엄마, 집으로 들어간다.)
아빠 : (집 반대 방향의 무대 제일 끝쪽에 가서 서서는 부른다.)
캐롤라인! 도오디이! 빌리--이--이!
(침묵. 대답이 있을리 없다. 아빠 집으로 들어간다.)
막이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