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문학 55호 원고

[화암 정명헌]

‘팡여우(朋友) 띵씨까오(丁士高)

1.만남

2002년 말 월드컵의 열기가 휩쓸고 간 뒤 나도 추억에 대한 아쉬움으로 방황하고 있었다.

‘뭐, 좋은 일이 없을까?’

토요일 오후 퇴근길에 사람이 모여 있는 휴대폰 마트에 무심히 들렸다.

가족 선물로 휴대폰을 사려는 중국인 부부와 통역하는 여성의 말소리로

휴대폰을 몇 개쯤 사려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무엇인지 제가 도와드릴까요?”

심심찮게 나오는 중국에 대한 뉴스로 호기심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네, 신상품이 많은 가게를 원하는데 도와주면 좋지요.”

조선족 통역 여성이 답변했다.

“네, 그럼 오늘은 늦었고 내일 안내를 해 드리지요.”

다음 일요일 아침 을지로 풍전호텔에서 만나 나의 승용차로 용산전자상가를

안내하였다.

여기 저기 돌아보고 가족과 친구 몫까지 휴대폰 6대를 구입하고 고맙다며

식사와 화기애애한 대화,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헤어졌다.

며칠 후 FAX로 소식을 전하여 답 글을 받고 이렇게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친분이 두터워지던 어느 날...

한국에서 구입한 핸드폰 기기 때문에 부탁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중국엔 선불제로 자신의 카드 칩을 구입하여 휴대폰에 삽입을 해야 하는데 당시 이를 전환시키는 방법에 대한 기술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방법을 몰라 헤매다가 결국 사용을 포기하고 반품하기로 했으나 그것도 길이 막힌 것이다.

그들을 초청했던 회사 사람들로부터 해결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고 설상가상, 통역을 했던 조선족 여성도 해결한다고 전화를 했는데 말을 실수하여 상황을 악화 시켰던 것이다.

그 여성의 말실수로 그 폰 마트 사장이 무척 화가 나 있어 무서워 그 곳에 갈수도 없다하여 핸드폰 기기 값 300만원을 그대로 손해 볼 처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2. 문제 해결

폰 기기를 반품환불 받기는 쉽지 않을 듯 했다. 자신에게 사기꾼이라고 말한 그 여자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낮은 자세로 웃으며 설득을 시작했다.

고객은 중국인이고 말실수는 조선족으로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의 이미지도 생각하고 우리가 해외에 나갔을 경우도 생각해 보자고...

두 시간을 따라 다니며 설득을 했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달리 데리고 올 사람도 없으니 결국 내가 해결할 수밖에 없어 고심하던 중에

그 사장이 퉁명스럽게 한마디 했다.

“SSIP H년! 내 앞에 와서 무릎 꿇고 빌어도 분이 안 풀릴 텐데... 헛수고 하지 말고 돌아가세요.”

“네, 그러시죠! 그러나 그 여성은 사장님께 죄를 지어서 못 온다고 하니까 제가 대신 무릎을 꿇고 빌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는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는데 그 사장은 깜짝 놀라며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로 인하여 손실 경비로 5만원을 내놓았는데 3만원만 받고 2만원은 되돌려 주며 반품으로 환불을 해 주었다.

“내가 장사를 오랫동안 했지만 손님처럼 끈질긴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웃으며 원만히 해결되었고 서로 덕담을 나누며 헤어졌다.

3.재회

푸동 신공항이 개항되기 전으로 상하이 홍차우 공항은 협소해서 무척 붐비고 있었다. 띵씨까오는 그런 점을 고려해 로비에서 내 이름표 피켓을 흔들어 쉽게 만났는데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니 헌 하오! 하오!”를 연발했다.

상하이 고등법원 공무원 큰 아들이 관용차로 함께 마중 나와 더욱 반가웠다. 푸동 강(江)을 중심으로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듯하여 중국의 발전상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띵의 집근처 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나니 통역사가 대 반점으로 안내를 했다.

띵 부부 아들 며느리 손자 그리고 친인척까지 한 분씩 모여들더니 이내 30명을 넘어 그 대 반점 가장 큰 홀의 대형 원탁 테이블에 손님으로 가득 찼고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상당히 신망 높은 가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성대한 자리에 주인공이 되고 보니 어리둥절해서 꿈을 꾸고 있는 듯 사뭇 즐거운 시간이었다.

띵은 한국 여행 중에 나를 만나게 된 것이 큰 행운이었다며 이를 자랑하고 싶어 여러분을 초대했다는 것이다.

SM5내차를 고급승용차로 생각한 모양으로 고급차에 친절한 안내로 인해 사례비나 리베이트를 요구 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소개를 하며 한국에 좋은 친구를 갖게 되어 무척 기쁘다고 내 손을 잡아 일으키는 가운데 여러분들에게 힘찬 박수를 받았다.

음식과 술이 쉴 새 없이 들어와 계속 권하여 어쩔 수 없이 취했다.

사모님 친구로 상당한 지위에 있는 분께서 내게 노래를 권하여 ‘선구자’를 목청껏 우렁차게 불러 환호와 큰 박수를 받았다.

이를 통역자가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을 노래한 것이라는 설명에 다시금 박수를 받았다.

4.관광

띵씨까오는 다음날부터 시내와 주변 도시 관광으로 나를 위한 여행에 나섰다.

나보다 3살 위로 꺼거(형)이라고 불렀는데 어느새 호흡이 잘 맞아서 통역사가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중국어, 한국어, 영어, 그리고 손 발짓 표정과 눈치까지 복합된 방법으로 대강 의사소통이 되었다. 때로는 사전을 이용하고 정말 어려운 문제는 조선족에게 전화를 걸어서 통역을 부탁했다.

띵의 계획대로 내가 관심 갖는 관광지를 돌아보며 식성도 닮은 듯이 띵이 주문하는 음식은 모두 맛있다 하니까 우리는 서로 이양(닮았다는 뜻으로 )이라며 무척, 기뻐했다.

큰 호수 따이호에서는 쾌속정으로 반대편 선착장까지 무려 30분 이상 걸리니 아마도 서울 면적만큼이나 큰 호수로 바다와 같이 파도가 치고 있어 놀랍기도 하고 정말로 큰 나라임을 실감 하였다.

이어서 무역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우 시에 들렸다.

동대문시장 같이 큰 시장이 무려 30개쯤 몰려있는 직거래 장터로 항상 각국의 무역상들이 붐비는 도시라고 했다. 이곳에서 인터넷에 잠깐 보았던 휠리스(바퀴달린 운동화)와 같은 상품을 발견하고 견본품으로 한 컬레 구입했다.

인라인을 즐기고 있었기에 이 상품이 인기 상품으로 부상 할 것이라 판단했던 것으로 띵 에게 몇일 후에 다시 올 것이라는 인사를 남기고 귀국하였다.

5.바퀴 신발

귀국 후 확인 결과 미국산 휠리스가 12만원인데 중국의 저가 상품이 새봄에 출품되면 인기상품이 될 것으로 판단했으나 동대문 신발업자들이나 스포츠상품 업자들은 한사람도 이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시험하기 위해 12만원을 주고 휠리스를 구입하고 다시금 상하이로 향했다.

역시 띵도 내 생각을 동의하지 않았으나 내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함께 공장을 찾아 여행길에 나섰다.

‘온저우’를 거쳐서 ‘루이안’까지 기차와 버스로 11시간이나 달려서 신발도매단지를 종일 헤맸어도 그와 같은 상품을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 이튿날은 내가 그 휠리스를 신고 어린애들처럼 시가지와 상가를 누비고 다녔다.

그 바퀴달린 신발이 신기하다며 깔깔대고 웃는 사람들이며 관심 있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과 대화가 즐거웠다.

그러던 중에 신발도매상으로 여사장 한 분이 그런 종류의 신발공장을 알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말했다.

그 분의 안내로 찾아간 공장도 이제 생산을 시작하였기에 무척 반가워했다.

그 해 봄 부산항에서 물류파동이 있었고 샤스 질병파동이 있어 물류가 상당히 지연되는 어려움과 어떤 업자가 웃돈을 더 주면서 그 상품을 가로채간 사건까지 직면하면서도 단돈 400만원으로 시작한 사업이 예상을 적중시키며 2개월 동안 4,000만원의 큰 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로 이 바퀴신발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상품도 서서히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띵에게 사례비로 250만원을 지불했는데 큰아들의 새 아파트 입주금으로 보탬이 되었다며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의형제를 맺게 되었고 5월에는 황산을 함께 등산하며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도 했다.

따라서 띵씨까오의 집 응접실 가족 사진액자에는 나에 사진이 들어있을 만큼 가까운 친구가 되어 10여 차례나 왕래 하며 각종 무역거래를 하였으나 최근 8년간은 왕래가 없어 소식이 끊어진 상태로 띵씨까오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 속에 친구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