萬里長城 (만리장성)
始皇防狄 築長城 (시황방적 축장성)
後世迎賓 萬里聲 (후세영빈 만리성)
閑風包客 雲漂樓 (한풍포객 운표루)
廻頭東天 首丘情 (회두동천 수구정)
진시황제는 북쪽의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힘들여 장성을 쌓았으나
그 후예들은 오히려 장성이 있어 먼 나라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네
한가로운 바람은 객을 감싸고 흐르고, 구름은 누각위로 둥실 떠가는데
머리를 들어 아득히 고국하늘을 바라보니 고향을 그리는 정이 일어나네
이십여 년 전 교육유공자에 대한 해외교육 시찰의 기회를 얻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늘 마음에 두었던 만리장성을 들리게 되었는데 안내하는 중국 모 대학의 인사로부터 만리장성의 축조 유래와 성을 쌓으며 일어났던 많은 일화를 듣게되었습니다.
안내를 하던 중 중국에는 만리장성에 관한 많은 좋은 시가 있다며 한국에서 학식이 높은 교육자들이 방문을 하였으니 멋진 시를 한번 지어보라는 압력에 가까운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시는 바와같이 한문에는 성조가 있어서 아무리 학식이 높은 분이라 해도 한시는 사전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지 않으면 한 구도 쓸 수가 없게 마련입니다.
전국에서 오신 백여명의 선생님들이 모두 난감한 표정으로 얼굴만 붉히고 있는 처지라 부득이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고 자청하여 생전 처음으로 지어 본 것이 위에 적어놓은 七言絶句 '만리장성'입니다.
마침 평소에 한시에 관심이 있어서 당송시대의 시를 자주 보아 왔던터라 지필묵을 가져오게하여 먹을 가는동안 시를 구상하여 지었습니다.
한시의 기본이 되는 起,承,轉,結 과 평측에 관한 원칙 이사부동 ,사륙대, 이륙동 ( 二四不同, 四六對, 二六同,)에 어긋나지 않게만 주의하며 붓에 먹을 찍어 한달음에 내려 적은 시여서 뒤에 읽어보니 스스로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시보다는 평소에 익혀 두었던 글씨 덕분에 시가 그럴 듯하게 여겨졌던지 안내하던 중국 교육계인사의 경이에 찬 찬탄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만용에 가까운 자신의 행동에 진땀이 흐르지만 덕분에 중국인들에게 우리나라 교육자들의 체면만은 유지 할 수 있었습니다.
장성은 시황제 때 끊임없이 침략하는 북쪽의 이민족인 흉노족을 막기위해 축성하기 시작하였으며 명대에 이러러 겨우 완성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랜세월 동안 북쪽의 이민족의 침략을 막겠다며 많은 사람들의 한과 피땀으로 세운 장성이 후세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관광자원이되어, 그들이 그렇게나 막으려고 애썼던 세계각국의 수많은 이민족 손님을 맞이하며 관광이익을 보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하며 起句와 承句를 짓고, 轉句 인 閑風包客 雲漂樓 는 당시의 풍정을 읊은 것이며 마지막인 結句는 우리나라는 부존 자원도 없지만 이런 대단한 유적조차 갖지를 못했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지은 한시 입니다.
2006. 초가을. 하늘 푸른 날 - 문향
萬里長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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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산하이관[山海關]에서 서쪽 자위관[嘉峪關]에 이르며, 지도상의 총연장은 약 2,700km이나 실제는 5,000km에 이를 것이다. 장성의 기원은 춘추시대의 제(齊)에서 비롯되어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연(燕) ·조(趙) ·위(魏) ·초(楚) 등 여러 나라가 장성을 구축하였다. BC 221년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자, BC 214년에 그때까지 연 ·조 등이 북변에 구축했던 성을 증축 ·개축하여, 서쪽의 간쑤성[甘肅省] 남부 민현[岷縣]에서 황허강[黃河] 서쪽을 북상하여 인산[陰山]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뻗어 랴오둥[遼東]의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함으로써 흉노(匈奴)에 대한 방어선을 이룩하였다. 다시 한대(漢代)에 이르러 무제(武帝)는 BC 2세기 말에 영토의 서쪽 끝인 둔황[敦煌] 바깥쪽의 위먼관[玉門關]까지 장성을 연장하였다.
진 ·한 시대의 장성은 현재의 장성보다 훨씬 북쪽에 뻗어 있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위치로 남하한 것은 거란(契丹) ·돌궐(突厥) 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즉, 북위(北魏)는 5세기 초에 장성을 보강하고, 중엽에는 수도 평성(平城) 부근에 또다른 성벽을 구축하였다. 또, 북제(北齊)는 6세기 중엽에 오늘날의 다퉁[大同] 북서쪽에서 쥐융관[居庸關] ·산하이관에 이르는 장성을 축조하고 다시 뒤이어 현재의 네이창청[內長城]에 해당하는 곳에 중성(重城)을 구축하였다. 한편, 오늘날의 허난성[河南省] ·산시성[山西省] 경계 북부를 타이항 산맥[太行山脈]을 따라 남하하는 장성도 북주(北周) 방어대책으로 그 무렵에 축조된 것인 듯하다. 그 후 수(隋)나라는 오르도스[鄂爾多斯] 남변에 장성을 구축했고, 당대(唐代)에 들어와서는 장성의 훨씬 북쪽까지 그 판도를 넓혔기 때문에 방어선으로서의 장성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또 오대(五代) 이후에는 장성지대가 북방민족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방치되었다.
장성이 산하이관에서 자위관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명대(明代)에 들어와서였다. 영락연간(永樂年間:1403∼1424)부터 보강이 시작되어, 정통연간(正統年間:1436∼1449)에 내장성이, 성화연간(成化年間:1465∼1487)에 오르도스 남변의 장성이 수축(修築)되고, 다시 가정연간(嘉靖年間:1522∼1566)에는 동쪽 일대의 장성이, 15세기 중엽∼16세기 초엽에는 오르도스 서쪽 끝에서 란저우[蘭州]를 거쳐 자위관에 이르는 장성이 완성되었다. 명(明)나라는 이 장성지대를 9개의 군관구(軍管區)로 나누어 구변진(九邊鎭)을 두고, 장성을 통과하는 교통요지, 즉 옌먼관[雁門關] ·쥐융관 ·구베이커우[古北口] ·장자커우[張家口] 등지에는 견고한 관성(關城)을 설치하였다.
청대(淸代) 이후에는 군사적 의의를 상실하고, 단지 중국 본토와 둥베이[東北:만주] ·몽골 지역을 나누는 정치 ·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다. 한편, 축성의 재료는 햇볕에 말린 벽돌과 전(塼) ·돌 등이며, 성벽은 높이 6∼9m, 폭은 상부 4.5m, 기부(基部) 9m이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목록에 수록되어 있다.
첫댓글 단단히 꾸지람을 들을 각오로 올린 글이므로 저의 치기에대한 한시에 능통하신 선배제현님들의 따가운 질책을 기다립니다.
역시 문향님이십니다~! 자작시를 엿보니 더욱 고적한 정감이 가는 군요! 그윽한 한시의 세계입니다~!
활리님! 카페지기님의 과찬의 시평 송구스럽고 또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토록 하겠습니다.
아~ 대단하십니다. 한시의 문외한이 입만 벌리고 갑니다. 어렸을때 할아버지가 훈장이셧는데 ,그때 명심보감.학의 축의 .대학 까지 익혔지만 지금은 몇구절 아는것도 없습니다. 그때는 시골 동네에서 천재 소리도 들었답니다. ㅎㅎ 이시간에 부러움 잔뜩 올리며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호천사님! 그러셨군요^^* 어릴적에 배운 것은 일생의 삶에 큰 바탕이 되어주지요. 귀한 방문의 글 감사드립니다.
와..원더플 입니다 ㅎㅎㅎㅎ 저도 한시를 좋아하지만.. 자작 한시 너무 멋집니다. 님께서 보내주신 영상과 한시를 음미하며 그윽한 차향과 함께 잠시 쉬어갑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한 저녁 시간 되십시요^^*
클래식 산책님! 과찬인 줄 알면서도 이런 칭찬의 말씀을 듣게되면 마음이 달뜨고 기뻐집니다. 님도 늘 행복하시고, 즐거운 날들 이시길요...
우와! 뭘 알아야 논평도 하지요. 그저 입벌리고 멍~~하니 놀랄 밖에요. 어디서 구해오신 건지 배경음악도 멋져요. 님의 취미가 도대체 어디까지 인지 넓이와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고즈넉한 밤에 그리운 님을 떠올리며 듣기 좋은 가락입니다.
sisi님!^^* 모르신다며 어떻게 감탄을 하십니까? 제가 진작부터 님의 깊은 내공과 넉넉한 품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어찌 이런 겸양의 말씀이신지요...^^* '過恭非禮' 란 말씀이 이런 경우가 아닐런지요...
아,참!! 오는 6월 15일 울산객석문화가 주최하는 연주회가, 대금 원장현님을 모시고 공연이 열립니다. 울산대학교 음악홀에서 오후 8시입니다. 특히 관심 있으신 분은 오셔서 지방에서는 좀처럼 모시기 어려운 분의 연주를 함께 감상했으면 합니다. 누구든 대환영입니다.
sisi 님! 귀한 연주회 초청 감사합니다.
우선 문향님의 대단하신 작품에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문향이란 네임에 품격이 맞으십니다. 넘 멀리 살아 음악회가 아쉽네요.
암브로사아님! 방문 감사드립니다. 문향은 서예선생님께서 제게 내려 주신 이름으로, 지인들이 불러주어 벌써 삼십년 이상 쓰고 있지만 제 품에는 넘는 이름입니다. 저는 연주회에 초대 받고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치 못하였는데 원장현님의 대금 연주가 아주 훌륭했다는 연주회 평글을 읽었습니다^^*
문향님의 칠언절구 가 일품이군요! 과연 10년전에 올랐었던 만리장성에 올라서서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낄수가 있군요!!! 문향님의 문장력에 감탄 하면서 한참 음미하다 돌아갑니다.
이삿갓님! 귀한 걸음해주시며 분에 넘치는 평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비옵니다
삼복, 모시 적삼에 드는 바람결 같은 음률에, 시성두보 글귀를 만난 듯, 여 보라는듯이 국위선양 하고 오신 글, 흐믓이 보고갑니다. 왜 문향님이신가를 알겠습니다
제 글보다는 님의 평글이 더욱 향기롭습니다. 늘 기쁨과 화평의 날들이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