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들어서도 두 개의 태풍이 잇따라 한반도 주변을 휘젓고 지나가는 등 궂은 날씨가 계속됐지만 한여름의 무더위는 여전하다. 이 즈음에는 굳이 큰 계곡을 끼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가볍게 산행을 즐긴 후 시원한 물까지 뒤집어 쓸 수 있는 산행지를 찾기 마련이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경남 거창의 감악산(紺岳山·952.0m)은 이런 요구를 적절히 충족시켜주는 산이다. 6·25전쟁 시기 거창양민학살사건이라는 비극을 안고 있는 거창군 신원면과 그 북쪽 남상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거창읍의 남쪽에 솟은 거창의 진산이기도 하다. 정상부에 방송사 중계소가 설치돼 있는 바로 그 산이다. 감악산은 남상면 쪽에 천년고찰 연수사(演水寺)와 선녀폭포를 끼고 있고 반대 편인 남쪽 신원면 쪽에는 신선폭포를 품고 있다. 특히 남상면 지역에는 일명 '감악산 물맞이길'이라고 하는 신개념 등산로가 개설돼 있다.
■정상부 일망무제 풍광·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 압권
그런데 '물맞이길'이라는 이름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붙게 됐을까? 연수사 옆에 있는, 그 유명한 '물맞는 약수탕' 때문이다. 이번 주 '근교산&그 너머' 취재팀은 바로 이곳 물맞는 약수탕을 찾아 감악산으로 향했다. 한 바탕 땀을 쏟은 후 이곳에서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원 없이 맞노라면 한여름 산행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다. 더불어 신비로운 3단 폭포인 선녀폭포의 비경을 감상하고 정상부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진 명산들의 멋진 모습을 조망하는 것 또한 이번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산행은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가재골주차장을 기·종점 삼는 원점회귀 코스로 진행된다. 총거리는 7.5㎞가량 되고, 약수탕에서 물을 실컷 맞는 시간까지 포함해도 4시간 정도면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다. 가재골주차장~선녀폭포~갈림길~채소밭~산길 입구 갈림길~명산 갈림길~감악산 정상~방송사 중계소 뒤 갈림길(해맞이공원)~연수사갈림길~연수사~물맞는 약수탕~사거리~임도~가재골주차장 순.
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거창 감악산 연수사의 600년 된 은행나무.
화장실과 팔각정이 완비되어 있는 가재골주차장에서 이정표 상 왼쪽인 선녀폭포 방향으로 내려선다. 2분 후 계단을 내려서면 계곡 옆 임도. 오른쪽으로 꺾어 3분만 가면 두 번째 구름다리가 설치된 선녀폭포 입구다. 왼쪽으로 건너 100m가량 안쪽으로 들어서면 계곡 깊숙한 곳에 선녀폭포가 있다. 높이 10m가 넘는 멋진 폭포다. 다시 입구로 나와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30m만 더 가면 선녀폭포 전망대 계단이 나온다. 왼쪽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선녀폭포의 전체적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1단으로 보이는 아래쪽과 달리 이곳에서는 3단으로 이뤄진 폭포라는 것을 알게돼 더욱 신비롭다. 칠석날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승천하곤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7.5㎞ 원점회귀 코스… 초반부 선녀폭포 알짜배기 절경
거창 감악산 정상부에서는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압권이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인 취재팀 뒤쪽 멀리 오도산 비계산 가야산 등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와 5분가량 더 임도를 따라 오르면 갈림길. '감악산 2.6㎞'라 표시된 이정표를 보면서 왼쪽으로 길을 잡는다. 널따란 채소밭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산행로 입구가 열려 있다. 산길로 접어들면 주변은 온통 짙은 그늘. 완만한 경사의 산길을 따라 20분 정도 여유롭게 오르면 능선에 닿고, 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우측으로 '연수사 1.3㎞'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설치된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길은 제법 가팔라진다. 30분쯤 줄기차게 오르면 명산 갈림길. 왼쪽으로 '명산 4.7㎞'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정상 방향인 오른쪽으로 길을 잡아 10여분 더 오르면 해발 952m 감악산 정상이다. 거대한 정상석과 함께 훤히 뚫린 사방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팔각정이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는 남동쪽으로 합천호 주변의 금성산 악견산 의룡산 허굴산과 합천 산청의 경계에 솟은 큰 산인 황매산이 월여산 너머에 버티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고, 남쪽으로는 멀리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웅석봉 정수산 둔철산 왕산 필봉 등 산청의 산들이 펼쳐진다. 또 서북쪽으로는 덕유산 향적봉과 남덕유산, 황석산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 함양백운산 등 그 유명한 명산들이 첩첩이 이어지고, 북동쪽으로는 가야산을 필두로 수도산 비계산 오도산 두무산 미녀봉 등 산꾼들에게 사랑받는 경남 내륙의 이름난 산들이 자기들도 좀 봐달라며 손짓하는 듯하다.
천혜의 조망처로 유명한 감악산은 정상 옆 방송사 중계시설 덕택(?)인지 임도가 개설돼 있어 아예 차량을 타고 올라와 풍광을 즐기려는 사람들도 꽤 많다.
방송사 중계시설 뒷편 갈림길을 무시하고 100m쯤 더 가면 왼쪽 중계소 정문 부근에 해맞이공원이 있다. 새해 첫 날 거창 주민들이 해맞이를 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 다시 100m쯤 더 가면 연수사 방향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있다. 임도를 버리고 우측 내리막 산길을 탄다. 제법 넓게 정비된 산행로인 까닭에 별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다. 20분만 내려서면 작은 사거리 갈림길. 우측으로 틀면 곧바로 연수사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600년 된 은행나무가 일주문 옆을 지키며 버티고 선 연수사는 신라 애장왕 3년(802년) 감악조사가 현재 위치 남쪽에 절을 세우려 했는데, 다듬어 놓은 서가래 제목인 큰 통나무가 한밤에 없어져서 다음 날 찾아보니 지금의 대웅전 자리에서 발견됨에 따라 처음 계획을 수정, 이곳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온다. 사찰 일주문 옆 600년 된 큰 은행나무(높이 38m 둘레 7m)는 고려 왕손에게 시집 가 유복자를 낳고 속세를 떠나 입산한 여승이 심었다고 전해지며, 현재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천년고찰 연수사 600년 된 은행나무엔 애틋한 사연도
신라 헌강왕이 중풍을 고쳤다고 전해오는 연수사 '물맞는 약수탕'.
일주문 주변과 약 200m 떨어진 '물맞는 약수탕' 가는 길목에는 한여름 더위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람 머리 크기의 돌로 담장을 쌓아 남탕과 여탕 구분을 해 놓은 '물맞는 약수탕'은 신라 헌강왕(재위 875년~886년)이 이 물을 마시고 목욕 한 후 지병인 중풍을 고쳤다고 전해오는 약수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목욕을 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냉기를 내뿜는 이 약수의 원수는 연수사 대웅전 뒤 약수바위에서 솟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옷을 벗고 물을 맞으면 뼛속까지 얼얼해 지는 느낌이다. 해발 700m에서 즐기는 냉수욕은 채 1분도 버티기 힘들다.
약수탕에서 동쪽으로 5분만 가면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 갈림길. 선녀폭포 방향인 왼쪽 내리막길을 탄다. 임도까지는 15분 정도 걸리고, 왼쪽으로 돌아 오르면 도로를 만난다. 오른쪽으로 200m쯤 가면 출발지인 가재골주차장에 닿는다.
◆떠나기 전에
- 김종직 父 김숙자 선생 모신 사당 등 주변 둘러볼만
거창 남상면 대산리의 김숙자 사당. 경남 문화재자료 제126호이다.
산행 기·종점인 거창군 남상면 무촌리 가재골주차장에서 거창읍 방향으로 가다가 이웃마을인 대산리와 전척리에 들러보자. 대산리에는 조선 초기 성리학자이자 김종직 선생의 부친인 김숙자(1389년~1456년) 선생을 모신 '김숙자 사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26호)'이 있다. 추원당(追遠堂)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김숙자 사당은 세조의 정권 찬탈에 반발해 밀양으로 낙향, 후학들에게 야은 길재로부터 이어지는 성리학의 전통적 학풍을 가르친 그의 충절과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선산 김씨 후손들이 1706년에 건립한 곳이다. 또 옆 동네인 전척리에는 김숙자 선생을 비롯해 정몽주 길재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 정여창 등 칠현을 모신 사당인 일원정(一源亭)이 있다. 1905년 선산 김씨 후손들이 건립했으며 초기에는 서원 역할도 겸했다고 한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돼 있다.
◆교통편
- 부산~거창 버스편 하루 12회 운행, 2시간 40분 걸려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거창행 시외버스는 오전 7시05분, 8시20분, 9시25분 등 하루 12회 운행(1만3800원)한다. 평균 2시간 40분 소요. 거창터미널에서 가재골주차장으로 가는 군내버스는 오전 11시 1대 밖에 없다. 택시(거창택시 055-944-4060, 011-871-4911) 요금은 1만5000원 안팎. 산행 후 거창읍 행 버스도 오후 7시40분께 1대 밖에 없다.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88고속도로 거창IC에서 내려 거창IC(대구) 고령 합천 방면으로 좌회전, 국농소 삼거리에서 남상 신원 방면으로우회전한다. 월평삼거리에서 월평리 방면으로 우회전, 2㎞ 이동한다. 삼거리에서 함양 방면으로 좌회전했다가 산청 신원 방면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