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숭겸(崇謙)이다. 그는 전라도 곡성(谷城) 출생으로, 본래 궁예(弓裔)의 막료였는데 배현경(裵玄景)·복지겸(卜智謙)·홍유(洪儒) 등의 장군과 함께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하여 개국공신이 되었으며, 927년(태조 10) 공산(公山)싸움에서 태조의 위급을 구출하고 대신 전사하였다. 《삼국사기》에는 태조가 이들 네 공신에게 각각 사성(賜姓)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평산신씨의 세계는 시조의 14대손에서 25파로 갈리는데, 그 중 사간공파(思簡公派:浩)·문희공파(文僖公派:槩)·제정공파(齊靖公派:孝昌)·정언공파(正言公派:曉)·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夏) 등이 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사간공파와 문희공파가 전체 평산신씨의 각 30%씩 도합 60%를 차지하고, 제정공파가 25% 정도를 차지한다. 조선에 상신 8명, 대제학 2명, 판서 20여 명과 많은 무장을 배출하였는데, 대부분 문희공파·정언공파·사간공파에서 나왔으며, 특히 문희공파는 임진왜란 때의 명장 입(砬)을 중심으로 하는 무신집안이고, 정언공파는 영의정 흠(欽)을 중심으로 하는 문신집안이다.
주요 인물을 파벌로 살펴보면, 먼저 문희공파에서는 개(槩)가 세종 때 예문관대제학·좌찬성을 거쳐 우의정·좌의정에 올랐으며,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그의 중손 상(鏛)은 중종 때 호당(湖堂)을 거쳐 이조·예조 판서를 지냈는데, 문희공파의 주요 인물은 모두 상의 후손에서 나왔다.
상의 손자 잡(磼)은공신으로 평천부원군에 봉해졌고, 그의 아우가 바로 임진왜란 때의 명장 입이다. 입의 아들 경진(景禛)·경유(景裕)·경인(景禋) 3형제는 모두 무과 출신으로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국공신이 되었다. 특히 경진은 병자호란 때의 명장으로서 조선에서 무과 출신으로 영의정까지 오른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문희공파에서만 장신(將臣)이 10여 명이 나왔으며, 입의 현손으로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완(琓)은 장희빈(張禧嬪) 처벌 때 서인(西人)의 소론(少論)에 속하여 온건론을 주장하였다. 또 여류문인이며 서화가이고, 현모양처의 귀감으로 추앙받는 사임당(師任堂), 조선 후기 서화가인 위(緯)·명연(命衍) 부자가 있다.
특히 위는 한시(漢詩)의 대가이며 대사간·도승지를 지냈다. 정언공파에서는 흠이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인조 때 대제학·영의정을 지냈는데,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더불어 조선의 4대 문장으로 꼽힌다.
그의 아우 감(鑑)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왕조실록 복간에 공이 컸고, 아들 익성(翊聖)은 인조 때 병자척화 5신(丙子斥和五臣)의 한 사람으로 청(淸)나라에 잡혀갔으며, 그의 아우 익전(翊全)과 함께 문한(文翰)으로 이름을 떨쳤다. 이 밖에 숙종 때 명인 정(晸), 고종 때 좌의정을 지내고 봉조하(奉朝賀)가 된 응조(應朝), 그리고 판서를 지낸 응현(應顯)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