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로 10일 되는 날.
물안개 속에 잠겨 있는 700리길 낙동강을 오순도순 둘이 건넜다.
서울에서 내려온 산지기님과 나룻배가 아닌 낙단교를 밟고.
상주시 낙동면(洛東)과 의성군 단밀면(丹密)을 잇는다 해서 낙단교(洛丹)다.
기념비의 기록에 의하면 1986년에 건립된 다리다.
그 때가지는 가로막은 물길 700리 낙동강을 오직 나룻배에 의존했으니 상주, 의성 모두 얼마나 불편했을까.
강은 물론 뭍과 섬을 연결하는 교량들 덕에 섬들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에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47A0D164A24173709)
참으로 희한한 다리다. 실수일까. 의도적이었을까.
일선리 문화재마을의 水柳禹鄕(수류우향)
안동 임하땜에 수몰된 무실리(水谷) 전주류씨네의 새 마을이다.
'수류우향'은 水谷의 柳씨 일가가 조상의 혼이 어린 故鄕을 떠나 새로 터전을 잡은
타관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단다.
1987년 전후에 70 여호가 여기로 옮겨왔는데 이건(移建) 건물중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10여점이나 된다니 하마터면 이 소중한 자산들이 수장될 뻔 했다.
대형 댐 건설로 인한 수몰민의 이주마을이 전국에 걸쳐 참 많다.
보상비 때문에 생긴 가슴아픈 사연도 많은데 역시 선비정신인가.
거금의 보상비를 거머쥔 수몰민들이 사기꾼과 주색잡기의 타깃(target)이 되어 새
터전을 잡기는 커녕 패가 망신한 이가 수두룩한데 그들은 잘 정착했으며 문화재들
까지 지키고 있으니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157A0D164A2417390B)
낙산리 의구총(義狗塚)
술 취해 강뚝에 쓰러져 잠든 주인, 뚝을 태우는 불, 강물에 몸을 적셔 불을 끄고 죽는 개 등
스토리 전개는 전국적으로 한 판이다.
단지, 무덤을 만들어 준 것으로 끝난 이 의구총은 통영별로 전북 임실군 오수(獒樹)의 의견
(義犬)보다 전개가 미진하다.
무덤에서 나무가 나와 무성하게 자랐다는 단 한 줄 차이지만 효과는 지대한 차이를 보이는데.
그 나무를 獒樹(개나무)라 명명했고 나아가 지명까지 됐으니까.
![](https://t1.daumcdn.net/cfile/cafe/177A0D164A2417390D)
낙산리(洛山) 200여기의 고분군(古墳群:사적 제336호)
원(原)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의 여러 종류와 다양한 형태의 무덤으로 이 일대를 지배했던
토착세력의 집단 묘지로 추정된단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 살단 서민들의 애환이 어떠했을까를 짐작하기는 결코 난해한 일이 아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7A0D164A24173B0F)
海東最初伽聖地太祖山桃李寺(해동최초가람성지태조산도리사) 산문(山門)
도리사는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19대 눌지왕 때) 고구려의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 세웠다는 해동불교의 발상지다.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해서 桃李寺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절이다.
서울에서 내려와 하루를 함께 해준 '산지기'님.(아래 그림2)과 상주에서 의성을 거쳐
구미까지 동행했다.
이 동행은 10대로와 제주로 통틀어서 유일하다.
다만, 왕복 10km가 넘는 거리때문에 탐방을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7E88264A94DCE16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