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혼후, 단순히 '황금 대묘'가 아닙니다. :海昏侯,不仅仅是“黄金大墓”
출처: 신화망 작성자: 袁慧晶 고고학 중국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그는 후한 폐제 유하(劉贺)로, 사서에 따르면 황제는 27일 동안 1127건의 황당한 일을 저질렀으며, 일생 동안 왕, 제, 평민, 후대의 네 가지 신분을 거쳐……2011년 3월 어느 날, 그의 안식처는 도굴범에 의해 14미터 깊이의 구멍을 뚫어 구조적인 발굴이 시작되어 2천년 전 한나라 후국의 베일을 벗었습니다.
▲ 해혼후묘의 주관에서 출토된 금전은 반가운 점은 도굴범들이 손에 넣지 않았다는 점. 묘원에서는 금기, 청동기, 철기, 옥기, 칠목기, 도자기, 직물, 죽간 등 각종 진귀한 유물 1만여 점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놀라운 양의 '금기더미'가 출토되어 '황금대묘'라 불렸습니다.
전문가들은 8년의 고고학적 발굴 끝에 하이옌허우 국가의 일련의 유적이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넓은 면적, 가장 잘 보존되고 가장 풍부한 함축성을 가진 한나라 허우 왕조의 유적이라고 믿습니다.
▲ 해혼후 묘원 5호 무덤 주관에서 옥기(玉器)를 채취하여 한대 후국 취락 유적지인 남창시 신건구 다탕핑향 관시촌에서 산꼭대기에 있는 도굴을 발견한 후 구조 발굴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도굴은 주곽실 중앙으로 직통하는데 주관은 여기 없고 북동쪽 구석에 있어서 도굴범들의 추가 피해를 막았습니다."해혼후묘 고고학 인솔자인 양쥔(楊軍) 장시(江西)성 문물고고연구소 연구원은 지금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 발굴 전 해혼후 유하 묘와 그 부인 묘의 발굴 작업이 진행되면서 묘주가 유하일 가능성이 높다는 여러 가지 징후가 있습니다.유하 너는 모를 수도 있지만, 그의 할아버지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한 무제 유철. 유하 사인의 발견으로 묘주 정체에 대한 추측에 마침표를 찍게 된 이 한대 묘원과 주변 유적도 점차 베일을 벗게 되었다.
▲ 해혼후 묘주곽실 대유기인 옥인 묘원은 약 4만㎡의 부지에 9기의 묘소와 1기의 차마갱, 사당, 침전, 도로, 배수시스템 등 각종 지상 건물 터, 배치와 제사체계의 완비 등으로 고고사상 보기 드문 고고학적 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주변에서는 여러 대의 해혼후의 묘소와 금나라의 빈민가 발견되고 있다.… 해혼후묘 고고학 발굴 전문가 그룹의 리더인 신리샹(信立祥) 중국 진한고고고학회 회장은 "전국 초제(初制)로 매장된 장사마왕퇴열후묘, 다른 주묘가 도굴된 한나라 열후묘와 달리 해혼후묘원은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유일한 한제(漢帝)로 매장된 열후의 '표본묘'"라고 말했습니다.
해혼후국 계열의 유적으로 구성된 대규모 유적 단위는 현재 발견된 면적이 가장 크고 보존이 가장 좋으며 내포된 한나라 후국 취락 유적지입니다. 풍부한 성과로 진한고고사를 기록한 제1해혼후묘원 출토 금기 480점, 무게 120kg이 넘는 금기가 한나라 무덤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유적지의 의미는 결코 '다금(多金)'에 있지 않습니다.
해혼후묘의 고고학은 또한 진나라와 한나라의 고고학 역사에서 많은 1위를 기록했으며 국내 최고의 고고학 전문가들에게도 '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 해혼후 마제금
▲ 해혼후 묘지 인지금 장강 이남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대형 수레와 말 매장 구덩이.주묘의 서쪽에 위치한 마차 부장갱은 고고학자들이 이 구덩이에서 총 5대의 목제 채색 수레와 20여 마리의 말의 흔적, 3000여 점의 금은 장식이 뒤섞인 아름다운 마차를 발견했습니다.
▲ 공자의경이 출토되었을 때, 중국 최초의 공자상이 발견되었습니다.주곽실 서쪽에는 인물 형상을 한 의경(衣镜) 세트가 출토되었고, 인물 아래에 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합니다.제자 부분에서는 '공자', '안회', '숙량흘' 등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야거생(野居生)'이라는 글자도 잘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최초의 한약 포제품 실물이 발견되었습니다.중국공학원 학자이자 중국중의과학원 학장인 황루기는 현미경, 질량분석기, 핵자기 및 3차원 재건과 같은 현대 기술을 통해 발견된 동충하초 물질이 현삼과 식물인 지황속 식물 뿌리의 보조 재료 가공 제품이며 외부 보조 재료에는 전분과 설탕이 포함됩니다.
▲ 해혼후묘에서는 동충하초류 물질 5200여 점의 출토 서신에서 여러 놀라움을 발견했습니다.지(知)도 편제가 보존되어 있는 해혼간본 논어는 한위시대에 이미 실전된 제논어이며, 해혼간본 춘추의 발견은 춘추경전이 출토문헌에서 최초로 발견된 점, 육박의 행기구결이 처음 발견되어 한대의 사회풍토 연구에 도움이 된 점, 양생은 실전된 지 오래 된 용성질서의 가능한 모습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
▲ 해혼후묘에서 출토된 옥곰패의 풍부한 고고학적 성과는 또한 소선시대의 복잡한 정치사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역사책에서 류허는 '행혼란, 위태로운 사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지만 고고학적 발견은 또 다른 진실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황음'은 증거가 안 됩니다.
출토된 유물로 미루어 보아 유하가 교육을 잘 받은 것으로 판단되며, 역사책에도 비녀와 붓을 가진 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가 폐위된 것은 북-중 정세를 오판하고 너무 이른 예봉을 드러낸 것으로 보입니다.
▲ 해혼후묘에서 출토된 은양은 내년에 '해혼후'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2015년 초, 국가문물국은 세계유산 등재를 기준으로 해혼후묘원과 그 주변 유적의 발굴, 보호, 전시 및 활용을 잘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장시성 문화재 고고학 연구소장이었던 쉬창칭은 발굴, 정리 및 보호 과정에서 문화 보호자와 고고학자가 항상 긴밀히 협력하여 발굴과 보호를 효과적으로 달성했다고 말했습니다.
▲ 연구원들은 현미경, 질량 분석기, 핵 자기 및 3차원 재건과 같은 현대 기술을 사용하여 해혼후 묘지에서 발견된 동충하초 물질을 분석하고 있습니다.죽간은 회랑 북서쪽 구석에 쌓여 쓸모없는 옻칠을 한 것처럼 보였고, 슬은 북회랑에 있어 무늬 없는 덧널판 같았습니다.전문가 그룹인 우순칭 후베이 징저우 문화보호센터 연구원의 고집으로 '페인트 가죽'과 '곽판'이 제때 처리돼 수천 개의 한간과 보기 드문 길이 2.1m의 대슬 한 줌이 빛을 보게 됐다고 관리는 말했습니다.
▲ 주묘인 덧널실 회랑의 3차원 영상도 발굴과 보호 과정에서 신기술이 대거 적용된 것은 해혼후국 고고학 발굴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입니다.조사와 발굴 초기에는 지구물리탐사, GPS 위치추적, 전자전역계측망, 글로벌지리정보시스템(GIS) 기록 등 과학기술적 수단을 많이 사용해 조사자료를 완전 정보화해 해혼후국 유적지의 지리정보시스템을 초보적으로 구축했습니다.해혼후묘 고고학 인솔자인 양쥔이 말했습니다.
구조가 복잡하고 취약한 일부 문화재는 실험실의 고고학적 정화를 위해 상자에 넣어 추출하는데, 예를 들어 거마갱, 묘곽의 쌍거마, 나무거마, 류허의 주관은 모두 일괄적으로 포장하여 추출하는 방식입니다.주관에서 발견된 류허의 치아는 DNA 검사를 통해 주인의 죽음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거나 생전의 음식에 대한 선호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 고고학 작업에서 인력, 자금,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국내 최고의 연구역량을 투입하는 것은 바로 문화재 정보를 최대한 보존해서 일반에게 알리는 것입니다."고고 발굴과 함께 유물 보존과 전시 활용을 함께 고려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신리샹은 말합니다.
▲ 2015년 말과 2016년 발굴 과정에서 하이쉰후국의 일부 출토 문화재가 장시성 박물관과 수도 박물관에 임시 전시되어 '하이쉰후 열풍'을 일으켰습니다.남창한대 해혼후국유적공원도 내년 초 일반에 공개될 예정.
분류:고고학 연구
본문 태그:유하해혼후황금대